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제국 (새로운 세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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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 내에서 부유하기로 소문난 지역이며 [[아테나 학당]]과 같은 교육기관과 학문이 발달해 있어 '제국의 학교'라는 이명으로 불리운다.. 원래 이곳엔 [[알렉산드로스 대왕 (새로운 세계)]] 사후 마케도니아 왕국이 있었으나 피드나 전투 이후 로마가 이 지역을 복속시켰다. 이 지역의 주민들은 본국에 준하는 대우를 받는다.  
제국 내에서 부유하기로 소문난 지역이며 [[아테나 학당]]과 같은 교육기관과 학문이 발달해 있어 '제국의 학교'라는 이명으로 불리운다.. 원래 이곳엔 [[알렉산드로스 대왕 (새로운 세계)]] 사후 마케도니아 왕국이 있었으나 피드나 전투 이후 로마가 이 지역을 복속시켰다. 이 지역의 주민들은 본국에 준하는 대우를 받는다.  
*누미디아(Numidia)
*누미디아(Numidia)
과거 [[카르타고 (새로운 세계) | 카르타고]]가 지배하던 땅이었으나 포에니 전쟁 이후 로마의 속주가 되었다. 제국 전체에서도 손 꼽히는 부유한 지역으로, 로마인들에게 푸닉 지방으로 불렸다.속주 총독과 로마 속주 정부가 위치한 주도는 카르타고인데 이 도시는 3차 포에니 전쟁 후 완전히 파괴되었다가, 아우구스투스 시대때 재건된 신도시다. 즉, 로마인들이 재건한 신(新) 카르타고로 과거 해상제국 [[카르타고 (새로운 세계) | 카르타고]] 도시 위에 세워진 도시다. 이곳은 고대인들이 세계의 끝으로 여기던 곳이고 항구와 선박기술이 발달하여 '제국의 관문'로 불리운다.
과거 [[카르타고 (새로운 세계) | 카르타고]]가 지배하던 땅이었으나 포에니 전쟁 이후 로마의 속주가 되었다. 제국 전체에서도 손 꼽히는 부유한 지역으로, 로마인들에게 푸닉 지방으로 불렸다.속주 총독과 로마 속주 정부가 위치한 주도는 카르타고인데 이 도시는 3차 포에니 전쟁 후 완전히 파괴되었다가, 아우구스투스 시대때 재건된 신도시다. 즉, 로마인들이 재건한 신(新) 카르타고로 과거 해상제국 [[카르타고 (새로운 세계) | 카르타고]] 도시 위에 세워진 도시다. 이곳은 고대인들이 세계의 끝으로 여기던 곳이고 항구와 선박기술이 발달하여 '제국의 관문'로 불리운다.
 
* 트리폴라타니아(Tripolitania)
* 트리폴라타니아(Tripolitania)
주도는 렙티스 마그나(현 리비아 콤스). 아프리카 속주 내지 푸닉 지방 태생으로 유명한 셉티미우스 세베루스가 황제가 되기 전의 출신지로, 고향인 동네다..
주도는 렙티스 마그나(현 리비아 콤스). 아프리카 속주 내지 푸닉 지방 태생으로 유명한 셉티미우스 세베루스가 황제가 되기 전의 출신지로, 고향인 동네다..

2022년 8월 2일 (화) 13:05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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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제국
Senatus Populusque Romanus
국기 국장
Pax intrantibus, salus exeuntibus

들어오는 자에게 평화를, 나가는 자에게 안녕을

아우구스투스 1세의 제정 선언 이전
이후
로마 공화국
현재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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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
국가 로마의 빛
국화
데이지
국수
그리핀
역사
[ 펼치기 · 접기 ]
  • 기원전 19년 아우구스투스 1세로 즉위, 공화정 붕괴
  • 68년 네 황제의 해
  • 96년~180년 오햔제의 시대
  • 235년~284년 군인황제시대
  • 313년 2월 3일 밀라노 칙령
  • 380년 로마 가톨릭 국교화
지리
수도
로마
최대 도시
로마
접경국
페르시아, 루스 ,지옥의 나라, 신성아프리카공화국 , 사과공화국 스칸디나비아 제국
인문환경
총 인구
1,450,098,044명
민족
라틴인, 그리스인 , 유대인, 훈족, 슬라브인, 앵글로 색슨 갈리아인 , 페르시아인 등등
공용어
라틴어
지역어
그리스어 , 아랍어 , 산스크리트어 , 진어 등등
공용문자
라틴 문자
국교
로마 가톨릭
종교 분포
고대 그리스 로마 다신교 , 불교, 고대 켈트 신앙

고대 북유럽 신앙, 탱그리, 태극신앙 로마 가톨릭

군대
로마군
정치
정치 체제
입헌군주제
황제(임페라토르)
(국가 원수)
아우구스투스 2세
집정관
(행정 수반)
클레오파트라 카우루스 , 나까무라 준
입법부
원로원과 민회
경제
경제 체제
자본주의적 시장경제
통화


개요

새로운 세계(The New World) 세계관에 등장하는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에 걸쳐있는 입헌군주제를 채택한 제국이다..

페르시아, 루스 ,지옥의 나라, 신성아프리카공화국 , 사과공화국 과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유라시아 대륙에서는 진나라와 동등하거나 그 이상으로 강력한 국가이다.

역사

로마 제국(새로운 세계)/역사 참고

자연환경

지리

제국의 면적은 확실히 측정 된 바가 없다. 제국 정부에서 수 많은 통계청 직원들을 보냈으나 살아 돌아온 자가 없었다

기후

인구가 워낙 방대해서 기후가 다양하다. 대부분의 지역이 온대 기후에 속하지만 북아프리카는 건조 기후를 보이고 있다.

인문환경

인구

로마의 인민으로 인정되는 인구는 1,450,098,044명이며 미등록 인구까지 포함하면 로마 황립 통계 학회에 따르면 약16억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민족

로마 제국내에 사는 모든 사람은 라틴인으로 분류하여 라틴 시민권을 준다. 본국에 사는 이들에게는 특별히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로마 시민권을 부여한다..

언어

공용어는 라틴어이다. 지방의 언어로 게르만어 아람어 갈리아어등이 쓰이고 있다.

종교

로마 가톨릭을 국교로 삼고 있다. 종교세를 낼 경우 타종교를 허용하고 있으며 로마 가톨릭이 60% 고대 로마 다신교가 10% 유대교가 5% 탱그리 2% 기타 23%가 분포해 있다.

행정 구역

로마의 본국과 속주

] 로마는 본국인 로마니아와 10개의 속주로 나뉘며 속주들은 원로원에서 추천한 인물 가운데 임페라토르가 선정하여 총독으로 파견하며 일부 자치권을 행사할 수 있다.

본국

로마 제국의 수도인 로마가 위치한 구역 로마 황제가 직접 다스리는 구역이다. 로마 제국에서 가장 부유하고 번화한 곳이다. 이곳의 거주민들은 로마 시민권을 부여 받으며 민회의 의원이 될 수 있다. 주요 사업은 관광업이며 대부분의 기독교 행사는 이곳의 도시에서 이루어진다. 로마니아(Romaina)라는 이름을 부여받았다.

속주
  • 갈리아(Gallia)

갈리아는 공화정 시절 기원전 58년 ~ 기원전 51년에 걸쳐 일어난 갈리아 전쟁에서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군대가 승리를 쟁취한 후 정복한 구역이다. 제국에서 포도주와 유제품이 가장 발달된 곳으로 "제국의 주조장"이라는 별명이 있다. 카이사르에게 정복될 당시 백만 명 정도가 노예로 팔려온 역사도 있고, 갈리아가 편입 당시부터 가난해 이 지역 출신들이 이탈리아로 상경해도 본국 안에서 하층민이 되거나, 국경을 오고가는 상인 등이 많았던 역사가 있었다. 더욱이 로마에서 들리는 이야기는 게르만족들이 분탕치고, 마적과 유랑도적, 탈영병들이 깡패짓을 한다는 소식이 많아 상경한 하층민 이미지가 많았던 속주다. 그러나 이는 수도 로마 출신 엘리트들이 볼 때 느끼는 갈리아 지방 이미지였을 뿐, 갈리아 전체의 이미지까진 아니었다. 왜냐하면 워낙 넓은 지역인 까닭에 남북간의 경제력 편차도 크고, 마르세유를 주도로 한 나르보넨시스 쪽은 본국 이탈리아 북부보다 확실히 잘 사는 동네였기 때문이다. 더욱이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와 플라비우스 왕조 아래에서 지역 유지들이 원로원 의석을 받았을 정도로 서방 속주 중 나름 잘 나가는 주류 속주이었다.

  • 게르마니아(Germania)

447년 이전 까지는 게르만족의 거센 저항으로 "주변 지역(ambiente)"으로 분류되어 간접 통치 하였으나. 447년 아틸라 1세게르만 정복 전쟁으로 복속시켰다.이곳은 제국의 주류 이동수단인 자동차가 유명하며 공업과 밀농사가 발달되어 있어 "제국의 용광로"라는 이명으로 불리운다. 갈리아 주 다음으로 부유한 동네이지만 북쪽 지방에 경우는 야만족의 약탈이 많다는 보고가 올라온다.

  • 브리타니아(Britania)

서방 속주 중 갈리아, 히스파니아, , 게르마니아보다 변방으로 취급받은 동네다. 그래서 5세기 초까지 파견된 총독과 군단장, 관리 모두가 선호하지 않은 속주로 악명을 떨쳤고, 같은 서방 속주민들 사이에서도 변방 중 변방으로 취급받았다. 왜냐하면 날씨는 게르마니아보다 나쁘고, 북쪽에선 칼레도니아인들과 사소한 분쟁이 툭하면 벌어져 골머리 썩힐 사건도 많은 데다 주민들 수준은 게르마니아 지방 로마 주민들보다 상당히 떨어지고 이해하지 못할 문화적 관습이 많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황제가 파견한 브리타니아 속주 총독들은 아그리콜라처럼 현지 사정을 빠삭하게 아는 야전사령관이나, 여러 환경 속에서 그 능력을 검증받은 베테랑 장군, 혹은 강도가 센 훈련과 엄격함으로 악명을 떨친 인사들이 많이 배속됐다.가난한 속주로는 오리엔트 속주와 1,2위를 다툰다. 주요 사업은 어업으로 '제국의 양식장'이라는 이명으로 불리운다. 스칸디나비아 제국하드리아누스 방벽을 사이에 하고 국경을 맞대고 있다. 기독교의 교세가 가장 약한 지역이다.

  • 히스파니아(Hispania)

2차 포에니 전쟁 이후 카르타고로부터 빼앗은 영토들로 구성되어 있다. 예로부터 산악지형이라 게릴라전이 자주 일어났으며 한니발의 동생이 이곳을 근거지로 삼기도 하였고 세르토리우스의 반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하지만 제국 이후에는 갈리아와 함께 로마화의 우등생으로 불렸으며, 네로 시대부터 시작된 본국 이탈리아 출신 로마 시민권자들의 속주 군대 지원 기피현상을 해결하려는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의 라틴 시민권 확장 및 속주 태생 로마 시민권자 정규군 입대 허가를 갈리아와 함께 가장 빨리 부여받은 동네다. 공화정 시대때부터 이탈리아 출신 로마군 퇴역병과 그 가족들이 정착도시를 건설하고 이주한 까닭에 이탈리아 출신 조상을 둔 로마 시민권자들이 많았다. 따라서 1세기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 시대에 이미 원로원 의원들을 여럿 배출했고, 이런 배경 속에서 1세기 말인 서기 98년 최초의 속주 출신 황제 트라야누스를 배출하고 117년에는 하드리아누스 황제까지 배출했다. 이 외에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친가 안니우스 베루스 가문도 히스파니아에서 기원한 대표적인 세습 원로원 귀족 가문이다. 이곳의 소는 미노타우루스라고 불리울 정도로 힘이 좋기로 소문나 있어 제국 어디에서나 농사할때 꼭 필요한 물건이다. 이곳은 목축업또한 발달하여 '제국의 목장'이라는 이명으로 불리운다.

  • 사르마티아(Sarmatia)

과거는 대달마티아(Dalmatia Magna)라고 불리었으나 450년 틸라 1세에 의해 이곳에 살면서 유목 생활을 하던 사르마티안(아마존이라고도 불리운다)에 정복당하면서 로마의 속주로 편입이 되었다. 인프라가 발전 되지 않아 가난하며 아직도 유목 생활을 하며 약탈을 일삼는 야만족이 많이 있다. 그래서 인지 주로 로마군의 실전 훈련이 이루어지는 곳으로 '제국의 훈련장'이라고 불리운다.

  • 소아시아(Asia Minor)

그리시아와 함께 제국 내 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으로 꼽히고 있는 속주이자 이곳 지역의 말인 페가수스가 굉장히 유명하며 페가수스는 로마 기병의 주요한 말로써 활약한다. 이들 지방은 대부분 기원전 1세기 초반 폼페이우스에 의해 정복되거나 종속 관계를 맺었고, 제정 시대에 이르러서는 로마 제국 여러 지방 중 처음으로 살아있는 황제가 이 지역 주민들의 요구로 최초로 개인우상화되면서(기원전 29년), 황제우상화 정책이 시작됐다. 또한 4대 황제 클라우디우스 1세 시절, 이 지역 태생의 그리스혈통 주민들이 로마시민권을 많이 하사받아, 성씨로 클라우디우스를 사용한 이들이 꽤 많이 보이는 것도 이 지역의 특징 중 하나다. 이런 이유로 서기 1세기부터 4세기까지 등장한 집정관이나 총독 명단 중 노멘(성씨)로 클라우디우스를 사용하는 이들을 살펴보면, 열 중 여덞, 아홉명은 거의 대부분 소아시아 태생이나 그리스인들의 후손이다. 이곳은 축제 문화가 매우 발달하며 '제국의 축제장'이라는 이명으로 불리운다.

  • 오리엔트(Orient)

오리엔트 지역은 비옥한 토지로 농업이 발달하였고 최초의 문명인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상지 이기에 문화와 경제의 중심지 였으나 356년 대재난으로 땅이 황폐해지며 대다수의 주민들이 소아시아와 서방의 속주로 대거 이사하여 사람이 별로 살지 않는다.그러나 성지 예루살렘이 위치한 곳으로 예루살렘은 이 지역에 남아 있는 번성한 대도시이다. 성지의 존재로 이곳은 '제국의 순례길'이라는 이명으로 불리운다.

  • 아이깁투스(Aegyptus)

이지역은 제국 내 밀생산의 90%이상을 도맡아 할 정도로 땅이 비옥하여 '제국의 농장'이라는 이명으로 불리운다. 또한 이곳은 대피라미드와 같은 고대 유물과 유적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아이깁투스는 현재의 이집트 일대를 그리스인들이 부르는 명칭이었으며 원래 이집트라는 말 자체가 아이깁투스를 영어식으로 바꾼 것이다. 당시의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다른 헬레니즘계 알렉산드로스 후계국보다 오래 독립국으로서 버티는데 성공한다. 이는 이집트 특유의 폐쇄적 위치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유지해 온 줄타기 외교 정책을 유지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클레오파트라 7세는 자기 동생과 권력을 나눠갖기 싫어 폼페이우스, 카이사르, 안토니우스를 차례로 끌어들이는데 이는 결과적으로 패착이 되었고 균형외교를 무너뜨렸다.그후 대세가 아우구스투스 1세에게 기울고 결국 아우구스투스는 안토니우스를 패배시킨 후 이 지역을 복속시켰다.

  • 그리시아(Graecia)

제국 내에서 부유하기로 소문난 지역이며 아테나 학당과 같은 교육기관과 학문이 발달해 있어 '제국의 학교'라는 이명으로 불리운다.. 원래 이곳엔 알렉산드로스 대왕 (새로운 세계) 사후 마케도니아 왕국이 있었으나 피드나 전투 이후 로마가 이 지역을 복속시켰다. 이 지역의 주민들은 본국에 준하는 대우를 받는다.

  • 누미디아(Numidia)

과거 카르타고가 지배하던 땅이었으나 포에니 전쟁 이후 로마의 속주가 되었다. 제국 전체에서도 손 꼽히는 부유한 지역으로, 로마인들에게 푸닉 지방으로 불렸다.속주 총독과 로마 속주 정부가 위치한 주도는 카르타고인데 이 도시는 3차 포에니 전쟁 후 완전히 파괴되었다가, 아우구스투스 시대때 재건된 신도시다. 즉, 로마인들이 재건한 신(新) 카르타고로 과거 해상제국 카르타고 도시 위에 세워진 도시다. 이곳은 고대인들이 세계의 끝으로 여기던 곳이고 항구와 선박기술이 발달하여 '제국의 관문'로 불리운다.

  • 트리폴라타니아(Tripolitania)

주도는 렙티스 마그나(현 리비아 콤스). 아프리카 속주 내지 푸닉 지방 태생으로 유명한 셉티미우스 세베루스가 황제가 되기 전의 출신지로, 고향인 동네다.. 속주의 주요 수출 품목은 올리브, 대추야자, 곡물이었고 대표산업은 농업과 노예 무역. 이 속주를 거쳐 이탈리아를 비롯하여 서방, 동방 속주들로 향하는 품목들로는 금과 향신료, 포도주, 북아프리카산 말, 약재가 유명했는데, 이중 아프리카 내륙에서 공급된 노예와 금은 가라만테스인들이 렙티스 마그나를 비롯한 해안 항구로 가지고 왔다고 한다. 편입 당시부터 농업 생산력이 대단한데다, 상업망도 카르타고인들이 만들어 놓은 까닭에, 일찍부터 페니키아인, 그리스인, 유대인들이 이주해 있었고, 로마 편입 이후에는 이탈리아 혈통의 로마 이주민들까지 넘어왔다. 그래서 그리스-로마 문화가 페니키아 문화에 접목된데다, 주민들의 생활 수준도 높고, 서기 2세기까진 주변 침공도 없는 까닭에 평화로우면서도 국제성도 있고 묘한 매력이 있는 지방으로 이름 높았다고 한다. 다만, 푸닉 지방답게 옆동네의 누미디아 속주처럼 페니키아 억양이 남아 있고, 대농장주나 대상들이 많았다. 이곳은 여러 동물과 식물이 서식하여 그 자연경관이 훌륭하 '제국의 공원'이라는 이명으로 불리운다. 부유하기로는 편입 때부터 유명했지만, 바로 옆의 아프리카 속주와 달리 "렙티스의 흥망성쇠 = 트리폴리타니아의 흥망성쇠"라고 할 정도로 렙티스 마그나가 곧 이 속주의 모든 것이었던 동네다. 따라서 해당 속주의 주도 렙티스가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아래에서 대대적인 후원을 받아 부두와 항만이 새롭게 건설되고 온갖 특권을 받았으며, 황제와 황족들의 기부로 건설된 대규모 공공건축물들이 세워질 당시에는 누미디아 속주와 푸닉 지방의 맹주를 놓고 다퉜다고 한다. 허나 세베루스 왕조가 단절되고, 365년 렙티스 마그나가 쓰나미로 회복불능의 타격을 받으면서 쇠락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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