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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악셀레스 1세는 새로운 제도인 '륑나도르'를 창시하였는데, 그것은 바로 척박한 곳에 농민들에게 돈을 주고 직접 경작할 수 있게 하는 제도, 또 그에 대한 댓가로 1년에 두번 세금을 내는 제도, 빈민들에게 수당을 주고 군인으로 훈련시키는 제도를 합친 것이었다. 이 륑나도르 덕분에 눈누 제1 제국은 번성했고, 이 자본을 바탕으로 후대의 왕들은 여러차례 섬 북부로 원정을 떠났다.
이후, 악셀레스 1세는 새로운 제도인 '륑나도르'를 창시하였는데, 그것은 바로 척박한 곳에 농민들에게 돈을 주고 직접 경작할 수 있게 하는 제도, 또 그에 대한 댓가로 1년에 두번 세금을 내는 제도, 빈민들에게 수당을 주고 군인으로 훈련시키는 제도를 합친 것이었다. 이 륑나도르 덕분에 눈누 제1 제국은 번성했고, 이 자본을 바탕으로 후대의 왕들은 여러차례 섬 북부로 원정을 떠났다.


그러나, 이 원정 도중 재정난이 일어났고, 이때를 틈타 프랑스의 노르망디 공국이 왕위를 찬탈하기 위해 데넨누마 전쟁을 벌였으며(1254), 이를 막아내느라 국가 경제는 파탄이 나게 된다. 이에 엡실뢰나드 2세가 륑나도르를 정비하여 재정난을 극복하려 했지만, 데넨누마 전쟁의 전후처리/ 프랑스 왕위 계승의 문제가 합쳐져 100년 전쟁이 일어나는 바람에(1337), 결국 눈누 제1제국은 멸망한다.
그러나, 이 원정 도중 재정난이 일어났고, 이때를 틈타 프랑스의 노르망디 공국이 왕위를 찬탈하기 위해 데넨누마 전쟁을 벌였으며(1254), 이를 막아내느라 국가 경제는 파탄이 나게 된다. 이에 엡실뢰나드 2세가 륑나도르를 정비하여 재정난을 극복하려 했지만, 데넨누마 전쟁의 전후처리/ 프랑스 왕위 계승의 문제가 합쳐져 20년 전쟁이 일어나는 바람에(1337), 결국 눈누 제1제국은 멸망한다.
=== 암흑기에 브리튼계 소국들이 난립하다 ===
=== 암흑기에 브리튼계 소국들이 난립하다 ===
눈누 제1제국이 멸망한 후, 당분간은 눈누인의 국가가 탄생하지 못했다. 브리튼 섬은 자유를 되찾은 브리튼인들의 열광의 도가니가 되었고, 그들은 브리튼인들을 다시 통합하기 위해 각자 왕국을 세웠다. 그 왕국중 남부의 것들은 20년 전쟁의 여파로 프랑스의 속국이 되어있었다. 어쨌든, 그들은 각자 브리튼의 주인이 되기 위해 격렬하게 싸웠지만, 싸울수록 경제난과 측근들의 배신이 겹치며 오히려 브리튼 섬은 갈수록 분열되었다.
=== 눈누인들의 부활, 섬의 분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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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5월 16일 (일) 14:24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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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슨눈누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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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눈누 공화국의 역사를 나열하는 문서이다.

고대

그린란드인, 대이동을 감행하다

고대, 눈누인들의 조상들은 원래 그린란드 이누이트와 바이킹의 혼혈인들이었다. 그들은 스스로를 '누나트'로 칭했으며, 이후 바이킹이 브리튼 섬에 진출함에 따라 눈누인들도 브리튼 섬으로 대이동을 감행한다. 이후 그들은 바이킹의 침략에도 살아있던 브리튼인의 국가 '웨섹스 왕국'을 멸망시키고 브리튼 섬 남부에 정착한다. 이후, 브리튼 섬 북부는 덴마크계 바이킹이 차지한다.

웨서눈누, 눈누인 최초의 왕국이 탄생하다


이후 눈누인들은 평야지대에 터를 잡고, 원주민이던 브리튼인과 융합하여 최초의 국가인 '웨서눈누 왕국' 을 수립한다(893년). 웨서눈누 왕국의 초대 왕은 나못 1세였는데, 그는 고대 국가의 기틀을 마련하고 국토를 안정시켰다. 그러나, 2대 왕인 누나트 여왕이 사촌인 그렉에게 암살당하고, 결국 그녀의 아들인 나못 2세는 그렉의 꼭두각시가 되고 만다. 마침내 그렉은 나못 2세를 사형시키고 왕이 되었으나, 직후 서슨눈누 왕국이 웨서눈누 왕국을 침공하였으며 이때 그렉은 측근인 로팅게르드 장군에게 암살당한다.

로팅게르드 왕조의 탄생과 오랜 분열의 시작


로팅게르드 장군은 내분을 수습하고 로팅게르드 왕조를 수립한다(926년). 그는 서슨눈누 왕국(초록색)과 평화협정을 맺은 후 내치에 힘썼으며, 또한 눈누인 최초의 성문법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아버지의 뒤를 이은 로팅게르드 2세는 에스트눈누 왕국(파랑색)과 전투를 벌여 대승을 일궈냈으며, 후에 눈누 제1 제국이 탄생하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한편, 서슨눈누 왕국은 영토는 제일 작았지만 문화를 많이 발전시켰다.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눈누 양식은 서슨눈누 왕국에서 처음 정의되었으며, 또한 서슨눈누 왕국의 뛰어난 제품들은 브리튼 섬 뿐만 아니라 프랑스, 아라비아 등 여러 나라로 팔려나갔다. 그러나 서슨눈누 왕국은 에스트눈누 왕국의 오랜 침략으로 쇠퇴하였고, 결국 로팅게르드 왕조에 의해 멸망한다.

에스트눈누 왕국은 영토가 가장 넓은 왕국으로써 웨일스 원정을 많이 나갔고, 서슨눈누 왕국과 결투해 서열 정리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브리튼섬 중부 원정의 실패후 적자가 발생했고, 결국 로팅게르드 왕조에 흡수당했다.

중세

로팅게르드 왕조, 눈누 제1 제국을 창시하다


로팅게르드 왕조의 제 7대 왕 스베니다르 1세는 에스트눈누, 서슨눈누 왕국을 정복하고 눈누 제1제국을 창시했다(1173). 스베니다르 1세는 로팅게르드 왕조의 수도인 다모테야스와 서슨눈누 왕국의 옛 수도였던 룬테네엄을 잇는 긴 도로를 만들었고, 또한 룬테네엄을 누나스텐으로 개칭해 새 수도로 삼았다. 이후 백대법전을 반포하여 국가의 법률을 정비하고, 프랑스와 긴밀한 관계를 가지며 유럽에 눈누인의 존재를 널리 알렸다. 또한, 스베니다르 2세는 로마로 떠나 교황으로부터 직접 세례를 받고 돌아오니 이때부터 진정한 눈누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이후, 악셀레스 1세는 새로운 제도인 '륑나도르'를 창시하였는데, 그것은 바로 척박한 곳에 농민들에게 돈을 주고 직접 경작할 수 있게 하는 제도, 또 그에 대한 댓가로 1년에 두번 세금을 내는 제도, 빈민들에게 수당을 주고 군인으로 훈련시키는 제도를 합친 것이었다. 이 륑나도르 덕분에 눈누 제1 제국은 번성했고, 이 자본을 바탕으로 후대의 왕들은 여러차례 섬 북부로 원정을 떠났다.

그러나, 이 원정 도중 재정난이 일어났고, 이때를 틈타 프랑스의 노르망디 공국이 왕위를 찬탈하기 위해 데넨누마 전쟁을 벌였으며(1254), 이를 막아내느라 국가 경제는 파탄이 나게 된다. 이에 엡실뢰나드 2세가 륑나도르를 정비하여 재정난을 극복하려 했지만, 데넨누마 전쟁의 전후처리/ 프랑스 왕위 계승의 문제가 합쳐져 20년 전쟁이 일어나는 바람에(1337), 결국 눈누 제1제국은 멸망한다.

암흑기에 브리튼계 소국들이 난립하다

눈누 제1제국이 멸망한 후, 당분간은 눈누인의 국가가 탄생하지 못했다. 브리튼 섬은 자유를 되찾은 브리튼인들의 열광의 도가니가 되었고, 그들은 브리튼인들을 다시 통합하기 위해 각자 왕국을 세웠다. 그 왕국중 남부의 것들은 20년 전쟁의 여파로 프랑스의 속국이 되어있었다. 어쨌든, 그들은 각자 브리튼의 주인이 되기 위해 격렬하게 싸웠지만, 싸울수록 경제난과 측근들의 배신이 겹치며 오히려 브리튼 섬은 갈수록 분열되었다.

눈누인들의 부활, 섬의 분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