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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강국은 미지의 땅과 해저, 남북극을 향해 수많은 탐험대를 보냈다. 과학은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을 넘어, 그 자체로 추구해 마땅한 최고의 가치이자 궁극적 선이었다. 그렇기에, 무지는 최악의 공포였고, 미지의 공간으로의 탐험은 그 공포를 극복하는 인본적인 필연이었다.

탐험대는 세상의 양 끝에서, 바다 깊은 곳에서, 야만의 땅에서 수많은 미지의 생명체와 고대문명의 지식을 발견했다. 그것은 열강국이 달성한 것 이상의 과학이기도 했고, 끝없이 탐구해 마땅한 불가해한 생명체이기도 했고, 한 때 미신으로 치부된 신비한 무언가이기도 했다.

열강국은 끝없는 호기심으로 이 모든 것을 그들의 땅으로 불러들였고, 그 지식들은 생명을 이해하고 기구학적 혁신을 일으켰으며, 열역학에 대한 온전한 이해로 연결되었다. 자동인형이나 거대비행선, 마천루의 과학적 법칙은 서로 교차적으로 뒤섞였다. 일반인은 감히 이해하기 힘든 과학적 진보는 마치 과학이 도덕과 윤리마저도 우습게 뛰어넘을 수 있다는 환상을 심었다.

한편, 세계각지에서 유입된 온갖 신비는 죽어가던 서구문명의 점성학, 수비학, 연금술 및 악마학 등과 엮였다. 태동하던 예술계는 이러한 신비와 함께 극단적으로 발전하였고, 인상주의+표현주의+아르누보+아르데코 등의 문화적 폭발을 일으키며 온갖 신비를 예술적으로 다루는 초상현상학문 또한 발달했다. 이들은 과학환원주의자에 비해 소수였으나, 꽤 많은 귀족들은 이 신비로움에 매료되었고, 이는 낭만주의의 끝자락부터 이어져온 귀족문화가 신비예술파와 섞이며 기묘한 유행을 만들어냈다.

신비예술파와 함께 대두된 초상현상(망령과 악마, 흡혈귀, 불법 마술사, 온갖 비밀결사와 신흥종교의 초상 범죄 등)으로 인한 사회적 문제는 결국 노동자들과 일부 귀족계층이 주도하는 납혈근본주의와 맞물려 종교계가 힘을 가지게 된다. 특히 큰 교회와 성당은 엑소시스트를 양성하여 통제를 잃은 거리의 신비를 격퇴하며 종교계는 떼돈을 벌게 되며, 종교는 정치적으로 무시할 수 없는 세력으로 성장한다.

이로 인해 열강국들은 과학환원주의, 신비예술파, 납혈근본주의의 3파전을 피할 수 없게 되었으며, 거리는 자동인형과 개조인간, 마술사와 비밀결사단, 이단심문관과 퇴마사제, 온갖 사이한 영혼과 괴물들이 들끓는 혼돈으로 가득차게 된다.

과학환원주의

고대문명에서 발견한 골렘은 이후 증기동력원을 통해 구현한 자동인형이 되었고, 유적지의 기관장치는 구조해석을 통해 거대 공장지대와 마천루가 되었다. 한때 신비 또는 신의 은혜로 이해된 모든 것들이 차츰 과학으로 풀어내지고, 과학은 모든 것을 이해할 유일한 수단이 되었다. 그건 신비예술파와 납혈근본주의의 미신도 마찬가지였다.

과학환원주의자라고 해서 무신론자인 것은 아니다. 그들은 과학이 신을 죽일 도구라기보단 신이 내리 선물로 보았고, 곧 인간이 신이 되기 위한, 신의 외로움을 해결하고 아버지의 동료가 될 도구로 생각했다. 그들이 종교를 바라보는 시각은 지적설계론에 가까웠으며, 과학적 경이가 곧 신의 위대함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흐름이 납혈근본주의로 연결되지 않았다. 과학환원주의는 근본적으로 진보적이었으며, 그들에게 있어 납혈근본주의는 곧 과거로의 회귀, 야만했던 비이성의 시대로의 회귀를 의미했다. 그렇기에 그들은 종교를 믿을지언정 예배같은 무가치한 행위를 하지 않았으며, 그들에게 종교행위는 곧 과학의 탐구와 발전이었다.

동시에, 과학환원주의자의 상당수는 귀족이 아닌 중산층 지식인들이었으며, 그들에게 있어 과학이란 유용한 돈벌이이자 학문적 목표, 그리고 나아가 신분상승의 수단이라는 정치적 목적과도 맞물려 있었다.

과학환원주의자에게 과학이란 경제적, 정치적, 종교적, 학문적인 수단이었고, 인간사의 모든 영역을 해결해주는 과학은 더이상 수단이라기보단 목적에 가까웠다. 그렇기에 과학환원주의자에게 신은 곧 과학이었고, 과학법칙이었으며, 그렇기에 신은 반드시 해석되고 해체되어야할 무언가였다.

신비예술파

귀족들에게 있어 과학은 그저 반길 무언가가 아니었다. 과학은 점차 종교와 신비주의에 의해 보호받던 '귀족이 특별한 이유'를 없애갔고, 신분은 모호해졌다. 멸시하던 중산층이 귀족이 되거나, 귀족들이 변해가는 세상에 적응하지 못해 중산층이나 노동자로 전락하기 일쑤였다.

그런 와중 탐험대가 발견한 수많은 신비는 중산층이 함부로 이해하지 못할 불가해한 무언가로서, 귀족들이 그들의 '구별될 이유'를 회복할 수단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마침 예술은 여전히 귀족들만의 영역으로 남아 있었기에, 귀족들은 음악과 미술을 세계 각지의 신비 지식과 엮어 신비예술파를 탄생시킨다. 그들에게 물감은 곧 망령가루와 흡혈귀의 피를 섞은 무언가였고, 실타래는 괴수의 털과 힘줄이었으며, 음악은 악마의 웃음소리를 악기로 표현한 것이었다. 한편 예술계의 과학에 대한 반발과 연결되며, 예술은 더더욱 형이상적이며 감정과 느낌, 혹은 신비한 법칙을 담은 인상주의나 조형주의 등의 유행으로 이어졌다.

신비예술은 그 자체로 신비의 힘을 가지게 되었고, 종교의 본질주의로 찍어눌러진 신비주의 상징물들은 다시금 귀족계에서부터 부활하였다. 신비예술파는 곧 강력한 힘을 지닌 마술사들이었으며, 그렇기에 이단과 이교도를 금지하는 종교계와 척을 지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신비예술파는 음지화되며 비밀결사의 조직으로 이어졌다.

그런 한편, 열강국으로 유입된 일부 지식있는 야만인들은 신비예술파의 귀족들에게 외부세계의 신비를 가르쳐 줄 선생과 같았고, 그렇기에 신비지식을 가진 노동자들은 중산층으로 인정받지 못할지언정 결코 귀족계에서 꿇리지 않는 입지를 가지게 되었다.

외부의 신비를 탐구하다 매료된 귀족들 일부는 야만인들의 신을 섬기게 되었고, 이들 역시 조직화된 신흥종교가 되어 종교집회나 과학 심포지엄을 테러하는 이교도가 되었다.

납혈근본주의

과학환원주의는 종교의 권위를 해체했고, 신비예술파는 종교를 노골적으로 적대했다. 종교계는 갈수록 힘을 잃어갔다.

그런 와중 거리에 늘어난 온갖 신비는 이교도로서 퇴치해 마땅한 무언가였고, 이는 곧 대중들로 하여금 종교의 가치를 상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대부분 시민들은 과학환원주의니 신비예술이니 하는 것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었고, 그렇기에 이들은 신비를 퇴치하는 사제들을 찬양했다.

한편 신비예술파는 종교계를 적대하면서도 결코 완전히 선을 그을 수는 없었다. 신비예술은 신비에 큰 관심이 없는 귀족들도 사교계의 흐름을 따라가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할 일종의 유행이었고, 때문에 신비지식이 부족한 귀족들이 일으키는 온갖 초상현상을 해결해줄 존재는 엑소시스트 밖에 없었다. 귀족들은 이교도로 몰려 처벌받지 않기 위해 종교계에 거금을 헌납해야 했고, 그 거금은 곧 종교계가 힘을 회복할 계기가 되었다.

돈이 생긴 종교계는 빈부격차가 심화되며 생긴 노동자들을 구제하며 신도들을 다시금 끌어모았고, 과학환원주의의 지식인들에게 착취당하거나 신비예술파의 초상현상에 시달리던 노동자들은 독실한 종교인이 되어 그들의 말을 따랐다. 종교계는 은근슬쩍 귀족계를 비난하고 과학을 힐난했으며, 이는 무지식한 노동자들로 하여금 과학과 예술에 대한 분노로, 나아가 신고전주의의 부활로 이어졌다.

그 외 파벌

이런 극단적인 삼파전 가운데, 대부분 시민들은 그딴 것에 별 관심이 없었으며, 대부분 관심사는 돈을 어떻게 모을지, 누구와 결혼할지, 요즘의 가십거리는 무엇인지, 놀거리가 있는지, 음식은 무엇을 먹을지 따위의 개인적인 것들 뿐이었다.

그들에게 해가 끼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대부분 시민들은 자동인형과 간단한 마술의 편의성을 즐겼고, 공장을 운영하거나 공장에서 노동했으며, 바쁘지 않다면 주말예배를 나갔다. 신문에서 나오는 3개 파벌의 경쟁(요컨데, 새로운 기술의 탄생이나 탐험대의 탐사기록, 귀족들의 가십거리나 예술 전시회 또는 연극의 광고, 동네 교회나 성당에서 주는 무료배식이나 잔치 등을 통한 중립지대 여론 공략)은 전쟁따윈 없는 평화로운 시대의 시민들에게 재미난 볼거리였다. 요컨데, 대부분 시민들에게 있어 치열한 삼파전은 거리가 먼 얘기였다.

대부분 시민들은 여러 파벌에 적당히 발을 걸쳤다. 대부분 노동자들은 노동을 하느라 바빴지만, 귀족이나 중산층은 특정 파벌에 속하지 않은 채 여기저기 발을 걸치며 이득을 취했다. 그런 자들을 두고 파벌의 극단주의자들은 박쥐파라고 불렀다.

그런 와중 어떤 파벌에 속하지 않은 체, 그들의 기술과 마술, 기도를 교묘하게 누리는 사람들이 나타나 거리의 사소한 문제들(때론 큰 문제들도)을 해결하기 시작했고, 그들은 해결사라고 불리며 초국가적인 길드를 만들고 많은 시민들에게 돈을 대가로 편의를 제공했다.

신비주의 비밀결사

계층

각 열강들이 서로 영토전쟁을 벌이던 시대는 한물 갔으며, 대부분 국가들은 식민지 지배를 둔 국제적 분쟁으로 이어진 결과 열강국 본토는 몹시 평화로웠다. 공장과 비료의 탄생으로 생산능력은 월등해졌으며, 인구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이런 발전에 비해 정치와 도덕은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고, 때문에 빈부격차는 극심했다.

돈은 큰 문제였고, 때문에 돈은 많은 것을 의미했다. 돈이 많은 이들은 준귀족이 되기도 했고, 돈이 없는 귀족은 작위를 잃기도 했다. 한편 기술과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곧 다양한 돈벌이로 이어짐을 의미했고, 기술과 지식에 권위가 부여되었으며, 때문에 일반 서민들과 구별된 중산층이 탄생한다. 기술도 지식도 권위도 뭣도 없는 시민들은 극단적인 노동환경 속에서 착취되었다.

그런 환경 가운대, 열강국의 시민들은 4개 계층으로 분리되었다.

상류층

대다수 국가가 계급제 사회이기에 상류층 대부분은 귀족. 법적으로 하위 계층과 구별되는 특권 있음.

귀족들은 조세권을 잃었으나 여전히 큰 땅의 지주였고, 땅은 곧 생산성을 의미했다. 대농장이나 공장이 땅에 들어섰고, 그렇기에 귀족들은 노동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평화의 시대에서 귀족들은 무료함에 지쳤으며, 그들은 새로운 것을 원했다. 그 새로운 것이란 곧 과학과 예술이었다. 과학에 매료된 이들은 과학환원주의로, 예술에 매료된 이들은 신비예술파로 빠졌다. 귀족들은 곧 부의 상징이었기에, 언제나 연구를 위한 예산을 필요로 하는 과학계와 끝없이 새로운 것을 창작해야하는 예술계는 귀족을 빼놓고 아무런 얘기도 하지 못했다.

귀족들은 변해가는 사회에서 곧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힘의 원천이었고, 그렇기에 많은 귀족들은 종교에 대한 관심을 잃었다. 한때, 신은 귀족들에게 특권을 부여했으나, 더이상 신은 특권을 부여할 힘이 없었다. 귀족들은 하늘 대신 과학과 신비를 섬겼다.

창출해낸 어마어마한 부가 과학과 예술로 빠지며, 온갖 새로운 문화가 탄생했다. 귀족들은 유행을 이끄는 선두주자였고, 중산층과 노동자는 그런 귀족을 질투하면서도 동경했다. 미술, 음악, 식문화같은 근본적인 영역에서부터, 무도회나 연극과 같은 오락거리, 사회 기반시설과 거리의 자동인형, 공장과 도시의 도면, 그 메커니즘, 모든 것은 귀족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과거의 귀족이 '특별하기에 특별'했다면, 지금의 귀족은 말 그대로 특별했다.

기본적으로 남성귀족은 과학을 추구하였으며, 여성귀족은 예술을 추구하였다. 이는 전통적인 고정된 성역할에서 기인된 것으로, 과학과 같은 이성적 영역은 남성귀족이 더 잘하는 반면, 감성적인 영역은 여성귀족이 더 잘할 거라는 고전관념에서 시작된 문화였다. 이러한 고정관념은 과학과 신비학에서 쉽사리 부정되었으나 이러한 문화가 바뀌진 않았다. 자연스레 남성귀족은 과학자이자 자본가가 되었으며, 여성귀족은 예술가이자 마술사가 되었다.

그럼에도 넘쳐나는 부를 주체하지 못하는 귀족들은 온갖 연회와 장식을 끌어모았고, 그들의 옆에 기술자와 신비학자를 대동했으며, 사용인을 늘렸다. 특히 온갖 잡일은 비싼 자동인형이 훨씬 잘 했기에, 오직 인간만이 해야할 일을 수행하는 집사와 메이드는 계속해서 바뀌는 유행과 기술의 흐름을 따라잡는 귀족들의 전용비서였다.

특히나 부유한 귀족 - 나아가 왕실은 온갖 분야의 전문지식을 갖춘 또다른 귀족들을 집사와 메이드로 고용했다. 사용인은 제너럴리스트여야만 했다. 아니라면 자동인형에게 자리를 빼앗겼다. 귀족들의 사치문화와 엮이며, 자연스레 집사와 메이드는 귀족사회의 핵심적인 전문직이 되었으며, 그들을 육성하는 아카데미마저 설립되었다.

한편, 귀족들 상당수는 도검소지법 등에 대한 특권을 부여받았기에, 다수의 귀족들은 검을 패용하며 검술을 연마했다. 검술은 여전히 문화적 측면에서 오직 귀족들만이 향유하는 고유한 영역이었으며, 군사기술이 총기와 대포로 대체되는 시대에 귀족들이 남긴 마지막 낭만이었다. 의복문화에 있어 중산층은 쉽사리 귀족의 영역에 발을 들였고, 때문에 의상착의로 귀족과 중산층을 구별하는 방법은 원론적으로는 없었다. (물론 암암리에 귀족들만 하는 복식은 여전히 있었으며, 중산층이 그러한 복식을 따라하는 것은 무례로 여겨졌다) 그렇기에, 검은 남성귀족을 대표하는 상징물이었고, 그렇기에 검의 디자인 역시 유행이 생겼다. 더 화려하고 비싼 장식물과 더 화려한 검법은 귀족의 권위를 상징했다.

이와 반대로, 여성귀족을 상징하는 것은 머리장식이었다. 머리를 말아올리며 묶는 머리끈이나 꽃장식 등은 신비예술의 상징이었고, 그 화려함과 주술적 상징성은 여성귀족의 신비학의 권위를 상징했다. 그러나 이러한 장식은 거리에서 대놓고 드러내었다간 이단심문관에게 시비가 걸릴 수 있었고, 때문에 여성들은 귀족들만의 사교계를 제외하면 애초에 외출을 잘 하지 않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여성 귀족은 보기 힘든, 귀한 존재가 되었고, 그 자체로 신비주의와 엮이며 여성귀족에 대한 환상은 강화되었다.

기본적으로 귀족들은 귀족들만 사는 특구에 모여 살았고, 귀족 특구는 특구에 전담된 증기기지에서 만든 증기를 중계기를 거쳐 각 귀족들의 저택으로 배송하는 증기배관로가 인프라로 구축되어 있기에 어지간하면 자체적인 보일러를 사용하는 일은 없다. 각 저택으로 보내는 증기압을 세밀하게 조정해야 하기 때문에, 많은 중산층 기술자들이 귀족특구 증기기지에 취직하여 중계기와 기지를 관리했다. 이런 증기기지는 각 도시의 귀족들이 자체적으로 구성한 사교회의 기금으로 운영되었고, 때문에 사교회에서 배척당한 귀족들은 자체적인 보일러를 사용해야했다. 이런 특징 때문에, 배척된 귀족의 저택 굴뚝에는 언제나 연기가 났으며, 이는 귀족으로서 굉장히 큰 수치였다.

중산층

중산층은 역사와 권위가 없을지언정 귀족에 버금가는 특별함을 증명할 무언가를 갖추었다. 돈만큼은 남 부러울 것 없이 많은 이들은 일반 시민계층 속에 그들만의 독자적인 계층을 형성하였고, 자본을 이용해 특수한 지식을 습득했다. 그 지식은 과학기술이나 예술, 나아가 세계의 온갖 신비학마저 포함했다.

중산층은 대학에 아낌없이 투자했다. 대학이란 중산층이 그들의 입지를 견고히 할 유일한 수단이었다. 전문화된 지식은 곧 부를 상징했고, 부는 오직 전문지식으로만 얻을 수 있었다. 운이 좋다면, 뛰어난 연구성과를 보인 대학의 중산층들은 그 업적을 기려 귀족이 될 자격을 얻기도 했다. 중산층은 필연적으로 스페셜리스트였다.

중산층은 귀족과 마찬가지로 세상을 이끄는 선두주자이길 바라지만, 귀족들에게있어 중산층은 이용가치가 높은 시민에 불과했다. 중산층 아래의 노동자가 되지 않기위해, 그들은 더 치열하게 학문을 탐구하며 새로운 기술과 예술을 탄생시켰고, 이를 연이 닿는 귀족에게 갖다바쳐 귀족이 될 기회를 노렸다.

또는, 다양한 지식들은 두루 익혀 집사나 메이드가 되는 것을 노리는 이들도 있었다. 역시, 자본만큼은 남부럽지 않은 중산층들은 사용인 아카데미에 입학시켜 보다 높은 귀족들을 섬기기 위해 노력했다. 운이 좋다면, 이를 통해 귀족이 될 수도 있었다.

한편, 엑소시즘을 내세우며 주요 파벌로 재부상한 종교계는 자연스레 중산층의 전유물이 되었다. 극히 일부의 고위사제를 제외하면 대부분 귀족들은 종교계에서 발을 뺐기에, 종교는 중산층이 유일하게 귀족들에게 저항할 수단이었다. 귀족들에게 반감을 가지는 많은 중산층들이 종교계에 후원하였으며, 귀족들을 직접적으로 견제하기 위해 중산층 가문에서 차남이나 삼남 등이 사제가 되는 중산층 고유의 유행이 생겼다.

중산층들은 귀족과 달리 검을 패용할 수 없었기에, 그들은 차선책으로 지팡이술을 연마했다. 자연스럽게 지팡이는 중산층의 상징이 되었다. 귀족들의 검술을 모방한 것이었으나, 일부 중산층은 지팡이에 칼을 숨긴 소드스틱을 패용하다가 발각되어 연행되기도 하였다. 중산층은 결국 귀족들을 선망하였으며, 귀족이 되길 원했다.

노동자

돈도 지식도 없는 일반 시민들은 자연스럽게 상류사회에서 외면되었다. 이들이 사회에 지불할 수 있는 것은 값싼 노동력밖에 없었으며, 개발된 도심 속에서 그들의 노동력은 고된 공장 외에는 받아주지 않았다. 그들은 근본적으로 신분상승의 계기를 잃었으며, 기댈 곳은 종교계말곤 없었다.

깊은 신앙심만 있다면 종교는 노동자가 중산층으로 도약할 유일한 수단이었다. 세상의 모든 지식들은 돈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었으나, 신앙심과 기도 만큼은 아니었다. 동시에, 지지기반의 대다수가 노동자인 종교계는 노동자에게 열려있었고, 엑소시스트 적성이 높은 노동자들에겐 적극적으로 사제가 될 기회를 제공했다.

공장직의 경우도 오랜기간 노동을 하며 지식을 쌓은 숙련공의 경우 여러 공장에서 러브콜을 받았으며, 일부 기술자들은 독자적인 공방을 차려 그럴듯한 부를 쌓았다. 이들은 하층민 취급을 탈출할 수 있었으나, 전문교육 없이 이런 기회를 얻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반면, 이렇게 숙련공이 된 노동자는 다른 하층민들을 지휘하는 공장의 중간관리자가 되기 쉬웠고, 이들은 단순 기술직들과 노동자를 가르치는 도제식 관계를 형성하기도 했다.

한편, 노예로 끌려와 강제노동을 하다 자동기계에게 대체된 야만인들은 그들 각자의 고유한 문화권을 지닌 게토를 형성하였고, 이들 게토는 공장구획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형성되었다. 게토의 야만인들은 낮에는 공장에서 노동하고, 밤에는 게토의 지도자가 샤먼을 자처하며 독자적인 신비를 탐구하는 비밀스런 종교집회로 이어졌으며, 이러한 집회가 귀족 사교계에 눈에 띄면 신비예술파의 선생으로 고용되어 야만의 땅의 신비를 가르치게 되었다. 물론, 종교계의 눈에 띌 경우 이단심문관이 그들을 체포했다.

대량생산에 따라 많은 공산품들은 그리 비싸지 않았고, 복잡한 기계가 아니라면 간단한 가전제품은 노동자도 충분히 살 수 있는 것이었다. 과학기술은 보편적인 수도인프라를 약속했으며, 석탄을 사 물을 떼워 집의 보일러를 충전하면 세탁기와 청소기를 쉽사리 가동할 수 있었다. 집안일이 간편해지자 여성노동자가 늘었고, 노동자는 같은 시간 내에 더 많은 돈을 벌었다. 그렇게 생긴 잉여자금은 거리연극이나 마술쇼, 최면모임, 유행하는 소설과 같은 대중문화를 향유하는데 소비되었다. 노동자는 과학과 예술을 즐겼다.

그러나 동시에, 노동자는 언제나 빈민이 될 수도 있다는 공포에 시달렸다. 발전하는 과학은 언제든지 노동자를 대체할 수 있었고, 실제로 대체해나갔다. 일자리를 잃는다면 노동자는 순식간에 빈민이 되었다. 그렇기에 노동자는 기본적으로 과학계에 대한 분노를 품고 있었으며, 종교계는 이를 적절히 이용해 과학환원주의를 비판했다. 동시에, 점점 늘어나는 신비주의 상징물은 더 많은 초상현상을 야기했으며, 그 문제의 피해자는 대부분 노동자였다. 물론, 종교계는 이 역시 노동자의 분노로 바꾸며 이단과 이교도에 대한 혐오와 적개심을 고취했다. 노동자는 과학과 예술을 향유하면서도, 과학과 예술을 혐오했다. 마치 그들이 상위계층을 동경하면서도 미워하는 것처럼.

빈민

빈민들은 인간 취급도 해주지 않았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내던져졌으며, 유일한 구원은 종교계에서 베푸는 음식 뿐이었다. 그들은 하루빨리 공장에 취직하여 노동자 계층으로 인정받길 원했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은 거리에 만연한 신비에 의해 피해자 신세를 졌다. 거의 대부분의 빈민들은 흡혈귀에게 피를 빨리거나, 이상한 전염병에 걸려 걸어다니는 시체가 되거나, 비밀결사의 종교적 제물로 바쳐져 괴물로 변하였다. 그런 이교도의 신비주의 괴물로 변한 빈민들은 은혜를 베풀던 종교의 엑소시스트와 이단심문관에게 죽임당했다. 빈민들은 좋게 말해도 계층으로 분류되기도 힘든 거리의 희생양들이었으나, 늘어가는 공장의 자동인형으로 인해 일거리가 사라지며 점점 많은 노동자가 빈민으로 변하였다.

이에 분노한 빈민들은 범죄조직을 형성하여 불법밀입국의 브로커나 밀수에 가담하고, 금지된 신비학적 물건이나 약품을 귀족과 중산층에게 팔았다. 이런 범죄행위를 통해 큰 돈을 번 빈민들은 신분세탁하여 단숨에 중산층이 되기도 했다. 빈민들에게 범죄는 신분상승의 큰 기회였으며, 자연스럽게 빈민들은 범죄에 빠졌고, 대부분의 시민들에게 기피와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