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희 (벚꽃):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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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글씨 색|#337AB7|언론인}} 출신 {{글씨 색|#337AB7|정치인}}. 제34·35대 [[서울특별시장]]을 역임하였으며 역대 최초 3선 서울특별시장이다.
[[대한민국]]의 {{글씨 색|#337AB7|언론인}} 출신 {{글씨 색|#337AB7|정치인}}. 제34·35대 [[서울특별시장]]을 역임하였으며 역대 최초 3선 서울특별시장이다.
==생애==
==생애==
===MBC 입사===
1984년 MBC에 아나운서로 입사한 후, 빠르게 입지를 다져서 2년 만에 마감뉴스와 아침 뉴스의 진행을 맡았다. 그러나 손석희는 기자로 활동하고 싶어해 회사에 여러 차례 요청한 결과, 보도국으로 발령되어 기자가 되었다. 기자 생활 동안 특종을 잡지 못해 기자로서 능력을 인정받지 못했고, 결국 1년 만에 다시 아나운서로 발령되었다. 이후 손석희는  {{글씨 색|#337AB7|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글씨 색|#337AB7|6.10 항쟁}}, {{글씨 색|#337AB7|대한항공 858편 폭파사건}}, {{글씨 색|#337AB7|13대 대선}}, {{글씨 색|#337AB7|13대 총선}}, {{글씨 색|#337AB7|1988 서울올림픽}}, 5공 청문회가 펼쳐지는 격동의 시기 동안 1989년 10월까지 주말 {{글씨 색|#337AB7|MBC 뉴스데스크}}와 {{글씨 색|#337AB7|MBC 뉴스센터}} 앵커직을 맡는다. 뉴스데스크 앵커직을 맡은 후에는 저녁 뉴스 앵커, 아침 뉴스 진행을 맡게 되었으며 이후 퀴즈 아카데미의 진행자로 대중들에게 친숙해졌으며, 이때 연출을 맡았던 {{글씨 색|#337AB7|주철환}} PD와 함께 활약했다.
===서울특별시장 출마===
===서울특별시장 출마===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벚꽃)|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글씨 색|#337AB7|민주당}}이 [[서울특별시장]] 후보로 손석희를 전략공천했다. 당시 민주당에서 서울시장 후보 출마를 검토하면 박영선, 추미애 의원 등의 반발이 있었으나 결과적으로 좋게 마무리된 것으로 보인다.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벚꽃)|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글씨 색|#337AB7|민주당}}이 [[서울특별시장]] 후보로 손석희를 전략공천했다. 당시 민주당에서 서울시장 후보 출마를 검토하면 박영선, 추미애 의원 등의 반발이 있었으나 결과적으로 좋게 마무리된 것으로 보인다.

2023년 12월 21일 (목) 14:29 판


서울특별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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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김형민
제2대
윤보선
제3-4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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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제7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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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대
임흥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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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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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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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순
제31대
고건
제32대
이명박
제33대
맹형규
제34-36대
손석희
제37대
박영선
제34·35·36대 서울특별시장
손석희
孫石熙 | Sohn Suk-hee
출생 1956년 7월 27일 (67세)
서울특별시 중구
거주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평창동
본관 밀양 손씨 (密陽 孫氏)
현직
재임 기간 제34·35·36대 서울특별시장
2010년 7월 1일 ~ 2022년 6월 30일
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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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자매 누나 손영민
자형 주철환
배우자 신현숙[1]
자녀 슬하 2남[2]
학력 서울용강국민학교 (졸업)
서라벌중학교 (졸업)
휘문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법학 / 학사)
국민대학교 문과대학 (국어문학 / 학사)[3]
미네소타 대학교 언론대학교 (저널리즘학 / 석사)
병역 대한민국 육군 병장 만기전역
신체 176cm
종교 가톨릭 (세례명: 마르첼리노)
소속 정당
주요 경력 아나운서국 아나운서(1984~1987,1989~2006)

앵커(1986)
MBC 보도국 사회부 기자(1987~1989)
MBC 뉴스데스크 주말앵커(1987~1989)
MBC 뉴스센터 앵커(1989)
MBC 저녁 뉴스 앵커(1990)
전국언론노조 MBC본부 대외협력위원회 부간사(1992)
MBC 뉴스와이드 앵커(1994)
MBC 뉴스투데이 앵커(1995)
MBC 아나운서국 차장대우(1997~1998)
MBC 아나운서국 차장(1999~2002)
MBC 아침 뉴스 2000 앵커(2000)
MBC 100분 토론 진행자(2002~2009)
MBC 아나운서국 아나운서2부 부장(2002)
MBC 아나운서국 아나운서1부 부장대우(2003)
MBC 아나운서국 국장(2005~2006)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2004)
성신여자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2006~2010)

약칭

개요

대한민국언론인 출신 정치인. 제34·35대 서울특별시장을 역임하였으며 역대 최초 3선 서울특별시장이다.

생애

MBC 입사

1984년 MBC에 아나운서로 입사한 후, 빠르게 입지를 다져서 2년 만에 마감뉴스와 아침 뉴스의 진행을 맡았다. 그러나 손석희는 기자로 활동하고 싶어해 회사에 여러 차례 요청한 결과, 보도국으로 발령되어 기자가 되었다. 기자 생활 동안 특종을 잡지 못해 기자로서 능력을 인정받지 못했고, 결국 1년 만에 다시 아나운서로 발령되었다. 이후 손석희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6.10 항쟁, 대한항공 858편 폭파사건, 13대 대선, 13대 총선, 1988 서울올림픽, 5공 청문회가 펼쳐지는 격동의 시기 동안 1989년 10월까지 주말 MBC 뉴스데스크MBC 뉴스센터 앵커직을 맡는다. 뉴스데스크 앵커직을 맡은 후에는 저녁 뉴스 앵커, 아침 뉴스 진행을 맡게 되었으며 이후 퀴즈 아카데미의 진행자로 대중들에게 친숙해졌으며, 이때 연출을 맡았던 주철환 PD와 함께 활약했다.

서울특별시장 출마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민주당서울특별시장 후보로 손석희를 전략공천했다. 당시 민주당에서 서울시장 후보 출마를 검토하면 박영선, 추미애 의원 등의 반발이 있었으나 결과적으로 좋게 마무리된 것으로 보인다.

서울, 다시 시작
담대한 변화

― 손석희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 슬로건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민주당 손석희의 상대 후보로는 현 시장인 맹형규, 자유선진당 지상욱, 미래연합 석종현이 있었다. 선거 초반 접전의 양상을 보이는 것으로 보였으나 이후 토론에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손석희 후보가 맹형규 후보의 허점을 지속해서 파고 들면서 서울시장 선거 모든 토론에서 맹형규 후보가 사실상 모두 패배한 분위기였다. 그만큼 손석희가 토론에서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선거 결과, 예상되었던 것처럼 손석희 후보가 현직 시장인 맹형규 시장을 꺾고 당선되었다. 선거 막판에 보수층이 결집하는 모습을 보이며 기존 여론조사보다 격차가 줄었으나, 현직 프레임을 가지고 있던 맹형규 시장을 상대로 승리하였으니 더욱 의미있는 선거였다. 손석희 후보의 경우 232만표를 얻어 197만표를 얻은 맹형규 후보를 꺾고 제34대 서울특별시장으로 취임한다.

제34·35대 서울특별시장

제34대 서울시장으로 취임한 손석희는 서울시의회의 다수당 역시 민주당이었기에 정책 추진에 있어 큰 어려움을 겪지 않을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손석희 시장의 취임 초에는 아나운서만 해보고 토론 사회자와 라디오 진행자만 해 봐서 조직을 지휘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다며 리더십에 대한 비아냥이 존재했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그것은 억측에 불과했다.

손석희의 서울시장 취임 이후 중국 사회과학원 도시 경쟁력 지수는 세계 27위에서 6위로, 광역자치단체 청렴도는 15위에서 1위로 상승했다. 또한 UN 공공행정 대상 2회, 우수상 3회를 수상하고 서울시 관광객이 30% 증가하는 업적을 이루었다. 이전 중국 사회과학원 도시 경쟁력 지수가 15위, 광역자치단체 청렴도 10위였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는 엄청난 성과라는 것을 볼 수 있다.

여담

  • 엄청나게 동안이며 외모 역시 훈훈하게 생겼다는 평가를 받는다.
  • 2009년 100분 토론 고별방송에서 박원순 당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가 동안의 비결이 대체 뭔지 물어보기도 했는데, 이 질문이 나오자 청중들이 빵 터졌고, 손석희는 "굳이 답변을 드리자면, 제가 동안이 아니라 박 변호사님께서 노안이십니다."라는 말을 해서 청중들을 빵 터지게 만들었던 적이 있다. 참고로 박원순과 당시 패널이었던 노회찬, 손석희까지 모두 1956년생 동년배다.
  • 2010년 지방선거 출마 이전부터 양당의 러브콜을 받았다고 한다.
  • 2001년과 2004년 성균관대학교, 연세대학교의 겸임교수를 지냈다. 강의식 수업은 아니고 교양 과목으로 '말하기와 토론' 수업을 진행했다. 손석희 본인과 토론하는 경우도 많았는데, 토론 때 아예 전제를 흔들어 버리는 경우도 있었다는 증언이 있다. 다소 반칙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애초에 토론하러 나오는 입장에서 자신의 주장에 대한 기본적인 팩트체크도 하지 않고 나와서 그것을 마치 옳은 것마냥 주장하는 사례들이 적지 않다. 당장 게임의 유해성에 관련한 100분 토론만 보더라도 알 수 있는데, 해당 토론의 경우는 한쪽이 자신이 맞다고 일방적으로 무논리로 밀어붙이는 상황에서 토론 진행자조차 그쪽 전제만을 편들기까지 했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고 있어서, 토론 와중에 양쪽 의견을 조율해야 하는 사회자의 입장에서는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아야 하고 양쪽 모두의 의견에 귀 기울이면서도 양쪽이 주장하는 의견에 깔려 있는 전제에 대해서도 의심을 품는 태도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때문에 당시 수업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갈렸다고. 학력 컴플렉스를 자주 드러냈다는 증언도 있는데 이게 문면만 봐서는 진지하게 열등감을 표출하는 것이었는지 아니면 흔히 말하는 자학개그의 일종이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 최종 학력이 석사임에도 불구하고 2006년 3월 성신여자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전임교수로 임용되었다. 성신여자대학교에서도 똑같이 '말하기와 토론' 수업을 맡았는데, 토론에서 학생들을 상당히 하드하게 다뤘다고 한다. 수업 자체가 마찬가지로 손석희와 토론인데 그러다보니 눈물을 머금으며 나가는 학생도 많다고 한다. 성신여대생들이 이 수업을 '말하기와 토하기'로 불렀다고 하는데, 진실인지 확인하기는 힘들지만, 손석희 본인이 스스로 강의계획서에 "학생들이 이 수업을 '말하기와 토하기'로 부른다"고 적어놓은 것이 캡쳐되어 인터넷에 떠돌면서 유명해졌다. 또 커리큘럼엔 타 대학과 토론 배틀을 붙는 수업도 있었다. 수시 논술고사에서 직접 시험 감독을 맡고 있었다는 증언이 디씨 등을 통해 흘러나오기도 했다. 논술고사가 끝나면 사진과 사인 공세에 많이 시달렸다고.
  • 손석희는 최종 학위가 석사 학위임에도 불구하고 전임 교수로 임용되었는데 이는 근래에 흔치 않다. 과거 해방 직후 고학력자가 없던 시절에는 석사 출신이 교수가 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지만, 21세기 이후 4년재 대학에서 석사 출신 교수를 임용하는 사례는 사실상 사라졌다. 게다가 손석희는 학자로서 학회에 논문을 게재한 실적도 없기 때문에 더더욱 일반적이지 않은 사례이다. 학문적 성과가 없다 하더라도 해당 분야에서 전문성을 인정받아 교수가 되는 사례가 아예 없지는 않지만, 그마저도 전문대학의 경우다. 4년제 대학교는 계량화된 학문적 성과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임용 기준이 된다. 4년제 대학교에서 직업적 전문성을 가진 과목을 강의하는 교원은 '겸임교수'로 임용되며, 손석희 본인도 성신여대 이전에 성균관대와 연세대에서 겸임교수 자격으로 강의한 적이 있다. 겸임교수는 전임 교수와 달리 기본적으로 계약직이며 과거 시간 강사와 크게 다르지 않는 대우를 받는다. 혹은 전공 과정이 아닌 1학년 교양과정을 위한 교양학부 교수로서 과거 시간 강사의 역할로서 석사 학위 소지자가 임용되는 경우가 아주 가끔 있다. 교양학부 교수는 전임 교수들과 달리 계약직인 경우가 많으며, 연봉 체계도 다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마저도 예전의 일이며, 지방의 극소수 대학에서나 존재하는 사례다. 이와 비슷한 사례로 동양대 교양학부 교수를 역임한 진중권이 있는데, 진중권의 경우 자신의 임용을 특혜라고 생각한다며 교수를 그만두었다.
  • 육군군수사령부 본부에서 비서실 행정병으로 군 복무를 했으며, 군수사 초청 강연에 온 적이 있을 정도로 군복무 시절 근무지에 대한 나름의 애정이 있다고 한다.
  • 가수 김종서의 팬이라고 한다. 미국 유학 시절에 김종서 3집 테이프 하나만 들고 가서 주야장천 들었다고 한다. 후배 아나운서들에 증언에 의하면, MBC 아나운서 국장 시절에 회식 자리에 가면 항상 김종서의 노래를 부른다고 한다. 높은데도 잘도 부른다고 한다.

선거이력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여부 비고
2010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서울특별시장
2,327,864 (52.93%)
당선 (1위)
초선
2014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2,895,583 (59.05%)
재선
2020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종로
재선
  1. MBC의 간판 유아 프로그램인 뽀뽀뽀 시리즈의 제 4대 뽀미언니 출신이다.
  2. 이 중 차남 손구민은 경향신문을 거쳐 현재 MBC에서 기자로 재직 중이다.
  3. 재수를 해서 국민대학교에 합격한 이후 반수의 형태로 두 번 더 대입에 도전해 모두 실패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