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우휠 6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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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병기]](魔兵器)
워렛의 마음은 분명 흔들리고 있었다.


낯설고 딱딱한 이름은 이제는 사용되지 않는 단어였다. 마법이 사라진 시대에서는 있을 수도 없고 있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사용할 수 없는 그런 물건이다.  
최고 권력자인 총통이 자신에게 일장연설을 늘어놓은 후, 새벽을 달리는 기차에서 워렛은 오만가지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총통이 자신의 능력을 원한다. 자신이 불사가 되기를 원하고, 불사가 된다면 그에 따른 보상을 제공할 것이라고.  


그러나 아렌에게는 달랐다. 찰나의 순간을 뒤덮은 미지의 감정이 쏜살같이 아렌에게 달려들었다. 절규와 비애가 담긴 그 기운은 마치 누군가의 목소리처럼 소리없이 웅성거리고, 마치 아렌의 정신을 표피에 붙은 껍떼기처럼 뜯어내 안쪽 살을 파고드는 벌레같았다. 그러한 불쾌하고 두려운 감상이 아렌을 뒤덮은거다.
하지만 쉬운 선택은 아니다. 만약 자신이 총통을 돕는다고 덜컥 제안을 받아들이면 호소니에 대학살이 벌어질 것이다.


"중장님?"
"불사의 재료는.."


반델은 혼이 나간 채 주저앉은 중장의 상태를 확인했다. 아까처럼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이런 상태는 아니었는데, 아렌은 얼굴을 구기며 두 손을 모아 얼굴에 댄다. 반델은 무엇이 문제인지 알아차리기 어려웠다.
불사의 재료는, 그보다 수 배, 아니 수 백 배의 인간. , 목숨.


"괜찮.. 괜찮습니다."
워렛의 가문이 그토록 불사를 완성하지 못한 이유는, 아니, 완성하지 못했다고 사람들은 속인 이유는 그것이 완성되어서는 안되는 금기의 기술이었기 때문이다. 왕가에도 결코 제공하지 않은 그야말로 기밀 중의 기밀이다.


아렌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반델은 아렌의 존칭에 조금 이상함을 느꼈으나 잠시 뿐이었다.
아무리 총통이 정상적인 사람처럼 보이고 자신을 회유한다고 하더라도, 결국 그는 불사를 만드는 원리를 알면서도 그것을 원한다. 그렇다면 그는 학살자다. 그가 불사가 된다고 해서, 자신과의 약속을 지킬지도 나아가 세상의 혼란을 몇 배는 더 가중시킬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괜찮아."
그럼 자신은 어쩌란 말인가?


"뭔가 문제라도 있으신 겁니까?"
그의 부탁을 거절해도 죽는다면.. 무슨 답이 있을까?


"아니야. 그냥, 피곤해서.."
─''"자네가 직접 호소니로 향한다면, 내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이해하지. 빨리 선택해야 할걸세."''


그렇게 말해야했다. 자신이 마법사의 혈통이라 그렇다고 털어놓을 없을 테니. 그렇게 아렌은 창고 화물에 등을 기대고 한참이나 앉아있었다. 복잡한 감정과 기억 사이에서 말이다.
아직, 아직 답을 내릴 없다.


"두 분 괜찮으십니까!?"
우선..


잠시 뒤,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약 1시간 전 함께 비공정에 매달렸던 남자. 맥거만 중사였다. 그는 이제 술은 다 깨고 사병들과 함께 화물칸으로 내려온 듯 했다. 그는 아렌에게 상황을 전달했다. 공화파 대부분은 진압되었고, 화재도 잡았으며, 해군의 중요인사들도 다행히 무사하다.  
"돌아가자."


그리고 마침내 [[호소니]]에 도착하기 직전이라는 이야기였다.
워렛은 달리는 열차 화장실의 거울 앞에서 그렇게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
----
"우선 인수인계를 하셔야하니 다녀오시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BR>
달은 저물고, 해는 떠오르고, 열차는 멈췄다.
맥거만은 그렇게 말했다.
 
차가운 공기의 새벽아침이다. 외투를 입고 피곤함도 잊은 워렛은 혹시나 있을 감시자들을 피해 이동했다. 모자를 눌러썼고, 발걸음을 빠르게했다. 안다. 그래도 소용없을지도 모른다.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보고될 것이다. 워렛의 예상대로 승강장부터 계속 자신을 따라오는 남자들이 있었고 워렛도 그들을 예의주시했다.
 
그러다 사거리를 지나니 워렛에게 익숙한 사람이 나타났다.
 
"여기에요."


"그럼 비공정의 화물은 전부 이곳에 내리는 겁니까?"
워렛이 한참 정신이 팔렸을 무렵, 워렛을 마중나온 여군 한 사람이 건너편 길에서 손을 흔들었다. 단발머리에 군복을 정갈하게 입은 사람이다.


"그렇습니다. 반나절 정도는 소요될 예정입니다. 아마 오시면 비공정은 없고, 화물담당인 저희 부대만 있을겁니다."
"시안. 우선 가자. 따라와."


아렌은 끄덕이며 비공정에서 내려왔다. 모든 화물이 이곳에서 내린다. 그거면 아렌에게는 충분했다.
"네?"


1년만에 돌아온 [[호소니]]는 [[라이프니츠]]와는 많은 게 달랐다. 우선 이곳은 라이프니츠에 비하면 섬이었지만, 끝없는 삼림과 높은 산맥이 이어지는 땅이었고, 비가 자주 내렸으며 본국처럼 엄격하게 통제한다는 분위기도 없었다. 전쟁터이지만 서로 끝없는 공방전에 지쳐 이도저도 아닌 상태로 교착된 땅이었다. 본래 야전 사령관이었던 헤반 중장은 이곳에서 뭐라도 하려고 시도했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작전 실패와 그로 인해 잃은 육체였다.
워렛은 그녀를 데리고 곧장 계속 길을 나아갔고, 누나의 군 사무실이 있는 군청 방면으로 계속 걸었다. 여전히 그들은 뒤에서 따라왔다.


"중장님. 가시면 됩니다."<br>
"무슨 일인데요? 냅다 설명도 없이.."
반델은 아렌만한 짐가방을 메어 들고 아렌과 함께 호소니에 준비된 차량에 탑승했다. 어느새 하늘은 어둑어둑해져 혼란스러웠던 낮과는 달리 한껏 차분하다.


그는 짐을 잘 정리하고 호소니 내부로 운전하기 시작했다.
"날 쫓아와. 우선 들어가서 이야기 해"


"중장님. 아까부터 전혀 말씀이 없으십니다."
문을 박차고 들어간 워렛은 경비의 인사도 무시한 채 엘리베이터를 탔고, 멀리서 워렛을 쫓던 갈색 코트의 남성들은 엘리베이터를 탄 워렛을 애써서 신경쓰지 않으려고 했다.


""
"뭐가 어떻게 된거에요?"


아렌은 창밖을 바라보다 반델의 말에 앞을 지그시 바라본다.
"그게.. 할 이야기가 있어."


"그렇지. 아무래도"
"뭔데요? 나도 할 얘기가 많아요."


"혹시 걱정거리가 있다면 말씀해주셔도 괜찮습니다."<br>
"내부에 배신자가 있는 것 같아."
만난지 고작 이틀하고 반나절이었지만, 반델은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올곧은 모습이다. 사실은 꼭 그게 아니더라도 아렌의 표정이 심각한 면도 있기는 했다. 아렌은 손을 꼼지락거리며 새로 받은 군모를 어루만졌다.


"아직 이야기하긴 너무 일러서 말이야"
"무슨 배신자요? 우리 중에서?"


"그렇습니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곧 복도를 걸어서 아렌 집무실에 도착한다. 워렛은 들어가자마자 문을 굳게 잠궜다.


백미러로 아렌의 표정을 보던 반델이 혼자 끄덕거렸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우선, 시안, 내 이야기 잘 들어봐."


"그래도 중장님은 대단하신 분입니다. 아직 젊다고 하시지만 낮에 있던 일은 근위대원도 버거워했을 겁니다. 그냥 이참에 근위대를 하시는건 어떻습니까?"
"잘 듣고 있잖아요. 근데, 저부터 이야기 해야할 거같아요. 많이 중요하거든요."


멍을 때리던 아렌이 반델의 말에 픽 웃었다. 처음으로 풀린 표정이다.
워렛은 가슴팍을 치며 말했다.


"그게 말이 되나? 아무말이나 하네."
"아니, 시안 우선, 이 이야기가 뭐냐면..."


아렌은 소소한 미소와 함께, 평소라면 잘 하지 않을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저택이 수사받고 있어요."


"어린시절에 좀 특수한 훈련을 받았거든."
"?"


"그런것 치고는 비실비실하신데 말입니다."
워렛은 멍하니 시안을 바라본다.  


"..ㅁ"<br>"농담입니다."
"저택이.. 수사받고 있다구요.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닌거에요?"


아렌은 어쩌면 자신의 말 때문에 반델이 더 캐물을거라 생각했지만, 의외로 소령은 딱 거기까지만 물어봤다.
그녀는 워렛에게 따져묻듯이 날카로운 음성으로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저택이란, 워렛과 아렌이 가지고 있는 소유의 큰 건물이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듬직한 걸"
"중요한 자료가 거기 다 있었어요. 급하게 사람들을 시켜서 파기하긴 했지만, 당장 턱 밑까지 올라왔다구요. 이러다가는 다 죽을지도 몰라요. 알고는 계셨던거에요? 제가 말하기 전까지는 몰랐죠? 도련님 수준이 딱 그정도에요. 비밀경찰이 아니라 그냥 아예 총통이랑 대면까지 하지 그래요?"


"자화자찬?"
시안이 쏘아붙이듯이 말해서 숨도 못 쉰 워렛은 입을 꼭 물었다.


"아니.. 소령이 듬직하다고"
"그래요. 이제 말해보세요."


"이렇게 옆에서 구르려고 부임된 거 아니겠습니까."
"그게, 총통을 만났어."


아렌은 그 말에 자신이 너무 반델을 경계한 건 아닌지 돌아보았다. 처음에는 그저 총통과 본국이 자신을 경계하거나 감시하기 위한 목적인 줄만 알았으니까. 그래도 그런것 치곤 반델의 호위와 말붙임은 아렌을 금방 녹아들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것마저 계획이라면? 아렌은 도통 쉽게 생각할 수는 없었다.
"?"


"도착했습니다."
시안은 방금 전의 워렛과 똑같은 표정을 지었다.


완전히 적색 노을이다. 반델과 함께 내린 아렌은 호소니령 군단이 위치한 야전기지에 도착했다. 세월이 세월인지라 그 규모가 도시나 다름없었다. 콘크리트 건물도 낮게 내려깔려 있었고, 군인들의 함성 소리도 들렸다. 아렌도 이곳을 온 적은 있다. 약 1년전이지만. 곧 아렌의 도착을 보고받은 군단의 일원들은 그녀에게 인사하기 위해서 출구쪽으로 나왔다.
"총통이, 자신을 불사(不死)로 만들어달라고 했어. 그럼, 우리를 헤치지 않을거라고.."


"하나의 눈을 위하여<ref name="hi">라이프니츠 군대 경례</ref>, 중장님께 경례드립니다."
워렛은 무언가 이성의 끈을 놓고서 허탈하게 말했다. 그럴만 하다. 얘기를 들은 시안은 건너편 소파에 워렛과 같이 누웠다.


"천개의 창으로서<ref name="hi">라이프니츠 군대 경례</ref>, 소장님께 인사드립니다."
"뭐라고 반응해야할지 모르겠어요."


아렌과 경례하는 소장, 이 바짝 마른 남자는 불과 며칠 전만 하더라도 아렌의 상관이었다. 불과 총통의 말 몇 마디로 나라의 체계가 뒤엎인 거다. 아무리 아렌이 전장에 직접 나오는 야전군은 아니더라도 말도 안되는 인사발령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시안은 두 손을 꼼지락거린다.


"1년만에 뵙습니다. 레이먼트 소장님"
"믿는 건 아니죠?"


"중장님이 되어서 다시 뵐 줄은 몰랐습니다."
"조금은 흔들려. 왜냐하면.."


묘한 기류가 흘렀다. 환영하는 듯 하면서도 초췌한 이 분위기가, 자신을 그다지 인정하는 분위기가 아니라는 건 아렌도 충분히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어차피 안 들으면 죽고, 들으면 죽을지 안 죽을지 불확실하니까?"


"우선 곧 저녁이니 휴식한 후에.."
"잘 아네"


"아닙니다. 지금 직접 인수인계 받겠습니다."
그녀는 다리를 꼬고 앉아서 곰곰이 생각한다.  


사령부의 건물은 야전기지의 중심부에 있었다. 폭격에 대비해서 지하로 연결된 공간이고, 당연하지만 습한 냄새로 가득했다. 지금의 호소니는 늦바지의 여름인지라 뛰어다니는 군인들, 특히 외인부대의 체취도 무시할 수 없었다.
"우리 정체를 전부 빠짐없이 다 안다구요?"


"중장님께서 이런 곳을 견디실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대충은. 적어도 누가 협조자인지는 알고 있어"


소장이 비꼬듯이 말했다. 레이먼트는 애초에 표정도 별로 좋지 않았고 말투도 건성이었다. 그러나 아렌이 한술 더 했다.
"그래요?"


"그렇습니까? 소장님께선 5년이나 이곳을 지키셨는데, 저는 괜찮습니다."
그리고 결론이 나온 듯 했다.


'여지껏 여기서 박혀있었지 이동은 해봤느냐'는 비꼼이었다. 반델은 이 기싸움에 속으로 그다지 좋은 건 아니라고 생각했고, 은근슬쩍 아렌에게 붙어 말했다.
"당분간 이곳에만 있어요."


"그러지 마십시오."
"뭐?"


아렌은 불만 가득한 표정을 하다 콧바람을 불곤 미세하게 끄덕거렸다.
시안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워렛에게 그렇게 선언했다.


인수인계는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작전실에 모인 이들은 지도를 중심으로 둥글게 모였고, 소장은 익숙하게 지휘대<ref>지도를 표시하도록 가르키는 기다란 봉</ref>으로 이리저리를 표시하며 현황을 알렸다. 덕분에 아렌은 몇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보급망이 완전히 엉망인 것, 사기도 부족하다는 현실, 전쟁에 대한 의지 상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장교들도 알고있다는 점이다.
"어딜 가든 감시가 따라다닐 거 아니에요. 나도 그렇겠지만"


"이렇습니다. 이해하셨습니까?"
"어쩌려고?"


소장은 한쪽 눈썹을 올리며 어깨를 까닥였다. 마치 '문제를 네가 풀 수 있을 것 같냐?' 라는 느낌의 표현이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당장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으니까. 당장은 말이다. 은근히 자신이 무시당하는 기분도 그랬지만, 어차피 기싸움을 한다고 해결되는 건 없으니까.
"나라를 떠야죠."


"각하께서 추가 병력을 파병해주시면 전황이 나아질 겁니다."
워렛은 납득이 잘 되지 않았다. 무슨 수로?


"아무렴, 그렇지 않겠습니까?"
"총통은 신이 아니에요. 그래봤자 한낮 인간이구요. 협박 당했다고 무서워하고 아무것도 못하면 안되요. 어차피 놈은 자기 하수인들을 부리느라 바쁠 테고, 감시인들도 당장 제거하면 우리를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요."


됐다. 아렌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말았다. 그러자 반델은 타이밍을 맞추어 입을 열었다.
"그래. 알겠어. 그럼 내가 여기 있다고 치면, 누나는?"


"나머진 내일 논의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렌 아가씨를 구할 방법이 있어요. 우선 그 방법부터 시도해봐야죠."


나머지 장교들도 반델의 의견에 끄덕거리고는, 잠시후 장교단이 빠져나간 회의장에는 소장과 아렌, 반델. 세 사람 정도만 남아있었다.
"우리가 직접 구하는 건?"


"도련님 덕분에 저도 감시당할 텐데 무슨 수로?"<br>"아..." 워렛은 확실히 누나보다 명석하지는 못했다.


"우선 [[공화수호전선]]이 우릴 도와줄 거에요. 그리고 당분간은 나오지 마시구요. 그게 최선이니까."


"여기 처박혀서 크래커만 씹어먹는 게 도움이 맞아?"


워렛은 그렇게 말하며 선반에 있던 크래커를 씹어먹었다.


"앉아서 죽을 순 없잖아요. 안 그래요?"


----
"상처는 어때? 반델 소령."
"따끔합니다. 휴가 일주일이면 충분히 나을 겁니다."
"너무 긴데.."
아렌과 반델은 비공정 복도를 걸으며 상황을 파악했다. 반델의 활약으로 조종실을 되찾은 후, 비공정 대부분의 공간은 통제권을 찾을 수 있었다. 사병들이 무기고에서 다시 무장하면서 이제 비공정 최하단의 짐칸에만 적들이 숨어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들이 오래 버텨보았자 어차피 곧 비공정은 호소니에 도착할 테고, 이리되나 저리되나 포위되어서 항복하는 건 시간문제다..
"포로로 잡은 적들에게 정보를 취했는데, [[공화수호전선]]이 맞답니다."
"...그렇네. 소령 말이 맞았어."
아렌은 찜찜한 속내를 감추기 어려웠다. 도대체 왜..
"너무 죄책감 가지실 필요 없습니다. 자국인이라고 해도 반란군이니까요. 그들은 어차피 숙청대상입니다."
"그렇지."
"확실히 같은 훈련을 받은 정규군이어서 많이 위험하긴 했습니다. 그래도 포위됐으니 금방 끝날겁니다."
"그럼 포위된 대상 중에 적의 우두머리도 포함인가?"
"아무래도 그렇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중장님!"
"아우 놀래라"
복도 모퉁이에서 덜컥 튀어나온 그는 바로 맥거만 중사다. 그는 경례를 하고는 아렌이 1시간 전에 부탁한 답을 알아왔다.
"이송중인 정치범에 대해서 관련서류 찾아왔습니다."
의외로 기밀문서치고는 얇은 서류고, 아렌은 슬쩍 표지 뒷장의 이름을 흘깃 본다.
"세그넌.. [[타라바오 세그넌]]"
"익숙한 이름이십니까?"
"예. 나름 유명인이니 알고는 있습니다."
맥거만은 주절주절 설명을 이어갔다.
"꽤 중요한 인물입니다. 제국 시절에는 있었을 땐 외교 요직을 맡았었고, 데모부르크와도 깊은 친분이 있구요. 그리고 무엇보다 공화파에서 워낙 중요시여기는 사람인데, 이번에 비공정으로 이감된다는 소식을 어떻게 알았는지를 모르겠습니다."
"이감 사유가.. 호소니 감옥으로 이동?"
아찔한 사유다. [[호소니 감옥]]은 철천지 악질 범죄자들이나 가는 곳이다. 고작 정치범인 50대의 중년이 그런 곳으로 간다면 영 생활이 녹록치는 않을 테고. 아렌은 괜한 걱정이 들었다. 왜냐하면 세그넌은 자신을 군인으로 신분 세탁 시켜준 장본인이니까. 계속해서 평범하지 않은 일들이 연이어 발생하다보니 스트레스가 쌓일 만큼 쌓이는 중이었다.
죽었을지 살았을지 정확하지 않으리라 짐작하긴 했지만, 결국 그는 살아있었다.
물론 그가 그저 정치범이라면 진즉 죽었겠지만..
"혹시 만나볼 수 있습니까?"
"절차 상 총통의 승인이 필요하지만, 암묵적으로 선장님께서 동의해주신다면 문제는 없을겁니다. 그 동의는 제가 받아낼 수 있구요. 비공정을 구해내셨는데 그게 뭘 별거겠습니까?"
아렌에게 맥거만은 처음 만취 상태로 꽤 형편없는 첫인상이었지만, 술이 다 깨고 정갈한 모습을 하니 나름 아부도 하고 사회생활도 하는 관계형 인간이었다.
아렌이 반델을 처다보자, 반델은 바로 스케줄을 읊었다.
"2시간 뒤에 비공정이 착륙하니 문제는 없습니다."
"그럼 미안한데 내 짐이랑 서류 좀 부탁해 반델."
"혼자 가시는 겁니까? 그래도 아직 호위는..."
"괜찮아. 맥거만 중사가 있으니까."
맥거만은 생각없이 끄덕거리다가 약간 의아한 표정을 하지만 그래도 크게 부정하지는 않았다.
"잠시 후에 뵙겠습니다."
반델은 아렌에게 경례한 후 다른 복도로 사라졌고, 맥거만과 아렌은 함께 계단을 타고 최하단 층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맥거만의 설명처럼 거대한 화물실을 지나자 약간 개조된 비밀 수감실의 문이 있었다. 맥거만이 이중, 삼중으로 되어있는 자물장치들을 풀자 그제서야 쇠창살이 보였다. 제법 열악해보인다.
"이곳입니다."
안에 갇혀있는 이는 단 한 사람, 세그넌이란 이름의 백발 중년이다.
"둘이서 대화할 수 있습니까?"
"심문이시라면 뭐. 저는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맥거만 중사가 자리를 비우자, 공간에는 오롯이 두 사람만 남았다. 한적했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남자는 여전히 말이 없었고, 아렌은 뜸을 들이다 옆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두 사람은 쇠창살을 사이에 두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렌? 아렌인가?"
그러다 고개를 슬쩍 들어서 바깥을 본 세그넌이, 아렌을 알아보았다.
"....예"
"내가 얻어준 군복을 여즉 잘도 입고 있었군. 동생은?"
"..."
아렌은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워렛은 다른 곳에 있어요."
"그렇군"
"이런 이야기를 함부로 해도 되는건가? 너에겐 위험할 텐데. 네가 그런 성격은 아니고 말이지."
"이미 돌아가신 줄 알았습니다. 사형당하신 줄 알았어요."
아렌은 그렇게 말하며 가슴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고, 세그넌에게 한 대 건낸다.
"나는 이미 죽었어. 아주 오래전에.. 제국이 멸망하면서 모든 게 끝났지."
"..."
그리고 다시 침묵과 함께 두 사람은 서로 등지고 담배를 폈다.
"망할 놈. 내가 여깄는 걸 알았으면.. 좀 구해주지 그랬냐. 정 없는 기집애 같으니."
세그넌은 뭔가 푸념을 늘어놓듯이 말했다. 아렌은 뒷머리를 긁적였다.
"밖에 소리를 들어보니.. 누가 날 구하러 온 것 같았는데.. 아니.. 됐지. 이젠 아무 소용이 없어. 후우"
손바닥만한 유리창 하나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어두컴컴한 방에서, 자그마한 등과 두 개의 담뱃불이 살랑거렸다.
"어르신. 호소니 감옥으로 가고 계십니다."
"...아니"<br>세그넌은 담배를 피다 말고 바닥에 밟아뭉겠다.
"눈치없긴, 고작 그런 이유로 나같은 적을 옮길 이유는 없지."
"그럼요?"
"총통놈. 뭔가 계획하고있어. 나 뿐만이 아니야. 마법사들을 죄다 호소니로 보내고 있지."
등을 돌려 앉았던 아렌은 그 이야기를 듣고 화들짝 놀라 몸을 돌렸다.
"무슨 이야기에요?"
총통이 마법사에 대해서 필요 이상으로 많이 알고있다? 아렌은 전혀 모르는 정보였다.
"나도 그 이상은 모른다. 이제 가라. 니 부하가 온다. 그리고.. 건강해라."
그리고 세그넌의 말대로 바깥에서 대기하고 있던 맥거만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중장님? 죄송하지만 이제 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전달사항이 있다고.."
세그넌은 끝까지 아렌의 얼굴을 제대로 바라보지 않는다. 아렌은 조금 서운했다. 세그넌과 자신이 그렇게 가족도 아니었지만 적어도 그 혼란스러운 시대에 자신을 도와준 사람이었으니까. 그러나 그래서 더더욱 친분을 드러낼 수 없었다.
그렇게 아렌은 다시 세그넌을 만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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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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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6월 26일 (일) 20:53 기준 최신판


정렬하여 보기

A

그로우휠 6편
계획

워렛의 마음은 분명 흔들리고 있었다.

최고 권력자인 총통이 자신에게 일장연설을 늘어놓은 후, 그 새벽을 달리는 기차에서 워렛은 오만가지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총통이 자신의 능력을 원한다. 자신이 불사가 되기를 원하고, 불사가 된다면 그에 따른 보상을 제공할 것이라고.

하지만 쉬운 선택은 아니다. 만약 자신이 총통을 돕는다고 덜컥 제안을 받아들이면 호소니에 대학살이 벌어질 것이다.

"불사의 재료는.."

불사의 재료는, 그보다 수 배, 아니 수 백 배의 인간. 즉, 목숨.

워렛의 가문이 그토록 불사를 완성하지 못한 이유는, 아니, 완성하지 못했다고 사람들은 속인 이유는 그것이 완성되어서는 안되는 금기의 기술이었기 때문이다. 왕가에도 결코 제공하지 않은 그야말로 기밀 중의 기밀이다.

아무리 총통이 정상적인 사람처럼 보이고 자신을 회유한다고 하더라도, 결국 그는 불사를 만드는 원리를 알면서도 그것을 원한다. 그렇다면 그는 학살자다. 그가 불사가 된다고 해서, 자신과의 약속을 지킬지도 나아가 세상의 혼란을 몇 배는 더 가중시킬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럼 자신은 어쩌란 말인가?

그의 부탁을 거절해도 죽는다면.. 무슨 답이 있을까?

"자네가 직접 호소니로 향한다면, 내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이해하지. 빨리 선택해야 할걸세."

아직, 아직 답을 내릴 순 없다.

우선..

"돌아가자."

워렛은 달리는 열차 화장실의 거울 앞에서 그렇게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달은 저물고, 해는 떠오르고, 열차는 멈췄다.

차가운 공기의 새벽아침이다. 외투를 입고 피곤함도 잊은 워렛은 혹시나 있을 감시자들을 피해 이동했다. 모자를 눌러썼고, 발걸음을 빠르게했다. 안다. 그래도 소용없을지도 모른다.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보고될 것이다. 워렛의 예상대로 승강장부터 계속 자신을 따라오는 남자들이 있었고 워렛도 그들을 예의주시했다.

그러다 사거리를 지나니 워렛에게 익숙한 사람이 나타났다.

"여기에요."

워렛이 한참 정신이 팔렸을 무렵, 워렛을 마중나온 여군 한 사람이 건너편 길에서 손을 흔들었다. 단발머리에 군복을 정갈하게 입은 사람이다.

"시안. 우선 가자. 따라와."

"네?"

워렛은 그녀를 데리고 곧장 계속 길을 나아갔고, 누나의 군 사무실이 있는 군청 방면으로 계속 걸었다. 여전히 그들은 뒤에서 따라왔다.

"무슨 일인데요? 냅다 설명도 없이.."

"날 쫓아와. 우선 들어가서 이야기 해"

문을 박차고 들어간 워렛은 경비의 인사도 무시한 채 엘리베이터를 탔고, 멀리서 워렛을 쫓던 갈색 코트의 남성들은 엘리베이터를 탄 워렛을 애써서 신경쓰지 않으려고 했다.

"뭐가 어떻게 된거에요?"

"그게.. 할 이야기가 있어."

"뭔데요? 나도 할 얘기가 많아요."

"내부에 배신자가 있는 것 같아."

"무슨 배신자요? 우리 중에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곧 복도를 걸어서 아렌 집무실에 도착한다. 워렛은 들어가자마자 문을 굳게 잠궜다.

"우선, 시안, 내 이야기 잘 들어봐."

"잘 듣고 있잖아요. 근데, 저부터 이야기 해야할 거같아요. 많이 중요하거든요."

워렛은 가슴팍을 치며 말했다.

"아니, 시안 우선, 이 이야기가 뭐냐면..."

"저택이 수사받고 있어요."

"?"

워렛은 멍하니 시안을 바라본다.

"저택이.. 수사받고 있다구요.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닌거에요?"

그녀는 워렛에게 따져묻듯이 날카로운 음성으로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저택이란, 워렛과 아렌이 가지고 있는 소유의 큰 건물이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중요한 자료가 거기 다 있었어요. 급하게 사람들을 시켜서 파기하긴 했지만, 당장 턱 밑까지 올라왔다구요. 이러다가는 다 죽을지도 몰라요. 알고는 계셨던거에요? 제가 말하기 전까지는 몰랐죠? 도련님 수준이 딱 그정도에요. 비밀경찰이 아니라 그냥 아예 총통이랑 대면까지 하지 그래요?"

시안이 쏘아붙이듯이 말해서 숨도 못 쉰 워렛은 입을 꼭 물었다.

"그래요. 이제 말해보세요."

"그게, 총통을 만났어."

"?"

시안은 방금 전의 워렛과 똑같은 표정을 지었다.

"총통이, 자신을 불사(不死)로 만들어달라고 했어. 그럼, 우리를 헤치지 않을거라고.."

워렛은 무언가 이성의 끈을 놓고서 허탈하게 말했다. 그럴만 하다. 얘기를 들은 시안은 건너편 소파에 워렛과 같이 누웠다.

"뭐라고 반응해야할지 모르겠어요."

시안은 두 손을 꼼지락거린다.

"믿는 건 아니죠?"

"조금은 흔들려. 왜냐하면.."

"왜냐하면 어차피 안 들으면 죽고, 들으면 죽을지 안 죽을지 불확실하니까?"

"잘 아네"

그녀는 다리를 꼬고 앉아서 곰곰이 생각한다.

"우리 정체를 전부 빠짐없이 다 안다구요?"

"대충은. 적어도 누가 협조자인지는 알고 있어"

"그래요?"

그리고 결론이 나온 듯 했다.

"당분간 이곳에만 있어요."

"뭐?"

시안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워렛에게 그렇게 선언했다.

"어딜 가든 감시가 따라다닐 거 아니에요. 나도 그렇겠지만"

"어쩌려고?"

"이 나라를 떠야죠."

워렛은 납득이 잘 되지 않았다. 무슨 수로?

"총통은 신이 아니에요. 그래봤자 한낮 인간이구요. 협박 당했다고 무서워하고 아무것도 못하면 안되요. 어차피 놈은 자기 하수인들을 부리느라 바쁠 테고, 감시인들도 당장 제거하면 우리를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요."

"그래. 알겠어. 그럼 내가 여기 있다고 치면, 누나는?"

"아렌 아가씨를 구할 방법이 있어요. 우선 그 방법부터 시도해봐야죠."

"우리가 직접 구하는 건?"

"도련님 덕분에 저도 감시당할 텐데 무슨 수로?"
"아..." 워렛은 확실히 누나보다 명석하지는 못했다.

"우선 공화수호전선이 우릴 도와줄 거에요. 그리고 당분간은 나오지 마시구요. 그게 최선이니까."

"여기 처박혀서 크래커만 씹어먹는 게 도움이 맞아?"

워렛은 그렇게 말하며 선반에 있던 크래커를 씹어먹었다.

"앉아서 죽을 순 없잖아요. 안 그래요?"


"상처는 어때? 반델 소령."

"따끔합니다. 휴가 일주일이면 충분히 나을 겁니다."

"너무 긴데.."

아렌과 반델은 비공정 복도를 걸으며 상황을 파악했다. 반델의 활약으로 조종실을 되찾은 후, 비공정 대부분의 공간은 통제권을 찾을 수 있었다. 사병들이 무기고에서 다시 무장하면서 이제 비공정 최하단의 짐칸에만 적들이 숨어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들이 오래 버텨보았자 어차피 곧 비공정은 호소니에 도착할 테고, 이리되나 저리되나 포위되어서 항복하는 건 시간문제다..

"포로로 잡은 적들에게 정보를 취했는데, 공화수호전선이 맞답니다."

"...그렇네. 소령 말이 맞았어."

아렌은 찜찜한 속내를 감추기 어려웠다. 도대체 왜..

"너무 죄책감 가지실 필요 없습니다. 자국인이라고 해도 반란군이니까요. 그들은 어차피 숙청대상입니다."

"그렇지."

"확실히 같은 훈련을 받은 정규군이어서 많이 위험하긴 했습니다. 그래도 포위됐으니 금방 끝날겁니다."

"그럼 포위된 대상 중에 적의 우두머리도 포함인가?"

"아무래도 그렇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중장님!"

"아우 놀래라"

복도 모퉁이에서 덜컥 튀어나온 그는 바로 맥거만 중사다. 그는 경례를 하고는 아렌이 1시간 전에 부탁한 답을 알아왔다.

"이송중인 정치범에 대해서 관련서류 찾아왔습니다."

의외로 기밀문서치고는 얇은 서류고, 아렌은 슬쩍 표지 뒷장의 이름을 흘깃 본다.

"세그넌.. 타라바오 세그넌"

"익숙한 이름이십니까?"

"예. 나름 유명인이니 알고는 있습니다."

맥거만은 주절주절 설명을 이어갔다.

"꽤 중요한 인물입니다. 제국 시절에는 있었을 땐 외교 요직을 맡았었고, 데모부르크와도 깊은 친분이 있구요. 그리고 무엇보다 공화파에서 워낙 중요시여기는 사람인데, 이번에 비공정으로 이감된다는 소식을 어떻게 알았는지를 모르겠습니다."

"이감 사유가.. 호소니 감옥으로 이동?"

아찔한 사유다. 호소니 감옥은 철천지 악질 범죄자들이나 가는 곳이다. 고작 정치범인 50대의 중년이 그런 곳으로 간다면 영 생활이 녹록치는 않을 테고. 아렌은 괜한 걱정이 들었다. 왜냐하면 세그넌은 자신을 군인으로 신분 세탁 시켜준 장본인이니까. 계속해서 평범하지 않은 일들이 연이어 발생하다보니 스트레스가 쌓일 만큼 쌓이는 중이었다.

죽었을지 살았을지 정확하지 않으리라 짐작하긴 했지만, 결국 그는 살아있었다.

물론 그가 그저 정치범이라면 진즉 죽었겠지만..

"혹시 만나볼 수 있습니까?"

"절차 상 총통의 승인이 필요하지만, 암묵적으로 선장님께서 동의해주신다면 문제는 없을겁니다. 그 동의는 제가 받아낼 수 있구요. 비공정을 구해내셨는데 그게 뭘 별거겠습니까?"

아렌에게 맥거만은 처음 만취 상태로 꽤 형편없는 첫인상이었지만, 술이 다 깨고 정갈한 모습을 하니 나름 아부도 하고 사회생활도 하는 관계형 인간이었다.

아렌이 반델을 처다보자, 반델은 바로 스케줄을 읊었다.

"2시간 뒤에 비공정이 착륙하니 문제는 없습니다."

"그럼 미안한데 내 짐이랑 서류 좀 부탁해 반델."

"혼자 가시는 겁니까? 그래도 아직 호위는..."

"괜찮아. 맥거만 중사가 있으니까."

맥거만은 생각없이 끄덕거리다가 약간 의아한 표정을 하지만 그래도 크게 부정하지는 않았다.

"잠시 후에 뵙겠습니다."

반델은 아렌에게 경례한 후 다른 복도로 사라졌고, 맥거만과 아렌은 함께 계단을 타고 최하단 층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맥거만의 설명처럼 거대한 화물실을 지나자 약간 개조된 비밀 수감실의 문이 있었다. 맥거만이 이중, 삼중으로 되어있는 자물장치들을 풀자 그제서야 쇠창살이 보였다. 제법 열악해보인다.

"이곳입니다."

안에 갇혀있는 이는 단 한 사람, 세그넌이란 이름의 백발 중년이다.

"둘이서 대화할 수 있습니까?"

"심문이시라면 뭐. 저는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맥거만 중사가 자리를 비우자, 공간에는 오롯이 두 사람만 남았다. 한적했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남자는 여전히 말이 없었고, 아렌은 뜸을 들이다 옆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두 사람은 쇠창살을 사이에 두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렌? 아렌인가?"

그러다 고개를 슬쩍 들어서 바깥을 본 세그넌이, 아렌을 알아보았다.

"....예"

"내가 얻어준 군복을 여즉 잘도 입고 있었군. 동생은?"

"..."

아렌은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워렛은 다른 곳에 있어요."

"그렇군"

"이런 이야기를 함부로 해도 되는건가? 너에겐 위험할 텐데. 네가 그런 성격은 아니고 말이지."

"이미 돌아가신 줄 알았습니다. 사형당하신 줄 알았어요."

아렌은 그렇게 말하며 가슴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고, 세그넌에게 한 대 건낸다.

"나는 이미 죽었어. 아주 오래전에.. 제국이 멸망하면서 모든 게 끝났지."

"..."

그리고 다시 침묵과 함께 두 사람은 서로 등지고 담배를 폈다.

"망할 놈. 내가 여깄는 걸 알았으면.. 좀 구해주지 그랬냐. 정 없는 기집애 같으니."

세그넌은 뭔가 푸념을 늘어놓듯이 말했다. 아렌은 뒷머리를 긁적였다.

"밖에 소리를 들어보니.. 누가 날 구하러 온 것 같았는데.. 아니.. 됐지. 이젠 아무 소용이 없어. 후우"

손바닥만한 유리창 하나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어두컴컴한 방에서, 자그마한 등과 두 개의 담뱃불이 살랑거렸다.

"어르신. 호소니 감옥으로 가고 계십니다."

"...아니"
세그넌은 담배를 피다 말고 바닥에 밟아뭉겠다.

"눈치없긴, 고작 그런 이유로 나같은 적을 옮길 이유는 없지."

"그럼요?"

"총통놈. 뭔가 계획하고있어. 나 뿐만이 아니야. 마법사들을 죄다 호소니로 보내고 있지."

등을 돌려 앉았던 아렌은 그 이야기를 듣고 화들짝 놀라 몸을 돌렸다.

"무슨 이야기에요?"

총통이 마법사에 대해서 필요 이상으로 많이 알고있다? 아렌은 전혀 모르는 정보였다.

"나도 그 이상은 모른다. 이제 가라. 니 부하가 온다. 그리고.. 건강해라."

그리고 세그넌의 말대로 바깥에서 대기하고 있던 맥거만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중장님? 죄송하지만 이제 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전달사항이 있다고.."

세그넌은 끝까지 아렌의 얼굴을 제대로 바라보지 않는다. 아렌은 조금 서운했다. 세그넌과 자신이 그렇게 가족도 아니었지만 적어도 그 혼란스러운 시대에 자신을 도와준 사람이었으니까. 그러나 그래서 더더욱 친분을 드러낼 수 없었다.

그렇게 아렌은 다시 세그넌을 만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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