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중 하나의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관리자. 문서를 고치려면 이메일 인증 절차가 필요합니다. 사용자 환경 설정에서 이메일 주소를 입력하고 이메일 주소 인증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리반문서틀}} [[파일:The_Imperial_Seal_of_Korea_02_noise.png|center|x350px|link=]] {{center|{{글씨 크기|17|'''대한제국'''}}<br>'''大韓帝國 {{!}} Empire of Korea'''}}<br><br> {{목차}} == 역사 == 1898년 [[무술화변]]으로 [[대한제국]]의 황제 [[고종]]과 황태자 [[이척]]이 동시에 독살 당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자, 제위 계승 1순위였던 [[이강]]이 왕위에 오르게 된다. 혼란한 정국 속에서 이강은 연호를 천희(天禧)로 개원하고 [[유길준]] 등 개혁파 관료를 등용해 급격한 정치·경제·문화 개혁인 [[천희경신]]을 추진함으로써 [[대한국 헌법]] 제정을 비롯하여 조세 개편, [[의원내각제]] 도입, [[용산군기창]] 건설 등의 성과를 거둔다. 1905년 [[러일전쟁]]이 발발하고 [[러시아 제국]]이 [[일본]]으로부터 승리를 거두자, 대한제국은 친러 [[위성국]]으로 전락한다. 새로이 내각총리대신으로 지명된 친러파 관료 [[이용익]]은 러시아를 통해 청과 일본을 견제하며 종전의 개혁을 이어갔고, [[그레이트 게임]]으로 러시아와 대립하던 [[영국]]과 접촉해 대한제국의 [[중립국]] 지위 보장을 요청, 1907년 [[영러협상]]을 거쳐 대한제국에 대한 영토 보전·내정 불간섭 원칙을 인정받게 된다. 러시아계 자본의 유입으로 본격적인 산업 육성에 나선 대한제국의 근대화·서구화는 발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하고, 1911년 [[신해혁명]]으로 [[청나라]]가 멸망하자 [[이범윤]]을 위시한 [[사포대]]는 [[러시아]]의 묵인 아래 [[간도]]까지 진출하는 데 성공한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경제 호황을 바탕으로 [[겸이포 제철소]]를 세우는 등 본격적인 공업화가 시작된다.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제정이 붕괴, [[적백내전]]이 일어나자 대한제국은 국내 러시아계 자본을 국유화했으며 망명해 오는 [[백군]]과 난민들은 [[함경북도]] [[경성군]]에 정착하면서 '노비나'로 불리는 러시아인 마을을 형성한다. 1920년대 중반부터는 러시아계 기술자들과의 협업으로 [[장진강]]·[[부전강]]에 [[수력발전소]]가 세워지자 [[대한질소비료주식회사]] 공장 등 화학콤비나트가 들어서며 [[중공업]]이 크게 발전했고, [[간도철도주식회사]]를 통해 [[일본]]과 함께 경쟁적으로 [[만주]] 이권 확보에 열을 올리게 된다. 그러나 1929년 [[대공황]]의 여파로 대한제국 경제는 큰 타격을 입었으며, 안정되어가던 정당 정치는 급속도로 휘청거리기 시작한다. 1931년 [[만보산 사건]]이 일어나자 정치권에서는 경제 위기의 책임을 화교에게 향해 [[신미배화]], [[평양대학살]]을 조장해 국내에 체류중인 다수의 중국인들을 학살하는 등 사회·정치적 극단주의가 만연해진다. 그럼에도 여론은 의회에 대한 강력한 불신을 표출했고, 이에 민심을 등에 업은 군부는 1933년 [[계유정변]]을 일으켜 [[계엄령]]을 선포하고 [[중추원]]을 강제 해산시킨 뒤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 (원본 보기) 틀:Center (원본 보기) 틀:Css (원본 보기) 틀:글씨 크기 (원본 보기) 틀:리반문서틀 (원본 보기) 틀:리반문서틀/styles.css (원본 보기) 틀:목차 (원본 보기) 틀:스타일 (원본 보기) 모듈:String (원본 보기) 연습장:리반1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