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larnacht/국가/대한제국

Marine418 (토론 | 기여)님의 2023년 2월 16일 (목) 19:57 판 (정당 추가)
대한제국
大韓帝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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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6년 제너럴 리노호 사건
1895년 갑신유신
1919년 3월 민권 운동
1929년 한국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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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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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체제
사회자유주의
입헌군주제, 민주주의 체제
국가 원수
이우
행정 수반
조완구
경제 체제
자본주의 경제 체제
통화
대한제국 원

개요

1929년 일본에서 일어난 혁명의 여파는 한국에까지 영향을 미쳤고, 갑작스런 국제정세의 변동은 한국에게 자유를 가져다주었습니다. 기성세력이던 유신회는 완전히 붕괴하였고, 이 자리를 대신 차지한 것은 3월 혁명의 주역인 신한청년당이었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얻지 못한 자유는 심각한 혼란 또한 야기하였습니다. 신한청년당은 당내의 수많은 계파 간의 갈등과 백색, 적색 테러들로 의회에서 정당의 기능을 거의 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했을 개혁들은 지지부진한 상태입니다.

이런 혼란한 상황 속에 대한제국은 총선을 앞두고 있습니다. 황실과 정치권의 반공주의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는 브나로드 운동을 통해 농촌과 지식인 사이에서 세력을 불리고 있으며, 신한청년당의 계파들은 각자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정당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도 서슴치 않고 있습니다. 특히 군 내 세력인 족청계의 핵심 인물인 이범석과 총력계의 박중양의 유착은 정부가 군을 통제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하고 있습니다. 또한 혁명 이전에 제정된 제국보안법은 제정 당시부터 현재까지 수많은 논란을 낳고 있으며, 현 여당이 폐지하고자 하는 제 1의 법안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극단주의에 대응하는데 효과적인 법안이기에 이 법안을 개정으로 마무리하려는 목소리 또한 높아지고 있습니다.

경제적 상황은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좋지만도 않습니다. 분데스베르케 쇼크의 여파는 아직까지도 우리를 괴롭히고 있으며 우리가 일본에 의존하던 산업 구조는 현재 우리에게 독이 되고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국제 정세에 큰 변화가 없는 한 우리의 경제 상황은 지속적으로 개선될 것이며, 몇몇의 성공적인 경제적 개혁은 이를 가속하고 있습니다. 신흥 기업들은 이를 견인하고 있으며, 하얼빈 조약은 군사동맹을 넘어 하나의 경제블록으로 나아갈 가능성을 보이고 있습니다.

대한이 이런 위기에 직면했음에도 지금 우리의 중대사는 정치, 경제가 아닌 외부의 위협일 것입니다. 북쪽의 소비에트 연방과 동쪽의 일본 사회주의 제국은 우리를 적화하고자 지속적으로 인력과 자본을 투입하고 있으며, 국내의 공산주의 세력들은 이들의 지원을 받아 제국의 안정을 해치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제국은 대내외적으로 극단주의의 준동과 공산주의 국가들의 위협이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말로만 독립과 안전을 보장하는 서구 열강들을 믿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들은 극동에 개입할 여유도, 의지도 없습니다. 제국이 의지할 곳은 아이러니하게도 자기 자신일 것입니다.

상제는 우리 황제와 제국을 도우소서.

1933년의 상황

제국보안법

제국보안법은 1921년 당시 19대 내각총리대신이었던 이완용의 주도로 제정된 법률로써 반국가 단체의 활동을 규제하기 위해 마련되었습니다.

제국보안법은 1912년 공화주의자 혹은 공산주의자로 추정되는 극좌 테러리스트에 의해 일어난 고종 시해사건 이후 들끓는 공화주의와 공산주의 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제정되었으며, 이후 그 범위가 확대되면서 대부분의 반정부운동을 탄압하는데 이용되었습니다.

하지만 29년 혁명 이후 여당이었던 유신회가 실각하였고 신한청년당이 들어서면서 상황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제국보안법의 주요 탄압 대상이었던 신한청년당은 집권 이후 이를 가장 먼저 폐지하고자 하였으나 혁명 이후 미 대륙에서 시작된 대공황과 극단주의 광풍, 계파 간 권력투쟁은 이를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신한청년당이 집권한지 4년이 되어가지만 제국보안법에 대한 논의는 아직도 지지부진합니다. 하지만 현재의 정치적 상황에 지칠대로 지친 국민들의 여론은 점점 악화되고 있으며, 제국보안법은 머지않아 심판대에 오르게 될 것입니다.

1933년 탁지부 제국경제보고서

1929년 이래 일본으로부터 독립한 우리 대한제국은 분데스베르케 쇼크의 영향을 씻어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황제 폐하의 치세 동안 제국의 경제는 느리지만 회복세를 띄고 있으며, 이는 적극적인 외국 기업의 유치뿐 아니라 국내 기업들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 그리고 신흥 기업가들을 육성하는 신흥기업지원법이 결실을 맺은 결과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또한 순종 황제 폐하의 치세 동안에 독일 연방의 프랑크푸르트증권거래소를 본따 만든 한성증권거래소의 제국경제지수 또한 연일 상승세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 중 비약적인 성장세를 보이는 두 기업이 외국 기업이 아니라 우리 기업이라는 점에서 더욱 긍정적입니다.

제국의 경제 규모는 아직도 일본 사회주의 제국에게 대적하기엔 부족합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추세로 관과 민이 합심하여 제국 경제를 일으켜 나간다면 앞으로 빠르면 10년, 늦어도 15년 안에 공산주의자들의 위협에 충분히 맞설수 있으리라고 확신합니다. 저희 각 부의 대소신료들은 오로지 폐하와 사직, 그리고 이 나라 대한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 일할 것입니다. 폐하께서는 다만 저희를 믿으시고 선제 폐하들과 같이 굳건하게 이 나라의 중심이 되어 주시기를 청합니다.

신한청년당의 파벌

대한제국의 정국은 독립 이래로 안정적이었던 적이 없었습니다.

29년 혁명 당시 신한청년당은 유신회를 몰아내려 했지만 신한청년당만으로는 역부족이었고 이를 위해서 신한청년당은 다른 세력의 힘을 빌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는 신한청년당을 현재의 거대 연립정당으로 만듦과 동시에 신한청년당이 제대로 기능할 수 없는 결과를 불러왔습니다.

현재의 신한청년당은 연립 정당이라기보다는 개별 정당에 가까운 수준으로 권력투쟁을 벌이고 있으며, 그들은 하나의 목표가 아닌 각자의 목표를 가지고 있어 분열은 불가피해 보입니다...

신한청년당 중앙계

흔히 신한청년당이나 중앙계, 합작파로 불리는 이들은 주로 여운형과 혁신계 인사들, 조완구와 김규식의 중도~중도 우파의 민주계 인사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들의 이념적 스펙트럼은 다양하나 기본적으로 한국에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중앙계 간의 협력이나 타협 또한 다른 정파에 비해 수월한 편입니다.

허나 중앙계의 타협적 성향과 이상주의는 그들을 우유부단하고 현실성이 부족한 집단으로 보이게 만들었으며 당 내에서 주도적인 위치에 있음에도 극단주의 정파를 통제하지 못하는 이유로 작용합니다.

그럼에도 그들의 정치적 이상을 향한 의지와 기개는 아직도 중앙계가 많은 지지를 받는 이유 중 하나이며, 민주적인 성향을 가진 황제 또한 그들을 암묵적으로 지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지지는 그들이 아슬아슬하게 당내 우위를 점하게 만들어주고 있으나 이마저도 상실한다면 중앙계는 빠르게 와해될 것이며, 이는 곧 신한청년당 전체의 붕괴를 의미하게 될 것입니다.

총력계와 족청계

이들은 각각 국민총력조선연맹과 조선민족청년단의 약자로써 총력계의 수장인 박중양과 족청계의 수장인 이범석의 정치적 합의로 이루어진 협력관계입니다.

이들의 정치적 이념은 불분명하나 프랑스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것으로 추정되며 강력한 반공주의를 내세워 세를 불리고 있습니다.

또한 그들의 목표는 강력한 민족국가의 건설이며 이를 위하여 무력의 사용 또한 불사하고 있어 주로 백색 테러와 암살의 원흉으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이념이 불분명한만큼 그들의 목표 또한 모호하기 짝이 없어 일각에서는 그들이 단순한 정치깡패에 불과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신한청년당에서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으며 그들을 단순한 무뢰배들로만 판단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역사

정치

인물

정당 및 단체

  • 신한청년당
  • 헌정국민회
  • 유신회
  • 흑우회
  • 조선공산당
  • 광명당
  • 조선민족청년단
  • 국민총력조선연맹

기타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