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만 시대

오스만 제국이 있기 전 오스만 베이국 시절의 메흐메트 2세는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함락시키고, 오스만 제국으로 다시태어난 오스만은 예루살렘으로 대표되는 레반트, 메카와 메디나로 대표되는 아라비아반도와 이슬람 세계, 알렉산드리아로 대표되는 맘루크를 무너뜨리고 북아프리카를 차지하는 등 광대한 제국을 건설하였다.

오스만은 발칸의 정교회 국가들과 유럽을 계속해 점령하였다. 오스만의 시작으로 아드리아노폴리스를 넘어 베오그라드를 점령, 발칸의 내륙까지 진출하며 로도스 섬에서는 해적을 일삼는 성 요한 기사단을 격퇴시키고 동지중해를 거머쥐었으며 모하치 전투를 통해 헝가리 평원 반이상을 얻었다.

쉴레이만은 신성로마제국의 수도인 빈까지 일년 반이나 포위하였고 비록 격퇴되었으나 서유럽 깊숙히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프레베자 해전은 기독교의 유서깊은 지중해 세력을 격파하는 계기가 되었다. 신성동맹인 베네치아와 스페인, 제노바와 몰타 기사단, 교황령이 연합군을 구성해 대항했으나 이오니아 해의 프레베자에서 오스만은 포로를 3천여명, 10척 침몰과 3척 방화 38척을 나포하며 오스만은 단 한척도 지 않으며 대승을 거두었고 시로스(Syros) 아이기나(Aegina), 로스(Ios), 파로스(Paros), 티노스(Tinos), 카르파토스(Karpathos), 카소스(Kasos), 낙소스(Naxos)와 같은 많은수의 에게 해(Aegean Sea)와 이오니아의 섬들을 손에 넣으며 그리스 반도와 그리스 지역을, 더 넘어 동지중해를 온전히 손에 넣었다.

쉴레이만이 죽은 후 베네치아령이던 키프로스를 점령했는데, 이를 위협과 도전, 합스부르크와의 전쟁명분이 되며 신성동맹은 다시금 결성되었고 스페인, 베네치아, 제노바, 사보이아, 몰타, 토스카나, 시칠리아, 나폴리, 성 라자루스 기사단, 우르비노와 교황령은 이오니아 해의 파트라스만에서 오스만은 전투를 벌였다.

이때 오스만은 총 256척을을 투입헤 230척을 잃었는데 137척을 기독교 세력이 나포해 이를 함대에 넣어 오히려 전 주인이던 오스만을 향해 포를 돌렸고 30척은 모두 방화되었기 때문이다.

비록 패배했으나 그들의 위세는 여전하였고, 오스만의 함대는 다시 재건되며 북아프리카의 튀니스를 얻고 슬로베니아와 아드리아해 연안을 제외한 전 발칸을 휘하에 넣었다.

1699년에 헝가리를 잃고 오스트리아가 합병하는 등 유럽국가들의 영토회복이 시작됨과 동시에 아랍인이나 그리스인 등의 피지배 민족의 독립운동이 시작되었다. 1830년에는 그리스가 마침내 독립을 쟁취하였고, 그리스는 정교회 신앙을 복고함과 동시에 민족으로서 다시 자부심을 가지고 수호자를 자처하며 아직 이교도의 손에 부쳐진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총대주교를 후원하며 지지하였다.

술탄 압뒬메지트 1세 시기에 탄지마트 개혁이 일어났으나 2세의 의해 이는 폐지되며 이슬람을 재패한 대제국은 회복의 기세가 꺽였고 1853년 크림전쟁에서 오스만 제국이 서방의 이해관계로 인해 겨우 승리하였으나, 내륙이었던 캅카스에선 밀리고, 전쟁 승리는 군비확충과 국력소비라는 결과를 낳았으며 결과적으로 러시아를 혼자선 상대할 수 없다는 결과였다.

이에 영국이나 프랑스 등의 서방에게 지지를 얻을 필요를 절감하며 개혁을 통해 비무슬림의 권리를 인정하겠다 하며 제2차 탄지마트를 시작하고 서양의 법과 제도 등을 도입하며 가장 대표적 조치로는 이제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의 박해는 예전보다는 덜해졌고, 총대주교청이 성 게오르기우스 성당에 자리잡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개혁은 막대한 차관, 그리고 개혁개방을 필요로 했고 제국은 경제적으로 공황까지 일어나며 파산에 가까워졌다. 하지만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패배하며 러시아군이 수도 콘스탄티니예의 서쪽인 산스테파노까지 행군해도 된다 인정하며 발칸의 슬라브 민족은 독립과 영토확장이 이루어졌으며 불가르는 두나야부터 에게해까지 확대되고 흑해부터 오흐리드 호를 러시아의 손에 부치게 되었다.

압뒬메지트는 비상사태를 선표하며 미흐마트 헌법을 폐지하였고 개혁주의자들등의 좌익세력을 숙청 및 유배, 좌천하며 피의 숙청을 하다가 1908년에 무스타파 케말이 이끄는 청년 튀르크 당에 의해 폐위, 메흐마트 5세가 왕권을 잡으며 미흐마트 헌법을 부활하였으나 ‘모든 민족의 평등’이 ‘터키인으로 한정한 평등’으로 바뀌고 결국 제1차 발칸전쟁의 계기가 되며 알바니아인은 독립을 선포하였다.

1차 세계대전

제1차 세계대전은 독일제국·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불가리아 왕국·오스만 제국·루마니아 왕국으로 구성된 동맹국은 제1차 세계대전의 동맹으로서 협상국(대영제국·프랑스 식민제국·러시아 제국)은 이에 맞섰다.

처음 시작은 사라예보에서 울린 세르비아의 민족주의단체 흑수단의 청년 가브릴로 프란치프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를 저격하며 시작되었다.

이는 비록 명분에 지나지 않았고, 실제로는 오랫동안 쌓여온 역사와 당대의 터질듯 말듯한 폭탄과 같음 국제정세 때문 등 여러 이유가 혼재했다. 오스트리아-헝가리는 세르비아에 최후통첩을 알렸고 7월 위기라 불리는 국제적 비상이 걸리자 분쟁은 강대국들이 상호 동맹을 호출하며 격분되어갔다.

7월 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가 세르비아를 침공하며 전쟁의 서막이 올랐고 러시아는 보호명목으로 개입, 동맹이 호출죄며 전쟁이 시작되었다.

한편 오스만 제국은 큰 연관이 없었으나 전세가 독일에 유리하다는 그릇된 판단과 결정적으로 자신들이 주문했던 전함을 영국이 대금조차 돌려주지 읺고 물건을 자기맘대로 징집하자 항의하며 참전하였다.

러시아는 브레스트까지 밀리며 최후의 항전을 이어나갔고, 차르 니콜라이 2세는 겨울까지 기다리며 모스크바를 비운다는 계획까지 고려하기에 이을었다. 나폴레옹을 반복하려는 셈이었다.

코카서스나 메소포타미아, 시나이 반도에서 총성이 울렸고 발칸에도 피를 보았다. 더불어 서부전선은 참호전, 동부전선은 진전이 더디고 아프리카는 쫓겨나고 있었는데 연합군은 그리스의 항구인 테살로니키를 점거하며 동맹국에 선전포고하라 압박하였고, 콘스탄티노스 1세는 거부하여 국론분열로 정부가 갈라지기까지 하였으나 결국 콘스탄티노스 2세가 옹립되며 선전포고가 시작되어 동맹국인 오스만과 불가르로 진군이 시작되었다.

오스만은 아나톨리아에 거주하던 아르메니아인, 아시리아인, 그리스인들 집단학살하며 참전명분을 주었고 결국 오스만은 참전함과 동시에 다르다넬스 전역, 메소포타미아 전역을 개전하며 전쟁에 임했다.

다르다넬스에선 프랑스군과 영국군, 뉴질랜드군을 오스만이 격퇴하는데 성공했으나 메소포타미아에선 영국군이 예루살렘을 점령, 바그다드까지 점령하였다.

오스만은 아프리카 전선에선 수에즈를 3차례나 노렸으나 실패, 독일-오스만 연합군이 로마니 전투에서 패배하며 결국 남부 전체가 밀렸으며 러시아는 코카서스에서 오스만을 거의 일방적으로 격퇴시키며 연전연승을 이루었다. 물론 현지인들의 양보가 컷다.

결국 사리카미스 전투에서 오스만의 공세가 투입병력의 85% 전사란 전적을 남기며 패배하였다. 이 전투에서 패배하자 아르메니아인 집단학살이 일어났고, 아르메니아인은 러시아에 적극 협조하며 코카서스 전체를 밀리게 되었다. 이후 아랍에서 일어난 영국의 프로파간다로 인해 확대된 반란과 발칸전선에서의 승리, 러시아의 적극 공세로 결국 오스만은 1918년 10월 30일, 오스만투르크는 그리스 렘노스 섬의 무드로스 항구에 정박한 영국군함 아가멤논호(HMS Agamemnon)에서 정전협정에 서명했다. 불가리아에 이어 두 번째 항복이었다.

결국 세브르 조약에 따라 오스만 제국은 분리되었으며 다음과 같은 조약상 판도에 따라 분리되었다.

조약불복

세브르 조약은 항복 이후 프랑스에서 이루어젔다. 처음의 계획은 다르다넬스-보스포루스 해협을 국제통치령으로 두고 그리스가 트라키아를, 아나톨리아 내륙을 갈라 통치하기로 하였으나 그리스와 러시아가 이에 반발하였다.

하지만 조약은 이루어졌고, 러시아와 그리스는 이에 불복하며 그리스가 점령지로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점령하였고, 러시아가 배후를 봐주자 세브르 조약을 무효로 하고 새로운 조약으로 콘스탄티노폴리스 조약을 요구하였다.

위대한 이상의 실현

그리스의 뒤를 러시아가 봐주고 있으나 세브르 조약에 의해 분리되어있던 아나톨리아를 아직 있던 오스만 튀르크와 쿠르디스탄에 반환하며 지원하였고 그리스와 전쟁을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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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탄티노폴리스 협정

아테네 협정

아뉘포탁스 독트린

제2차 세계대전

마셜플랜

제3차 발칸전쟁

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