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아메리카 커먼웰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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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 탄핵 소추(탄핵 심판은 연방원에서 함)
* 대통령 탄핵 소추(탄핵 심판은 연방원에서 함)


=== 연방원 ===
==== 연방원 ====
상원에 해당하는 연방원은 커먼웰스의 각 주를 대표하며, 선출 단위는 크기를 불문하고 각 주마다 3명의 인원을 선출한다. 커먼웰스 초창기에는 2명의 연방의원을 선출하였으나, 이로 인하여 상원의원 개개인의 정치적 무게감이 비대해지고 권력이 집중된다는 문제가 제기되어 1970년의 헌법 개정때 '차후 선거부터는 3명의 연방의원을 선출한다'고 개헌되었다.  
상원에 해당하는 연방원은 커먼웰스의 각 주를 대표하며, 선출 단위는 크기를 불문하고 각 주마다 3명의 인원을 선출한다. 커먼웰스 초창기에는 2명의 연방의원을 선출하였으나, 이로 인하여 상원의원 개개인의 정치적 무게감이 비대해지고 권력이 집중된다는 문제가 제기되어 1970년의 헌법 개정때 '차후 선거부터는 3명의 연방의원을 선출한다'고 개헌되었다.  



2019년 7월 6일 (토) 13:24 판


북아메리카 커먼웰스의 영토(지도의 청색 영역)



북아메리카 커먼웰스
North American Commonwealth
북아메리카 커먼웰스 국기[1] 북아메리카 커먼웰스 대통령기
통칭 '북아메리카, 북미, 커먼웰스
정치체제 대통령제 민주 공화국, 연방제
의회 체제 양원제: 대의원(하원) / 연방원(상원)
경제 체제 시장경제, (부분적) 개입/복지국가주의
설립 연도[2] 1775
국가 ISO 코드 NAC
소속 국제기구 자유주의 국제 연맹League of Liberalist Nations
수도 연방특구 콜럼비아 Commonwealth District Columbia
국가 오, 아름다운 커먼웰스!
세계관의 국가 상징색 #192EED
화폐 단위 크레딧Credit/NCC
현재 인구수 약 2억 6,790만 명
북아메리카 커먼웰스 정부 인사 목록
현직 국가원수 커먼웰스 대통령 리디아 윤Lydia Yun
현직 부통령 커먼웰스 부통령 세바스천 트루도Sebastian Trudeau
현직 하원의장 대의원 제1대변인 파티마 우마르Fatima Umar
대법원장 케이트 긴즈버그Kate Ginsburg
국무부 장관 클린턴 프랭클린Clinton Franklin
재무부 장관 조르지오 크로체Giorgio Croce
국방부 장관 길버트 매케인Gilbert McCain
법무부 장관 유페미아 롤스Euphemia Rawls
내무부 장관 압바스 이브라힘Abbas Ibrahim
농무부 장관 허마이오니 앤드루스Hermione Andrews
상무부 장관 셸든 폴크Sheldon Foulke
노동부 장관 에드워드 브라우더Edward Browder
보건-복지부 장관 앙헬 마리아 실바Angel Maria Silva
교통부 장관 유미 카스가노Yumi Kasugano
에너지부 장관 앤드루 정훈 김Andrew Junghun Kim
교육부 장관 브루스 커닝엄Bruce Cunningham

개요

북아메리카 커먼웰스North American Commonwealth가상지구 BF 세계관의 북아메리카 지역 상당수를 점유하는 대국이다. 현실 세계의 미국이 강대국이듯 북아메리카 커먼웰스 또한 가상지구 BF 세계관의 강대국이다. 북아메리카 커먼웰스의 모티브는 '미국 남북전쟁에서, 갈라진 미국이 다시 통합되지 않고 그 분열이 지속되었다면?'이라는 대체역사 세계관에서 출발했지만, '현실 미국의 영토를 남북으로 가름'은 대체적으로 유지하지만 그 외의 발상은 새롭게 썼다.

역사

식민지 개척기

북아메리카 커먼웰스라는 나라의 시작은, 기본적으로 유럽권에서의 신대륙 개척에서 시작했다. 비록 후일 유럽인들에 의해 '아메리카'라고 불리게 될 대륙에는 아주 오래 전부터 토착 아메리카인들이 살고 있었지만, 이들은 유럽인들의 개척 과정에서 대부분 밀려나거나, 피로 얼룩진 길이라는 처참한 결말을 맞게 되었고[3] 그와 같은 잔인한 역사의 결과로 아메리카 대륙의 주역은 유럽의 이민자들이 주축이 되었다.

이들은 토착 아메리카인들의 불운함은 뒤로 해두고 무주공산의 식민지를 '개척' 하면서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가꾸어 나갔고, 개척자들은 자신들이 이 땅을 개척하여 도시를 건설하고 농토를 일구었기에 자신들이 이 땅의 주인이라고 인식하였다. 최초의 식민지 개척자들은 본토에서 파견된 관리들이었거나, 새 삶을 찾으러 온 이주자들, 또는 강제로 '유배'된 죄수들이었고 이들은 자신들이 왔던 '본토' 나라의 사람들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들의 대를 이은 자손들은 아메리카에서 나고 자랐기에 형식적인 국적 의식을 제외하면 본토와의 유착감이 약해져 갔다. 거대한 바다라는 자연 방벽이 있었기에 유럽의 '본토'에서도 이들에 대해 강력하게 간섭할 수 없었으며 유럽의 왕실들은 자신들의 배를 불릴 '세금'만 적절히 받아내는 데 만족했고 식민지인들이 알아서 살도록 내버려두었기에, 개척자들의 '자립 의식'은 더더욱 커져만 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근세 시기 유럽 대륙이 '절대주의 시기'에 접어들었을 무렵, 유럽 대륙은 각국의 분쟁에 의하여 많은 전비를 소모하게 되었고 그것 때문에 자금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식민지에도 중과세, 통제의 손길을 뻗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알비온의 경우에는 당대 왕실이 걷잡을 수 없이 전쟁에 연루되고, 또 당시 왕 '리처드 5세'의 사치와 낭비[4]를 충당하기 위하여 아메리카 식민지의 풍요로움을 이용하려고 하였다.

너무나도 당연하겠지만 세금을 내고 싶어하는 이는 없기에, 식민지인들은 알비온 본토에서 요구한 과세를 반발하였다. 아메리카의 알비온 식민지는 당시 유럽에서 벌어지던 난장판에서 일차적으로 떨어져 있었고, 그리고 문화에 심취한 리처드 5세의 온갖 시설 건축은 알비온 식민지에도 약간의 '떡고물'이 떨어졌기에 대체적으로 왕실에 크게 나쁜 이미지를 갖고있지 않았기에, 식민지인들은 단지 왕이 중대한 과세를 하지 않고, 자신들의 의견이 알비온 정치계에서 대표되기를 원했다.[5]

그러나 리처드 5세는 식민지인들의 요구를 불허했으며, 세금의 요구는 지속적으로 늘어났다. 그러자 왕에 대해서 우호적이었던 식민지인들조차도 알비온을 반대하기 시작했으며, 여기서 일부 '불순분자들'이 아예 독립을 하자고 선포하기 시작했다. 때마침, 유럽에서 불어오던 '자유주의'의 물결은 식민지 지식인들에게도 전해졌고, 이 자유주의 사상에 포함된 '사유재산의 자유' 및 '법에 따른 국가' 이념은 세금으로 고통받던 식민지인들의 반알비온 감정에 불을 지폈고, '불순분자들'은 자유주의 사상을 이용하고 '우리들의 자유를 지킬 수 있는 나라'를 새로 만들자고 공공연하게 선동하였다.

식민지 독립 ~ 아메리카 왕국기

그러던 와중, 1773년에 식민지가 독립하게 된 '관청의 폭력 사건'이 벌어진다. 알비온령 아메리카 식민지의 '아캄Arkham' 시의 정무관청에서, 식민지인들과 본토에서 파견된 총독 관료들간의 패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현재까지도 이 사건의 진상은 오리무중인데, 한편의 의견에서는 '평화로이 탄원을 하러 간 식민지인들을 정무관청의 관료들이 우롱하고 모욕하였다' 라고 주장하며, 다른 의견에서는 '그들은 평화로운 탄원자가 아니라 폭력의 의도를 가진 불순분자들이었다'라는 의견이 있으며, 알려진 사건의 정황에 석연찮은 부분이 많기에 어느 쪽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마침 식민지 총독이었던 '제임스 액턴 경Sir James Acton'은 정무관청에 없었고, 급하게 이 소식을 듣고 나서 식민지 파견군을 보내 이를 진압하였다. 그러나 군대 투입은 그가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엄청난 악수였는데, 반 알비온 왕실파 = 독립파들은 이 사건을 크게 대서특필하고 선동하여 잔혹한 알비온 왕실의 폭정! 또는 알비온인들이 우리를 죽이려고 한다! 따위의 출판물과 선전이 난무하였고, 이에 영향받은 식민지 대표들은그 소문들이 얼마나 진실되었는지는 별론으로 하고 한데 모여 대책을 모의하기로 했고, 결국 24시간동안의 밤을 꼬박 샌 비밀회의 결과[6] 이들은 알비온과 독립된, '독립 국가'를 선언하기로 결정했다. 이것이 바로 아메리카 독립 전쟁인 것이다.

식민지인들은 약간의 민병대밖에 갖추지 못했지만, 이들은 대서양이라는 거대한 바다를 끼고 게릴라전을 벌여 진압군을 고사시켰고, 또 식민지 지식인 대표들이 유럽 각국의 알비온 적대국들에 호소하여 알비온을 견제, 방해하도록 호소한 결과, 결국 알비온의 왕 로버트 2세(이 사단의 원인이 된 리처드 5세는 독립전쟁 시작 직후에 병사했다)는 눈물을 머금고 아메리카 식민지를 독립시키기로 결정하였고, 알비온령 아메리카 식민지는 독립하게 된다.

그런데, 갓 독립을 하게 된 13개 주의 식민지는 시작하자마자 둘로 나뉘게 되었다. 식민지인들 중 상당수는 여전히 '왕'이 있어야 한다는 관념을 버리지 못했고[7] 일부 식민지 대표들은 당시의 전쟁 영웅이자 대지주였던 '윌리엄 클레이턴William Clayton'을 국왕으로 세울 것을 주장했고, 남부 식민지 대표들은 이를 반발하였다(윌리엄 클레이턴이 남부 식민지쪽과 개인적 악연이 있었다고도 한다), 끝내 의견을 합치지 못한 13개주의 식민지들은 서로 개별 국가를 세우기로 합의하였고, 북부 식민지 주들은 '아메리카 왕국'을 선포한다. 제 갈길을 가기로 한 남쪽 식민지는 대 맹방국The Great Confederacy이 되었다. 북아메리카 커먼웰스의 역사에서, 대 맹방국과의 분쟁과 전쟁사는 여러번 있었는데, 그 갈등의 씨앗이 식민지 독립때부터 생겨난 것이었다.

그러나, 윌리엄 클레이턴은 유명한 대중 선동가이자, 전쟁 영웅이기는 하였지만, 막상 그가 왕이 되자, 그는 통치에서 무능함을 자랑했으며, 알비온 왕정에만 반대했을 뿐 그 자신이 귀족적인 성향이 가득했기에 그는 이미 유럽과 아메리카에 만연하던 '자유주의' 기조에 반대하는 반동적인 정치를 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는 윌리엄 왕의 폭정기The Tyrany of King William로 불리며, 마침 비잔티움 제국에서 시민혁명이 일어나 황제를 죽이고 로마 노바 공화국을 선포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문필가이자 시인, 그리고 모험가였던 니콜라스 페인Nicholas Payne이 <당연한 지식>이라는 책으로서 왕을 쫓아내야 한다는 견해를 발표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메리카 왕국'에 속한 각 주들이 왕의 통치를 부인하고 공화국을 선포하자, 전쟁영웅의 면모는 온데간데 없어진 '윌리엄 왕'은 곧 권좌를 버리고 1792년에 도주하였다. 그리고 '아메리카 왕국'은 연방제 공화국으로 개편되었으며, 이때부터 북아메리카 커먼웰스라는 국명이 반포되었고, 그 유명한 '커먼웰스의 공화국헌법'이 제정되었다.

혁명의 사상적 아버지였던 니콜라스 페인을 커먼웰스 대통령을 모시자는 여론이 있었지만, 페인은 그 시기에 이미 중병에 걸렸기에 스스로 대통령직을 반려하였고, 곧 사망하였다. 니콜라스 페인은 현재 북아메리카 커먼웰스의 국부 중 한사람으로 추앙받고 있으며, 커먼웰스의 수도 '연방특구 콜럼비아'의 공항인 '니콜라스 페인 공항'이 있으며, 또 커먼웰스 해군에는 그 배의 형태는 달랐지만 언제나 '니콜라스 페인 함CNS Nicholas Payne'이 존재하는 것이 전통이다.

20세기, 대공황의 위기, 그리고 페어 딜The Fair Deal

이후, 북아메리카 커먼웰스는 지속적으로 서부로 개척하고, 또 북쪽의 식민지주들과 스스로를 통합하면서 성장해나갔다.[8]

가상지구 BF 세계관에서도 현실과 대략 유사한 시기에 산업혁명이 시작되었고, 마찬가지로 북아메리카 커먼웰스도 산업화되었다, 대농장 지주들의 플랜테이션 농업이 주류였던 대 맹방국과 달리, 북아메리카 커먼웰스는 소상공인들과 수공업자들이 더욱 많았고, 이들 중 '시대의 흐름을 잘 타고난' 사람들은 큰 공장을 지닌 대산업가로 변모한 것이다. 게다가 북아메리카 커먼웰스의 영토가 어마어마했기에, 당대의 최첨단 기술과 교통의 상징인 철도의 필요성이 대단히 높았고, 충분한 철도를 건설하기 위해서 그만큼의 산업 공장이 필요했다. 그리하여 1800년대 말에 북아메리카 커먼웰스는 산업 규모에서 이미 전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공업국으로 변모하였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모든 이들이 자유롭고, 자신의 일터를 갖고 행복하게 사는' 초기 식민지 시절의 꿈, 그리고 독립국을 만들어서 그 이상을 실현하겠다던 이상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북아메리카 커먼웰스는 '도금귀족'The Gilded Aristocrat 들이 거의 대부분의 부를 쥔 나라로 전락하고 말았다. 대다수는 도금귀족이라는 대 산업가들 밑에서 형편없는 임금을 받아가며 고된 노동에 시달렸고, 어떤 사람들은 이 시기를 '잃어버린 톱니바퀴의 시대'라고 부르기도 했다. 하루하루 누군가의 공장을 돌려주며, 꿈 없이 살아가는 노동자들을 비유한 말이다.

1920년대 말, 프랑스 공화국에서 시작된 증권 대폭락 사건이 일어났고, 이것은 핏빛 수요일이라는 용어를 거쳐 대공황으로까지 버티게 된다. 전 세계에 수많은 상품들을 판매하며 부를 거머쥐고 있고, 또 '도금귀족'들이 많은 외국 회사들의 주식을 가지고 있었던 북아메리카 커먼웰스 또한 거대한 타격을 입게 된다. 수많은 회사가 도산해서 사라졌으며, 그나마 근근히 버티는 것밖에 할 수 없었던 많은 노동자들도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되어, 커먼웰스의 많은 공장지대와 대도시에는 이렇게 몰락한 이들의 빈민가촌, 노숙자 집결지로 가득한 인세에 가득한 지옥이 강림하였다.

당시의 기성 정치권, 의회와 중앙정부는 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당시 북아메리카 커먼웰스는 양당제 국가였는데, 두 주요 정당이었던 '헌정당The Constitutional Party'과 '커먼웰스 민주당Democratic Party of Commonwealth' 모두 당 이름만 달랐지 무제한적 자유시장경제의 추종자였으며, 모두 거대자본과 암묵적, 노골적으로 유착해 있었다. 오랫동안 북아메리카 커먼웰스의 의회에서는 선거인단제[9]를 통해 헌정당과 민주당이 권력을 사이좋게 번갈아가면서 휘두르고 있었다. 그러나 대공황이 나타나고 양당의 모두가 이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자, 점차 정계에 극단주의 세력이 침투하기 시작했다.

그 중 하나는 '마크 제럴드 롱Mark Gerald Long'이 이끄는 '커먼웰스 혁명당Commonwealth Revolutionary Party'였다. 롱은 '부의 공유'와 '급진적인 국가혁명'을 외치는 데마고그였다. 그는 본래 커먼웰스 민주당 소속이었지만, 당시의 '무능한' 민주당을 뛰쳐나가 독자적인 당을 만들고, 급진적인 부유층-대기업 과세 정책과 사회적 제도 대개혁을 주장하였으며, 커먼웰스 정부는 사실상 부패하고 죽은 정부이기에 오직 자신만이 커먼웰스의 희망이라고 주장하였다. 더 위험한 점은, 마크 제럴드 롱의 커먼웰스 혁명당은, 빈민으로 전락한 노동자층, 불만에 찬 어린 청년들과 일부 갱스터들을 모은 '은빛 습격자들Silver Strikers'단의 수장인 윌리엄 더들리 펠로우즈William Dudley Fellows와 공공연히 유착해 있었다는 것이다.[10]

다른 하나는 '급진 노동자당Radical Workers' Party' 였다. 이들은 19세기 후반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레티시아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사상에 영향받은 공산주의 운동가들이 만든 정당이었고, 설립은 19세기 후반에 이루어졌으나 원내 입성은 대공황 시기부터 빈민 노동자들[11]이나 노조의 지지를 업고 이루어졌다. 이들에게는 미테란트 코뮌이라는 나라의 성공사가 그들의 신화였고, 마찬가지로 혁명을 통하여 '공산 커먼웰스'를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어느 쪽이든 커먼웰스의 현체제를 부정한다는 점, 그리고 그들은 현체제를 부정하기 위해 폭력도 불사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위험했다. 후세의 역사가들의 평가에 따르면, 이미 이 시기의 북아메리카 커먼웰스는 내전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으며, 오히려 내전이 일어나지 않은 것이 기적이라고 주장할 정도이다.

1932년이 되면, 이미 의회에서 유의미한 의석을 혁명당과 급진노동자당이 차지했으며, 이 추세에 따르면 1932년의 대통령 선거에서는 선거인단제로 그 누구도 과반을 확보할 수 없으며, 의회의 상당수를 차지한 혁명당과 급진노동자당 때문에 하원에서 대통령을 선출하려고 해도[12] 이들 때문에 파국을 피할 수 없으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커먼웰스의 '전통적 양당' 이었던 입헌당과 민주당은 한동안 무능했을지언정 완전히 바보천치는 아니었고 적어도 '민주주의에 대한 애착 의식'만큼은 충분했기에, 그들은 국가적 위기 하에서 '단일 대통령 후보'를 내기로 합의했다. 그런데, 누가 대통령 후보가 될 것이었는가?

북아메리카 커먼웰스를 이루고 있는 주commonwealth[13] 중 하나인 '오시아 주Commonwealth of Osea'에 '에바 올슨Eva Flora Olsen'이라는 여성 주지사가 있었다.[14] 그녀는 '진보당Progressive Party'라는 진보주의-온건 좌파 정당에 속해 있었고, 커먼웰스의 거대 양당을 뚫고 진보당이라는 군소 정당 소속으로 주지사를 쟁취한 것이었다. 또한 (당대 커먼웰스 기준으로는 대단히 파격적인) 고등 교육을 받은 여성으로서 올슨은 '단순히 예쁜 아이돌이라서' 당선된 것이 아니라, 그녀 스스로가 사려깊은 사상가였고 인망높은 인물이었으며, 주지사로서의 책무도 문제없이 수행하는 여걸이었다. 그녀의 명성은 오레드 주를 넘어 커먼웰스 전체에 넘쳤기에, 대통령 선거를 앞둔 입헌당과 민주당은 올슨 주지사를 '거국 선거연합'의 후보로 추대하였다. 그리고 1932년의 대통령 선거에서, 신승 끝에 간신히 선거인단 과반을 확보한 '거국 선거연합'의 후보 에바 올슨은 커먼웰스의 최초 여성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그러나 올슨 대통령이 당선되었다고 해서 모든 것이 행복하게 끝났다고는 할 수 없었다. 여전히 경제는 파탄나 있었으며, 혁명당과 급진 노동자당은 새 대통령을 인정할 생각이 없었다. 혁명당의 당수이자 대통령 후보였던 마크 롱은 '입헌당과 민주당의 선거 조작'을 떠들고 다녔으며[15] 그의 비밀스런 동맹 겸 똘마니였던 펠로우즈의 '은빛 습격자들'은 노상에서 제복을 입고 폭력시위를 벌여대고 관공서를 습격하고 있었다. 또한, 일단 선거 연합체를 통해 올슨을 대통령으로 앉혔지만, 많은 민주당-입헌당의 정치인들은 올슨이 '꼭두각시이자 그들만의 아이돌'이 되기를 바랬으며, 올슨에게 주도권을 내주고 싶지 않았다.

이런 혼란상 속에서 올슨 대통령은 '도데체 그런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라디오 담화와 공개적 연설, '커먼웰스 노조총연맹Combined Syndicates of Commonwealth'의 대표 재커리 홉스Zachery Hobbs와의 협상을 통해서 노동자들에 대한 복지정책과 대기업에 대한 규제를 이끌어냄으로서 노조 계층을 자신의 지지층으로 포섭하고, 정당정치 내에서는 거물 정치인 가문 '로즈필드 가문'의 젊고 유능한 국회의원 '퀜틴 로즈필드Quentin Rosefield'[16]의 도움을 얻어 정당 내에서의 지지를 확보하고, 다음 총선에서 그녀의 소속정당 진보당이 대거 의회에 입성함으로서(과거 급진노동자당 소속 중 온건한 사회주의자들이 진보당의 이름으로 출마했고 당선되기도 하였다) 정치적 동력을 확보하였다.

그러나, 이 와중에서 비극도 발생하였다. 올슨 대통령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유사 파시스트 세력이었던 마크 롱의 혁명당은 도저히 굴복할 생각이 없었으며, 이들은 이미 커먼웰스 정부에 대한 광적인 증오심으로 가득한 상황이었다. 그들 중 범죄자 출신이자 '은빛 습격자단'의 간부였던 '존 캐폰John Capone'이 고담Gotham 시에서 산업현장 시찰과 연설을 하러 나온 올슨 대통령을 저격하여 중상을 입혔으며(다행히 목숨을 건졌다), 대통령의 배우자를 살해하는 일마저 벌어진 것이었다. 하지만 이로서 일어난 '긍정적' 결과라면, 은빛 습격자단은 곧 '국가의 반역자들' 취급을 받았으며, 연방군까지 투입된 진압작전 끝에 은빛 습격자단은 붕괴하였으며[17] 그리고 마크 롱은 대 맹방국으로 도주함으로서 혁명당 세력은 형편없이 와해되고 군소정당으로 몰락하고 만다.

비극을 겪고 무너지지 않은 올슨 대통령은 전면적인 복지사업 및 정책 개편, 헌법 개정을 임기내에 이루어냈으며, 이로 인하여 커먼웰스는 과거의 악폐습을 상당히 개선하고 건실해진 나라로 태어나게 되었다. (주로 진보당 쪽에서 나오지만) 에바 올슨을 커먼웰스의 중시조, 국부 니콜라스 페인에 이은 두번째 국모로 추앙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이다. 이 때의 개혁 행보를 '페어 딜The Fair Deal'이라고 후대에 평가하게 되었다.

정치

의회

북아메리카 커먼웰스는 양원제를 채택하고 있다. 대통령제+양원제 민주 공화국이라는 점에서 로마 노바 공화국 의회제와 유사한 점이 있지만, 로마 노바 공화국의 양원제의 경우에는 명백한 민회(하원) 우위+준 명예직으로서의 원로원(상원) 우위지만, 북아메리카 커먼웰스의 의회제는 대의원(하원)과 연방원(상원)이 (단원제 의회 기준으로) 의회의 권력을 일정부분씩 나누어 갖고 있으며, 암묵적으로 상원이 우세하다고 인정된다.

대의원

하원에 해당하는 대의원은 커먼웰스의 직접적인 국민 개개인을 대하며, 선출 단위는 각 주별로 소선거구제를 택하거나, 비례대표제를 택하는 등 주별 자유에 따른다. 각 주마다 인구수가 다르고, 인구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만큼 많은 선거구가 있기 때문에 주별로 몇 명이 대의원으로 선출되는지는 제각기 다르다. 커먼웰스 초창기에는 전적으로 주정부에서 선거구 및 대의원 선출방법을 제각기 정했기에 소위 말하는 '게리맨더링' 문제[18] 이것이 '소수당'의 진입을 불리하게 하고 양당제를 고착화시킨다는 점, 결국 이 불만이 폭발하여 대공황 시기 극단주의 정당인 '혁명당'과 '급진노동당'의 열풍을 불렀다는 점이 지적되었으며, 올슨 대통령의 '페어 딜' 시기 커먼웰스 헌법을 개정하여 선거구의 획정은 주민들의 의사를 공정히 반영해야 한다는 요지의 헌법이 추가되었고, 이로 인하여 게리멘더링 문제는 상당히 완화되었다고 한다.

대의원의 역할은 다음과 같다.

  • 커먼웰스 연방법의 제정(심사는 연방원에서 함)
  • 커먼웰스 헌법 개헌안의 발의와 1차 표결(2차 표결은 연방원에서 수행함)
  • 커먼웰스 헌법 개헌안의 2차 표결(연방원에서 개헌안을 발의하고 1차 표결했을 경우)
  • 대통령 탄핵 소추(탄핵 심판은 연방원에서 함)

연방원

상원에 해당하는 연방원은 커먼웰스의 각 주를 대표하며, 선출 단위는 크기를 불문하고 각 주마다 3명의 인원을 선출한다. 커먼웰스 초창기에는 2명의 연방의원을 선출하였으나, 이로 인하여 상원의원 개개인의 정치적 무게감이 비대해지고 권력이 집중된다는 문제가 제기되어 1970년의 헌법 개정때 '차후 선거부터는 3명의 연방의원을 선출한다'고 개헌되었다.

연방원은 직접적인 입법 행위는 거의 하지 않으며[19] 커먼웰스라는 국가의 외교-국방-전쟁 등 중대사를 담당한다. 연방원은 다음과 같은 직을 수행한다.

  • 대의원에서 제정된 연방법의 심사
  • 커먼웰스 내각 인사 후보의 심사와 임명 동의
  • 커먼웰스 헌법 개헌안의 발의와 1차 표결(2차 표결은 대의원에서 수행함)
  • 커먼웰스 헌법 개헌안의 2차 표결(대의원에서 개헌안을 발의하고 1차 표결했을 경우)
  • 군대 투입, 선전포고 결의 및 외교 조약에 대한 표결
  • 대통령 탄핵 심판(소추는 대의원에서 함)

각주

  1. 본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 설명
    출처 : [1]
    저작자: Lady zero로 추정
    저작권: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 Unported
  2. '아메리카 왕국' 시기까지 포함한다
  3. 단, 가상지구 BF 세계관에는 일부 토착민 문명들이 현대까지 살아남아, 현대국가를 이루고 있다고 잠정적으로 설정되어 있다. 상세한 것은 추후 생성할 예정.
  4. 개인적인 향락을 추구하였을 뿐만 아니라, 문화에 지대하게 심취하여 온갖 문화시설이나 극장, 동물원 등에 막대한 돈을 투자하였다
  5. 그래서, 일부 역사가들은 (현재는 한물 지나간 학설이지만) 이 때 리처드 5세와 알비온 중앙 정부가 아메리카 식민지인들의 요구를 받아들였다면 독립이 없었을 것이라고까지 말했다. 그러나 현재의 유력 학설은 그것은 기폭제에 불과하였을 뿐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6. 공포심에 싸인 식민지인들 사이에서, 이 회합이 발각된다면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 때문에, 인스머스Innsmouth라는 마을의 허름한 교회 지하에서 24시간 동안 땀을 뻘뻘 흘리며 회의를 진행했다. 현재 이 인스머스의 교회는 커먼웰스의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7. 단적으로, 현대적 자유주의나 공화주의 등의 전통이 되었다는 계몽주의 시기의 책을 보더라도, '군주' 또는 '왕'의 존재를 당연시하는 내용들이 있다. 그리고 현실의 미국사에서도 독립전쟁의 영웅이자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을 왕으로 세우자는 의견도 있었다.
  8. 이 때, 프랑스계 식민지는 북아메리카 커먼웰스에 통합되지 않았고, 가상지구 BF 세계관에서 케베크 공화국이라는 독립국으로 남아 있다. 이 나라는 현실의 퀘벡 지역에 대응된다.
  9. 현실 미국의 선거인단제와 동일하다.
  10. 이 세계관의 '마크 제럴드 롱'은, 현실 미국의 어느 정치인을 공공연하게 모티브로 삼았고, 그 인물은 현재 '미국의 급진적인, 거물 진보-좌파 정치인' 이라는 평 또는 '악질적 포퓰리스트이자, 미국판 파시즘 후보 1인'이라는 평이 있다. 다만 현실의 파시즘 정권도 집권하기 이전에는 반자본주의-반우파적 수사를 하는데 거리낌이 없었기에, 본 세계관에서는 이에 대해 '유사 파시즘'으로 설정한다
  11. 이 시기 노동자들의 정치성향은 거의 극과 극으로 양분되었다. 노조에 소속되지 않은 빈민 노동자 계층은 마크 롱의 커먼웰스 혁명당을 지지했고, 노조 활동가들과 급진적 청년들은 급진노동자당으로 가게 되었다.
  12. 현실의 선거인단제도 마찬가지이다. 그 어떤 누구도 선거인단제에서 절반 이상을 차지하지 못하면, 하원의원들의 투표로 대통령을 선출한다.
  13. 현실 미국은 주 연합국United States of America 각 자치 지역의 단위가 '주States'인 것처럼, 북아메리카 커먼웰스의 자치 단위도 commonwealth이다. 다만, 실질적 기능의 유사성과 '북아메리카 커먼웰스'라는 나라 이름과 혼동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본 문서에서는 자치 단위로서의 commonwealth를 '주'로 번역한다.
  14. 커먼웰스에서 오시아 주는 (주 투표권에 한해) 1901년에 여성 투표권을 커먼웰스 최초로 도입하였으며, 커먼웰스 전체에 여성 투표권이 1922년에 주어졌다.
  15. 진중한 학계에서는 현재 기준으로 수십 년 전에 이것은 근거없는 음모론이었다고 확정지었지만 여전히 커먼웰스의 극우 음모론가들은, '가짜 대통령 올슨'을 주장하며 그 후의 대통령들을 부인하고 있다.
  16. 훗날 그 또한 커먼웰스 대통령으로 취임한다
  17. 이 때, 후일 밝혀진 것이지만 은빛 습격자단은 라이클란트의 극우정권이었던 '아들러 대 군단'으로부터 비밀리에 무기를 지원받고 있었음이 드러났다. 은빛 습격자단의 2인자이자 윌리엄 펠로우즈의 노골적인 경쟁자였던 '알베르트 쿤Albert Kuhn'이 라이클란트 출신이었기에, 라이클란트 극우정권이 커먼웰스 민주 정부를 전복시키고, 펠로우즈마저 제거한 다음 알베르트 쿤을 지도자로 내세우려는 계획 때문이었다.
  18. 자기의 정파에 유리하도록, 선거구를 기형적으로 선출하는 형태, 같은 사람들이라도 그 지지 성향에 따라서 특정한 정당/정치인 지지세력이 많은 곳을 골라 기묘한 모양새로 묶고 분절해 선거구를 만든다면, 그만큼 의석 확보에도 유리해진다
  19.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하원이 붕괴되거나 실질적으로 기능이 정지되었을 때만 직접적 입법을 수행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