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용자유군 大庸自由軍 Daeyong Free Armed Force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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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성 | 1915년 2월 26일 |
해체 | 1961년 9월 12일[1] |
총원수 | 김대홍 (제 6대)[2] |
성향 | 자유주의 |
주요 정치인 | [3] 김대홍[4] 이청준[5] 이철호[6] 이준설[7] 서대창[8] |
개요
인별국 대용시의 민병대이다.
창건 배경
수도사령부 포함 역사는 인별국 수도사령부/역사 문서 참조.
1915년 2월 26일 인별사회주의내전이 발발하자 대용시민이자 군인이었던 김대홍과 이청준을 중심으로 창건되었다. 주로 퇴역 군인이나 지방 의병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활동
대용자유군의 활동을 정리한 문단이다. 수도사령부 시절 활동은 인별국 수도사령부/역사 문서 참조.
인별사회주의내전
종전 이후
자세한 정보는 대용자유군 대용경계수비대 문서 참조.
인별인민공화국 멸망한 후 대용자유군에선 대용시 경계를 수비할 부대를 따로 조직하였다.
3.22 군사쿠데타와 인별인민민주공화국
자세한 정보는 대용자유군 반쿠데타 동맹 문서 참조.
이준설이 쿠데타를 일으켜 대용자유군 총원수직을 장악하자, 이에 반대하던 대용자유군 내 반쿠데타파들이 대용자유군 반쿠데타 동맹을 창건해 인별인민민주공화국에 대항하였다.
군사정권 붕괴 이후
1952년 5월 20일 이준설이 하야하며 군사정권이 붕괴된 이후 대용자유군은 유지되어왔으나 점점 효력이 줄어들었다. 무엇보다 민병대로 시작된 단체였기에 인별국 정부와 여러차례 논의해봤지만 항상 마땅한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이렇게 대용자유군은 자연스럽게 해체되나 싶었는데...
1961년 새로 집권한 안인현 대통령이 수도사령부로 승격시켜주겠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해왔다. 단순 민병대에서 수도를 지키는 정규군으로 격상을 시켜준다는 제안이었기에 당시 대용자유군 수뇌부에선 대부분 찬성했고, 1961년 9월 12일 해체 후 인별국 수도사령부로 다시 창건되었다.
각주
- ↑ 안인현 정부의 제안으로 해체 후 인별국 수도사령부로 변경. 말이 사실상 지도부는 그대로 옮겨져 수도사령부의 전신이라 해도 무방.
- ↑ 해체일인 1961년 9월 12일 기준.
- ↑ 수도사령부 이전 인물만 기재. 수도사령부 인물은 인별국 수도사령부 문서 참조.
- ↑ 대용자유군 창건자.
- ↑ 대용자유군 창건자.
- ↑ 인별사회주의내전 당시 대용자유군 총사령관. 2ㆍ5대 대용자유군 총원수.
- ↑ 대용자유군 육군부사령관 재임(1915~1939). 대용자유군 대용경계수비대 제3대대장 재임(1939~1952). 3대 대용자유군 총원수.
- ↑ 대용부 부시장 역임(~1922). 대용자유군 육군부사령관 재임(1939~1952). 4대 대용자유군 총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