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엘 네르웬니 보로펠: 두 판 사이의 차이

편집 요약 없음
편집 요약 없음
62번째 줄: 62번째 줄:
아이니오위스 제국의 전신국가였던 [[아이니오위스 왕국]]의 마지막 국왕 [[필버렐 4세]]의 5남1녀 중 가장 막내로 태어났다.  
아이니오위스 제국의 전신국가였던 [[아이니오위스 왕국]]의 마지막 국왕 [[필버렐 4세]]의 5남1녀 중 가장 막내로 태어났다.  


위로 오빠가 5명이나 있었지만 [[아이니오위스-루메지아]] 전쟁으로 오빠 2명이 [[닐레린 카이나 보로펠]] (Nelaeryn Caina Borofel), [[아일로베르 아일디 보로펠]] (Eilauver Eildi Borofel)이 전사했으며 490년 3월 30일 패전 직후 전범으로 기소된 3명의 오빠마저 총살당했다.
위로 오빠가 5명이나 있었지만 [[아이니오위스-루메지아 전쟁]]으로 오빠 [[닐레린 카이나 보로펠]] (Nelaeryn Caina Borofel), [[아일로베르 아일디 보로펠]] (Eilauver Eildi Borofel)이 전사했으며 490년 3월 30일 패전 직후 3명의 오빠마저 전범으로 기소되어 총살당했다.
   
   
패전 직후 [[루메지아 왕국]]에 인질로 끌려가 그곳에서 생활하다가 석방되었으나 공화국 신정부에서 입국을 거절하면서 중립국 [[네브리안드 왕국]]에 넘겨져 육군장교 교육을 받았다.
패전 직후 [[루메지아 왕국]]에 인질로 끌려가 그곳에서 생활하다가 왕정이 붕괴하여 인질로서의 가치를 상실하게 되면서 석방되었으나 공화국 신정부에서 입국을 거절하면서 중립국 [[네브리안드 왕국]]에 넘겨져 육군장교 교육을 받았다.


공화국 정부가 10년도 안되어 495년 7월 [[아이니오위스 7월 혁명|민중혁명]]으로 붕괴하면서 새롭게 들어선 제국정부의 [[조닉 1세]]<ref>조닉 파마어 보로펠(Jonik Famaer Borofel), 필버렐 4세의 동생으로 시엘의 삼촌이다.</ref>에 의해 귀국할 수 있게 되었다.
공화국 정부가 10년도 안되어 495년 7월 [[아이니오위스 7월 혁명|민중혁명]]으로 붕괴하면서 새롭게 들어선 제국정부의 [[조닉 1세]]<ref>조닉 파마어 보로펠(Jonik Famaer Borofel), 필버렐 4세의 남동생으로 시엘의 삼촌이다.</ref>에 의해 귀국할 수 있게 되었다.


496년 11월 조닉 1세가 후사 없이 급사하게 되면서 가장 가까운 친족이었건 그녀가 제2대 황제로 즉위하게 되었다.
496년 11월 조닉 1세가 후사없이 급사하게 되면서 그의 친족 중에 가장 가까운 그녀가 제2대 황제로 즉위하게 되었다.


[[분류:아이니오위스 설정]]
[[분류:아이니오위스 설정]]

2021년 5월 19일 (수) 00:14 판

아이니오위스 제국 제2대 제국황제
시엘 네르웬니 보로펠
Siel Nerweney Borofel
국적 아이니오위스
종족 엘프
출생 신력 480년 5월 9일
아이니오위스 왕국 헬리오네주 아렌델구 엘리젠 궁
거주지 아이니오위스 제국 투문자르주 중앙구 애슬린 궁
가문 보로펠 왕가
학력 아이니오위스 왕립교육원 (졸업)
루메지아 여성교육학숙 (졸업)[1]
네브리안드 육군사관대학 (학사 / 제120기)
부모 필버렐 4세 (Filverel Enquinal Borofel)
셀린 파르피나 보로펠 (Saelihn Farfina Borofel)
배우자 루메지아 왕국 제17왕자 안토니오 드 알메이다[2]
자녀 장녀 타냐 랄리엔타 보로펠
종교 성모 아그네스 교단 (세례명: 네르웬니)
경력
군복무
아이니오위스 왕립육군→아이니오위스 제국육군
복무
기간
소속
전임
최종계급

아이니오위스 제국의 제2대 제국황제.

아이니오위스 제국의 전신국가였던 아이니오위스 왕국의 마지막 국왕 필버렐 4세의 5남1녀 중 가장 막내로 태어났다.

위로 오빠가 5명이나 있었지만 아이니오위스-루메지아 전쟁으로 오빠 닐레린 카이나 보로펠 (Nelaeryn Caina Borofel), 아일로베르 아일디 보로펠 (Eilauver Eildi Borofel)이 전사했으며 490년 3월 30일 패전 직후 3명의 오빠마저 전범으로 기소되어 총살당했다.

패전 직후 루메지아 왕국에 인질로 끌려가 그곳에서 생활하다가 왕정이 붕괴하여 인질로서의 가치를 상실하게 되면서 석방되었으나 공화국 신정부에서 입국을 거절하면서 중립국 네브리안드 왕국에 넘겨져 육군장교 교육을 받았다.

공화국 정부가 10년도 안되어 495년 7월 민중혁명으로 붕괴하면서 새롭게 들어선 제국정부의 조닉 1세[3]에 의해 귀국할 수 있게 되었다.

496년 11월 조닉 1세가 후사없이 급사하게 되면서 그의 친족 중에 가장 가까운 그녀가 제2대 황제로 즉위하게 되었다.

  1. 패전 직후 루메지아에 인질로 끌려갔다.
  2. 정략결혼이다. 시엘이 제국황제가 된 직후에 안토니오는 루메지아로 돌아갔기 때문에 사실상 이혼상태라고 봐야 한다.
  3. 조닉 파마어 보로펠(Jonik Famaer Borofel), 필버렐 4세의 남동생으로 시엘의 삼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