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제정책 (게르마니아)

사령관 동지 (토론 | 기여)님의 2024년 12월 13일 (금) 04:36 판
이 문서는 현재 공사 중입니다.

이 문서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태로, 본문에 다소 난잡하거나 생략된 부분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1925년 신경제정책 성과에 대해 발표하는 니콜라이 부하린
"Социализм бедняков — это паршивый социализм."
"가난한 사회주의는 후진 사회주의다."
-니콜라이 부하린

개요

소비에트 연방은 니콜라이 부하린이 경쟁자인 이오시프 스탈린, 레프 트로츠키, 그리고리 지노비예프, 레프 카마네프를 밀어내고 레닌의 신임을 받아 후계자가 되었다. 레닌의 사망 이후 소비에트 연방의 지도자가 된 부하린은 레닌의 뜻을 이어 신경제정책을 도입했으나 완전히 실패하여 소비에트 연방의 경제는 완전히 몰락하였다. 이후 뒤늦게 산업화를 시도했으나 경제가 몰락하여 대규모 산업화를 할수 없었고 대규모 재정 긴축 및 군비축소가 이루어졌다. 이후에도 심각한 경제난을 해소하지 못하자 여러가지 사회적 혼란이 발생하였고 군비축소 때문에 트로츠키가 만든 군 체계는 완전 엉망이 되었고 규모 또한 매우 축소되었으며 부하린은 정치적인 이유로 자신의 반대파에 대해 제대로 숙청을 진행하지 않아 전연방 공산당은 스탈린이 이끄는 중앙파, 트로츠키가 이끄는 좌익반대파, 소수지만 지노비예프파와 카마네프파와 자신이 이끄는 우익반대파가 서로 단합하지 못하고 서로 갈등만 일으키면서 정치적으로도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이 이어졌다.



"There would never again be silence for People of Germania"
"앞으로 다시는 게르마니아의 사람들에게 고요란 없을 것이다"
가장 현실적인 추축국 승리 시나리오... 그리고 그후...
대문 설정 국가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