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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4일 00:50 업데이트 / 이 문서의 내용은 현실의 단체 등과 이름 등이 겹칠 수 있으나 현실과는 관련이 없는 허구의 이야기입니다.

개요

블랑슈가 연재 중인 가상 기업 FutureTech Group의 역사를 다루는 문서.

주의: 퓨처테크의 세화국 편입으로 인해 기존 설정이 다수 변동되었습니다. 기존 설정은 별개의 문서에 보존해 두겠습니다.

본문

그룹 결성 이전(제1기)

미래음악사의 창립

퓨처테크의 1대 CEO인 심복택은 유학파 작곡가로, 당시 세화국 의류시장을 지배하고 있던 의류 기업인 화정의류[1]의 오너 집안의 장남이었다. 덕분에 심복택은 현실적인 걱정 없이 풍족한 환경에서 작곡을 배웠다. (이하 평원후) 110년 아르미니우스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심복택은 세화국과 칠서 민권국을 오가 26년 간 작곡가로 활동했다.

그러던 136년 연말, 심복택은 에우랍수스 연방으로 휴가를 다녀왔다. 휴가 기간 동안 작곡할 영감을 얻고자 마음을 비우고 다양한 것을 보던 와중, 세화국에는 없었던 실린더 레코드를 처음 보게 되었다. 음악을 녹음할 수 있다는 이야기에 관심을 가진 심복택은 문득 이걸 가져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실린더 레코드와 플레이어 몇 개를 사서 귀국했다. 심복택은 이 둘을 지인들에게 보여주었고, 지인들도 큰 관심을 가졌으며, 돈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 지인들은 아예 심복택에게 도매 사업을 제안했다. 심복택은 이 제안을 받아들여, 137년 4월 24일 세화국 성해부 성해시에[2] 음반과 플레이어 판매를 전문으로 하는 미래음악사를 창립했다. 이것이 퓨처테크 300년 역사의 시작이다.

사세 확장

심복택은 미래음악사를 차리고 세화국에 정착해 지내기 시작했다. 미래음악사는 여러모로 인기를 얻었지만, 심복택의 본업은 작곡이었기 때문에 작곡과 가게 운영을 동시에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작곡을 하고 싶은데 시간이 없어서 작곡을 못 할 지경이 된 심복택은 고민 끝에 155년 사업을 같이 이끌 동료를 모집했는데, 이 사람이 바로 퓨처테크의 1대 CFO인 박복자이다. 심복택과 박복자는 사업 파트너로서도 궁합이 잘 맞았지만, 사람과 사람으로서도 궁합이 잘 맞았다. 그래서 163년 둘은 결혼했다.

박복자의 영입 이후, 미래음악사는 부자들 사이에서 유명세를 얻었다. 공연장에 가지 않고도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소식에 사람들이 몰려 든 것이다. 비록 수입할 수 있는 물량이 한정적이었고 가격도 비쌌지만, 미래음악사는 인기 덕택에 수익을 내기 시작했다. 박복자의 사업 수완으로 원활한 수입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뛰어난 영업 노하우로 수익은 점차 늘어나 160년 초 수익분기점을 넘길 수 있었다. 여기서 박복자는 영업 범위를 확장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162년 세화국과 칠서 민권국 등 천호 대륙 국가들에 여러 분점들을 냈다. 모든 분점이 성공적이었던 것은 아니지만 몇몇 분점들은 많은 수익을 거두었다. 이 때 성공한 분점들은 오늘날 퓨처테크 플래그쉽 스토어가 되었고, 각 국가에서 가장 성공적인 분점들은 오늘날 해당 국가의 퓨처테크 지사가 되었다.

사세를 키워 나가는 미래음악사는 165년 3월 14일 연극 사업에 진출했다. 처음에는 적자를 면하지 못했지만, 천천히 유명세를 타면서 적자 폭이 줄어들어 10년 후 손익분기점에 도달하게 되었다. 자신감을 얻은 미래음악사는 172년 칠서에 연극 사업을 진행했으나 실패하고 4년 후 철수했다. 그래도 미래음악사는 천호 대륙을 거점으로 하여 사업을 키워 나갔고, 에우랍수스 대륙이나 뉴니버스 대륙에도 관심을 가졌다.

170년대 중후반에 들어서 표준시간 음반(SP)이 개발되었고, 실린더 레코드 때와 마찬가지로 미래음악사는 수입과 유통에 앞장섰다. 음반 판매로 많은 수익을 얻은 미래음악사는 아예 자체적인 음반을 만들기로 하였다. 마침 심복택 본인도 작곡가였기 때문에, 심복택 주도로 추진된 국산 1호 음반 사업은 성공적으로 추진되어, 세화국의 여러 작곡가들이 쓴 클래식 음악이 실린더 레코드와 SP에 실려 발매되었다. 이 앨범은 총합 천 부 이상 팔린 것으로 파악되었으며, 여러모로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것은 이 때의 경험을 살려 성해시에 음악 스튜디오인 '미래음악사 성해음악제작실'을 차렸다. 세화국은 물론 국제적으로도 뛰어난 수준이었기 때문에, 이 음악 스튜디오는 세화국 내의 많은 음악가들이 빌려 쓰기도 했다. 그러는 한편 심복택은 후학 양성에도 관심을 가져, 무명 음악가들에게 음악 스튜디오를 매우 저렴한 가격에 쓸 수 있게 해 주었다.[3] 현재도 이 부지에는 퓨처테크의 음악 스튜디오가 위치하고 있으며, 특히 1층에는 성해음악제작실을 복원해 놓아 관람할 수 있게 했다.

미래전기전자 창설

미래음악사는 182년 4월 24일 창립 45주년을 기념하는 차원에서 LP 플레이어를 출시했다. 플레이어는 3가지 모델이 있었는데, 전기 코드를 꽂는 모델(모델 W), 손잡이를 돌리면 태엽의 힘으로 재생되는 모델(모델 M), 그리고 납 축전기를 달아 자동으로 돌아가게 만든 모델(모델 B)이 있었다. 뛰어난 완성도와 무엇보다 들고 다닐 수 있다는 점에서 혼수로 각광 받아 많이 팔렸다.[4] LP 플레이어가 생각 이상의 호응을 얻자 미래음악사는 이러한 음향 기기의 제작의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나아가 전기 제품도 생산하기 시작했다. 다양한 기기를 생산하게 되자, 미래음악사는 음향 기기[5]를 제외한 나머지 전자 기기의 제작을 전문으로 하는 미래전기전자를 창설했다.


이전 역사

  1. 화정의류는 훗날 미래기술그룹 의복사업부로 합류했다가, 400년 경제 위기로 인한 재정난으로 매각한다.
  2. 심복택은 원래 명월시에 차리려고 했으나, 예산 내에서 마땅한 상가를 구할 수 없어 성해시로 향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퓨처테크는 성해부의 대표 기업이 되었다.
  3. 이 때의 전통을 잊지 않고, 퓨처테크는 인디 음악가들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으며 자사 서비스를 저렴한 가격에 쓸 수 있게 배려해 주고 있다.
  4. 대부분의 판매는 모델 W와 M이었으며, 모델 B는 비싸서 소수 팔렸다.
  5. 퓨처테크에서도 음향기기는 음악사업부의 자존심으로서, 전량 퓨처테크 음악사업부에서 생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