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중 하나의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관리자. 문서를 고치려면 이메일 인증 절차가 필요합니다. 사용자 환경 설정에서 이메일 주소를 입력하고 이메일 주소 인증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어나더어스)의 진보정당}} '''대한민국의 진보정당'''은 현재 [[대한민국 (어나더어스)|대한민국]]에서 진보주의, 사회자유주의, 여성주의, 사회민주주의, 사회주의, 민주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 등을 표방하는 정당들을 일컫는다. == 역사 == {{대한제국·임정의 정당 계보}} {{AE한국 진보정당 계보 (정부 수립 ~ 김영후 정부)}} {{AE한국 진보정당 계보 (강규일·김유화 정부)}} {{AE한국 진보정당 계보 (황대진·노유천 정부)}} {{AE한국 진보정당 계보 (이명재 정부 ~ 권남국 정부)}} === 대한민국 수립과 진보정당 === 119년 수립과 함께 26년 동안 존재해왔던 [[대한민국 임시정부 (어나더어스)|임정]]이 사라지고 [[전국대한인공화국준비위원회]]가 주도하는 세력에 의해 대한민국이 수립된다. 한편 공준위를 이끌었던 극좌 성향의 [[민중해방결사단]]과 좌익 성향의 [[노동자정치해방협의회]]는 정치 단체에서 정당이 되었으며 임정의 거대 정당이었던 [[조선사회당]]은 분열과 함께 세력이 약화되었다. [[사회민주당 (대한민국 임시정부, 어나더어스)|사회민주당]] 역시 조선사회당에서 갈라져 나온 사회민주주의 계열 정당이었음에도 세력이 약해졌다. 149년 6월 민중해방결사단의 [[정주형]] 단장과 노정협의 [[임형수]] 위원장이 만나 새로운 혁명정당 건설을 목표로 하여 합당을 선언했고 이들은 [[조선민주노동당]]으로 이어지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은 151년 [[장태진-임형수 분쟁]]으로 와해되고 151년 8월 사민노동파 계열은 [[진보당 (151년 대한민국, 어나더어스)|진보당]]을 창당하였고, 153년 3월 임형수 역시 해방결사단파와 결별하여 [[노동당 (153년 대한민국, 어나더어스)|노동당]]을 창당한다. 그 결과 정주형은 이 당을 해산시켜 나머지 잔당들과 [[인민해방당 (대한민국, 어나더어스)|인민해방당]]을 발족시킨다. === 진보정당 탄압과 혼돈의 시기 === 159년 [[박경열 정부]]가 출범하자 진보정당들에 강제적인 조치를 취한다. 정치 활동 금지로 인해 위기를 맞은 조선사회당은 진보당, 노동당 계열의 인사들과 흡수하여 세력을 확장시켰다. 한편 인민해방당은 강제 해산되고 숙청당하는 일까지 생겨났다. 하지만 조선사회당마저 금지되자 대부분의 당원들은 정치적 자유를 요구하였으며 조선사회당이 몰락한 것이 진보정당의 큰 별이 지는 순간이었다. 일부는 [[사회당 (163년 대한민국, 어나더어스)|사회당]]과 [[사회민주당 (165년 대한민국, 어나더어스)|사회민주당]]을 조직하여 진보정당 활동을 이어나갔으나 이 역시 금지되었다. 제2공화국의 마지막 진보정당은 [[진보당 (173년 대한민국, 어나더어스)|진보당]]이었다. 진보당은 진보정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박경열 정부를 지지했던 친박경열 정당으로 불린다. 하지만 박경열이 사망하고 김영후가 정권을 이양받자 또 다시 정치 금지 조치를 당할까봐 자진 해산시킨다. === 진보정당의 부활과 쟁점정당의 등장 === 제3공화국 이후 한동안 진보정당이 없었으나 190년 7월 당시 무소속 참의원 의원이었던 [[노일규]]는 새로운 진보정당을 목표로 하기 위해 [[진보당 (190년 대한민국, 어나더어스)|진보당]]을 형성한다. 이 때부터 정치권에 [[민중혁명파|PR]]이라는 계파가 등장하는데 이 당시 PR은 반자유당-사민주의 성향이었다. 이후 진보당은 [[제17대 대한민국 민의원 선거|17대 민선]]을 위해 [[사회민주당 (대한민국, 어나더어스)|사회민주당]]으로 명칭을 바꾸었고 6석을 흭득하여 원내 입성에 성공한다. 하지만 사회민주당의 우경화로 인해 진보정당 이미지가 퇴색되었고, "한국 진보주의는 죽었다"라는 발언을 한 [[최태규]] 당대표가 혁신진보를 내세우며 탈당해 [[진보신당 (대한민국, 어나더어스)|진보신당]]을 결성한다. 일부는 [[민중당 (194년 대한민국, 어나더어스)|민중당]]으로 넘겨진다. 사회민주당은 이를 구실로 세력이 약화되었지만, 노일규는 개혁진보를 발표하여 사회민주당의 개혁파를 이끌어낸다. 이후 이 개혁파는 진보신당과 함께 [[국민민주당 (대한민국, 어나더어스)|국민민주당]]으로 합당했다. 국민민주당은 급진PR, 녹색계, 범사민당계, 진보신당계 등이 참여한 진보정당이었다. 하지만 국민민주당의 당 색채에 불만을 가진 세력들이 탈당하여 [[좌파지상당 (대한민국, 어나더어스)|좌파지상당]], [[녹색진보당 (대한민국, 어나더어스)]]으로 분열되었고 노일규 등의 세력들은 국민당을 탈당하여 [[사회당 (대한민국, 어나더어스)|사회당]]을 결성하게 된다. 이후 사회당은 [[제18대 대한민국 민의원 선거|18대 민선]]에서 무난하게 민의원에 입성하게 된다. 녹색진보당은 녹색당계 정당의 시작을 알린 최초의 생태주의 단일쟁점정당으로 불린다. 지지율 저조로 좌파지상당이 해산된 후, [[사회주의혁명회의]](SRC) 세력이 주축이 된 [[민주노동당 (대한민국, 어나더어스)|민주노동당]]이 탄생한다. 이후 민주노동당은 6개월 만에 PR이 당권을 잡고 [[노동당 (대한민국, 어나더어스)|노동당]]으로 바꿔 당권을 이어나간다. 하지만 노동자를 대변하는 SRC파와 온건한 노동/사회정책이 필요했던 PR파와 충돌하고 새로 들어온 [[트로츠키주의 사회주의 전선]]의 온건 세력이 개입하여 위기를 맞은 노동당은 1차 분열을 맞는다. 결국 노동당은 PR파의 [[대한정의당]]과 SRC파, 온건 TSF파의 노동당으로 나뉘게 된다. 한편 [[한국녹색당]]은 활동이 별로 없어진 탓에 명칭까지 바꿨지만 이는 오히려 녹색당의 기준을 바꿔버린 정당이 되어버렸다. 여성주의가 전 세계에 퍼진 시기였던 200년대 초반 여성주의자들은 여성도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며 [[여성당 (대한민국, 어나더어스)|여성당]]을 창당했지만 양성평등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놓고 대립하다가 LF 성향의 [[평등당 (대한민국, 어나더어스)|평등당]]과 RF 성향의 [[여성우선당 (대한민국, 어나더어스)|여성우선당]]으로 분열되어 버린다. === 노동당 분열, 그리고 친노의 가속화 === 205년 [[제21대 대한민국 민의원 선거|21대 민선]]에서 정의당이 34석을 차지하고, 노동당도 30석을 흭득하는 등 진보정당의 돌풍이 일어났다. 참의원도 노일규 세력이 주축이 된 사회당은 노일규 당대표가 사망하면서 위기를 맞았지만 오히려 9석이 올라 위기를 모면하게 된다. 한편 노동당은 PR 계열이 이탈하고 SRC와 온건 TSF파로 나뉘면서 2년 동안 존속하다가, 갑자기 온건 TSF 세력은 물론, SRC 계열의 [[김문성]]계, [[이회길]]계가 추가로 이탈해 [[민주좌파당 (대한민국, 어나더어스)|민주좌파당]]을 창당한다. 그 이유는 노동당의 당권파인 [[문지민]]계(온건 SRC)가 우경화를 강행해 독자노선을 택했고 결국 당권 패권주의라는 당 내 비판을 받으며 1차 탈당이 벌어진 것. 민좌당은 우경화를 비판하고 노동자들의 자주적인 권리를 위한 투쟁 등 좌파 노동정당의 정체성을 이어나갔다. 207년에는 당명을 [[좌파당 (대한민국, 어나더어스)|좌파당]]으로 바꾸고 참의원에서 5석을 흭득하여 입성에 성공한다. 한편 [[민주당 (191년 대한민국, 어나더어스)|민주당]]의 일부 [[친노유천]] 좌파가 이탈하여 [[시민민주당 (대한민국, 어나더어스)|시민민주당]]을 창당했을 때, 대한정의당에서도 일부 친노 세력이 들어오게 된다. 이들은 [[시민계]]로 진보성향의 정치비평가인 [[유진수]]와 열린진보당의 원내대표인 [[조승훈]]이 이끄는 계파였다. 이후 시민계와 시민민주당의 기세가 강해지게 되자 정의당 내에서 당권파와 시민계와의 경쟁이 벌어지게 되었다. 208년에는 [[미래당 (대한민국, 어나더어스)|미래당]], [[청년당 (대한민국, 어나더어스)|청년당]], [[소수자권리당]]이 합당하여 [[미래전진당]]을 출범한다. 한편 [[여성당 (대한민국, 어나더어스)|여성당]]에서 갈라져 나온 평등당은 그대로 소수자권리당에 흡수되고 여성우선당은 정당등록취소를 받아 RF계열 여성주의 정당 계보는 끊어지게 된다. [[제22대 대한민국 민의원 선거|22대 민선]] 이후 정의당이 기존 의석보다 8석 늘어난 반면 노동당은 분열의 여파로 19석으로 줄어들었다. 사회당은 15석으로 그대로지만 환경당이 4석, 미래전진당이 6석을 가져가 처음으로 민의원에 입성한다. 그러나 노동당의 일부 의원들이 좌파당으로 당적을 옮기면서 노동당은 TSF 계열을 모두 잃었다. 그나마 온건 SRC 계열이 남아있었지만 이 마저도 좌파당으로 옮겨져 노동당은 3석으로 추락하고, 210년 12월 좌파당에 흡수된다. === 진보정당의 새 국면 === 211년 [[대한민국 제23대 민의원|23대 민의원]]을 계기로 진보정당은 새 국면을 맞게 된다. 일단 환경당은 [[녹색평화모임]]과 [[녹색운동]]의 갈등으로 인해 녹색평화모임 대다수는 [[평화당 (대한민국, 어나더어스)|평화당]]과 함께 [[평화전진당]]을 창당하고 녹색운동은 [[녹색당 (대한민국, 어나더어스)|녹색당]]이라는 정당을 창당해 각자의 길로 틀어졌다. 214년에는 대한정의당의 일부 당원과 사회당의 일부 당원들이 탈당하여 [[사회민주당 (214년 대한민국, 어나더어스)|사회민주당]]을 결성하였다. [[분류:대한민국 (어나더어스)의 정당]] [[분류:대한민국 (어나더어스)]] [[분류:어나더어스/미분류]]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AE한국 진보정당 계보 (강규일·김유화 정부) (원본 보기) 틀:AE한국 진보정당 계보 (이명재 정부 ~ 권남국 정부) (원본 보기) 틀:AE한국 진보정당 계보 (정부 수립 ~ 김영후 정부) (원본 보기) 틀:AE한국 진보정당 계보 (황대진·노유천 정부) (원본 보기) 틀:Color (원본 보기) 틀:Large (원본 보기) 틀:Resize (원본 보기) 틀:대한민국 (어나더어스)의 진보정당 (원본 보기) 틀:대한제국·임정의 정당 계보 (원본 보기) 틀:둥근상자 (원본 보기) 대한민국 (어나더어스)의 진보정당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