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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피흘리는신교 주류성 언급

세계관 내 종교

틀:증기 너머/종교

피흘리는신교

서구 문명의 주류 종교. 자의적 희생과 자비, 고통을 수반한 고행을 통한 죄의 참회가 주류 교리로 자리잡아 있다.

서구 문명의 문화의 중심에 서 있었으며, 엄숙한 종교의 분위기 상 금욕적인 성향이 강했다. 그러나 무역의 발달과 함께 동방이나 흑토와 교류하면서 세상이 확장되고 온갖 향신료와 사치품이 들어왔고, 전염병이 퍼지며 신과 선의 존재에 대한 의심이 세상에 퍼졌다. 그에 따라 점차 종교의 권위가 추락하였다.

본래 서구 문명은 대부분 제정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으나, 문화 격변기를 거치면서 종교는 세외의 영역으로 내몰렸고, 때문에 종교는 더욱 형이상학적이고 추상적인 영역으로 그 철학을 발전시킨다. 그 결과 고대에서나 연구되었던 이원론적 영지주의가 부활하였고, 이들 세력이 종교에서 강한 힘을 가지게 되었다. 이들은 자해를 통해 피를 흘리고, 흘린 피 만큼 죄의 근원인 육신에서 초월하며, 결국 정신적 근원으로 돌아간다는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본래부터 고행과 희생을 근본 교리로 삼던 종교인 만큼, 종교적 신념을 지키며 강화하는 것이 신으로의 회귀를 뜻한다는 주장은 고립된 종교인들에게 매혹적으로 다가왔다.

이후 근세에 접어들고 온갖 신비가 뒤섞이며 갖가지 초상현상이 일어나자 다시금 종교인들의 도움이 필요해지며 노동자 계급을 필두로 종교인의 가치가 대두되었다. 이미 영지주의가 자리잡은 종교는 신비예술파와 마찬가지로 고대부터 이어져온 종교적 신비를 적극 이용한 구마사제와 이교도 신비주의에 지나치게 물든(요컨데 학술적인 영역에서 가볍게 연구되는 것이 아니라, 피흘리는신교의 교리에 반할 정도로 이교도에 매료된) 시민들을 종교재판에 회부하는 이단심문관이 등장한다. 이들은 노동자 계급에겐 거리의 공포와 문제거리를 무료로 해결해주는 구원자였으며, 중산층이나 귀족들에게는 자신들이 만든 문젯거리를 뇌물과 함께 눈감아주고 뒷처리해주는 유용한 사회적 자원이었다.[1] 구마사제와 이단심문관은 노동자 계급의 증가한 기부금과 더불어 피흘리는신교를 지탱하는 주요 수입원이 되었으며, 때문에 비밀리에 이들을 양성하는 교육기관이 설립되었다.[2]

피흘리는신교의 권위가 부활하면서, 계급격차와 빈부격차로 인해 거리에서 대놓고 폭행을 당해도 함부로 가해자를 신고하거나 조치를 취하지 못했던 노동자들이 거의 사라졌다. 종교 권위의 기반이 되는 노동자들에게 위해를 가하는 것은 종교계에 치명적이었고, 때문에 이단심문관들이 적극적으로 일종의 자경단 역할을 자처했기 때문. 피흘리는신교의 고행은 어디까지나 자의에서 비롯되어야 하기에,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는 것은 교리에 어긋난 명백한 악의적 행위로 간주되었고, 때문에 건수가 잘못 잡히면 뒷배가 약한 귀족들은 그 자리에서 연행되기 일쑤였다.

  • 피바치는 교회
    보편교회.
  • 굳은피 교회
    알렌토스크 독립교회. 서쪽 땅의 북부 산맥에 피흘리는신교가 퍼지며 생긴 종교분파. 굳은 피 교회에선 피흘리는신이 자기희생을 통해 피를 흘리고, 그 흐르는 피가 곧 넘쳐흐르는 생명력을 의미했으나, 인간의 악업에 의해 피가 굳고 딱딱해지며 생명력을 잃고 있다고 해석한다. 따라서 인간은 잃어가는 생명력을 복원하기 위해 더 많은 희생과 고행으로 생명을 불지피고 굳은 피를 녹여 다시 흐르게 해야 한다. 그러니 굳은 피 교회의 신도들은 마땅히 지배자들이 이끄는대로 고난의 행군을 이어나가야 한다.

분신교

불타는신을 믿는 종교. 피흘리는신교와 같은 뿌리를 두고 있다. 기본적인 교리는 같으나, 더 과격하다. 피흘리는신교에서 사제들이 자해를 통해 피를 흘리는 수행이 있다면, 분신교에선 인두로 몸을 지지며 아예 몸을 불태우고 전신화상을 입는 과정도 있다.

야가 도교

야가나타의 국교. 세상을 창조한 남매신 메달린신짓밟힌신, 그리고 이들이 창조한 우주에 깃든 무한한 죽은영을 숭배한다.

흑토 정령신앙

세간의 인식

신비학과의 관계

  1. 물론 이단심문관은 뒷처리 과정에서 문제가 있거나 반종교적인 세력을 모조리 종교재판에 회부하였고, 그들의 재산을 몰수했다는 점에서 귀족들에겐 기피의 대상이었다.
  2. 외부에 유출되지 않게 한 이유는 자칫 잘못하여 신비예술파의 끄나풀이 유입되거나, 그들의 방해를 받지 않기 위해서였다. 이단심문관은 기본적으로 귀족들의 적대세력이었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