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장:대역빌런2

만에하나 오시는 분들을 위한 필독

여기는 대역빌런이 대역빌런 닉값할겸 각종 대역망상이 이뤄지는 곳입니다. 흥미로운 주제를 같이 만들고 싶으시다면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실험작들 전용 연습장입니다.

신 해동성국

  • 만약 고려가 여진정벌에 성공하여 발해의 영토를 되찾았다면?

여진정벌 이전에 친고려파 동여진족 등을 포섭, 만반의 준비를 한 끝에 공험진 전투에서 승리하고 갈라수 전투에서 고려의 장수 척춘경이 여진의 장수 사묘아리를 전사시키면서 여진족은 고려에게 완전히 복속된다. 1112년 요나라의 암군 천조제의 경고가 고려에 의해 무시당하자 1114년 고려를 침공하면서 제4차 여요전쟁이 발발한다. 친고려파 여진족들의 도움과 여러 명장들의 활약 덕택에 납림하와 출하점에서 요나라군을 격퇴하고, 1115년 부터 고려는 자체적인 연호를 사용하기 시작한다. 요나라는 다시금 70만대군을 이끌고 나왔으나 호보답강에서 패배, 옛 발해의 영토를 되찾게 된다. 1123년 이번에는 고려와 송나라의 선공으로 제5차 여요전쟁이 발발, 송나라는 연운16주를 수복하고 고려는 요나라의 상경임황부와 동경요양부, 중경대정부를 점령한다. 고려는 거란의 유민들을 관리하기 위해 안북도독부를 수립한다. 황족이였던 야율대석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중앙아시아로 이주하여 서요를 세운다.

그러나 이러한 영토 확장으로 인해 많은 무신들이 필요로하였고, 이는 문신이 권력을 잡던 고려에 무신정변이 일어나게 되는 원인을 제공했다. 다행이도 정변 후 혼란은 경대승이 정권을 잡고 고려 황제에 충성을 맹세하면서 종결된다. 저고여 피살사건으로 일어난 몽골과의 전쟁에서는 중원 전체를 가지고 있는 송나라와 연합해 몽골과 대결하려 했으나 송나라가 양쯔강 이남으로 밀리자 회친을 제안했다. 몽골도 요하-송화강 이남을 장악한 고려에 부담을 가졌고, 안북도독부를 해체하는 등의 선에서 화친을 맺는다.

이후 고려는 원나라의 조공국이 되지만, 원나라가 주원장이 이끄는 명나라에 의해 무너지자 고려는 원나라의 군신관계를 파기하고 명나라랑 협공하여 원나라의 잔당들을 정복한다. 만주와 몽골초원 사이에 있는 북만주 지역은 다시 설치된 안북도독부에 의해 '관리'된다. 북방을 제압한 고려는 이후 명나라와 대립하게 되어 이성계에게 연경(베이징)을 공략하게 하지만, 산해관 회군으로 간단하게 요동성, 평양성을 함락시킨 공연군(功燕軍)은 개경까지 장악하면서 고려는 이성계의 손에 놓인다. 제2의 경대승이 된 이성계 사후 이방원이 집권하면서 기존 왕씨 고려를 찬탈하고 이씨 고려를 연다.

이씨 고려는 수도를 한양으로 옮기고 영토확장에 집중했던 왕씨 고려와 달리 유교를 받아들여 민생안정을 최우선 목표로 삼는다. 이씨 고려는 이후 일본의 침략때까지 평화를 유지한다.

한실부흥

  • 만약 유비가 삼국지의 승리자였다면?
  • 만약 고구려가 미천왕 당시 요동을 차지해 백제를 멸망시키고 삼한을 통일했다면?

유비의 삼국통일

208년 서서의 어머니는 조조군에게 잡히지 않았고, 같은해 적벽대전에서는 손유연합군이 조조군을 물리치면서 조조의 천하통일 야심은 좌절되고야 만다.

211년 유비는 유장의 요청으로 익주에 입성한다. 형주는 관우와 서서에게 맡긴다.

213년, 유수구에서 조조는 손권과 전투를 붙었고, 조조는 이번에도 대패한다. 이때 "아들을 낳으려면 응당 손중모(손권) 같아야지 유경승(유표)의 아들들은 개돼지와 같구나!"라는 말을 남긴다. 손권은 합비와 회남 일대를 점거하고, 유비는 낙봉파에서 방통이 살아남은 덕에 익주를 좀더 빨리 평정한다.

217년 유비는 조조와 한중공방전을 시작한다. 2년간의 공방전 끝에 유비는 한중뿐만 아니라 상용과 무도까지 차지한다. 유비는 이로써 한중왕을 자처하게 되었다.

219년 관우의 북벌은 조인을 격파하고, 우금을 항복시키고, 서황을 전사시키며 형북일대를 장악하는데 성공한다. 미방과 사인의 배신은 서서에 의해 진압되었고, 손권의 배신에 분노한 관우는 형주 동부까지 장악한다, 관우가 형주를 장악하자 익주에 있던 유비와 제갈량도 북진, 마초의 활약으로 서북을 점거하고 강유를 등용한다.

220년 조조는 병든 몸을 이끌고 함곡관에서 유비랑 대치하지만 허창이 기습당해 헌제를 빼았겨 조조는 결국 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유비는 헌제를 옹립하고 낙양으로 다시 수도를 옮긴다. 대세가 유비에게 기울자 손권은 항복을 청했고, 유비는 손권을 달래기 위해 오왕으로 봉한다. 조비는 하북에서 항전하였으나 동생인 조창과 조식과 반목하여 결국 청주를 지키던 조식이 유비에게 투항한다. 기세를 모은 유비에게 업성이 함락당하자 조비는 자결, 북부를 지키던 조창마저 투항하고 만다. 이로써 유비는 한실부흥을 성공시킨다. 221년 봄에 유비는 헌제에게 양위를 받고 제위에 오른다.

225년 한 소열제 유비가 승하하고 유선이 황제에 오른다. 유선은 제갈량을 중용하여 전후 재건에 심혈을 기울인다. 238년 고구려랑 동맹을 맺고 반란을 일으킨 공손연을 제압하기도 했다. 252년 오왕 손권이 죽자 오나라는 중앙에 통합되었다. 이로써 삼국지는 완전히 종결된다.

한나라의 요동 상실과 고구려의 삼한통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