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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악마와의 성전(도시).png

'악마와의 성전' 세계관은 세상이 악마를 믿는 종교, 마교와 신을 믿는 종교, 신교와의 전쟁과 갈등, 그리고 같은 종교 내에서 일어나는 종교개혁과 종교전쟁이 주가 되는 세계이다. 이 세계관은 중세시대로, 마교칼루스 교칼비스 교로 나뉘어 서로를 경계하고, 어떨때에는 서로 전쟁을 하고, 신교디아스 교디누스 교는 서로 협력을 하곤 하지만, 이들이 마교를 퇴치하는 순간 이들또한 마교처럼 종교전쟁을 하며 싸울것이다.

마교를 믿는 국가는 셰룸, 베페루티누, 레젠티오, 이그나, 메리디스, 시누스, 레우티오, 노바투스, 아우투스,노비타스칼루스 4대국, 칼비스 6국이다. 그에비해 신교를 믿는 국가는 오직 레그눔뿐이다. 허나 레그눔마교를 믿는 국가들중 단 2국가만이 아는 섬에서 조용히 힘을 기르고 있고, 기술의 발전 또한 최근 비약적으로 발전중에 있다. 가끔가다 신교도해적들이 마교도의 배를 공격할때에는 둘의 숫자가 같다고 해도 원거리에서는 마교도가 피해를 더 많이 받았고, 해적들이 손에 연기가 나오는 나무막대기를 쥐고 있다면 그들은 꽁지빠지게 도망갔다.

또한 이 세계에는 신이자 악마인 자가 내려와있는데, 그녀는 레그눔의 기사로써 이름을 펼치고 있다고 한다. 혹시 아는가? 전우가 신이자 악마일수도?

역사

인류

고대에, 아니 고대 이전에 인류가 탄생하였을때, 인류는 레젠티오알테르 지방에서 처음 생겨난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점차 해안선을 따라 영역을 펼쳐나가며, 결국엔 서로 부족을 이루며 공동체 생활에 접어들게 된다. 각 부족들은 자신들에게 어떤 어려움이 닥칠때마다 자신들을 보호해줄것이라 믿을수 있는 존제를 만들어냈고, 그것이 신, 토속신앙이였다. 이들의 토속신앙에서의 신은 동물, 물건, 자연물 등 여러가지 존제가 되었고, 나중에는 부족을 점령하고 자신들의 신을 전파시키는 것이 시작되었다. 때문에 힘이 강한 부족의 신만이 살아남아 더더욱 강해졌으며, 부족민들은 전투때 신이 자신들을 보호해줄것이라고 믿고 용맹하게 싸웠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에 남은 종교가 남부에는 신교, 북부에는 마교가 남게되었다. 이 둘은 서로가 믿는 신이 자신의 신의 반대의 인성을 가졌기 때문에 마교도들은 신교도에게 악마다, 신도교는 마교도에게 악마다라고 서로 갈등은 깊어갔다.

제 1차 신-마 전쟁

신교마교알테르 강을 중심으로 인류가 개척시킨 영역 대부분을 나누었다. 그러다 PR.1년, 신교를 믿는 부족들 중에서 메리디아누스 가문이라는 부족이 현재의 메리디아누스에서 신교국가를 세웠다. 이후 PR.50년, 마교도 부족국가들이 알테르 강을 넘어온다. 또한 이 알테르 강을 넘어서 신교를 믿는 부족들에게 표교활동을 벌이기 시작하였다. 허나 서로 반대성향이였던 종교를 믿는 사람이 없었으니... 결국 넘어온 마교도들은 본국으로 돌아가고, 대신 마교부족들의 군대가 쳐들어온다. 결국 제 1차 신교-마교 전쟁이 발발하였다. 전쟁초기 마교도들은 시온까지 내려왔으나, BR.55년, 신교도들에 의해 알테르 강 이북으로 도망쳤다.

제 1차 신-마 전쟁 이후

마교도들을 몰아낸 신교도들은 알테르 강 이남에서 서로 세력권을 두고 싸우기 시작하였다. 그에 비해 알테르 강 이북의 마교도들은 각 부족끼리 연맹하며 동쪽으로 개척을 계속하였다. PR.80년 대에는 메리디아누스 왕조알테르 강이남의 맹주로 자리잡는다. 그러다 PR.110년, 켄트룸에서 켄트룸 왕조이라는 국가가 건국되었다. 그들은 메리디아누스 왕조를 경계하며 메리디아누스 왕조가 북쪽으로 진행하지 못하도록 PR.132년에 엘리스를 점령하면서 메리디아누스 왕조가 북쪽으로 영역을 넓히지 못하게 하였다. 그들은 수십년간 서로 싸우며 보병의 힘을 길렀고, 특히 보병 중에서 경보병의 비중이 늘어났다. 또한 이 경보병들을 멀리서 처리하기 위해 쇠뇌를 사용하였고, 때문에 군대를 유지하는데 그리 많은 돈이 들지않았다. 알테르 강 이북의 마교도들은 서로 싸우는 것이 아닌 화합과 개척을 선택하였다. 그들은 개척되지 않은 영토를 개척시키며 점점 동쪽으로 뻗어나갔다. 그들은 동쪽으로 영역을 개척시키며 제 1차 신교-마교 전쟁에서의 패배를 앙갚음하기 위해 힘을 길렀다. 그결과 그들은 서부 개척지에서 발견한 을 군대로 삼기로 결심하고 서부개척지에서 기병을 기우기 시작하였다. 또한 그들은 기병이 쓸 랜스를 개발하여 만들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또한 갑옷으로 무장한 중보병중장기병 엄호역할로 넣었고, 그들은 하나하나의 힘은 강하지만 숫자가 적고 비용도 꽤나 나가게 되었다.

제 2차 신-마 전쟁의 징조

제 1차 신교-마교 전쟁이 끝난뒤 80여년이 지난 PR.142년, 마교도들의 중장기병들이 자츰 알테르 강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허나 알테르 강 이남의 신교도들은 메리디아누스 왕조켄트룸 왕조, 알테르 왕조로 나뉘어져 서로 싸움질하기 바빳고, 메리디아누스신교 교황령은 국가들 사이에서 권력을 잡기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때문에 알테르 왕조의 국경부대가 마교도의 중장기병을 발견하였음에도 그들은 전쟁을 멈추지 않았고, 그들의 내부에서도 왕위다툼이나 영주들 사이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에 비해 마교도들은 수십년간 길러온 중장기병중보병, 장궁부대들을 알테르 강에 배치시켰고, PR.144년에는 몇몇 장궁부대들이 밤에 알테르 강 이남으로 내려가 알테르 지방의 군사시설들을 조사하기 시작하였다. 그럼에도 신교도 국가들은 알테르 강의 경계를 소홀히하였고, 결국 PR.149년에 알테르 왕조에게 마교도들의 최후통첩이 날라온다.

제 2차 신-마 전쟁

알테르 왕조는 마교도들의 군대가 형편없으며, 식량도 부족할 뿐더러 숫자도 부족할 것이라고 판단하였고, 최후통첩을 거부함과 동시에 마교도 사신에게 온갓 욕을 퍼붙고 매질까지하여 돌려보냈다. 이에 마교도들은 분노하였고, 결국 PR.150년 1월에 그들은 얼어붙은 알테르 강을 건너 알테르를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알테르 전투

알테르 왕조알테르 강을 넘어오는 중기병을 막기위해 강가에서 전투를 펼쳤으나, 중장기병의 랜스돌격에 의해 경보병들의 진형은 무너졌고, 진형이 무너진 틈을 타 중보병들이 달려드니 알테르 왕조경보병쇠뇌 사수들은 전멸하였다. 한바탕 평원에서의 전투 이후 살아남은 알테르 왕조의 군대는 알테르 성에서 공성전을 준비하였다. 허나 그들의 성은 고작 나무목책으로 된 구시대적인 성이였고, 하루만에 나무목책과 함께 알테르는 불타버린다. 알테르 전투에서 패배한 디스케토 국왕메안데르로 도망친다.

시온 전투

알테르가 함략당한뒤 며칠뒤, 마르키아나발레가 줄줄히 함략되었고, 이 소식을 듣고 뒤늦게 달려온 신교도 군대는 시온에서 마교도의 중기병과 맞선다. 전투가 시작되고, 마교도의 중장기병들은 일제히 랜스 돌격을 시작하였다. 신교도의 쇠뇌 사수들은 중장기병들이 30m 내외로 들어오자 일제히 쇠뇌를 당겼다. 허나 그들의 볼트는 중장기병들의 사슬갑옷의 이를 부러트리는데 그쳤고, 곧이어 중기병들은 쇠뇌 사수들의 진형을 뭉게버리기 시작하였다. 중장기병들이 학살은 시작한뒤 얼마뒤 후방에 있던 경보병들은 중장기병들에게 달려들었다. 허나 그들은 그들의 조차 죽이지 못하고 일제히 도망쳤다. 결국 시온 또한 하루만에 함략당한다.

메안데르 공성전

시온이 함략당하고 나흘뒤, 마교도의 중장기병들은 메안데르에 도착하였다. 그들은 도착하자마자 메안데르를 외부로부터 고립시켰고, 그 사이에 신교도의 군대가 다시 그들과 맞섰다. 강가에서 시작된 전투에서 경보병들은 일제히 돌격하였으나, 순식간에 전멸당하고 뒤이어 중장기병들은 쇠뇌 사수들을 공격하였다. 결국 몇몇 쇠뇌 사수를 제외하고는 전원 전멸하였고, 메안데르는 결국 항복한다.

알파 협정

메안데르가 함략당하니 그 안에 있던 알테르 왕조의 국왕인 디스케토 국왕은 항복협정을 체결하게 되었다. 그들은 메안데르에서 협정을 체결하기 원했으나, 메안데르는 이미 불타 제가 되었고, 때문에 그나마 건전한 알파에서 항복협정이 체결되었다. 이 협정에는 다른 신교도 국가들도 참여하였고, 모두 마교도들의 조건을 들어주었다. 이 협정으로 알테르 강이였던 마교신교의 국경은 더욱히 내려와 안데르 강이 새 국경이 되었고, 알테르 왕조는 멸망하고 만다. 허나 안데르 강 이남의 알테르 왕조의 영토는 다행히 살아남았다. 허나 디스케토 국왕과 그의 가문은 모두 알테르에 남아 인질로 잡혀있게 되었고, 때문에 알테르 왕조는 이어질수 없었다. 그러니 영주 레스티투티오가 중심이 되어 움보움보 왕국을 세우며 알테르 왕조를 계승하였다.

제 2차 신-마 전쟁 이후

알테르 지방의 종교전쟁

소규모 종교전쟁

알파 협정이 체결된 이후 신교의 활동범위는 안데르 강 이남으로 바껴버렸다. 그에 비해 마교알테르 강에서 남하하여 안데르 강에서 멈추니 알테르 지방은 그들의 것이였다. 마교가 전파되던 알테르 지방에서는 아직도 마교를 이단으로 취급하는 신교도들이 많았다. 때문에 알테르 지방마교를 믿는 구 알테르 인신교를 믿는 구 알테르 인끼리의 폭동이 매일매일 일어났다. 매일매일이 전쟁터였다. 그들은 집에 있는 농기구며 식칼이며 죽창이던 아무거나 들고와서 자신들에게 이단인 종교인들을 학살하기 시작하였다. 이 전쟁은 알테르 신교-마교 전쟁으로 불렸다. 알테르 신교-마교 전쟁은 PR.151년부터 PR.194년까지 무려 40여년간 벌어졌다. 이 전쟁을 보다못한 마교도들은 결국 중장기병을 이끌고 이 사태를 일으킨 신교를 박해하기 시작한다.

대학살

마교도의 중장기병은 사단을 일으킨 주범으로 신교를 주목하게 되고, 그들은 저마다의 기준으로 신교도를 착출해네기 시작하였다. 마교도의 중장기병들은 기사이기 때문에 기사가 된 순간부터 마교의 수호를 맡았다. 때문에 마교와 정반대의 신교는 그들에게는 악마의 종교였고, 마녀사냥과 더불어 신교도 학살을 일으킨다. 신교도 학살이 시작되자 중장기병들은 마교도들의 고발을 듣고는 바로 달려가 랜스로 신교도로 추정되는 인물의 목을 꿰뚫었다. 처음에는 신교도가 대부분이였으나, 후반으로 갈수록 마교도들끼리의 분쟁에 고발로 같은 마교도의 목을 꿰뚫는 일도 있었다. 허나 그들은 마교의 윤리로는 같은 마교도를 공격하지 못하니 자신들이 죽인 자들이 이단인 신교도라고 믿었고, 이는 다른 기사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PR.206년에 이 대학살은 기사단장의 판단아래 종료되었다.

인구 부족

대학살이 12년간 지속되다 보니, 정착부족이 처음 나타난 알테르 지방은 마교도의 대학살로 풍요로운 농토에 의해 많았던 인구는 12년 사이 40%나 줄어버렸다. 때문에 이 알테르 지방에서 나오는 세금은 70%가 증발되었고[1] 이는 알테르 지방에서 이득이 나오지 않는 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때문에 어느 부족도 이 알테르 지방을 차지할려 하지 않았고, 알테르 지방은 주민들까지 버려 빈곤층이 주가 되는 지방이 되었다.

신교의 계속되는 갈등

제 2차 신교-마교 전쟁의 패배로도 신교도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였다. 그들은 이런 중요한 때일수록 더욱 단결해야 한다며 다른 국가들을 공격하여 합병하였으며, 국가내에서도 영주들의 밥그릇 싸움은 계속되었다. 그러니 중장기병의 도입은 전쟁비용으로 자꾸만 미뤄졌다. 그런데도 신교도 국가들은 이단들은 신(디오스)이 막아준다면서 마교도들과의 국경에는 무척이나 소규모의 민병대가 배치되었다. 그러던 PR.192년, 메리디아누스 왕조메리디알리스 가문의 핏줄이 끊어졌고, 이는 지방 영주들의 대규모의 밥그릇 싸움이 시작된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메리다아누스 내전
시작

PR.192년, 왕조의 마지막 핏줄인 스펙탄스 국왕이 사망한다. 그가 사망하자 메리디아누스 근처의 영주들이 군대를 이끌고 메리디아누스 성으로 쳐들어간다. 제일 처음으로 점령한 자는 카시웰라우누스 가문카시웰라우누스 나투스였다. 허나 그는 레프레시오 가문레프레시오 프라고르의 군대에 의해 성문 밖으로 몸과 목이 따로 떨어지게 된다. 그의 다음으로 스트라제스 헤레디타스가 군대를 이끌로 쳐들어 왔으나, 레프레시오 프라고르의 대군에 의해 전멸하고 스트라제스 헤레디타스는 자신의 영지로 도망쳐 스트라제스 왕조를 선포한다.

달려드는 지방영주들

PR.193년, 지방영주들에게 스펙탄스 국왕의 서거사실과 메리디아누스 가문의 핏줄이 끊어졌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또한 몇몇 지방영주들은 레프레시오 프라고르카시웰라우누스 나투스스트라제스 헤레디타스의 군대를 물리치고 메리디아누스 성의 권력을 장악하였다는 소식 또한 들었다. 그러던 PR.194년, 모든 지방영주들이 독립을 선언한다. 이는 메리디아누스 왕국의 해체였고, 결국 레프레시오 프라고르레프레시오 왕조메리디아누스 성에서 선포하고, 영토를 메리디아누스 성과 그의 영지인 체사르로 선언하였다.

본격적인 내전

내전은 PR.192년 스펙탄스 국왕이 사망한 순간부터 볼수 있으나, 본격적인 시작은 PR.198년으로 볼수 있다. PR.198년에 스트라제스 왕조는 그의 주변 국가들에게 전쟁을 선포하였다. 이에 메리디아누스레프레시오 왕조스트라제스 왕조가 선전포고한 나라들을 도와 참전하였다. 이에 그들은 호라에서 전투를 벌인다. 그들의 전력은 비등비등하였다. 허나 스트라제스 왕조의 군대는 경기병경보병보다 많았고, 반 스트라제스 군은 경보병쇠뇌 사수들이 대다수를 차지하였다. 전투는 스트라제스 왕조의 승리로 돌아갔다. 초반에 경기병들은 볼트에 맞아 쓰러졌으나, 곧 경보병에게 돌진하여 랜스돌격을 시전하였다. 그리고 쇠뇌 사수들 또한 같은 상황이 되었다. 그러니 승패는 확고하게 갈라졌다. 결국 전투에서 패배한 연합군은 해산되어 스트라제스 왕조의 폭주를 예견하였다.

스트라제스의 폭주

호라 전투에서 승리하고 연합군에게 큰 타격을 준 스트라제스 왕조는 폭주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호라를 점령하고서 레프레시오 왕조체사르를 공격하여 점령하였다. 결국 PR.195년에는 메리디스 지방에서 메리디아누스를 제외하고는 모두 스트라제스 왕조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PR.196년에 스트라제스 왕조는 지난 PR.192년의 패배를 복수하기 위해 메리디아누스로 향했고, 전투가 벌어진다. 레프레시오 왕조의 군대가 스트라제스 왕조의 숫자보다 적었으나, 공성전의 특징으로 인해 그들은 10여 개월간 방어에 성공한다. 허나 10개월이 지나자 겨울이 찾아왔고, 창고에 있던 곡물또한 모두 소진되었다. 결국 메리디아누스 성 내에서는 아사자들이 속출하였고, 결국 11개월째에 그들은 항복한다. 허나 항복식에도 레프레시오 프라고르메리디스 지방을 벗어나 도망친다.

내전의 종식

스트라제스 왕조의 폭주로 레프레시오 왕조가 무너지자 메리디스 지방레프레시오 왕조의 차지가 되었고, 이 소식을 들은 다른 지방영주들은 스트라제스 왕조의 공포에 휩사였다. 이에 메리디스 강 남부의 전 메리디아누스 왕조의 영토에 휘치해있던 모든 영주들은 스트라제스 왕조에 항복한다. 그리고 메리디아누스 강 북부의 영주들도 항복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켄트룸 왕조에 의해 점령되면서 메리디아누스 내전은 분열으로 마무리 된다.

움보-켄트룸 전쟁
움보 왕국

PR.153년, 알테르 왕조의 실질적 권력자였던 아이기스 쿠리스는 무너진 알테르 왕조의 권력자들을 이끌고 움보로 내려가 움보 왕국을 세운다. 움보 왕국은 시간이 지날수록 이전 알테르 왕조의 영토를 되찾아갔고, 알테르 왕조의 계승자라 칭하던 지방 영주들의 소국들은 모두 움보 왕국에게 합병된다. PR.162년, 움보 왕국은 9년만에 안데르 강 아래의 알테르 왕조의 영토를 점령하였다. 결국 다시 신교는 3대국 시대로 되돌아갔다.

움보의 욕심

PR.186년부터 움보 왕국엘리스 쪽에 군대를 배치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이 국경방위라고 보기에는 부적절하였다. 그들에게 기병은 무척 적었고, 대부분이 경보병쇠뇌 사수로 이루어졌다. 또한 그들은 공성병기까지 가지고 있었다. 이를 본 엘리스 성의 영주는 크루스타 국왕에게 움보 왕국에게 경고를 요구하였으나, 크루스타 국왕은 이를 무시하고 움보 왕국에게 고개를 숙인다. 엘리스 성녹사 아트귀는 분노하였으나, 마음 밖으로 내지는 못하였다. 그러다 PR.191년, 움보 왕국의 암살자들이 녹사 아트귀를 암살하였다. 이에 그의 아들인 녹사 울티오엘리스 성의 영주가 되어 크루스타 국왕에게 움보 왕국에게 배상을 요구하라고 부탁하였으나, 크루스타 국왕은 또 다시 무시하였다. 이에 분노한 녹사 울티오는 군대를 이끌고 움보 왕국의 군대를 향해 공격을 명령하였다. 이에 국경 전투가 발생하였고, 녹사 울티오의 군대가 그들을 상대로 승리한다. 이 사실을 안 크루스타 국왕녹사 울티오의 영지를 뺏었다. 또한 크루스타 국왕움보 왕국에게 다시 고개를 숙였다.

겁쟁이 크루스타

PR.198년, 움보 왕국의 군대가 엘리스 성을 공격한다. 이에 놀란 크루스타 국왕움보 왕국쿠리스 국왕에게 서신을 보내 이 사실이 실수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그러나 크루스타 국왕이 보낸 사자는 쿠리스 국왕에 의해 살해당하고, 쿠리스 국왕은 사신의 목을 잘라서 답변 서신과 함께 말 꼬리에 묶어 보냈다. 이에 크루스타 국왕은 지래 겁을 먹고서는 모든 군대를 켄트룸 성에 소집을 명령한다. 엘리스 성을 방어하던 방어군까지 말이다. 국왕의 명을 거절할수 없었던 엘리스 성의 영주는 모든 군대를 문을 열고 켄트룸 성으로 이동을 명령하였다. 그러나 방어군은 모두 성문이 열리자마자 성안으로 들이닥친 움보 왕국의 군대에 의해 전멸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켄트룸 성에는 켄트룸 왕국의 모든 군대가 소집된다. 아니 소집되었어야 했다. 그러나 몇몇 영주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든 녹사 울티오에 의해 몇몇 부대는 투타멘에 소집되었다. 엘리스 성을 함략시킨 움보 왕국의 군대가 켄트룸 성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켄트룸 성을 포위하기만 했을 뿐, 공격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2개월이 지났다. 2개월이 지나자 켄트룸 성의 식량이 모두 떨어진다. 그러자 몇 만명의 군대가 모여있던 켄트룸 성에는 아사자가 속출하였고, 엄청난 악취가 풍겨져나갔다. 그럼에도 왕실 창고에는 식량이 남아있었다. 그러나 크루스타 국왕은 그 식량을 모두 자신의 식사로 대체하였고, 매끼마다 몇백명이 먹을 만큼의 음식이 그의 상에 올려졌다. 이 사실을 안 몇몇 영주들은 분노하여 왕실로 쳐들어갔다. 크루스타 국왕은 분노하며 물러가기를 명했으나, 그들을 듣지 않고, 오히려 그를 잡아 몸통을 산채로 십수개로 잘라내었다. 크루스타 국왕이 엄청난 고통을 호소하며 사망하자, 그들은 크루스타 국왕의 가족들을 찾아 모조리 죽였다. 모든 것이 끝난 이후 그들은 켄트룸 성 성벽에 백기를 들고 성문을 열었다. 성문을 지나 움보 왕국의 군대가 켄트룸 성에 들어왔으나, 그들은 눈살을 찌푸렸다. 거리에는 아사자들의 시체가 반쯤 썩어 시체에는 쥐가 서식하고 있었다.

녹사 울티오

켄트룸 성이 함략되자 다른 지역은 순식간에 함략되었다. 도시나 마을이나 모두 저항할 생각을 품지 않았고, 켄트룸 왕국은 멸망하였다. 허나 투타멘 근처의 지역은 함략되지 않고 남아있었다. PR.200년, 움보 왕국의 군대가 투타멘에서 물러가자 녹사 울티오투타멘 왕국을 선언한다. 그리고는 근처의 마을들을 합병시키며 영토를 넓혀갔다. 결국 신교도들의 세계는 다시 3개국 체제로 되돌아갔다.

마교도 제국

분리주의자들
3맹주 체제

마교도 부족들은 연맹체 형태를 유지하며, 여러개의 맹주가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허나 맹주가 아닌 부족들 입장에서는 자신들 부족도 아닌 부족에게 이득을 취해주는 입장이여서 현재의 형태가 무척이나 불편하였다. 그러는 반면 맹주 부족들은 자신들의 부족도 아닌 부족이 자신들에게 이득을 취해주니 무척이나 좋은 마당이였다. 허나 자신들 또한 이전의 맹주국의 자리를 뺏었던 만큼 다른 부족들을 경계해야만 하는 입장이였다. PR.200년대 당시에는 3개의 맹주 부족으로 리멘 족, 델타 족, 오라 족이 3맹주로 자리잡고 있었다. 허나 중앙언덕평원에 자리잡아 육로 교역로의 시발점이 되던 오카수스 족과 그와 비슷한 지형에 있는 스파티움 족아이쿠름 족이 맹주의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체제의 붕괴자

그러던 도중 PR.204년, 스파티움 족비부스를 세우고, 아이쿠름 족루페스 족을 자신들 휘하에 놓는다. 이에 리멘 강 동남평원에 있던 델타 족리멘 강에 위치해 있는 리멘 족의 세력에 위협을 받게 되어 오라 족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된다. 오라 족은 두 맹주의 요청을 받고 중장기병 수천기를 파견하여 리멘델타에 주둔하게 되었다. 그런데 오라 족중장기병이 다른 부족의 영역에 주둔하게 되자, 오카수스 족은 자신들의 주력 부대를 오라로 향하였다. 리멘델타에 주둔하던 오라 족 중장기병들은 갑자기 리멘델타를 공격하기 시작되었고, 본격적으로 마교도 제국이 휘청휘청 되기 시작하였다.

과유불급

오라 족중장기병이 두 맹주를 공격하던 도중, 스파티움 족아이쿠름 족도 군대를 파견에 두 맹주에게 도전장을 내세운다. 때문에 두 맹주는 양면으로 적들과 싸우게 되었다. 그런데 오라 족이 한참 두 맹주를 공격하고 있을때, 오라오카수스 족에 의해 공격받게 되었다. 이 사실을 안 오라 족중장기병들은 오라로 퇴각하려 하였으나, 리멘 강에서 진을 쳐두고 있던 리멘 족의 군대에 의해 리멘 강 동부에 갇히게 되었다. 오라 족의 주 군대가 리멘 강 서부로 넘어오지 못하니 오카수스 족은 여유롭게 오라를 공격하여 결국 함략시킨다. 그리고 오라가 함략되던 직후, 오라 족리멘 족리멘 강에서 전투를 벌인다.

3맹주 체제의 붕괴

리멘 강 전투에서 오라 족이 후방에서 오던 델타 족들에 의해 갇혀 전멸당한다. 때문에 3맹주 중 델타 족리멘 족만이 살아 맹주자리를 유지하는 듯 하였다. 허나 PR.206년, 리멘스파티움 족에 의해 함략됨과 동시에 델타 족-리멘 족 연합군이 게타이에서 아이쿠름 족과 전투를 벌인다. 그러나 오라 족과의 전면전 결과 그들의 군대는 무척이나 지쳐있었고, 결국 델타 족-리멘 족 연합군은 대패하고 만다. 그리고 게타이 전투 이후 수 개월뒤, 델타아이쿠름 족에게 함략된다.

마교도 3개국 체제

오라 족, 델타 족, 리멘 족. 이 세 맹주부족은 새로운 강자에 의해 멸망하고 말았다. 그와 함께 마교도 제국은 분열되고 말았다. 마교도 부족연맹체는 분리를 원하고 있던 오카수스 족, 스파티움 족, 아이쿠름 족에 의해 해체된다. 그리고 3맹주 체제를 무너트린 3부족들은 독립적인 국가가 되었다. 오카수스 왕국리멘 강 서부의 대부분 지역을, 스파티움 왕국리멘 강 동북부 지역을, 아이쿠름 족리멘 강 남동부 지역을 차지한다. 결과적으로는 오카수스 왕국이 거대해졌으나, 3개국 안에는 여전히 소국들이, 아니 영주들이 있어서 중앙집권화는 꿈도 꾸지 못하였다.

연방주의자들

PR.207년, 마교도 제국은 3개국으로 분리되었다. 이들은 명목상으로 중앙집권이 된 것처럼 보였으나, 이들의 시작이 분리주의였던 만큼 이들안에서도 분리를 원하는 부족들이 있었다. 그러나 3개국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3개국 체제의 수정을 원치 않았고, 반감을 가진 부족들을 모두 무력으로 진압한다. 그럼에도 분리주의는 여전하였고, 이들은 분리주의자들의 눈을 다른곳으로 돌려야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분리주의 사상에서 새로운 사상을 파생시키기로 하였다. 그결과 분리를 원하면서 소속감을 원하는, 즉 자치권을 원하지만 독립을 거부하는 연방체제를 선택하기로 하였다. 마교도 3대국들은 PR.213년, 자신들의 제국에 수많은 소국으로 구성된, 렉스 체제를 도입하여 소국의 자치권을 보장하면서도 소국들에게 계급을 부여하여 소국 아래에 소국이 있게하였다. 이 체제는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대전쟁의 징조

70년의 세월

PR.228년, 제 2차 신교-마교 전쟁이 끝난 뒤 어연 70년이나 지난 뒤였다. 이 70년 동안 신교도와 마교도는 여러 변화를 경험하였다. 신교는 3대국 중 하나였던 메리디아누스 왕조가 멸망하고 2대국1국 시대로 변하였다. 마교는 마교도 부족 연맹체가 무너짐에 따라 3맹주 체제는 3대국 체제로 바뀌었다. 그럼에도 바뀌지 않은건 신교도와 마교도의 군대라고 볼수 있을 것이다. 마교제 2차 신교-마교 전쟁의 주역이였던 중장기병랜스 돌격이라는 하나의 장르를 만든 주역이기 때문에 여전히, 아니 오히려 더 강력해진 중장기병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들의 방어는 더더욱 견고해져서, 무거운 갑옷을 버티기 위한 언더아머도 새롭게 바뀌는 등 랜스 돌격에 더 흡수되어갔다. 70년전에는 사슬이던 갑옷이 이제는 중무장갑옷이랄까? 그에 비해 신교의 군대는 어젼히 경보병이 중심이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랜스 돌격을 막기위해 파이프폴 암을 도입하여 어느정도 방어력을 띄게 되었다. 그러나 이는 방어에만 특화되어 있어 전장에서는 무척 비효율적이였다.

국경 분쟁

PR.229년에 평화롭던 세계에 커다란 돌맹이를 떨어트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국경인 안데르 강에서 아이쿠름 왕국움보 왕국간의 전투가 발생한다. 이는 충분히 평화를 깨트릴수 있는 일이였다. 이 안데르 국경분쟁은 PR.229년부터 PR.236년까지 무려 7년이나 지속된다. 이 국경분쟁의 시작은 그저 어이없는것인데, 움보 왕국의 한 무리의 병사가 물고기를 잡기 위해 활과 비슷한 어업도구를 들고 물에 들어갔다 아이쿠름 왕국의 장궁병에게 사살된 일이였다. 십수명이나 되는 병사들은 한명 빼고 다 죽임을 당하였고, 살아남은 한명은 진으로 되돌아가 이 사실을 알렸던 것이다. 결국 이 어이없는 상황은 7년간 수 천명의 병사를 죽음의 구덩텅이로 빠트리는 일이였다.

시작된 갈등

PR.236년에 비로서 움보 왕국테노르 국왕에 의해 종료된다. 허나 이 두 국가의 사이는 더욱 나빠진다. 분쟁이 종료된지 몇개월뒤, 테노르 국왕 앞으로 한 서신이 온다. 이 서신은 팔라키아 서신이라 불리며 내용은 아래와 같다.

우리 마교도들은 그대들의 군대를 물리쳤네. 이것은 신(카일루스)께서 우리를 선택한것이 아니겠나? 악마들의 종교를 믿지 말고 신(카일루스)을 믿어라. 그것이 아니라면 그대들은 우리들과의 전투에서 필패하게 될 것이네. 우리의 신(카일루스)께서는 악마들인 그대들이 일으킨 도발에 대한 보상을 바란다. 신(카일루스)께서는 자네들을 모두 죽이라 하였으나, 우리는 관대하기 때문에 그대들을 지배하기만 하겠네. 만약 그대들이 신(카일루스)를 믿게 된다면 그대들도 지배자가 될수 있네. 카일루스를 믿을 것인가 악마를 믿을 것인가?

이에 분노한 테노르 국왕과 교황은 분노하였고, 교황 네메아 2세는 모든 신교도 국가에게 성전을 선포한다. 이에 신교도들끼리의 전쟁은 멈추게 되고, 모두 군사력을 키우는 데 초점을 맞췄다.

제 3차 신-마 전쟁

팔라키아 전쟁

펠 서신

PR.238년, 2년간 팔라키아 서신의 복수를 위해 힘을 길러오던 움보 왕국은 국경분쟁을 또다시 일으킨다. 이에 대해 아이쿠름 왕국은 이들을 규탄하는 아쿠사토리우스 서신이라 불리는 서신을 테노르 국왕에게 보냈다. 허나 전쟁을 생각하고 있었던 테노르 국왕에게는 아무 의미도 없었고, 오히려 테노르 국왕코루스 1세에게 펠 서신이라 불리는 모욕적인 서신을 보낸다. 모욕을 받을것이라 생각못한 코루스 1세는 매우 흡족해하며 이 서신을 펼쳤는데, 왠걸? 엄청난 모욕이 들어가있었다. 이에 분노한 코루스 1세는 전 국토의 군대를 모두 소집를 명령하였고, 전국에서 강제적으로 노숙자나 평민들이 징집되어 그 수가 수십만에 이르렀다.

북 안데스 대전투

PR.240년, 이십만에 달하는 오합지졸 군대가 징병되자 코루스 1세는 사령관으로 전장으로 출전하였다. 이윽고 안데스 강 북쪽에서 강을 넘어온 움보 왕국의 3만 군대와 맡붙는다. 코루스 1세의 5천 기병은 전투가 시작되자 움보 왕국에게 돌진한다. 5천 중장기병들은 랜스를 들고 화살비를 헤쳐나갔다. 이윽고 움보 왕국의 진에 다다른다. 허나 전면에 위치해 있던 보병들은 중장기병에게 파이프를 찔러 넣는다. 전면에서 파이프에 찔린 중장기병들은 순간적으로 놀라 멈칫하는 사이 폴 암을 들고 있던 보병들에 의해 말의 목과 함께 그들의 목이 날라갔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코루스 1세는 18만 보병들을 모두 돌격시킨다. 18만 보병들이 진 중앙에 위치했을 즈음, 옆에 있던 숲에서 움보 왕국의 1만 경비병대가 나타난다. 그들은 바로 코루스 1세장궁병들을 향해 돌격하였으며, 18만 보병들을 양쪽으로 적을 맡게 되었다. 경기병들의 랜스 돌격이 시작되자, 장궁병은 물론 중장보병의 피도 하늘에 흩뿌려졌다. 경기병들의 무장이 뛰어나지 않아서 경기병 또한 많은 피해가 났으나, 장궁병크루스 1세의 호위병력에는 큰 타격을 입혔다. 전투 시작 2시간이 경과되자, 코루스 1세는 도망가기 시작하였다. 그걸 포착한 경기병들은 장궁병 사냥을 뒤로 접어놓고, 도망치고 있는 코루스 1세 향해 돌격한다. 이 모습을 본 코루스 1세는 안간힘을 쓰며 달렸지만, 랜스에 의해 심장이 꿰뚫린다. 총지휘관이 사살되자, 오합지졸의 20만, 아니 6만의 패잔병들을 항복을 선언한다. 전투 시작 3시간만의 일이였다.

알테르 진격

북 안데르 전투에서 코루스 1세가 전사되었다. 코루스 1세의 전사소식은 아이쿠름 왕국뿐만 아니라 마교도 세계를 떠들석하게 하였다. 신교도의 위력을 본 마교도 국가들은 저마다 참전을 곰곰히 생각하였고, 아이쿠름 왕국은 공포에 떨었다. 아이쿠름 왕국은 16만에 달하는 강제징병으로 아이쿠름 왕국 내에 남아있는 징병가능 대상은 고작 10만명 남짓이였다. 그리고 그중에서 상인이나 농부를 빼면 3만명도 남지 않게 된다. 때문에 몇몇 광신도들은 자진해서 지원하여 군으로 들어가고, 상인들은 제바르게 외국으로 도망갔다. 그에 비해 움보 왕국은 사기가 올라 알테르 지방 회복을 위해 공세를 퍼부었다. PR.240년 5월, 움보 왕국의 3만 군대는 시온에서 2천 마교 광신도 게릴라군과 만난다. 알테르 지방은 지난 강제징병으로 알테르 지방을 이루던 빈민층이 모두 징병되어 무주지가 되었다. 이는 시온도 마찬가지였고, 도시는 조용했다.

불타는 시온 산

시온 산에서 광신도 게릴라들이 움보 왕국의 정찰부대와 만났다. 광신도 게릴라들은 숲으로 움보 왕국 정찰군이 진입하자, 화살을 쏟아부었다. 경무장으로 이뤄졌던 정찰부대는 화살에 맡는 족족 쓰러졌다. 그러나 곧 쇠뇌 사수궁수를 중심으로 하는 방어진형을 이루었고, 쇠뇌 사수볼트를, 궁병불화살을 쏘았다. 곧 시온 산은 불이 붙기 시작하였고, 시온에 있던 게릴라 지휘부는 시온 산과 같이 불에 타 소멸되었다.

알테르 강 방어선

시온 산이 불타 사라진 이후 PR.240년 7월, 움보 왕국알테르 왕조의 중심이자, 제 2차 신교-마교 전쟁 이후 빈곤층이 주가 되었던 알테르 지방 모두를 수복하였다. 그와함께 알테르에 인질로 잡혀있던 알테르 왕가 가족들을 구출하였다. 그러나 PR.240년 7월 19일, 알테르 왕가 혈통의 대부분이 마르키아에서 처형된다. 잘린 그들의 머리는 동해에 수장되고, 그들의 몸은 마르키아의 마교도 사원과 함께 불타 사라진다. 알테르 강까지의 국경을 회복한 움보 왕국은 PR.240년 9월부터 방어선을 건설하기 시작한다. 방치되어있던 요새들은 모두 재건되었으며, 알테르 지방 남부는 움보 인들이 정착하여 살아가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대전은 신교의 승리로 무르익어가는듯하였다.

  1. 알테르 지방에서 가장 부유한 자들이 신교도 학살로 인해 모조리 죽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