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제국 (새로운 세계)

로마를 위하여! (토론 | 기여)님의 2022년 7월 18일 (월) 21:18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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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어: SENATVS•POPVLVSQVE•ROMANVS
로마의 원로원과 인민들
국기
표어 Laxatio, prosperitas, reformatio
확장, 번영, 개혁

서유럽과 중부 유럽, 동유럽 일부, 북아프리카, 아나톨리아에 걸친 대제국
수도 로마
최대 도시 로마
정치
공용어 라틴어
국민어 라틴어
지역어 그리스어 히브리어
정치 체제 연방 국가 황제국 식민제국 입헌군주제
임페라토르 율리우스 7세
원로원장
호민관
제사장
산타누스 카우리스
폴리피우스, 사나투스
막시밀리언 7세
역사
건국 기원전 753년
 • 왕국 멸망, 공화 정부 수립 기원전 509년
 • 카이사르의 대전쟁 기원전 49년 1월 12일 ~ 기원전 45년 3월 17일
 • 아우구스투스 1세의 제정 선포 기원전 27년
 • 기독교 국교화 383년
 • 헌법 제정 1380년 4월 6일
인구
1399년년 조사 1,450,098,044명
인구 밀도 235명/㎢
경제
통화


개요

새로운 세계(The New World) 세계관에 등장하는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에 걸쳐있는 입헌군주제를 채택한 제국이다..

페르시아, 루스 ,지옥의 나라, 신성아프리카공화국 , 사과공화국 과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유라시아 대륙에서는 진나라와 동등하거나 그 이상으로 강력한 국가이다.

역사

로마 제국(새로운 세계)/역사 참고

자연환경

지리

제국의 면적은 확실히 측정 된 바가 없다. 제국 정부에서 수 많은 통계청 직원들을 보냈으나 살아 돌아온 자가 없었다

기후

인구가 워낙 방대해서 기후가 다양하다. 대부분의 지역이 온대 기후에 속하지만 북아프리카는 건조 기후를 보이고 있다.

인문환경

인구

로마의 인민으로 인정되는 인구는 1,450,098,044명이며 미등록 인구까지 포함하면 로마 황립 통계 학회에 따르면 약16억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민족

로마 제국내에 사는 모든 사람은 라틴인으로 분류하여 라틴 시민권을 준다. 본국에 사는 이들에게는 특별히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로마 시민권을 부여한다..

언어

공용어는 라틴어이다. 지방의 언어로 게르만어 아람어 갈리아어등이 쓰이고 있다.

종교

로마 가톨릭을 국교로 삼고 있다. 종교세를 낼 경우 타종교를 허용하고 있으며 로마 가톨릭이 60% 고대 로마 다신교가 10% 유대교가 5% 탱그리 2% 기타 23%가 분포해 있다.

행정 구역

파일:로마의 행정구역(새로운 세계).jpg
로마의 본국과 속주

로마는 본국인 로마니아와 10개의 속주로 나뉘며 속주들은 중앙에서 총독을 파견하며 일부 자치권을 행사할 수 있다.

본국

로마 제국의 수도인 로마가 위치한 구역 로마 황제가 직접 다스리는 구역이다. 로마 제국에서 가장 부유하고 번화한 곳이다.

속주
  • 갈리아(Gallia)

갈리아는 공화정 시절 기원전 58년 ~ 기원전 51년에 걸쳐 일어난 갈리아 전쟁에서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군대가 승리를 쟁취한 후 정복한 구역이다. 제국에서 포도주와 유제품이 가장 발달된 곳으로 "제국의 주조장"이라는 별명이 있다. 카이사르에게 정복될 당시 백만 명 정도가 노예로 팔려온 역사도 있고, 갈리아가 편입 당시부터 가난해 이 지역 출신들이 이탈리아로 상경해도 본국 안에서 하층민이 되거나, 국경을 오고가는 상인 등이 많았던 역사가 있었다. 더욱이 로마에서 들리는 이야기는 게르만족들이 분탕치고, 마적과 유랑도적, 탈영병들이 깡패짓을 한다는 소식이 많아 상경한 하층민 이미지가 많았던 속주다. 그러나 이는 수도 로마 출신 엘리트들이 볼 때 느끼는 갈리아 지방 이미지였을 뿐, 갈리아 전체의 이미지까진 아니었다. 왜냐하면 워낙 넓은 지역인 까닭에 남북간의 경제력 편차도 크고, 마르세유를 주도로 한 나르보넨시스 쪽은 본국 이탈리아 북부보다 확실히 잘 사는 동네였기 때문이다. 더욱이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와 플라비우스 왕조 아래에서 지역 유지들이 원로원 의석을 받았을 정도로 서방 속주 중 나름 잘 나가는 주류 속주이었다.

  • 게르마니아(Germania)

447년 이전 까지는 게르만족의 거센 저항으로 "주변 지역(ambiente)"으로 분류되어 간접 통치 하였으나. 447년 아틸라 1세게르만 정복 전쟁으로 복속시켰다.이곳은 제국의 주류 이동수단인 자동차가 유명하며 공업과 밀농사가 발달되어 있어 "제국의 용광로"라는 이명으로 불리운다. 갈리아 주 다음으로 부유한 동네이지만 북쪽 지방에 경우는 야만족의 약탈이 많다는 보고가 올라온다.

교통과 통신

사회

정치

경제

외교

문화

같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