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 태황제 이환

TLE팀 (토론 | 기여)님의 2022년 7월 9일 (토) 21:18 판
대한 고조 태황제
大韓 高祖 太皇帝
본명
이환 (李烉)
종족
인류 사피엔스 계열
국적
조선 (이전)
대한제국
성별
남성
가족관계
순조 숙황제 이공 (조부)
문조 익황제 이영 (부친)
고종 광황제 이천 (양동생)
효현성황후 김씨 (정비)
효정성황후 홍씨 (계비)
효헌태자 이정 (장남)
효경옹주 이연유 (장녀)
생년월일
1827년 9월 8일 ~ 1889년 12월 18일
출생지
조선 한성부 창경궁 경춘전
직위
대한제국 황제
소속
대한제국 황실
연호
영락永樂
묘호
고조高祖
시호
문헌무장인익정효태황제文憲武莊仁翼貞孝太皇帝
상태
사망

개요

고조 문헌무장인익정효태황제(文憲武莊仁翼貞孝太皇帝) 이환은 조선의 24대 국왕이자 대한제국의 초대 황제이자 현 대한인들에게 국부로 칭송받는 군주이다.

생애

유년기

1827년 7월 18일 창경궁 경춘전에서 효명세자와 신정왕후의 사이에서 아들로 태어나 왕세손에 책봉되었다.[1]《고조 대제 행장》에 이르면 태몽이 꽤나 비범했다고 하며 출생일에 학들이 떼거지로 날아서 왕비의 품 안으로 들어갔다는 것인데 이걸 궁에서는 기이하다고 했다. 《행장》에 의하면 준수한 외모에 미성을 지녔다고 하며 100일 전에도 벌떡 일어섰다고 한다. 유아기 때 《천자문》100여 자를 뜻을 배우고 외웠다는데 아버지 효명세자는 믿지 못하였다.. 이후 소문의 진위 여부를 가리기 위해 시험했음에도 헌종은 당당히 통과했고 오히려 아버지 효명세자가 매우 기뻐하며 자신보다 학문을 더 좋아한다고 하였다고 한다.

수렴청정

세손 생활 4년만에 아버지 효명세자가 22세에 비명횡사하듯 갑작스럽게 죽고 고작 4살의 나이에 동궁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할아버지 순조 역시 44세에 죽고 세손이던 고조는 준비도 되지 않은 만 7세의 나이로 즉위하게 되었다. 현재로 따지면 초등학교 1학년인 어린 나이에 즉위했기 때문에 순조의 정비이자 고조의 조모인 순원왕후 김씨가 수렴청정을 실시했다.

순원왕후의 수렴청정 시기에 척사윤음'(斥私倫音)이 반포되었고 천주교에 대한 대대적인 박해가 발생했다. 기해박해, 병오박해 등으로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척살되었다. 이 기간동안 삼정의 문란이 극에 달해 민생이 파탄의 직전까지 내몰리고 있었고, 외세의 이양선이 나타나 조선반도를 노리고 있었다.

임자사화

수렴청정이 15세 때 끝나면서 고조는 왕권강화 정책을 집중적으로 펼쳐가기 시작하였다. 첫 왕비인 효현왕후가 죽으면서 할머니 순원왕후의 의중에 따라 남양 홍씨 홍재룡(洪在龍)의 딸인 효정왕후 홍씨를 계비로 맞은 것을 시작으로 대사간 서상교를 통해 안동 김문을 견제, 오군영과 장용영을 장악해나가기 시작하면서 폐단을 없애가기 시작하였다. 또한, 암행어사를 파견하여 탐관오리들을 잡아내는 등 민생에도 많은 관심을 두었다.

이렇게 왕이 성장하면서 안동 김씨를 몰아내려고 준비를 해갈 무렵, 위기를 느낀 젊은 안동 김씨 몇몇이 독살하려고 수를 꾀하나, 이를 엿들은 노복이 궐로 들어가 고발하게 되면서 그 유명한 임자사화가 막을 올리게 되었다. 당시 노복의 말을 들은 관리는 이를 안동 김문에 넘길 생각을 않고 고조를 몰래 알현하여 이를 고발하였고, 그 즉시 고조가 장용영과 오군영의 친위 세력을 동원하여 직접 안동 김씨를 토벌하기 시작하였다.

고조는 친위세력을 이끌고 긴급하게 역모죄를 명분으로 주요 세도 세력들을 추포하기 시작하였고, 사대문을 장악하여 밖으로 도주하려는 이들을 모조리 색출하였다. 남은 김문의 몇 인원들이 사병을 이끌고 저항을 하였으나, 고조가 직접 나서 "그대들은 조선의 고(孤)의 신하인가, 김(金)의 신하인가? 고(孤)와 이 조선의 신하라면 길을 비키어라" 라고 말을 하니 전의를 잃고 항복하였다.

난을 진압한 후 고조는 친국을 시작하여, 역모죄를 비롯한 수십가지의 항목으로 세도가와 연관된 이들을 모조리 체포하였다. 안동 김씨부터 시작해 연관된 이들 중 죄질이 몹시 추악한 이들은 극형을 받았으며, 나머지 친 세도가 인물들은 파직당하거나 귀양을 갔다. 이후 왕은 시파와 남인들을 국정에 등용하면서 조선을 개혁해나가기 시작하였다.

을묘양요

조선의 모든 권력을 장악한 고조는 차근차근 나라를 되살려가기 시작했다. 우선 가장 시급하였던 삼정의 문란을 '삼정이정청' 을 설치하면서 직접적으로 개혁해 나갔으며 안동 김씨의 권력장악 수단이 되었던 비변사를 혁파하였다.

가계

조부 순조 숙황제 이공
부친 문조 익황제 이영
고조 영락제 이환
장남 효헌태자 이정
장녀 효경옹주 이연유

여담

  • 통찰력이 뛰어났다. 청나라의 전술과 도광제의 건강 악화를 예측했다고 한다.


  1. 고조의 증조부 정조 이후로 처음 책봉된 왕세손이었으니, 정통성은 말도 안될 정도로 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