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의 불란서 세계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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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연방의 구성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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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칭 구룬 ・ 대청국 ᡩᠠᡳᠴᡳᠩ ᡤᡠᡵᡠᠨ | 大淸國 | West Qing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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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 | ||||||||||||||||||||||||||||||||||||||||||||
국가 | 공금구 | |||||||||||||||||||||||||||||||||||||||||||
국화 | 연꽃 | |||||||||||||||||||||||||||||||||||||||||||
역사 | ||||||||||||||||||||||||||||||||||||||||||||
• 1940년 1월 1일 선통제 즉위 • 2004년 2월 1일 효종의 선위, 한청연합 결성 | ||||||||||||||||||||||||||||||||||||||||||||
지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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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TLD | ||||||||||||||||||||||||||||||||||||||||||||
.wq, .淸 | ||||||||||||||||||||||||||||||||||||||||||||
국제 코드 | ||||||||||||||||||||||||||||||||||||||||||||
416, KWQ, WQ | ||||||||||||||||||||||||||||||||||||||||||||
국제 전화 코드 | ||||||||||||||||||||||||||||||||||||||||||||
+82 |
역사
헌무제가 일으킨 하북 봉기 이전의 역사는 청나라 문서 참고.
광서제가 한국 황제 광종에게 선양한 후, 그의 이복동생인 애신각라 재풍이 주도하여 일어난 하북 봉기가 옹청의 시작이다. 비록 하북 봉기는 실패로 끝났지만 재풍은 한국의 영향력이 닿지 않는 서안으로 무사히 탈출하였으며 복벽파 군벌들과 반한파 신료들과 함께 청나라 조정을 재건한다. 황제는 명목상 한국에 있던 광서제였지만 사실상 청 황제를 대리하는 관직인 감국섭정왕을 재풍이 맡으면서 실질적인 국가원수가 되었다.
역사적 정통성 문제
애신각라 왕조 당시에는 옹청의 역사는 곧 중국 대륙을 통치하던 청의 역사의 연장선이었다. 즉, 1616년이 국가의 건국년도였고 조정의 체계와 국가적 관습을 그대로 따랐기에 청과 옹청은 전성기의 그 규모만 다를 뿐 같은 국가였다. 정치적 문제로 공인되지 못할 뿐, 현대의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도 옹청을 청과 거의 같은 계열 국가로 분류하는 것이 정설이다.
애신각라 왕조가 유지되던 순성제 치세까지 청 정부의 공식적 입장은 광서제가 대한국 황제 광종에게 선양한 것은 표면상 그러할 뿐 실상은 불법적인 찬탈이라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옹청이 청의 정통성을 물려받은 국가이며 그 정통성은 한국과는 상관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한편으로 이런 정통성에 대한 인식외에는 옹청과 한국의 사이는 나쁘지 않은 편인 가운데 70년대 해빙 분위기가 조성되고 북공과 남민 사이의 관계가 가까워지자 두쪽과 모두 적대하고 있던 옹청은 불안과 혼란에 빠졌다. 순성제의 파격적인 선위도 이러한 배경에서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