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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백제국 제6대 황제
建樂帝
건락제 | Emperor Gunlak
출생 1966년 9월 13일 (55세)
대백제국 경성수도시 종로구 덕수궁
즉위 2006년 5월 20일
대백제국 경성수도시 종로구 경복궁 근정전[1]
거주지 대백제국 선양수도시 태봉구 수창궁
국적 대백제국
작위 皇帝敬 (황제경)
재위 대백제국 황태자
1985년 10월 1일 - 2006년 5월 19일
대백제국 황제
2006년 5월 2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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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전주 (全州)
광 (珖)
군호 효원대군 (效元大君)
부모 부친 만덕제, 어머니 신정황후 신씨
형제 태원대군, 동생 희청대군
학력 장춘 공과대학교 (천문학 / 석사)
리버풀 대학교 (천체물리학 / Ph.D)
리즈 대학교 (물리학 / 중퇴)
종교 유교 (성리학)[2]
신체 177cm, 62kg, AB형
부인 태원황후 유씨
자녀 슬하 3남 1녀
아들 진평대군, 효승대군, 평림대군, 딸 한령공주
SNS | |

개요

대백제국의 제6대 황제. 추존까지 포함할시 제31대 황제이다.

1966년 만덕제신정황후 신씨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형 태원대군이 학생운동에 투신하기 위해 대백제국 황태자 책봉을 거부하자, 1985년 19세의 나이로 황태자에 책봉되었다. 2006년, 부친 만덕제가 74세의 나이로 붕어함에 따라 39세의 나이에 대백제국의 황제로 즉위하였다.

공식 석장에서는 간단히 황제 폐하로만 칭해진다.

생애

어린 시절

1966년 덕수궁에서 태어났다. 휘는 광이었고, 효원대군으로 칭해졌다. 그가 1살이 되었을때 선륭제가 왕위에서 물러나 경복궁에서 거주하게 되었다. 그러나 1969년 이광이 3살이었을때 어머니 신정황후 신씨희청대군을 출산하다가 사망해 홀부모 가정에서 자라게 되었다. 다행히 효원대군의 아버지였던 만덕제가 아들들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는 등 어머니의 빈 자리를 채워주기 위해 노력한 덕분에 삐뚤어지지 않고 자라났다. 고등학교 때 성적이 좋지 않았으나, 대신 대학 편입 고사를 잘 봐서 장춘 공과대학교에 진학했다. 본래 여느 황족이 그렇듯이 황립 성균관대학교에 진학할 예정이었지만, 효원대군의 희망 학과였던 천문학부가 성대에 없었기 때문에 대신 장춘 공대에 진학한 것이다.

황태자 시절

1985년 그보다 4살이 많았던 태원대군 이청이 본래 황태자에 책봉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황립 성균관대학교 인문학부에 입학한 이후 카를 마르크스의 저서를 읽고 경도되어 황실 개혁과 학생 운동에 참여하게 되었다. 만덕제는 태원대군을 여러번 타일렀지만 결국 태원대군은 스스로 적성에 황태자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 황태자 책봉을 동생들에게 양보하겠다고 밝혔고, 이에 1985년 갓 대학에 입학한 효원대군이 황태자에 책봉되게 된다.

1980년대 중반에는 황태자 직무에 지루함을 느껴 공무에 자주 참여하진 않았지만, 천문학에 흥미를 보여 우수한 학점으로 장춘 공대를 졸업했다. 1994년 영국 유학으로 리버풀 대학교의 천체물리학부에 진학해 1999년 박사 학위로 졸업했다. 2000년에는 리즈 대학교 물리학부에 진학하기도 했으나, 2002년 만덕제의 건강 악화로 사실상 황제 직을 대리함에 따라 공무가 늘어나 결국 리즈 대학교를 중퇴, 영국 유학 생활을 마치고 귀국했다.

2006년 결국 만덕제가 뇌종양으로 붕어하자 대백제국 황제에 즉위했다.

황제 즉위 이후

2006년 황제로 즉위 직후 2007년 노무현 태정대신이 사임하자 김준병 교육대신에 대한 태정대신 임명장에 서명했다. 이후 2009년 김근태 사회당 총수가 태정대신에 당선되어 건락시대 최초의 정권 교대가 이뤄지자 김근태 태정대신 임명장에 서명하였다.

황제로 즉위하면서 황실 개혁 운동을 벌일 것이라는 예측이 있었고 궁무부 인사들에 대한 교체가 있었으나 즉위 이전에 우려되었던 과격한 개혁은 이뤄지지 않았다. 다만 태원대군의 영향을 받아 2021년 현재까지 꾸준한 황실 개혁에 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황실에 대한 지지율이 높지는 않았지만 2008년 장수주 대지진 당시 발벗고 나서는 모습이 매스컴을 타면서 높은 지지를 얻게 되었고 황실 지지 여론이 95%까지 오른 적도 있었다. 이후 페이퍼 컴퍼니 의혹 등 여러 의혹이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이전의 황제보다 더 SNS를 통한 소통을 많이 하는 모습을 보여 국민들에게서 평은 대체로 좋다.

2010년 선양수도시로 천도하면서 수창궁에서 살게 되었다. 수창궁이 자신에게는 지나치게 넓다면서 황실측이 너무 많은 재산을 쓰는게 아니냐고 비판했다.

코로나 19로 인해 경제가 어려워지고 많은 국민들이 사망하자 이들을 애도하며 황실 재산을 국가에 반환해 기본소득 지원에 보태겠다는 입장을 발표해 큰 호응을 얻었다.

가족 관계

부부 건락제 이광
1966년 9월 13일 -
태원황후 유씨
1969년 10월 1일 -
결혼 1989년 1월 7일
자녀 장남 진평대군 이현 (1순위)
1992년 1월 5일 -
차남 효승대군 이편 (2순위)
1993년 5월 14일 -
장녀 한령공주 이희 (3순위)
1994년 7월 17일 -
삼남 평림대군 이진 (4순위)
1994년 7월 17일 -

슬하에 3남 1녀를 두었으며, 진평대군 이현이 2019년 7월 14일 황태자로 책봉되었다. 현재 손주는 없으나, 장남 진평대군이 곧 남자 아이를 출산할 예정이다.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컸기 때문에 황후에게 잘 대해주고 사이도 좋다고 한다.

성품

대체로 인성이 좋고 훌륭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듣고 있으나, 진보적인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권위주의적이고 보수적이라는 비판이 있기는 하다. 그럼에도 SNS를 통한 적극적인 소통으로 시민들에게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성향과 평가

황실 개혁 의지가 있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보수적이다. 태원대군같이 황족 출신이면서 진보적인 경우가 드문것이고 대부분의 황실 관계자가 건락제와 비슷한 사고관을 가지고 있다. 이는 영국 왕실도 비슷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 유학 당시 세상에 대한 식견이 넓어졌다고 주장하며 태원대군의 영향을 받아 황실의 지나치게 많은 재산과 고리타분함을 비판하는 것을 보면 어느정도의 진보적인 사고관도 있는 모양이다. 환경운동이나 소수자 인권 운동에도 어느정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 종합해 봤을때 자유주의에 가까운 것 같다.

사회당 소속의 김근표 태정대신과 사이가 안좋아, 호금도 태정대신의 교육 평준화 정책을 두고 위법이 아니냐고 당시 법무대신이었던 현신건에게 물어봤다는 소문이 있다.[3] 노무현 태정대신의 선양 천도 정책을 칭찬했다.

황제의 권위를 딱히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을 보여 시민들에게 호응을 받고 있다. 황실 모독죄 부활이 몇몇 근왕파에 의해 제안되자 스스로 거부한 바 있다.

나루히토 천황과 마찬가지로 평화주의자이다. 황태자 시절인 2004년 미국의 아부그라이브 포로 학대를 다룬 동영상을 눈물을 흘리면서 보고 황제가 된다면 절대로 미국 순방을 하지 않겠다는 말을 해 양국의 외교 관계가 틀어질뻔했다. 다만 2009년 황제가 된 이후 미국 순방을 한 것을 보면 그냥 감정적으로 한 말으로 보인다.

시민들에게서 전반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일부 공화파 시민을 제외하면 스스로 처신을 잘한 덕분에 논란이 될 사안이 몇가지 있었음에도 지지율이 높다. 즉위 당시에는 황실 지지율이 75%였고, 장수주 지진때에는 95%였으며 지금은 그정도는 아니지만 기본으로 80%는 깔고 간다. 정치인중에서도 포용적인 태도로 왕을 지지하는 사람이 좌우파를 막론하고 아주 많다. 김근태 전 태정대신과는 각각 좌파와 중도우파로 성향이 달랐지만, 건락제 스스로 김근태 태정대신의 장례식에서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었다고 할 정도의 포용력을 보였다.[4]

논란

대외적으로는 황실의 지나친 재산을 줄이자는 의견을 보이고 있지만 지속적으로 페이퍼 컴퍼니를 운용하여 불법적으로 재산을 늘리고 있다는 의혹이 있다. 다만 현재까지는 어디까지나 추측이나 찌라시성 기사에 그치고 있기 때문에 지나친 추측은 삼갈것.

여담

  • 일렉트릭 기타와 어쿠스틱 기타, 피아노, 하프시코드를 연주할 줄 안다. 2012년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와의 만남에서 Bohemian Rhapsody를 자신의 일렉트릭 기타로 즉흥 연주했는데 들어보면 연주 실력이 수준급인듯 하다. 락 음악에 전반적으로 많은 관심을 보이는 락덕후이며, 에릭 클랩튼과 폴 매카트니의 공연에 직관을 온 것이 확인되기도 했다. 가장 좋아하는 락 밴드는 블랙 사바스고, 좋아하는 노래는 비틀즈의 A Day in the Life와 퀸의 Somebody to Love, 롤링 스톤스의 Sympathy For The Devil이며 그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에릭 클랩튼의 Layla라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 아스널 FC의 팬이다.
  •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윈스턴 처칠세종대왕, 김근태를 꼽았다.
  • 원래 성소수자 권리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편이었지만, 1991년 대학교를 다닐때 좋아했던 뮤지션인 프레디 머큐리가 양성애로 인한 에이즈로 사망하자 성소수자 권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에이즈 예방에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영국 음식인 셰퍼드 파이라고 한다. 반면에 치즈는 비만의 원인 쯤으로 여기고 아주 싫어한다. 담배, 술을 일체 안하는 등 건강에 신경 쓰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 전공이 천체물리학이라 다소 특이하다. 평소 천문 산업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어 황제에 오르자 대백제국 우주국이 굉장히 반겼다는 후문이 있다. 황실 재산을 자주 우주국에 투자하고 있으며, 천체물리학 논문을 몇개 쓴 적 있다.
  • 현재에는 50대에 걸맞는 외모를 가지고 있지만 어릴 때에는 상당히 동안이었다. 그러다가 40대 들어 폭삭 늙어버리면서 현재에 이르렀다.
  • 황족이기 때문에 유교 성리학을 믿지만, 종교와 신에 대한 믿음이 없다고 밝혔으며 따라서 무종교인, 무신론자로도 분류된다. 애초에 유교 자체가 무신론적인 성향이 강하다.

각주

  1. 2010년 수도를 경성에서 선양으로 천도했기 때문에 경성에서 즉위한 마지막 황제가 된다.
  2. 다만 무신론적인 성향이 강하다.
  3. 주변인의 말에 의하면 장춘 공대 천문학과를 나온것에 대한 자부심이 크다고 한다.
  4. 다만 호금도나 이재명같은 공화주의자들과는 사이가 안좋은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