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조베폴레 대훈장 수훈자 (Vp RZP in 166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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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르 왕국 초대 국가재상 에세르 민족독립군 공동 총지휘관 그란치프 제국 에세르 자치령의 마지막 총독 (민선) 자치령 시기 에세르 민족의회 의장 에세르당 초대 당수 | |
St.Ob. Pan Vít Václavek 비트 바츨라베크 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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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599년 6월 18일 |
에세르 마가드 | |
사망 | 1669년 12월 8일 (70세) |
에세르 마가드 | |
국적 | ![]() |
임기 | 에세르 국가재상 (초대) |
1664년 6월 9일 ~ 1665년 1월 2일 | |
에세르 원로대신 | |
1665년 1월 2일 ~ 1669년 12월 8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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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에세르의 정치인, 군인, 관료, 독립운동가.
현임 빅토르 도치칼 총리 이전까지 에세르에서 그의 생은 매우 파란만장하기로 유명했다.
생애 초기 그는 마가드 제2대학교 군사대학에서 차석의 성적을 거둘 정도로 뛰어나, 육군장교 임관을 위해 그란치프 본국으로 무료 유학까지 제안받을 정도였지만 젊은 날의 투심 탓이었는지 아니면, 투철한 민족심 따문이었는진 몰라도 "그란치프에 대한 반발심"을 이유로 들며 거절한 뒤 중퇴했고, 행정관료로 자치령 정부에 입관하여 고공행진한 끝에그란치프 제국 에세르 자치령 총독까지 역임했다. 총독으로 재임하던 1650년, 키르수스 제국과 그란치프 제국 양국간 전쟁이 발발했고 중앙정부와의 연결은 얼마 가지 않아 끊겼다.
42살의 나이, 단기에 은퇴 후 귀농생활을 꿈꿨던 중년의 총독은 전쟁으로 본국에게 버려진 땅에서, 하루만에 수천 만의 겨레를 살려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종이쪼가리와 다름없는 총독위를 벗어던진 그는 사회당 대표였던 바실 카슈파레크 및 뜻이 맞는 호걸들과 손을 잡았고, 에세르 민족독립군을 창설하여 게파르토군과의 전투를 지휘했다.
게파르토군에 대항하며 지하에서 게릴라 전투를 이어가던 그는 게파르토가 에세르를 키르수스에 할양하자 국가 건립의 적기라고 판단했고, 키르수스에 접근했다.
- ↑ 누나와 남동생이 있었지만 누나는 태어나자마자 죽었고, 남동생은 4살 때 병사했다.
- ↑ 동기 가운데에서 차석이었으며 그란치프 육군 장교 과정을 위해 그란치프 수도로 파견되기를 강요받았으나 바츨라베크는 총장의 권유를 다음과 같이 거부했다고 전해진다.
총장님, 전 에세르인의 군주도 아닌 다른 민족의 군주를 위해서 봉사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에게 있어 일생동안 충성한다는 것의 전부는 오직 에세르의 백성들 뿐입니다. 저는 이 과정이 ᆢ(중략) 전 그래서 총장님의 권유를 받을 수 없습니다. 관료가 되어 사랑스런 고향에서 따분한 일생을 보낼지언정, 화려한 외세 제국의 수도에서 그들의 황제를 위해 싸우는 군인이 되진 않을 것입니다. - ↑ 에세르 초대 왕국의회는 초대 의원들 하나하나를 기념하는 의미에서 선수 앞에 A를 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