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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8월]] 설계 담당자는 35 cm (13.8인치), 38 cm (15인치), 40 cm (15.7인치) 포로 무장한 함선에 대한 연구를 준비하였다: 40cm 구경은 영국에 의해 제조될 수 없다고 잘못된 가정했기 때문에 당대 최대 구경이라고 여겨졌다. 다음 달 회의에서 선호되는 디자인은 5개의 포탑에 35cm 대포 10개 또는 4개의 포탑에 40cm 대포 8개로 무장한 배였다. 무기부는 목표물을 타격할 확률이 25% 더 높을 것이라고 지적하며 35cm 함포를 지지했다. 티르피츠는 2연장 포탑과 3연장 포탑이 혼합된 포탑에 대해 문의했으나, [[오스트리아-헝가리]] [[테제토프급 전함]]의 포탑을 조사한 결과, 3연장 포탑이 여전히 너무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러한 결함들 중에는 무게 증가, 탄약 공급 및 발사 속도 감소, 그리고 포탑 중 하나가 불능화되면 비교적 심각해진 전투력 상실 등이 있었다. | 그 해 [[8월]] 설계 담당자는 35 cm (13.8인치), 38 cm (15인치), 40 cm (15.7인치) 포로 무장한 함선에 대한 연구를 준비하였다: 40cm 구경은 영국에 의해 제조될 수 없다고 잘못된 가정했기 때문에 당대 최대 구경이라고 여겨졌다. 다음 달 회의에서 선호되는 디자인은 5개의 포탑에 35cm 대포 10개 또는 4개의 포탑에 40cm 대포 8개로 무장한 배였다. 무기부는 목표물을 타격할 확률이 25% 더 높을 것이라고 지적하며 35cm 함포를 지지했다. 티르피츠는 2연장 포탑과 3연장 포탑이 혼합된 포탑에 대해 문의했으나, [[오스트리아-헝가리]] [[테제토프급 전함]]의 포탑을 조사한 결과, 3연장 포탑이 여전히 너무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러한 결함들 중에는 무게 증가, 탄약 공급 및 발사 속도 감소, 그리고 포탑 중 하나가 불능화되면 비교적 심각해진 전투력 상실 등이 있었다. | ||
설계 연구에 따르면 35cm 함포로 무장한 경우 약 2만9천 톤에 약 5970만 마르크를, 40cm 함포로 무장한 경우 약 6천만 마르크, 2만8250톤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두 계획안 모두 가격이 너무 비싼 것으로 판명되었다. 건조부는 38cm 함포 8문으로 무장한 2만8100톤 정도의 전함을 제안해 한 척 당 5750만 마르크로 비용을 줄였다. 이 설계는 [[9월 26일]] 차세대 전함의 기준으로 채택되었고, 38cm 포의 채택 결정은 [[1912년]] [[1월 6일]]에 공식적으로 내려졌다. 1912년까지 설계에 대한 작업은 계속되었으며, 이전 '''쾨니히급 전함'''에서 채택된 장갑 배치의 추가 개발을 포함하였다. 원래 이 함선들은 8.8cm (3.5인치) 대공포 8문으로 무장할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 설계 연구에 따르면 35cm 함포로 무장한 경우 약 2만9천 톤에 약 5970만 마르크를, 40cm 함포로 무장한 경우 약 6천만 마르크, 2만8250톤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두 계획안 모두 가격이 너무 비싼 것으로 판명되었다. 건조부는 38cm 함포 8문으로 무장한 2만8100톤 정도의 전함을 제안해 한 척 당 5750만 마르크로 비용을 줄였다. 이 설계는 [[9월 26일]] 차세대 전함의 기준으로 채택되었고, 38cm 포의 채택 결정은 [[1912년]] [[1월 6일]]에 공식적으로 내려졌다. 1912년까지 설계에 대한 작업은 계속되었으며, 이전 '''쾨니히급 전함'''에서 채택된 장갑 배치의 추가 개발을 포함하였다. 원래 이 함선들은 8.8cm (3.5인치) [[대공포]] 8문으로 무장할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실제로 탑재되어 건조되지는 못했다. 계획되어 건조되는 동안 [[디젤 엔진]]의 개발이 문제를 겪고 있었기 때문에, 설계 담당자는 전통적인 [[증기 터빈]]을 도입했지만, [[SMS 작센|3번째 함]]이 건조 준비를 마쳤을 때 신뢰할 수 있는 디젤 엔진을 장비할 수 있길 희망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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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4월 19일 (월) 17:06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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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바이에른급 전함은 독일 황립해군이 최초로 운영한 초-드레드노트급 전함이다. 기존의 쾨니히급 전함의 설계를 발전시켜 15인치포를 장착하고 중앙포탑을 제거한 형태로 독일 전함 설계의 완전체이다. 이후 지크프리트급 전함의 설계의 바탕이 된다.
자매함의 이름은 차례차례 바이에른, 바덴, 작센, 뷔르템베르크으로 대공국 바덴을 뺀 나머지 3척은 독일 제국 소속의 왕국에서 따왔다
동형함 목록
SMS 바이에른 | SMS 바덴 | SMS 작센 | SMS 뷔르템베르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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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
1910년부터 새로운 전함의 무장을 고려하면서, 이 함급에 대한 설계 작업이 시작되었다. 다른 해군이 30.5cm (12인치) 이상의 포로 방향을 정했다는 것이 분명해졌고, 따라서 차기 독일 전함도 더 큰 함포를 운영해야 했다. 독일 해군 무기부는 32cm (13인치)의 포를 제안했지만, 1910년 5월 11일 회의에서 알프레드 폰 티르피츠 제독은 예산의 제약으로 더 큰 무기의 채택을 배제하기로 결정했다. 이듬해 제2차 모로코 위기(아가디르 사태)의 여파로 티르피츠는 영국이 위기에 개입한 것에 대한 대중의 항의를 재빨리 받아들여 해군을 위한 추가 자금을 충당하로독 독일 제국의회(라이히스타그)에 압력을 가했다. 이것은 더 강력한 전함을 위한 개방을 제공하였고, 티르피츠는 1911년 중반 34cm (13.4인치) 포로 무장한 함선을 위한 기금을 요청했다.
그 해 8월 설계 담당자는 35 cm (13.8인치), 38 cm (15인치), 40 cm (15.7인치) 포로 무장한 함선에 대한 연구를 준비하였다: 40cm 구경은 영국에 의해 제조될 수 없다고 잘못된 가정했기 때문에 당대 최대 구경이라고 여겨졌다. 다음 달 회의에서 선호되는 디자인은 5개의 포탑에 35cm 대포 10개 또는 4개의 포탑에 40cm 대포 8개로 무장한 배였다. 무기부는 목표물을 타격할 확률이 25% 더 높을 것이라고 지적하며 35cm 함포를 지지했다. 티르피츠는 2연장 포탑과 3연장 포탑이 혼합된 포탑에 대해 문의했으나, 오스트리아-헝가리 테제토프급 전함의 포탑을 조사한 결과, 3연장 포탑이 여전히 너무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러한 결함들 중에는 무게 증가, 탄약 공급 및 발사 속도 감소, 그리고 포탑 중 하나가 불능화되면 비교적 심각해진 전투력 상실 등이 있었다.
설계 연구에 따르면 35cm 함포로 무장한 경우 약 2만9천 톤에 약 5970만 마르크를, 40cm 함포로 무장한 경우 약 6천만 마르크, 2만8250톤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두 계획안 모두 가격이 너무 비싼 것으로 판명되었다. 건조부는 38cm 함포 8문으로 무장한 2만8100톤 정도의 전함을 제안해 한 척 당 5750만 마르크로 비용을 줄였다. 이 설계는 9월 26일 차세대 전함의 기준으로 채택되었고, 38cm 포의 채택 결정은 1912년 1월 6일에 공식적으로 내려졌다. 1912년까지 설계에 대한 작업은 계속되었으며, 이전 쾨니히급 전함에서 채택된 장갑 배치의 추가 개발을 포함하였다. 원래 이 함선들은 8.8cm (3.5인치) 대공포 8문으로 무장할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실제로 탑재되어 건조되지는 못했다. 계획되어 건조되는 동안 디젤 엔진의 개발이 문제를 겪고 있었기 때문에, 설계 담당자는 전통적인 증기 터빈을 도입했지만, 3번째 함이 건조 준비를 마쳤을 때 신뢰할 수 있는 디젤 엔진을 장비할 수 있길 희망했다.
근대화 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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