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든 B. 존슨 행정부
Lyndon B. Johnson Administration

△비행기에서 취임 선서하는 LBJ
1963년 11월 22일 ~ 1969년 1월 20일
출범 이전 이후
존 F. 케네디 행정부 리처드 닉슨 행정부
대통령 린든 B. 존슨 / 제36대
부통령 휴버트 험프리 / 제38대
여당 민주당

린든 B. 존슨 행정부는 부통령 린든 B. 존슨이 케네디 대통령 암살 직후인 1963년 11월 22일 직을 승계한 후부터 1969년 1월 20일까지 대통령으로 재임할 때까지 존재했다. 텍사스 출신의 민주당원인 그는 1964년 대선에서 애리조나 출신의 연방상원의원인 배리 골드워터를 상대로 압도적으로 승리했다. 존슨은 1968년 대선에 출마할 자격이 있었지만 출마하지 않았다. 이후 선거는 공화당의 승리로 끝나, 리처드 닉슨에게 자리를 넘겨주게 된다. 존슨 행정부는 현재 민주당의 주류 이념인 현대자유주의의 시초로 여겨진다.

존슨은 가난하고 무시받는 사람들을 돕기 위한 일련의 국내 정책인 위대한 사회로 뉴딜을 확대했다. 취임 후 그는 감세, 공기청정법, 1964년 민권법을 통과시켰다. 1964년의 선거 이후 존슨은 훨씬 더 전방위적인 개혁을 시작했다. 1965년 사회보장법 개정안은 정부가 운영하는 두 가지 의료시스템인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를 만들었다. 1965년 투표권법은 투표에서 인종차별을 금지했으며, 이 법안이 통과되며 수백만 명의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투표권을 가지게 되었다. 존슨은 빈곤과의 전쟁을 통해 빈곤층을 돕기 위해 여러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또 교육에 대한 연방 기금의 획기적인 증가와 제한적인 이민법 완화 등을 주도했다.

외교적으로 존슨 행정부는 냉전과 베트남 전쟁으로 대표된다. 그는 소련과의 화해 정책을 추구하여 1970년대 데탕트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도미노 이론에 따른 봉쇄 정책에 전념했으며, 냉전 기간 동안 동남아시아에서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기 위해 베트남에서 미군의 주둔을 확대하거나, 직접적으로 베트남에 간섭했다. 베트남에 주둔한 미국의 수는 1963년 1만 6천 명에서, 1968년 65만 명 이상으로 급격히 증가했다. 이후 전쟁에 대한 분노가 커지면서 대학 캠퍼스를 기반으로 한 대규모 반전 운동이 촉발되었으며, 존슨 행정부는 1965년 이후 주요 도시에서 발생한 여름 폭동으로 위기를 맞았다. 그래도 존슨의 지지는 높은 편이었지만 테트 공세 이후 국민적 합의를 통해 시작된 전쟁이었지만, 전쟁은 계속해서 존슨의 지지기반을 갉아먹었고 뉴딜연합이 흔들리는 계기를 만들었다.

존슨은 결국 다음 임기를 수행할 자격이 있었지만 1968년 재지명을 추구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발표했다. 그는 휴버트 험프리 부통령이 다음 대통령으로 당선될 수 있도록 도왔지만, 험프리는 닉슨에게 패배했다. 비록 그가 낮은 지지율로 퇴임했지만, 역사가와 정치학자들의 평가에서는 상위권으로 평가되는 경향이 있다. 그의 국내 정책은 연방 정부의 역할을 현대적으로 변모시켰고, 그의 정책은 오늘날에도 대부분 뼈대로 작동하고 있다. 존슨의 베트남 전쟁 개입에 대해서는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카터레이건 시절 개입해 마무리지은 것을 보면 완전히 부정적인 평가만 내려지지는 않는다. 또한 존슨 행정부는 민권 향상을 위해 인종장벽을 제거하는 역할을 제대로 해냈기 때문에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관련 부분에 있어서 찬성받고 있다.

둘러보기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