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주의

지나가는 스팀러 (토론 | 기여)님의 2024년 2월 14일 (수) 00:23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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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농민주의(피아산티아노, Peasantism)은 판시르나의 들판에서 세계관에 등장하는 가공의 이념이다. 모티브는 현실의 사회주의

사상

현실의 사회주의가 모티브인 만큼 사상도 비슷하다. 다만 현실의 사회주의보단 온건한 편이다.

역사

대전기 이전

원래 농민주의의 등장 이전 세르네아의 국가들은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이론과 비슷한 릴리 카노넨부르크의 '자유 시장론'을 받아들여 이에 따라 경제기 굴러가고 있었다. 그나마 애덤 스미스는 상황에 따라서는 정부의 시장 개입도 필요하다는 입장 이였던 것과 달리 릴리 카노넨부르크는 "노동자들이 자신의 대우가 불합리하다고 느끼면 만족할만한 대우를 해주는 직장으로 이주할 것이고 이에 따라 불합리한 대우를 하는 기업은 노동자가 부족하여 자동적으로 도태되며 사회에는 노동자들에게 합리적인 대우를 해주는 기업만 남을 것"이라는 극단적인 자유 시장 경제를 주장하던 사람이였기에 세르네아의 산업 혁명 시기는 막장이였을 것 같지만 의외로 이것이 먹혀 이 이론은 전후기까지 오점이 없는 정설로 받아들여졌다.[1] 다만 이 자유 시장론 이외의 다른 이념들이 없던것은 아닌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농민주의의 전신인 '낙원주의'이다. 공유주의를 최초로 주장한 자는 아로브리아의 철학자였던 아돌프 마르이는 원래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 낙원'을 연구하던 학자였지만 이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 낙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계급 철폐의 따른 평등사회와 부의 재분배가 이루어져야한다는 결론에 도달하였고 이 이념을 '낙원주의'(Paradisism)라고 정의하였다. 실제로 이 이념은 당시 학자들 사이에서 꽤 많은 지지를 받았지만 계급의 철폐(왕정 폐지)를 전제호 하고 있어 군주정 국가가 대다수이던 당시 상황과 맞지 않아 탄압받았다.

자유 시장론의 붕괴와 루트리아 혁명

두 차례의 대전쟁 이후 국제 사회는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전쟁으로 노동 현장으로 와야 할 인력들이 전쟁터로 가게 되면서 기업들은 로봇과 컴퓨터를 이용해 산업을 자동화하여 인력의 공백을 메꾸려고 하였다. 하지만 이후 산업이 자동화되며 일자리가 크게 줄어들면서 자유 시장론의 기본 개념인 '일자리의 유연성'이 무너지게 되었고 노동자와 고용자의 갑을 관계가 역전되며 노동 현장의 질은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한다.

이런 혼란 속에서 가장 먼저 움직임이 나타난 곳은 루트리아였다. 루트리아는 '세르네아의 곡창'이라고 불리는 네베르스크 평원이 존재하여 농업이 크게 발달하였다. 이 시기 루트리아는 이 시기까지 농노제의 풍습이 남아있어 농민들의 대부분이 본인 소유의 농지 없이 '대지주'들의 땅에서 소작을 하고 있었는데 이런 소작농들이 루트리아 전체 인구의 20%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전후기 95년 '대지주'들이 효율과 경제적인 이유로 농업의 대부분을 기계화하고 눈물의 월요일 사건으로 농민의 약 80%(전체 인구의 약 16%)가 되는 엄청난 수의 농민들을 해고되는 대참사가 터지게 되자 일자리를 잃은 농민들은 자신들을 해고한 대지주를 처벌하고 이 사태를 방관한 정부[2]를 개혁하자며 수도인 차라코스로 진격하게 되면서 혁명은 시작된다. 농민주의라는 명칭도 이때 생겨난 것이다.

이후 혁명으로 제정이 무너지고 최초의 농민주의 국가 루트리아 농민 공화국이 건국되면서 농민주의는 전 세계로 퍼져나간다.

  1. 현실로 치면 2차 대전이 끝나고 2000년대까지 고전적인 자유 시장 경제가 이어진 샘이다.
  2. 사실 루트리아 정부도 해당 사건에 경악하며 대지주들을 재제할려고 시도하긴 했다. 하지만 당시 대지주들은 정부 고위 관료, 심지어 황제와 연줄이 닿아있는 제국의 실세들 이였기 때문에 재제는 사실상 유명무실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