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의 불란서 세계관

틀:역대 대만성 성장

대만성 13대 성장
성용권 | 成鏞權
출생 1928년 10월 8일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신설동
사망 2013년 3월 27일 (향년 84세)
대만성 화련시 전보동
재임 대만성 13대 성장 (관선)
1962년 8월 13일 ~ 1981년 6월 10일
47대 외무대신
1984년 9월 12일 ~ 1989년 2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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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호 문성단중효근공 (文盛端中孝勤公)
작위 효제백(孝悌伯)
→ 대북후(臺北侯)
→ 대만공 (臺灣公)
본관 창녕(昌寧)
성(成)
이름 용권(鏞權)
해징(海澄)
금아(金兒)
부모 부친: 성기준, 모친: 윤정순
배우자 정희숙
자녀 1남 2녀
학력 국립서울대학교 정치학(학사)
정당
(1983~2013)
약력 외무성 동남아시아국장
외무성 부대신
외교안보실장
베트남 대사
33, 34, 35대 국민원 의원
총리실 외교안보 특보
국민당 자문위원

개요

한국의 외교관, 정치인. 제13대 대만성 성장과 47대 외무대신을 역임했다.

약 19년간 관선 대만성장을 역임하면서 후덕한 인품과 능력으로 대만을 안정시켰고 2.28 사건등 조사로 역사문제를 청산하여 대만의 분리독립 움직임을 평화롭게 무마하였다. 중앙정부의 철저한 외면으로 역사문제 청산은 반쪽짜리 완성으로 끝났지만 그의 성장 재임기에 대만성의 경제는 눈부시게 발전해 아직까지도 대만인의 많은 존경을 받고 있는 거의 유일한 본토계 정치인이다.

생애

어린시절

1928년 성기준[1]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성기준은 본래 파주 출신으로 우계 성혼의 후손이다. 창녕 성씨 일가의 남성들은 종갓집의 장남이거나, 봉작을 받은 귀족의 장남이거나, 황제로부터 따로 봉작을 받지 않는한 모두 자작 신분이 주어졌는데 성기준 또한 그러했다. 성기준은 1925년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하였고 한성부 재무수석담당관으로 활동하다 1927년에는 서재필 총리에 의해 천거되어 대한국민당에 입당하였으며 29년부터 31년까지 불과 스물다섯의 나이로 서재필 내각에서 재무성 차관까지 지냈다.

  1. (1904~1988). 한국의 관료, 정치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