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렉트로닉 J. 아츠

JwiWhy2058 (토론 | 기여)님의 2022년 12월 13일 (화) 18:18 판
일렉트로닉 제임스 아츠
Electronic James Arts

1928년 세계스포츠진흥의회 의장 취임 당시.
출생 1860년 8월 6일
스위스 스위스 취리히주 힌빌구 빈민가
사망 1932년 4월 30일(향년 71세)
미국 미국 뉴욕주 뉴욕
국적 스위스 스위스
미국 미국
별칭 쿤스테
학력 힌빌초등학교 졸업
힌빌중학교 중퇴
중졸 검정고시 합격
고졸 검정고시 합격
경력 빈민가 구두수선가게 알바
초대 일렉트로닉 아츠 사장 (1883~1889)[1]초대 일렉트로닉 아츠 회장 (1889~1927)
제3대 세계스포츠진흥의회 의장 (1928~1932)
직업 수선공
기업인
소속 일렉트로닉 아츠
종교 마라도나교
배우자 제인 아츠
자녀 장남 일렉트로닉 M. 아츠
차남 일렉트로닉 A. 아츠
장녀 마릴로 케이슨
부모 아버지 일렉트로닉 메케인 아츠[2], 어머니 미켈레 아츠
상훈 스위스 스위스 국가문화훈장 1급(1890)

일렉트로닉 제임스 아츠(영어: Electronic James Arts)는 스위스의 기업인으로, 세계 최대의 스포츠 단체인 일렉트로닉 아츠의 창업자이자 스위스 문화의 아버지로 불린다. 별명은 쿤스테.

생애

유년기

몰락한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 놀림을 받다

일렉트로닉 제임스 아츠(이하 쿤스테)는 1860년 8월 6일, 스위스 취리히주 힌빌구에 위치한 빈민가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인 일렉트로닉 메케인 아츠는 한 때 스위스의 국가대표를 맡았을 정도로 성공한 축구선수였으나, 쿤스테가 태어나기 몇년 전 여성을 성추행했다는 억울한 누명에 휩싸여 하루 만에 자신의 구단에서 방출당했고, 결국 수많은 비난을 이기지 못해 국가대표도 은퇴하며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했다.

아버지가 선수직에서 은퇴한 이후, 하루 만에 집안이 급격하게 몰락해버리자 빈민가로 이사를 가 그의 어머니가 구두수선가게를 운영하며 생활을 전전하게 된다.

어머니의 수선가게 운영으로 돈을 벌어 간신히 초등학교에 입학한 쿤스테는 자신의 가난과 할아버지인 스웨덴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아버지의 어눌한 말투를 물려받아 그 때문에 학교에서 놀림을 받았으며, 그들은 그를 스웨덴 사람을 조롱하는 멸칭인 쿤과 어눌한 발음이라는 뜻의 스테를 합쳐 쿤스테라고 불렀으며, 그 동시에 그가 성추행으로 나락을 간 국가대표의 자식이라는 것까지 밝혀지자 더욱 놀림을 받았다.

쿤스테는 어렸을 때부터 축구를 잘하던 아버지를 물려받아 축구에 재능을 보였고, 매일같이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날이 지속되자 쿤스테는 아버지처럼 유명한 축구선수가 되기로 결심하고, 그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줌과 동시에 아버지의 억울함을 풀어주기로 한다.

쿤스테는 자신의 아버지 메케인을 졸라 축구를 가르쳐달라고 부탁했고, 처음엔 메케인은 자신의 아들을 지금의 자신처럼 만들기 싫어 지속적으로 거절했으나, 아들의 끈질긴 부탁으로 결국 그를 제자삼아 축구를 가르치게 된다. 이후 쿤스테는 축구에 집중하기 위해 초등학교만 진학하고 중학교 진학을 포기한다.

청소년기

생애의 첫 실패

그렇게 끈질기게 아버지와 축구 연습을 했던 쿤스테는 14살이 되자 자신의 재능을 보이기 위해 당시 베른 FC 다음으로 스위스 내 구단 2위였던 취리히 FC의 유스팀에 들어가기 위해 테스트를 거치게 되는데, 하필이면 테스트에 쿤스테를 능가하는 여러 유망주들이 합격한 상태였고, 쿤스테는 그 자리에서 떨어지게 된다.

이후 여러 번 취리히 FC에서 시험을 봤지만 번번이 낙제하고, 결국 쿤스테는 19살에 축구선수라는 꿈을 포기하고 다른 길로 가게된다.

청년기

나의 꿈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후 쿤스테는 중·고등학교 검정고시를 합격하고 늙은 어머니의 구두수선가게를 물려받아 가게를 운영하게 되었으며, 아직까지도 축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쿤스테는 23살에 구두수선가게를 축구공 생산업체로 개조하여, 자신의 이름을 따고 아버지를 존경하는 겸으로 일렉트로닉 아츠를 설립하였다.

이후 아츠에서 훗날 자신의 아내가 되는 노동자 제인 아츠와 결혼하였고, 지속적으로 아츠를 운영하였으나, 1880년에 터진 경제대공황으로 인해 기업 운영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1. 축구공 생산업체 시절
  2. 전직 스위스 축구 국가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