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제국(German Empire, 독일어:Deutsches Kaiserreich)은 보통 독일(Germany)로 불리는 중앙 유럽에 위치한 국가이다. 제국은 호엔촐레른 왕조가 통치하는 27개 구성국으로 이루어진 군주국이기도 하다. 독일은 열강 중 하나로 여겨지며, 그 영향력은 전 세계에 걸쳐 발휘되고 있다. 1871년 1월 18일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의 승리를 통해 베르사유 궁전에서 독일 제국이 선포되었다. 대전쟁의 승리자로 독일은 아프리카, 아시아, 태평양을 거느린 거대한 식민 제국을 유지하고 있다. 또한 독일은 몇몇 동유럽 국가들과 중유럽, 북유럽 국가들이 참여하는 군사 동맹인 라이히스팍트와 경제 동맹인 미텔오이로파의 지도국이기도 하다.
"철의 재상"이라 불리는 프로이센의 총리 오토 폰 비스마르크의 주도 하에 독일은 마침내 통일되었다. 독일 제국은 1871년 1월 18일 루이 14세가 지은 베르사유 궁전에서 선포되었다. 빌헬름 1세는 1888년 3월 9일 사망하였고, 그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프리드리히 3세도 불치병으로 즉위 99일 만에 사망했다. 이에 프리드리히의 아들인 빌헬름 2세가 왕위에 올랐다. 비스마르크의 외교 정책이 너무 무르다고 생각한 카이저는 1890년 철의 재상을 해임하고, 더욱 카이저의 명령에 복종하는 사람으로 대체했다.
해가 지지 않는 제국
빌헬름 2세는 식민지 확장에 매진해 알프레드 폰 티르피츠 제독의 조언에 따라 영국과 건함 경쟁을 벌이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국제 무대에서 독일의 고립이 심화되었다. 1911년 빌헬름 2세가 모로코를 요구하면서 유럽은 아가디르 위기와 함께 처음으로 전면전에 가까워졌다. 무책임한 카이저라는 별명을 가진 빌헬름 2세의 명성에 또 하나의 자랑거리가 추가된 순간이었다. 물론 이 위기가 전쟁으로 번지지는 않았지만, 전쟁의 발발을 겨우 몇 년 동안 지연 시켰을 뿐이다. 그러나 역사가 곧 보여주었듯이, 빌헬름 2세의 도박은 성공했고 그는 그가 생각한 모든 목표보다 더 많은 것을 얻어낼 수 있었다. 심지어 그를 향해 가장 강력한 비난을 쏟아내던 비평가들마저도 카이저의 결단력에 많은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후계자인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이 1914년 6월 28일 사라예보에서 세르비아 혁명가에 의해 암살당했다. 한 달 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세르비아에 대한 보복으로 전쟁을 선포했고, 독일은 오스트리아 편에 서서 전쟁에 참전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독일은 프랑스, 영국, 러시아와 전쟁에 돌입했다. 신속하게 벨기에와 룩셈부르크로 진격한 독일군은 서쪽으로는 마른에서, 동쪽으로는 러시아령 폴란드에서 전선이 나아가지 못해, 지독한 전쟁의 정체 상태를 만들었다.
1917년 러시아는 혁명으로 붕괴했고, 수천 명의 병사들이 동부 전선에서 서부 및 남부 전선으로 이동했다. 국내 전선의 전망은 암울했고, 기아, 박탈감, 전쟁에 대한 피로감과 분노는 1918년 9월 사회주의 봉기로 이어졌고 빠르게 확산되었다. 결국 군부대를 투입한 진압이 필요하게 되자, 1918년 11월 국가보안법이 제국의회(Reichstag)에서 통과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