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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부르그네 드 라 토크나예'''({{llang|fr|Henry Bougrenet de La Tocnaye}}, [[1907년]] [[10월 21일]] ~ )는 [[벨포르 공화국]]의 제67대 [[벨포르 공화국의 내각총리|내각총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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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주아브 스캔들]]로 인해 전임자인 [[장 밥티스트 뮈르빌르|장 뮈르빌르]] 총리가 내각불신임을 당하면서, 당내 소장파와 중도파의 추대를 받아 후임 내각총리로 선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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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주아브 스캔들]]로 인해 급진당 내각에 대한 비토 여론이 심해지면서, 다시 한번 내각불신임에 대한 소문이 나돌자, 의회해산 및 내각 총사퇴를 선언, 그 이후 정계에서 은퇴한다.

2018년 6월 30일 (토) 20:30 기준 최신판

앙리 부르그네 드 라 토크나예
Henry Bougrenet de La Tocnaye
벨포르 공화국제67대 내각총리
임기 1925년 3월 11일~1925년 8월 20일
대통령 앙리 가이아르, 피에르 마숑
후임: 알베르 키아프(제68대)
신상정보
국적 벨포르 공화국
출생일 1875년 8월 21일(1875-08-21)
출생지 벨포르 공화국 모르방 주, 클라마르 시
사망일 1937년 1월 15일 (61세)
사망지 히스파니아 왕국, 코임브라 주, 알가브르 시
정당 급진당
학력 아미앵정치대학
종교 무교

앙리 부르그네 드 라 토크나예(프랑스어: Henry Bougrenet de La Tocnaye, 1875년 8월 21일 ~ 1937년 1월 15일)는 벨포르 공화국의 제67대 내각총리이다.

아미앵정치대학을 졸업하여, 르 누벨 메디아에서 기자로 근무하다, 급진당에 입당하고 모르방 주의 하원의원에 당선된 뒤, 제1차 대전쟁 중의 카요 거국내각에 무임소 장관으로 입각하였고, 전쟁이 끝난 후 다선 하원의원으로 정계에 영향력을 끼쳤다.

그러던 중, 주아브 스캔들로 인해 전임자인 장 뮈르빌르 총리가 내각불신임을 당하면서, 당내 소장파와 중도파의 추대를 받아 후임 내각총리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주아브 스캔들로 인해 급진당 내각에 대한 비토 여론이 심해지면서, 다시 한번 내각불신임에 대한 소문이 나돌자, 의회해산 및 내각 총사퇴를 선언, 그 이후 정계에서 은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