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Summa Saeculum

교회 공화국 세계관의 모든 것을 담고자 했던 보헤멘 왕국의 전 프라하 대학 교수 토마스 헤스테인이 저술한 저작

본 문서는 세속사전의 전문을 다루고 있다.

들어가기에 앞서

이 책은 이제껏 있어왔던 사전(Summa)과는 다른 방식의 책입니다.

만약 성 토마스 아퀴나스께서 저술하신 신학사전(Summa Theologica)과 같은 변증법을 기대하고 왔다면 부디 이 책을 닫아주길 바랍니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겠고 한다면 본인은 감사의 마음으로 내가 이 책의 내용을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이 책은 우선 사전이라 정의할 수는 있습니다.

다만, 지난 한 세대 동안 유행한 변증법으로 이루어진 사전이 아닌 그 이전부터 이어져온 사전이지요.

본디 사전이란 새로운 지식을 알리는 것이 아닌 필요한 지식을 필요한 이에게 설명하는 설명서입니다.

때문에 이 책도 새로운 지식도 기존의 지식도 아닌 필요한 지식을 담은 책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세상의 모든 것을 알 수 없으니 이 책은 성서에서 말하는 한계 수명에 가까워진 자가 모아온 지식을 모두 담았다고도 할 수 있을 겁니다.

다만 저는 평소에 글을 쓰는 일을 하지 않았기에 글솜씨는 좋다고 할 수는 없으니 이해 해주셨으면 합니다.

이후에 나올 내용은 필요한 지식을 빠르게 찾아볼 수 있도록 문장 꾸미기를 최대한 줄일 것이며 글 또한 굉장히 딱딱해질 것이니

이 책에서 필요한 지식을 얻고자 하는 자는 주제를 정의하는 첫 문장을 잘 읽고 필요한 지식을 빠르게 찾기를 권장하겠습니다.

최고신 빛과 그외의 신들

'태초에 빛께서 꿈을 꾸시니 그곳을 에덴이라 하시니라' 구약성서 창세기전 1장 1절의 구절이다. 이 구절은 우리가 흔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상식인 '최고신은 빛이시다.'의 유일한 근거이기도 하다.

중앙교회는 성서를 루멘스어 이외의 언어로 번역 하는 것을 금하기에 마치 최고신 빛만이 신으로 칭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는 듯이 이야기 하곤 한다.

하지만 이는 터무니 없는 성서 부정이다.

성서에 따르면 최고신 빛 이외에도 신으로 칭하기에 마땅한 존재 셋이 더 묘사 되는데 이들이 바로 어둠, 죽음, 생명이다.

다만 가장 강인하며 인격적, 도덕적으로 바르며 신앙 받아야 마땅한 신은 빛 뿐이며 이 때문에 나는 최고신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최고신 빛은 중앙 교회 뿐만 아니라 제국 전역에서 넓게 그리고 깊게 설명되고 찬양되기에 여기서는 크게 다루지는 않을 것이다.

대신 신학에서 자주 언급되지는 않지만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는 세계에 더 관여한 세 신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

태고에 세상에 빛만이 존재하던 그때 빛은 꿈을 꾸었다.

그 꿈 속은 만물이 평화로운 천국 그 자체 에덴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에덴의 거주자 중 한 명이 어둠이었다.

하지만 악이란 존재하지 않는 에덴에서 선의 결핍을 통해 악을 추구한 어둠은 빛의 노여움을 사 에덴에서 추방 되었다.

꿈 밖의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 혼돈하고 공허한 그곳에서 어둠은 홀로 힘을 축적했다.

스스로 새로운 개념을 창조해낸 어둠은 금세 힘을 모아 빛에 대적 할 만큼 강성 해졌고 빛을 꿈에서 깨워 에덴을 파괴해버렸다.

이에 노한 빛은 어둠을 제압하고 힘을 빼앗아 어둠을 봉인하고 다시 에덴을 부활 시킬 두 존재를 만들게 되니 그 둘을 생명과 죽음이라 하였다.

빛이 천지를 창조하고 과거의 에덴을 재건하고자 하니 그것이 지금의 현세이다.

생명은 생명체들의 번영을 관리했고 죽음은 생명체의 과잉을 막고 사후 세계로도 불리는 어둠이 봉인된 장소를 관리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어둠은 가만히 있지는 않았으니 그것이 생명체들 중 지성을 지니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자유의지의 주입이었다.

어둠이 주입한 자유의지를 지닌 생명체들은 이제 이전의 에덴에서 살아가던 생명체들과 달라졌고 선의 결핍을 추구 할 수 있게 되었다.

어둠이 왜 선의 결핍 그 자체를 추구하는 것이 아닌 선의 규모를 스스로 결정 할 수 있도록 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논쟁이 있지만 지금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학설은 선의 결핍 그 자체를 추구하는 것으로는 세상을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는 설이다.

이 처럼 어둠은 보통 성서에서 악 그 자체이며 악의 근원이라고 묘사하지만 어둠의 행적을 보면 역설적이게도 어둠이 있었기에 현세가 존재할 수 있었다.

나는 어둠을 악으로 보는 시선에서 벗어나 성 아우구스틴의 악에 대한 정의를 인용해 새로이 정의하고자 한다.

악이란 실체가 없으며 그저 선의 결핍인 것 처럼 어둠 또한 악이 아닌 선이 결여된 존재로 빛에 대한 복수라는 필요에 따라 선의 크기를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빛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어둠이 창조된 세상에 자유의지를 부여해 지금의 세상을 만들었지만 이들은 지금의 세상에 큰 관심을 보이지는 않는다.

세상이 창조된 이후 관리의 임무를 받게된 생명과 죽음은 빛과 어둠과 달리 지금의 세상에도 관여하며 그 소식들 또한 종종 들려오곤 한다.

나는 지금의 세상에 관여하는 생명과 죽음이야 말로 현세를 살아가는 지성체들에게 신앙과는 별개로 가장 중요시 여겨야 될 신이라고 생각한다.

이 두 신은 에덴의 거주자를 본따 창조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때문에 두 신의 성격은 현세의 지성체와 근본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한다.

생명은 성서에서 어떤 때는 활기찬 여인의 모습으로 어떤 때는 광기에 빠진 예술가의 모습으로 어떤 때는 순수하고 깨끗한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어떤 때는 유흥에 절여진 주정뱅이로 묘사되곤 한다.

이처럼 예술과 감정 그리고 감각적인 여성의 상징들을 많이 지니고 있는 생명은 보통 여신으로 표현된다.

그리고 생명은 현세의 모든 생명체를 빛의 권위를 위탁 받아 관리하는 신이기에 그는 지금도 현세에 존재하며 성서에서는 그 위치를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현시대 대부분의 학자들은 그녀가 엘프들의 숲, 산 넘어의 땅, 트란몬치움스에 존재하고 있다고 추정하고 있다.

이와는 반대의 모습을 보이는 죽음은 성서에서 항상 비슷한 모습을 유지하고 질서에 대해 광적으로 집착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곤 하는데 이러한 모습은 때로는 조용하고 때로는 엄격하며 때로는 확고한 남성의 상징들을 많이 지니고 있어 보통 해골이나 노인의 모습으로 묘사된다.

그리고 죽음이 영계에서 빛의 권위를 위탁받아 죽은 생명체의 영혼을 관리하고 어둠의 봉인을 감시하는 신이기에 영계에 존재하며 그의 모습을 현세에서 보는 것은 죽음 혹은 죽음에 순응하지 않은 죄 뿐이라고 성서에는 말하고 있다.

다만 성서에서 말하는 죽음과 동일한 존재인지는 알 수는 없지만 영계의 지배자를 숭배하는 엘프들의 주장에 따르면 그들의 최고 지도자는 죽음의 종이 되어 영계와 현세를 오고 갈 수 있고 종종 현세에 영계의 지배자가 강림하는 것을 돕는다고 한다.

앞서 서술한 설명들에서도 보이듯이 성서에서 생명과 죽음은 서로 상반된 신으로 묘사되고 갈등 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둘 모두 빛의 권위를 위탁 받아 신으로서의 권위를 가지기 때문에 세상의 운영에 있어서 만큼은 둘이 협력하는 모습을 보인다.

종종 생명이 죽음을 속여 세상에 혼란을 가져오기도 했지만 이 또한 반드시 죽음의 허락이 있은 뒤에야 혼란을 만들며 독단적으로 세상에 영향을 주는 일을 하지 않는다.

종종 세속적인 예술가들은 빛은 만물의 근원이며 부모라는 성서의 기록과 생명과 죽음 또한 빛의 창조로 만들어졌다는 점을 바탕으로 이 둘을 빛의 자녀이자 남매로 표현하곤 한다.

지금까지 최고신 빛과 또 다른 세 명의 신 어둠, 죽음, 생명에 대한 어느 정도의 개론은 완료되었다고 본다.

이제 고트부르크 대학 출신의 학자 그레고리 엘름의 신에 대한 서술을 적으며 이 이야기를 끝내고자 한다.

"신들은 우리 세상의 많은 부분에 관여해 왔고 아직도 우리 세상을 관심 깊게 지켜보고 있다."

교회 공화국

'각자는 자신이 무엇을 사랑하고 있는지 자문해 보라. 그러면 그는 자신이 어느 나라에 속하는 시민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성 아우구스틴의 대작 이교도에 대항하는 신의 국가 제19권 선의 목적은 하느님 안의 평화-

성 아우구스틴의 대작 '이교도에 대항하는 신의 국가' 일명 '신국'에 따르면 자유의지를 지닌 지성체는 선의 결핍을 추구 할 수 있기에 이것이 악에 의한 혼란을 부추겨 본래라면 필요하지 않은 정치 공동체를 필요로 한다고 한다.

이때 정치 공동체는 빛에 대한 신앙으로 선의 결핍을 추구하는 자유의지를 금하고 구원을 향해 나아가는 천상의 국가와 권력과 무력으로 질서는 유지하지만 자유의지에 대해 관용을 베푸는 지상의 국가로 나뉜다고 한다.

이때 자유의지라는 목적성 없는 쾌락을 추구하는 지상의 국가들과 달리 빛에 대한 신앙을 바탕으로 구원을 향해 나아가는 동일한 목표를 지닌 천상의 국가들을 일종의 연맹체로 보며 이를 교회 공화국이라 한다.

교회 공화국에 포함되는 국가는 모두 보르하스에 위치한 인간 국가들인데 그중에서 정당성을 지닌 교회 공화국은 신성 루멘 제국, 일명 제국 단 하나 뿐이다.

제국은 중앙 교회의 수장이자 머리에 기름 부은 자이며 12사도의 지도자 베드로의 계승자인 교황의 승인 아래 최고 통치자인 황제를 중심으로 수립 되었으며 보르하스의 대부분의 지역을 차지하고 있다.

제국의 황제 직위는 본래 작센 왕조에 의해 세습 되었지만 북방의 해적들의 침공과 남방에서 전파된 열병이 만들어낸 혼란을 잠재우지 못하고 황제 직위를 박탈 당했다.

최근에 서거하신 보헤멘 왕국의 카를대왕이 교황의 도움으로 황제로 즉위 하면서 제국의 정치는 큰 변화를 겪었고 현재 황제 직위는 선출직으로 변경 되었다.

또한 제국의 모든 정치 지도자들이 참여하는 제국 의회를 설립 하여 황제의 독단을 막고 제국 내의 결속력을 한층 강화 시켰다.

이때 제국 의회에 참여하는 모든 정치 지도자를 제후라 칭하며 그 제후들 중에 황제 선출권을 지닌 8명의 제후를 선제후라고 한다.

선대 황제이신 재건 황제 카를 대왕께서 서거하신 현재, 제국의회는 황제 선출을 앞두고 크게 세개의 세력으로 나뉘어졌다.

하나는 선대 황제 카를 대왕의 차남이자 마자르 왕국과 보헤멘 왕국의 국왕인 지기스문트를 황제 후보로 내세우는 세력으로 교황과 오스트리아 대공국과 같은 제국의 중심부와 동부의 제후들에게서 강세를 보이고 있다.

다른 하나는 작센 선제후국의 현명공 프리드리히 선제후를 황제 후보로 내세우는 세력으로 브란덴부르크 변경백과 슈바이튼 연맹 같은 제국 북부의 제후들에게서 강세를 보이고 있다.

마지막은 오를레앙 공국의 존엄공 필리프 2세를 중심으로 중립을 주장하는 세력으로 한자 동맹과 팔라티노 궁정백과 같은 제국의 서부와 남부의 제후들에게서 강세를 보이고 있다.

이들은 이미 수백년의 역사가 황제 중심 체제에 모순이 있음을 말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현재의 제국의회 중심의 체제 유지를 주장하고 있다.

제국에서 정치적으로 힘을 발휘하는 세력은 제국의회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공식적으로 제국의회의 일원이지만 대부분의 학자들이 독자 세력으로 구분 하는 이들이 있다.

제국 북부에 위치하여 오히크라트의 땅 일부를 개척한 슈바이튼 연맹은 제후로서 제국의회의 일원이지만 실상은 모험가 길드의 실질적인 소유주이며 이 모험가 길드를 바탕으로 제국 내에서 여러 정치적 활동을 하고 있다.

신앙 마법을 제외한 모든 마법을 불법으로 지정한 중앙 교회가 유일하게 공인한 합법 세속마법을 사용하고 연구하는 공인 세속마법 학회도 있다.

이들은 정치적인 활동과 발동을 크게 그리고 자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들의 강력한 연구는 언제라도 그들이 새로운 세력으로 등장 할 가능성을 만들어내고 있다.

추가로 슈바벤 자유시 연합의 수장으로 자유시 제후이기도 한 룩셈베르크의 실질적인 지배자 푸거가는 제국 내에서 탄압 받는 랫킨의 독자적인 금융업과 기술력을 전부 독점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경제적으로 제국에서 가장 강력한 가문이다.

교회 공화국의 대표로서 교회 공화국 그 자체로도 평가되는 제국에 대해 지금까지 설명 했지만 보르하스의 교회 공화국은 제국을 제외하고도 두 국가가 더 있으니 바로 보르하스 최서단에 위치한 섬나라 포르투나 왕국과 보르하스 최동단에 위치한 무역 국가 베네-토츠카나 연맹 공화국이다.

포르투나 왕국은 본래 제국의 건국 황제 오토 1세의 직속 기사단 포르투나 기사단의 영토였다.

건국 황제 오토 1세는 제국의 최서단에 위치한 섬에 그들을 주둔시켜 훗날 북방에서 침공해 올 북방 해적들을 방어 하고자 했다.

이러한 건국 황제의 선견지명은 황제 사후 실제로 대대적인 노르드 해적들의 침공이 시작 되면서 그 성과를 보였나 건국 황제 사후 연이어 즉위한 무능한 작센의 황제들에 의해 포르투나 기사단은 더 이상 북방 해적들의 침공을 버티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당시 포르투나 기사단의 기사단장 아폰수는 북방 해적들의 지도자격인 라그나르 로드브로크와 협약을 맺어 양측 간의 교전을 멈추었다.

그리고 이 사건을 계기로 교황의 파문과 황제의 작위 몰수가 이루어졌다.

기사단장 아폰수는 당연히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섬 내의 자치 의회인 코르테스를 조직하여 이들의 동의 아래에 왕으로 즉위하니 기사왕 아폰수 1세였다.

이후 포르투나 왕국은 내전과 제국의 제재 속에서 여러 어려움을 겪었지만 제국과의 밀무역과 드워프 항로 개척을 통해 되려 국력을 성장 시켰다.

시간이 흘러 포르투나 왕국 내에 위치한 클뤼니르 수도원 출신의 교황 그레고리오 7세가 포르투나 왕국에 대한 파문을 취소하고 그의 도움으로 황제로 즉위한 카를대왕이 포르투나 왕국과 평화 협정을 맺으며 현재는 제국에서 푸거가 다음으로 영향력을 끼치는 또 다른 경제 세력이 되었다.

베네-토츠카나 연합 공화정은 본래 제국의 일원으로서 드네프르 강을 통한 북부 고블린과의 무역과 발틱해를 통한 세속 엘프와의 무역을 담당하던 베네토 길드의회와 금융업을 통해 이들의 자금을 담당하고 관리하는 토츠카나 시립 은행이 서로 공존하며 제국 경제의 발전을 도모하곤 했다.

이들은 북방의 해적들의 침공에도 큰 피해를 입지 않았고 제국이나 부패한 중앙 교회에 대한 불만도 크지 않았기에 이들이 제국에서 탈퇴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카를 대왕은 제국의회를 설립 하면서 혈통과 작위를 바탕으로 영지를 소유한 이들에게 제후의 직위를 하사했고 그 외의 정치적 영향력이 있는 길드 동맹들에게 자유시의 권리와 자유시 제후의 직위를 하사 했는데 이 과정에서 베네토 길드의회와 메디치 가 소유의 토츠카나 시립 은행은 자유시 제후로 포함되지 않았던 것이다.

카를 대왕께서 이 두 세력을 왜 자유시로 인정하지 않았는지는 논쟁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옳게 보는 주장은 너무 강력해져 제국 전체를 지배하는 자유시의 등장을 막기 위해서이다.

어쨌든 베네토 길드의회와 토츠카나 시립 은행은 제국에 대항하여 연합을 결성하니 이것이 바로 베네-토츠카나 연합 공화정이다.

베네-토츠카나 연합 공화정은 여전히 제국에 의해 공식적으로 독립을 인정 받지는 못했지만 베네-토츠카나 연합 공화정과 제국 간의 무역을 규제하는 칙령들을 선포하며 사실상 독립을 인정한 모습을 보였다.

소문에 의하면 현재 베네-토츠카나 연합 공화정은 황제 후보들에게 접촉하여 금전적 지원을 대가로 규제를 해제해 달라고 하고 있다고 한다.

지금까지 총 세개의 교회 공화국에 대해 최소한으로 필요한 정보만 서술해보았다.

이제 교황 겔라시우스 1세가 남루멘 제국의 황제 아나스타시우스 1세에게 보낸 서한의 한 구절로 이야기를 끝내고자 한다.

'교회 공화국을 통치하는 두 권력은 교황의 신성한 권위와 군주의 권한이다.'

제국 철학의 역사

오늘날 제국은 중앙교회의 영향을 굉장히 많이 받으며 '철학은 신학의 시녀이다.'라는 격언이 있을 만큼 학문 분야는 교회에 종속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제국의 정치 철학은 초기 교회 신학에 그 근본을 두고 있으며 이후에도 주기적으로 교회의 영향을 받는다.

최초의 교회의 영향을 받은 정치철학은 성 아우구스틴의 저서 '이교도에 대항하는 신의 왕국'이다.

일명 신국은 신에 대한 숭배와 순복의 의무를 통한 선의 실현을 근거로 중앙교회를 믿는 신의 국가가 진정한 국가이자 공동체라고 주장했다.

또한 이러한 공동체들은 신을 숭배한다는 공통적인 목표를 가졌기에 일종의 연합체인 교회 공화국 혹은 그리스도 국가라 정의했다.

교회국가는 신에 대한 의무를 끊임없이 강조하고 신도를 개도하는 교권과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 불가피하게 존재하는 현세의 통치자인 속권의 상호보완적인 관계로 구성 되어있다고 주장했다.

성 아우구스틴은 교회국가의 구성체인 교권과 속권의 상호보완이라는 현 제국의 정치체제를 최초로 주장했지만 교권과 속권의 영역을 명확히 구분하지 않아 훗날 교권의 지도자 교황과 속권의 지도자 황제 간의 분쟁을 가져오는 도화선을 만들었다.

성 아우구스틴 이후의 정치철학은 속권과 교권의 대립이었다.

정확히는 지도자들 간의 대립이었다.

성 아우구스틴이 주장했듯이 교회국가는 속권과 교권의 상호보완적 관계로 구성 되어있기에 모든 성직자들이 교권의 지도자 교황을 지지한 것은 아니며 모든 작위 소유자들이 속권의 지도자 황제를 지지한 것은 아니었다.

이들의 대립은 초기에는 서로의 상호보완적 관계를 인정 하면서도 상대측이 자신들의 권리와 의무를 침범한다는 요지로 비판을 가하였다.

이것이 점차 심화 되면서 이들의 논쟁은 점차 교권과 속권의 우위 논쟁으로 변모하였고 이것은 실질적인 사례를 만들게 되었으니 그것이 바로 공인 왕조, 카롤루스 왕조의 정통성에 관한 분쟁이었다.

공인 왕조, 카롤루스 왕조는 본래의 메로빙거 왕조 출신이 아닌 궁재 피핀이 교황의 공인 아래에 개창된 왕조이다.

이 카롤루스 왕조의 두 번째 국왕인 샤를마뉴는 프란시아 왕국의 전성기를 이끌고 황제 대관을 받아 국명을 프랑크 제국으로 변경하였다.

이때 황제 대관을 두고 당시 교황이었던 레온 3세와 샤를마뉴 간의 갈등이 시작되었으니 이것이 정통성에 관한 분쟁의 시작이었다.

카롤루스 대제를 주축으로 구성된 속권은 왕조의 창시자인 피핀의 통치 시기에 강화된 교황의 영향력을 축소 시키기 위해 황제 대관은 교황이 황제의 권리를 양도한 것으로 해석하여 황제가 바로 '머리에 기름을 부은 자' 12 사도의 지도자 베드로의 계승자라고 주장했다.

한편 레온 3세를 주축으로 구성된 교권은 과거 루멘 제국 시기 교회가 겪어온 암흑기의 재림을 막고 남방교회의 황제-성직자론에 대항하기 위해 황제 대관은 교황이 황제의 권리를 양도한 것이 아닌 대여한 것으로 언제든 교황이 다시 황제의 권리를 가져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논쟁은 샤를마뉴 사후 그의 어리석은 삼 형제가 왕위를 가지고 대립하고 교황이 오토 1세에게 황제 대관을 하면서 프랑크 제국의 정통성을 부정했고 오토 1세는 교권의 우위를 인정하고 대륙을 통일하였다.

이후 바다늑대시대가 시작되면서 사회는 혼란을 겪고 제국의 중심지들은 암흑기에 빠졌지만 북방의 해적들의 영향력이 닿지 않는 테라메디움해(地中海) 너머의 땅인 팔라티노, 제노바, 베네-토츠카나 같은 곳은 피난민을 수용하고 빈 토지를 개간하는 과정에서 성장세를 보였다.

그리고 성장세를 보이는 지역들에서 학문적 성과도 보였는데 제노바 인근에서는 옛 루멘 제국의 법학을 연구하는 루멘법 주석학파가 볼로냐 대학을 설립해 루멘법을 연구 했으며

오크들의 남루멘 제국 침공이 심화 되고 남부 오크들이 남루멘 제국의 지식을 습득 하면서 남부 오크들의 성지가 위치한 베네-토츠카나 지방으로 순례를 오는 남부 오크 순례자들에 의해 남루멘 제국의 여러 학문들이 유입 되었는데

그중 아베로에스로 잘 알려진 남부 오크, 이븐 루시드에 의해 유입된 옛 아르키의 위대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들을 남부 오크어에서 제국 공용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라틴 아베로에스 학파를 성립 시켰고

라틴 아베로에스학파가 번역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들은 훗날 스콜라 학파의 성립에 영향을 준다.

바다늑대시대는 앞에서 말했듯 혼란의 시기이기도 했지만 신(新)학문의 성립 시기이기도 했다.

그리고 동시에 속권의 새로운 정치체계의 등장 시기이기도 했다.

오토 1세 사후 작센 왕조는 무능한 황제들의 연속이었고 교황 권력에 순응한 오토 1세 이후 강성해진 교권은 수많은 작위 보유자들로부터 특권을 얻어내며 영향력을 확대해가고 있었다.

이때 교회 권력에 대항하며 등장한 자가 팔라티노 백작 헤르만 2세였다.

과거 팔라티노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헤르만 1세의 후예를 자청한 헤르만 2세는 오늘날 제국의회의 전신인 제국 대공위를 개최했다.

제국 대공위는 카롤루스 왕조 정통성 논쟁 시기 교황을 지지했던 속권의 학자들이 주장한 의무 이행론(의무를 이행하지 못한 지도자는 신민에 의해 권리 주장을 당할 수 있다.)을 바탕으로 황제의 권리와 의무를 제국 대공위에게 이양 할 것을 천명했다.

당연히 교황과 황제는 제국 대공위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오랜 시간 무능한 황제와 부패한 교회의 착취 속에 불만을 쌓아온 수많은 작위 보유자들은 제국 대공위에 참여 하였고 헤르만 2세는 스스로를 과거 프란시아 왕국을 실질적으로 통치했던 궁재처럼 궁정백의 작위를 새롭게 창설 할 것을 선포했다.

하지만 헤르만 2세가 황제의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북방의 해적들과 전투를 벌이던 도중 갑작스럽게 사망 하면서 대공위는 빠르게 해체 되었다.

바다늑대시대 말기 카를 대왕이 황제로 즉위하기 직전 제국은 크게 세 분류로 나뉘어졌다.

첫 번째는 극단적이며 이단적이라는 평가까지 받아 붕괴한 라틴 아베로에스 학파와 볼로냐 대학의 루멘법 주석학파의 저서들을 온건하게 수용한 교회의 부속 교육 기관 스콜라의 이름을 딴 스콜라 학파이고

두 번째는 기존의 성 아우구스틴의 사상을 계승한 순수 신학으로 유명한 클뤼니르 수도원 출신의 교황 그레고리오 7세를 주축으로 구성된 순수 신학 교회 개혁파인 그레고리오 학파이며

마지막 세 번째는 순수 신학만을 추구하던 그레고리오 학파에서 분리된 성 아우구스틴의 사상을 계승한 정치사상 학파인 보편 제국 학파이다.

스콜라 학파는 신앙과 이성의 논쟁에서 이성의 우위를 주장한 라틴 아베로에스 학파의 주장을 어느 정도 수용하여 신앙과 이성은 서로 우위를 점해야 할 갈등의 대상이 아닌 공존의 관계라고 주장했다.

기존의 플라톤 사상을 수용한 기존의 성 아우구스틴의 사상에서 벗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수용한 스콜라 학파는 정치 철학 분야에서도 성 아우구스틴의 사상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는데

속권을 어둠에 의해 자유의지를 얻은 지성체의 타락으로 인해 생겨난 필요악으로 본 성 아우구스틴의 사상과는 달리 스콜라 학파는 속권이 타락에 의한 것이 아닌 자연적으로 성립된 신의 섭리하고 주장했다.

특히 스콜라 학파의 완성자 교회박사 성 아퀴나스는 어둠에 의해 자유의지를 지니게 되었다는 주장 대신 지성체는 빛의 꿈 시절(에덴)부터 자유의지를 지녔으나 이 자유의지를 선하게 사용할 초자연적 이성을 지니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초자연적 이성은 개개인에 따라 그 크기가 달라 초자연적 이성의 크기가 큰 자가 초자연적 이성의 크기가 작은 자를 지도하는 과정에서 지도자가 등장했다고 주장했다.

빛의 꿈 시절 이후 어둠은 지성체에게서 초자연적 이성을 빼앗았고 초자연적 이성의 빈 공간에는 지금의 이성과 비이성이 남게 되었으며 비이성이 선의 결핍을 만든다고 주장했다.

속권이 신의 섭리에 의한 것이라고 논리적으로 입증한 성 아퀴나스의 주장을 근간에 두는 스콜라 학파는 속권이라는 표현 대신 국가라는 표현을 이용해 최대한 많은 수의 이성을 지닌 자들이 비이성을 경계하고 안전을 도모하며 교회와 함께 구원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중앙교회의 중심지 교황청에 대한 개혁에 성공한 그레고리오 7세는 그레고리오 학파와 함께 지방의 부패하고 지방분권화 되며 특권을 지니고 있던 주교단을 개혁하기 위해 움직였다.

이들은 정치 철학보다는 순수 신학을 중시하였지만 교회 개혁 과정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은 순수 철학만을 추구하는 그들의 바람과 달리 정치 철학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해석들을 가져왔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훗날 서임권 투쟁으로 정의되는 황제 하인리히 4세와의 갈등이다.

본래 제국 내 성직자의 서임에 관한 권리는 후대를 지정할 성직자와 그 지역의 최고 작위 보유자 그리고 황제가 지니고 있었다.

그레고리오 학파는 공의회를 개최해 부패한 주교들을 퇴임시키고 교황이 새로운 주교를 임명시켰다.

그리고 이때 그레고리오 7세는 무능하거나 타락한 지도자는 교황 뿐만 아니라 공의회를 통해 파문과 퇴임이 가능하다고 천명했다.

이에 대항하여 하인리히 4세가 군을 동원해 퇴임된 주교들을 다시 복위시켰으나 하인리히 4세의 파문과 이로 인해 일어난 카노사의 굴욕으로 성직자 서임권은 보름스 협약을 통해 완전히 교황의 권리가 되었다.

이후 보름스 협약은 교권과 속권이 각자 고유한 영역을 지닐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협약으로 해석 되었다.

순수 신학과 교회 개혁에 중점을 둔 그레고리오 학파와 달리 성 아우구스틴의 사상을 계승하면서 새로운 정치 철학을 구축한 보편제국 학파는 루멘법 주석학파의 일파들이 주축이 되어 형성된 학파로 이들은 과거 루멘 제국처럼 통일된 하나의 보편제국을 건국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편제국 학파는 지금까지 축적 되어온 루멘법 번역본과 주석들을 근거로 목표는 동일하지만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방법이 달라 서로 분열되고 갈등하는 교회국가를 대신해 목표로 나아가는 방법까지 하나로 통일하여 더욱 효율적이고 확실하며 안전하게 구원을 향해 나아가야 하며 이때 보편제국의 최고 통치자는 황제로서 교황은 자신의 영역에서 황제를 보좌하는 역할만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은 보름스 협약에서 교권과 속권이 각자 고유한 영역을 지닐 수 있다는 사실에서 근거 했으며 보편제국 학파는 교권과 속권의 영역을 확립하는 것이 보편제국 성립의 첫 걸음으로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