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대 경기도지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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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40대 경상남도지사 김경렬 金慶烈 | Kim Kyung-ryul | |||||||||||||||||||||||||||||||||||||||||||||||||||||||||||
1965년 11월 10일 (63세) | |||||||||||||||||||||||||||||||||||||||||||||||||||||||||||
경상남도 남해군 고현면 | |||||||||||||||||||||||||||||||||||||||||||||||||||||||||||
서울특별시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선수기자촌 | |||||||||||||||||||||||||||||||||||||||||||||||||||||||||||
김해 김씨 | |||||||||||||||||||||||||||||||||||||||||||||||||||||||||||
경상남도지사 경남 FC 구단주 | |||||||||||||||||||||||||||||||||||||||||||||||||||||||||||
제4대 경기도지사 | |||||||||||||||||||||||||||||||||||||||||||||||||||||||||||
2014년 7월 1일 ~ 2018년 6월 30일 | |||||||||||||||||||||||||||||||||||||||||||||||||||||||||||
제39·40대 경상남도지사 | |||||||||||||||||||||||||||||||||||||||||||||||||||||||||||
2022년 7월 1일 ~ 현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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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대한민국의 정치인. 現 제40대 경상남도지사. 전직 4선 국회의원, 경기도지사, 민주당 원내대표를 역임한 거물 정치인으로 2026년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경상남도지사에 당선되어 헌정사상 최초로 민선만으로 복수의 광역자치단체장을 역임한 정치인 되었다. 일생 및 당적 변경사정계 입문 이전김경렬은 1965년 11월 10일 경상남도 남해군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군대에 징집되어 대한민국 육군 병장으로 만기 전역했다. 제00회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대구지방법원 판사로 임용되어 3년간 재직했다. 정치 초년기변호사로 활동하며 노동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다가 2005년 정계에 입문, 2005년 재보궐 선거에서 성남 중원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국회의원으로서의 삶이 시작됐다. 이때 새천년민주당 소속으로 당선되었는데 당시 사람들은 엄청난 이변이라 밝혔을 정도이다. 변호사 사무소를 성남에 둔 것이 작용한 것으로 보이나, 중원구가 아니라 분당구에 변호사 사무소를 두었기 때문에 엄청난 이변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때 통합민주당 소속으로 전국 최소 득표차로 당선되었다. [2] 이후 제19대 총선이 다가올 무렵, 민주통합당을 탈당했다. 공천 탈락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 전에도 내부 총질을 한다는 의견이 매우 많았기 때문에 민주통합당 입장에서는 오히려 좋아라는 느낌이였다. 그리고 이때부터가 당적 변경사의 시작이다. 제19대 총선에서는 자유선진당 후보로 성남 중원 선거구에 출마했는데 이때도 전국 최소 득표차로 당선됐다.[3] 이후 자유선진당을 탈당하고 민주통합당에 입당하려고 했는데 입당이 불발되자 새누리당에 입당했다. 경기도지사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새누리당 후보로 경기지사 출마를 선언했다. 원래 김문수 경기지사가 3선에 출마할 것이라 밝혔지만 불출마를 선언했다. 당시 당 내 경쟁자는 원유철, 김영선, 정병국이였는데 정병국과 접전을 펼치다가 끝내 새누리당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되었다.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상대 후보는 김상곤 전 경기도 교육감이였는데 당시 김상곤 후보가 정책으로만 승부하자고 제안했고 김경렬도 이를 수용했다. 이로 인해 경기도지사 선거만 거의 유일하게 버스 준공영제, 교통 문제, 주거 문제 등과 관련한 정책대결이 주목을 받았을 정도였다. 당시 세월호 참사로 여론이 악화된 와중에 결국 ,601표, 득표율로는 불과 0.2%p의 근소한 차이로 김상곤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통합진보당 백현종 후보가 사퇴하면서 무효표가 14만표나 발생하였기에, 김경렬 입장에서는 참으로 아슬아슬한 승부였다는 평이었다. 참고로 이때도 전국 광역자치단체장 역대 최소 득표차였다. 이로써 최소 득표차 기록을 무려 3번이나 기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