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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네시아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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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뤼스 제국
Empire of Vris
브뤼스-페르티아 전쟁 직후 최대 강역
기원전 464년 ~ 기원전 195년
브뤼스-페르티아 전쟁 이전 서이스톨리아 전쟁 이후
고대 브뤼스 가이아 공화국
고대 페르티아
위치 폴리네시아 (지금의 제노바-오슬리아 일대까지 포함)
수도 폴리스
정치 체제 제정 체제
국가 원수 황제
면적 4,729,149㎢
언어 폴리네시아어
민족 폴리네시아족, 제노바족
국교 폴리네시아교
주요 황제 키에사 2세
아드리앙 1세
현재 국가 폴리네시아 폴리네시아
브뤼셀로 브뤼셀로
제노바 제노바
오슬리아 오슬리아

개요

브뤼스 제국(Empire of Vris)은 기원전 464년부터 기원전 195년까지 남서이스톨리아 폴리네시아 지역에 존속했던 제국으로, 기원전 464년 브뤼스-페르티아 전쟁에서 고대 브뤼스가 승리하면서 성립된 국가이자 폴리네시아 최초의 통일 국가이다.

지금의 폴리네시아-브뤼셀로 일대[1]제노바-오슬리아 일대를 수복하고 있었으며, 동시대 아르메노 왕국과 함께 남서이스톨리아 문화의 전성기를 꽃피웠다. 이스톨리아 최초 문명의 발원지인 만큼 이 시기 남이스톨리아 전체에서 문화·경제·정치·군사 등 모든 분야에서 가장 큰 번영을 이뤘던 국가였다.

그러나 기원전 195년 당시 클레이시아 전체를 집어삼키고 이스톨리아 지역으로 영향력을 넓히려 한 가이아 제국대대적인 남서이스톨리아 침공으로 인하여 기원전 195년 멸망하였다.

브뤼스 제국이 역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이유는, 브뤼스 제국이 멸망한 기원전 195년 이후 다시 폴리네시아 세계가 독립한 것이 이로부터 무려 1,300년 정도가 지나버린 1085년 키오피 왕국의 멸망 이후의 폴리네시아 왕국이기 때문이다.[2] 즉, 브뤼스 제국은 11세기, 즉 중세 시대까지 폴리네시아 지역의 최초이자 유일한 통일 국가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는, 남서이스톨리아사에서 굉장히 중요한 국가이다.

역사

 브뤼스 제국의 대외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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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뤼스-페르티아 전쟁

기원전 8세기부터 고대 폴리네시아는 두 개의 큰 도시국가인 브뤼스페르티아 진영으로 분열된다. 고대 폴리스고대 브뤼스를 중심으로 한 브뤼스 진영은 군사력과 영향력으로 페르티아 진영을 압도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펠로피프 페데리코를 중심으로 한 분열 초창기의 브뤼스 수뇌부는 페르티아와의 전쟁이 아닌 화합을 통한 통일을 지향했고, 수십 년 동안 외교관을 보내 평화통일을 요청하였지만, 페르티아는 번번이 외교관을 살해하며 통일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다.

결국 페데리코 사망 이후 집권을 시작한 강경파 리베리오 캠벨은 집권 초기부터 페르티아와의 관계에서 강경적이고 급진적인 모습을 보였고, 이는 기원전 5세기부터 극에 달해 기원전 475년 브뤼스-페르티아 전쟁을 일으켜 기원전 464년 페르티아를 정복시키며 폴리네시아 세계가 통일되었고, 브뤼스 제국이 성립되었다.

초기 브뤼스 1세 시대에는 온건파와 강경파 사이 정치적인 혼란이 있었으나, 이후 키에사 1세가 정치적 혼란을 모두 진압하고 문화를 발전시키면서 후술할 기원전 4세기의 최전성기가 시작되었다.

기원전 4세기, 최전성기

키에사 1세 이후 들어선 키에사 2세 시대에는 아르메노 왕국, 제노바족, 심지어는 남중족과도 활발하게 교역하며 외교적으로, 또한 문화적으로 크게 번성하였다. 황제 중심 중앙 집권 체제를 탈피하고 전 국토를 15개의 지역으로 나눠 지방 자치 제도를 확립하였고, 수도인 폴리스 지역의 인구 집중화 문제를 해결하려고 제2도시인 브뤼셀을 발전시키는 등 경제적으로도 큰 번영을 이루었다.

키에사 2세의 사망 이후 키에사 3세 시대에도 전성기는 지속되었다.

전성기 이후 재혼란

그러나 아드리앙 1세가 들어서면서 전성기는 무너지고 브뤼스 제국에게는 혼란이 찾아오기 시작한다. 당시 브뤼스 제국은 지상 무역은 매우 활발하게 진행되었으나 정작 해상 무역은 하나도 진행되지 않았는데,[3] 이를 위해 아드리앙 1세는 케르베로스해와 접한 국경 지대에 '대운하'를 건설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문제는 대운하 건설을 시작한 시점이 바로 농민들이 농사를 시작해야 하는, 늦봄~초여름 시기였다는 것이다. 당연히 농민들은 크게 반발했으나 아드리앙 1세는 이를 강행했다. 결국 농작물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흉년이 일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아사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더불어 수도에 '대요새'까지 농민들을 동원해 건설시키며 농민들의 반발은 극에 달하게 되었다.

결국 폴리스 난을 시작으로 제국 전역에서 수많은 반란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이는 시대를 건너 아드리앙 2세 시대까지도 이어졌다. 브뤼스 제국은 농민들의 반란을 무력을 동원해 강경대응했고, 농민들은 거기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싸웠다. 이들은 나라 꼴이 어떻게 되가고 있는지 알아채지 못했다.

수뇌부는 농민들의 반란을 막는 데만 집중했고, 경제, 그리고 한 치 앞의 상황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있었다.

서이스톨리아 전쟁

 자세한 내용은 서이스톨리아 전쟁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이런 장기적인 농민 반란은 소모전으로 전개되며 아드리앙 3세 시대에 겨우겨우 모두 진압되었다. 그러나 이도 잠시, 브뤼스 수뇌부가 반란 방어에 집중하고 있던 사이 클레이시아의 가이아 제국은 남서이스톨리아 침공을 계획하고 있었으며, 계획대로 기원전 195년 가이아 제국이 케르베로스해를 건너 브뤼스 제국을 침공했다.

이제 막 반란을 정리하고 경제를 살리려고 '준비' 중이었던 브뤼스 제국은 클레이시아 전역을 집어삼키던 초전성기의 가이아 제국을 막을 힘이 남아있지 않았고, 단 3개월 만에 가이아에게 정복당하며 멸망하게 된다.

정치

브뤼스 제국은 대항해시대까지 이어지는 전형적인 이스톨리아 전제군주정 체제를 시작한 국가다. 전 국토를 14개의 주로 나눠 지방 자치 제도를 시행하였고, 의회는 귀족의회와 민회, 두 양원으로 구성되었다.

역대 황제


브뤼스 제국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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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2대 3대 4대
브뤼스 1세 키에사 1세 키에사 2세 키에사 3세
5대 6대 7대
아드리앙 1세 아드리앙 2세 아드리앙 3세
  • 브뤼스 1세 (464 ~ 437)
  • 키에사 1세 (437 ~ 381)
  • 키에사 2세 (381 ~ 345)[4]
  • 키에사 3세 (345 ~ 297)
  • 아드리앙 1세 (297 ~ 259)[5]
  • 아드리앙 2세 (259 ~ 213)
  • 아드리앙 3세 (213 ~ 195)

문화

브뤼스 제국은 양분할 체제부터 발전한 문화를 집대성하여 인간 중심적인 문화를 발전시키며 문화 전성기를 이뤄냈다. 옆나라인 아르메노 왕국남중족의 문화를 일부 수용하여 다문화적이고 국제적인 문화를 발전시켰다. '남서이스톨리아 문화'라는 용어를 만든 것이 바로 브뤼스 제국이었다.

이렇게 발전한 문화는 브뤼스 제국 말기까지 이어지다가 서이스톨리아 전쟁 이후 남서이스톨리아 전역이 장기간 가이아 제국 - 키오피 왕국의 식민지가 되면서 완전히 붕괴되었다.

철학

아무리 고대 이스톨리아사에 관심이 없더라도, 더더군다나 브뤼스 제국 자체를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더라도 브뤼스 철학에 대해서 들어보긴 했을 것이다. 또한, 브뤼스 철학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도 별로 없을 것이다. 브뤼스 철학은 이스톨리아 철학의 시초이자 근간으로써, 브뤼스인들은 인류 최초로 세계를 이성적·합리적으로 이해하고 설명하려 했다. 동시대 브뤼스인들처럼 이 정도로 '철학'이라는 개념에 깊게 들어간 문명은 없었다. 대표적인 피를레아 철학은 브뤼스 철학을 안드레 피를레아의 등장 전후로 나눌 정도로 큰 영향을 끼쳤으며, 그가 정립한 산파술과 무위자연 사상은 후대에도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

문학

브뤼스 제국에서는 서민적이고 풍자적인 사설시문학이 크게 유행했다. 대표적으론 〈뱀과 개구리〉, 〈매화꽃〉 등이 있다. 특히 아드리앙 시대, 그중에서도 아드리앙 1세 시대에 가장 크게 유행했다. 왜냐하면, 아드리앙 1세 시대 대운하, 대요새 등 빈번하게 대규모 토목 공사들이 이루어져 농민들이 크게 반발했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시는 당연하게 귀족들만 즐기는 상류 문화였으나, 풍자시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뱀과 개구리〉를 시작으로 서민 문학가들이 등장하여 너도나도 시를 쓰기 시작했다.

반면 소설은 그리 크게 유행하지 않았다. 소설이 유행하기 시작한 건 브뤼스 제국으로부터 한참 뒤인 폴리네시아 왕국 시기다.

건축

과학기술

각주

  1. 실제로는 현재와 약간 차이가 있다. 비교해보면 브뤼스 제국의 면적이 조금 더 작다.
  2. 물론 349년 가이아가 남서이스톨리아 지역에서 철수한 이후 잠시나마 독립의 기쁨을 맛보긴 했으나, 이마저도 잠시였고 거의 바로 키오피 왕국에게 다시 잠식당했다.
  3. 가이아와의 교역을 시도해봤으나 실패한 이력이 있었다.
  4. 키에사 1세의 정치적 혼란 진압을 뒤이어 브뤼스 제국 역사상 최전성기를 일궈낸 황제다.
  5. 대운하, 대요새 등 대규모 토목 공사를 통해 경제적 번영을 이루려 했으나 전국 각지에서 농민들의 반란을 야기시킨, 브뤼스 제국을 구렁텅이로 떨어트려버린 황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