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남북 전쟁 (붉은 끈)

일본 남북전쟁
日本南北戰争, 六月事変
Japanese War
냉전의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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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전 초기 치바현 평야에서 퇴각중인 남군[1]
날짜
1950년 6월 25일 ~ 1953년 7월 27일
장소
일본 간토, 간사이 지방, 큐슈, 오키나와
배경과 원인
일본인민공화국 정부의 일본국 침략 야욕
목표
일본국 정부 항복, 일본 적화통일 이룩
종류
내전, 전쟁
결과
북군(일본인민군)의 승리, 일본의 적화통일 성공
일본국 정부의 샌프란시스코 망명
영향
소련의 동아시아 패권 완전 확보
일본민주해방전선 창설 및 10년간의 무장투쟁 지속
교전국
남군(남일본자위군)
북군(일본인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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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관
남군(남일본자위군)
북군(일본인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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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히토
요시다 시게루
해리 S. 트루먼
더글라스 맥아더
조지 6세
윈스턴 처칠
장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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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카 산조
토쿠다 큐이치
이오시프 스탈린
막심 푸르카예프
이반 치스차코프
김일성
김원봉
마오쩌둥
펑더화이
저우언라이
교전군
남군(남일본자위군)
북군(일본인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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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3,239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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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9,741명
피해 규모
남군(남일본자위군)
북군(일본인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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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563명 전사
141,899명 부상
약 30,000명 포로
약 800명 실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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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457명 전사
193,122명 부상
약 20,000명 포로
약 1,200명 실종
각주
  1. 1950년 6월 29일 어느 종군기자가 찍었다.

개요

1950년부터 1953년까지 3년간 치뤄진, 일본인민공화국일본국 간의 전쟁이다. 이 전쟁을 기점으로 일본 전역이 공산화되었다.

전쟁 배경

양국 정부수립 이전

대일본제국의 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소련과 미국은 본토 내 일본군을 무장해제시키고, 새 정부를 수립하기 위해 1945년 8월 29일부터 홋카이도와 도호쿠 지방에 소련군이, 이남에는 미국군이 주둔하면서 각각 군정이 수립되었다. 그리고 12월 16일 모스크바에서 미국, 영국, 소련이 3상 회의를 열어 결정적으로 일본의 단일 임시정부 수립을 결정하였다. 또 미국이 미·영·중·소 4개국에 최대 5년을 기한으로 신탁 통치를 제안하고, 소련은 미소공동위원회의 개최, 일본의 정당과 사회 단체의 참여를 제안했다. 하지만 이 결정을 두고 일본 내 우익과 좌익은 신탁통치 반대와 찬성으로 나뉘어 크게 싸우게 되었다. 이 와중에 1945년 12월 27일, 일본 요미우리 신문에서 모스크바 3상회의의 논의 결과를 정반대로 오보하면서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신세가 되었고, 이를 계기로 일본 내 좌우간의 대립이 더욱 심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제 1차 미소공동위원회가 개최되었지만, 임시정부 수립을 위해 협의할 정당 및 사회단체를 선택하는 문제로 난관에 부딪히다 결국 결렬되었다.

남일본과 북일본 정부의 수립

삿포로 밀약

전개

일본 남북 전쟁/전개 (붉은 끈) 문서 참조.

전쟁의 영향

일본 남북 전쟁/영향 (붉은 끈) 문서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