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지하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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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지하국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大韓民國 地下國家
大韓民國 臨時政府

19191936
 

Flag of the People's Committee of Korea.png Emblem of South Korea (1948-1963).png
국기 국장
지하 국가, 망명정부
표어 자주독립민주공화국
(自主獨立國民主共和國)
국가 애국가(愛國歌)
정치
공용어 한국어
정부 형태 공화국, 임시정부
주석(主席) 1대 이동녕(李東寧)
2대 박은식(朴殷植)
3대 이동휘(李東輝)
4대 노백린(盧伯麟)
5대 김규식(金奎植)
입법 국무회(國務會)
역사
민주공화국 선언  
 • 한성 데모크라시 1919년 3월 1일
 • 한성공화정부 수립 1919년 3월 17일
 • 임시헌법 공포 1919년 9월 11일
 • 공화민족군 결성 1920년 4월 13일
 • 울주군 소요 사태 1926년 7월 12일
 • 북목청 사건 1930년 5월 4일
 • 봉영회 해체 선언 1936년 12월 4일

대한민국 지하국가(중국어: 大韓民國 地下國家, 영어: Korean Underground State)는 한성부(漢城府)에서 선포된 3·1 공화선언에 기초하여 대한제국(大韓帝國)의 전제 통치를 부인하고 한반도(韓半島) 내외의 민주 사회 건립을 주도하기 위한 목적으로 1919년 3월 17일 한성부상하이(上海)의 동시 설립된 대한민국(大韓民國)의 망명정부이다. 같은 해 9월 11일에는 각지의 임시정부 요원들을 규합하여 대한민국 임시헌법을 공포하기도 했다.

1920년에는 공화민족군(共和民族軍)을 조직하여 한성진공작전(漢城進攻作戰)을 계획하기도 했으나, 사전에 발각되어 실패함으로서 국내에서의 활동이 사실상 와해되었으며, 울주군 소요 사태(蔚州郡騷擾事態)를 계기로 1926년에 해당 소요 사태의 기초가 된 군주제 부정과 공화제 운동, 그리고 공산주의 운동(共産主義運動)에 대한 정치적 운동들을 탄압하기 위해 만든 법령으로서 사회보안법(社會保安法)이 제정되어 대한민국 지하국가가 강력한 탄압을 받게됨에 따라 히가시에조 공화국(東蝦夷共和國)이 위치한 미츠시키 섬(蜜式島)으로 임시정부 청사를 옮기면서 민주국가 건립 활동을 이어갔다.

미츠시키 섬에서의 정착 이후 민족주의 및 사회주의 정당간의 대통합을 논의하던 중 대한제국에 의해 매수되었던 이운한(李雲漢)이 임시정부 요원들을 향해 총격을 가하는 북목청 사건(北木廳事件)이 일어나면서 지하 국가 활동은 요원해졌으며, 1936년에는 동아제국(東亞帝國)의 집요한 투항 종용과 히가시에조 공화국 정부의 해체 요구에 의해 그해 12월에 지하국가 해산을 선언했다. 이후 김원봉(金元鳳) 등을 비롯한 '무력투쟁노선'을 지지하던 민주운동가들은 민주의열단(民主義烈團)을 창설하여 대한민국 지하국가의 법통을 계승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