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해국 역대 국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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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 三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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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해국 초대 국왕
태조|太祖
출생
900년 10월 11일
신라국 달구벌
사망
975년 6월 7일(향년 74세)
청해국 청호부 청운궁
재위기간
청해국 초대 국왕
939년 8월 4일 ~ 975년 6월 7일(35년 10개월 6일)
성씨
조(趙)
곤(坤)
부모
아버지 영조 재헌왕
어머니 이월왕후
배우자
매화왕후
자녀
17남 19녀
헌월(獻月)
묘호
태조|太祖
시호
청해:장휘무덕영안신무대왕
시호
송:덕헌왕
존호
광휘숙태덕윤

개요

청해국의 초대 국왕

초기 생애

출신은 달구벌 (훗날 대구광역시)출신이었으며 당시 초기 기록은 불분명하다.

당시 3차 대야성 전투에 젊은 나이에 참가하였으니 패배 하고 견휜군에게 쫒겨 강원도 동계까지 밀려났다.

924년 발해로 들어가 부장이 되었으며 발해 말대 국왕 대인선이 이끄는 부대에 합류에 소규모 공을 세웠다.

925년 발해가 멸망하자 1만명의 유민을 이끌고 요동 남쪽에 있는 청한도로 이주한다.


재위기간

청한도에 도착한지 3개월만에 대장군 송벽,승상 홍의벽,발해의 여러 귀족들이 왕으로 추대한다.

재위 35년 동안 당시 능동적인 외교로 후진과 책봉관계를 수립하고

후진이 멸망하고 후한,후주 뒤를 이은 북송과도 계속 조공을 바쳐 확실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거란국과 외교관계를 현실적인 이유로 시행하고 요나라로 칭제한 후에는 조공을 바쳤다.

능동적인 외교를 잘 수립했지만 청한도 원주민과 끊임없는 갈등에 시달렸다.

당시 청한도 원주민을 야인으로 부르며 멸시했다.

하지만 결과는 청해국를 30년 넘게 안정시켰으며 내정은 조금 아쉬웠지만 외치는 휼룡하게 이끄며 태조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은

창업군주였다.

후계문제

재위 말년 왕의 외척 호씨 가문과 왕의 서장자,서차자 등으로 이루어진 종친들과

심각한 갈등이 일어난다.

당시 첫 호씨 왕후와 첫 결혼이었지만 결혼하기 전에 2명의 서자들이 있었다.

그 2명의 서자들이 명종,태종이다

그들의 공이 너무 높고 그리고 호씨 가문을 견제하기 위해

적자 안호공이 나이가 20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서장자 인혜공에게 보위를 넘겨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