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백제국

대백 휘장.png 대백제국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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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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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백제국
大白帝國 | Empire of Great Paik
대백제국 국기.png 대백 휘장.png
국기 국장
음과 양의 조화
阴阳和谐
국가 황제행진곡
국조 봉황
국화 무궁화
위치
대백제국 영역.png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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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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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선양수도시
최대 도시 경성특급시
면적 1,326,230 km2
접경국 몽골국기(네이션즈).png 몽골, 중화민국 국기.png 중화민국, Flag of Soviet Union.png 소련
인문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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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총 인구 411,027,110명
밀도 309.92명/km2
민족 한국계 42.3%, 중국계 35.1%, 혼혈 14.2%, 일본계 5.0%, 기타 3.4%
공용어 한국어, 중국어
지역어 몽골어, 만주어, 일본어
공용 문자 한글, 한자 (번체자)
종교 국교 없음 (정교 분리)
분포 불교 30.2%, 기독교 29.4%[1], 도교 5.4%, 무속 신앙 2.1%, 이슬람교 1.1%, 기타 1.0%,무종교 30.8%
군대 대백제국군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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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제 입헌군주제, 의원내각제, 양원제, 단일국가
민주주의 지수 8.53점[2]
국가 원수 (황제) 건락제
정부
수반
태정대신 김원홍
외무대신 강기숙
재무대신 유홍원
대법관 이재강
국회의장 김문표
여당 자유당 흰색.png
신임과 보완 민족민주당2.png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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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제 자본주의적 시장 경제
GDP
(PPP)
$22,606,491,050,000
1인당 $55,000
GDP
(명목)
$17,883,789,556,100
1인당 $43,510
무역 수입 $510,003,215,000
수출 $600,000,200,000
신용 등급 무디스 Aa3
S&P AA
Fitch AA-
화폐 공식화폐
ISO4217 GPW
단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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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연호 대백 황력, 서력기원
시간대 UTC+08:00 ~ 09:00
도량형 SI 단위
ccTLD
.gp
국가 코드
EGP, GP, 821
전화 코드
+47
  1. 개신교 14.4%, 가톨릭 13.0%, 기타 2.0%
  2. 190개국중 13위, 완전민주주의

개요

대백제국 (중국어: 大白帝國, 영어: Empire of Great Paik)은 동아시아에 위치한 입헌군주제 국가이다.

개혁 5개 칙령을 통해 급속한 근대화를 이룬 조선은 1900년 대한제국을 건국하였으며, 1911년에는 한일전쟁을 치뤄 일본제국의 영토 확장 야욕을 분쇄하고 한반도와 간도 일대를 차지한 제국이 되었다. 1920년 국명을 백의 민족이라는 뜻인 대백제국으로 개칭하였다. 이후 1920년대 후반 반장전쟁으로 인해 혼란스러워진 중국 본토를 빠르게 습격해 황해안 연안과 만주 일대를 점령지로 삼았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으로 싸웠고, 승리한 이후 규슈 지역을 할양받아 현재의 영토를 갖추게 되었다.

입헌군주제, 의원내각제 국가이며 제도는 영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국가 원수인 천황은 건락제이며 사실상의 국가 원수인 태정대신은 김진표이다.

황해안을 중심으로 인구가 많이 분포해있으며, 만주 및 개마고원 등 내륙 지역은 인구가 적다. 다민족 국가이지만 대다수의 국민이 중국계와 한국계다. 주요 종교는 불교 및 기독교이다.

수도는 선양수도시이며 최대 도시는 경성특급시이다.

상징

국기

대백제국의 국기
대백제국 국기.png
명칭 대백기 / 大白旗
고안자 고조 건국제
지정 1924년 5월 5일
법률 국가 상징물에 관한 법규 3호

대한제국 건국 당시에는 태극기를 사용하였다. 현재 사용되는 대백기와 다른 점은 색상 뿐이며 기본 디자인은 동일하다. 디자인을 고안한 사람은 건국제이며, 제작자는 이응준이다. 대백제국이 건국된 이후 '대백에 맞는 깃발'을 만들자는 명목으로 2024년 태극기에서 색상만을 바꾼 현재의 대백기를 공식 국기로 받아들였다. 건곤감이는 자연세계의 기본 요소를 상징한다. 중심의 음양은 해와 달의 조화를 뜻한다.

국호

대백제국의 국호
한국어 대백제국
중국어 大白帝國
일본어 大白帝国
몽골어 Их Пейкийн эзэнт гүрэн
영어 Empire of Great Paik
스페인어 Imperio del Gran Paik
아랍어 إمبراطورية بايك العظمى

대백제국이란 백의 민족을 뜻하는 백(白)을 국호에 넣은 것이다. 이후 중국과 일본 등으로 영토를 넓히면서 다민족 국가가 되었음에도 대백제국이라는 국호를 유지하고 있다. 대백제국 이전의 국호는 대한제국이었으나, 1920년 대백제국으로 개칭했다. 중국과 일본의 일부 지역주의자들은 대백제국이란 국호를 폐지하고 아시아 합중국 등의 이름으로 바꿔야한다고 주장하나, 대체로 많은 국민들이 익숙함을 이유로 대백제국이라는 국호를 더 선호한다.

국가

대백제국의 국가
명칭 황제행진곡 / 皇帝進行曲
작곡 승준혁 (1867년 2월 13일)
지정 1970년 1월 2일
법률 국가 상징물에 관한 법규 4호

1867년 작곡되었으며, 1970년 국가로 지정되었다. 그 이전에는 <상뎨는 우리를 됴으쇼셔>가 국가였다. 군주제 개혁 운동이 일자 왕정주의 색체가 짙은 기존 국가를 폐지하고, 이전에 황실 찬가로 자주 쓰이던 황제행진곡을 국가로 지정했다. 가사는 없으며 곡조만 존재한다. 최근에는 탈권위주의, 탈국가주의 분위기로 황실 행사를 빼면 잘 연주되지는 않는다.

역사

대한제국 선포와 한일 전쟁

1880년대 이후 적극적인 외래 문물 수입 정책을 도입한 조선은 1900년 청나라로부터 자주독립을 하자는 취지로 대한제국을 선포한다. 이에 따라 왕이 황제로 격상되었고, 탈청 운동을 국가 주도로 벌이게 되었다. 대한제국은 김옥균 태정대신의 주도 아래에 행정구역, 정치, 사법 체계를 대대적으로 정비했다. 또 경인선, 경의선, 경부선 등 철도를 설치하고 미국 등과 동맹을 맺으면서 적극적인 산업화 및 외교 정책을 펼치게 된다.

당초 조선을 장래의 식민지로 보고 있었던 일본은 대한제국의 이런 산업화와 근대화를 경계하였으며, 1904년 강화도 전투로 대한제국과 조약을 맺기도 했다. 그러나 1906년 이완용 태정대신이 강화도 조약을 무효화시키고 대한제국 자주화 정책을 취하자 일본과 대한의 관계는 급속히 냉각되었다. 그러던중 1909년 10월 26일, 일본의 전 내각총리대신이었던 이토 히로부미안중근에 의해 암살되는 사건이 일어났고, 이에 일본은 대한제국에 전쟁을 선포했다. 이것이 약 2년간 이어진 한일 전쟁이었다.

초반에는 일본제국군이 경상도 일대를 점령하는 등 크게 선전했지만, 대한제국의 동맹국이었던 미국이 일본에 대한 무역 규제 조치를 내리면서 일본 측 민심이 동요하였다. 또 1910년 5월 신돌석 장군이 이끄는 대한제국군이 문경에서 승리를 거둔 것을 시작으로 대한군이 일본군을 꺾고 승리하게 되었다.

비록 경상도 지역의 공단이 파괴되어 피로스의 승리로 끝나긴 했으나, 일본으로부터 불가침 조약을 받아내는데 성공했다.

대백제국 선포, 중국 진출

1911년 한일 전쟁이 끝나자, 박은식 내각은 무너진 경제를 되살리는 정책에 열중하였다. 본래 역사를 전공하여 역사책 여러권을 저술한 바 있었던 박은식 태정대신은 민족성을 강조하며 민족주의 가치를 이곳 저곳에 주입하는 정책을 폈는데, 이 정책의 일환으로 백의 민족이라는 정체성에 맞춰 국호를 대한제국에서 대백제국으로 바꾸게 되었다. 박은식 태정대신이 1921년 노환으로 인해 물러나자, 그의 정치적 후계자라고 할 수 있는 안창호가 태정대신직에 올랐지만, 이내 자유당이 총선에서 승리해 이승만이 태정대신 직에 오른다.

이승만 내각은 초반에는 강력한 친미 정책으로 인기가 높았지만, 1929년 대공황을 수습하는데 실패해 결국 이승만 태정대신이 3년만에 사퇴하는 일이 일어났다. 또 조선 공산당 등 사회주의를 추종하는 극좌 정당들의 지지율이 높아져 사회가 불안정해졌다. 이에 거국 내각의 태정대신으로 선출된 신채호는 중국을 공격해 고구려의 영역을 되찾고 자원을 활용해 대공황을 극복하자는 정책을 냈다.

신채호 내각의 결정이 내려진 직후였던 1930년 12월, 대한제국군은 반장 전쟁으로 혼란했던 중국을 급습해, 황해안과 만주 지역을 사실상 전부 장악했다. 신채호는 본래 좌파 정당 출신이었지만 미국과의 친선을 통해 미국이 대백의 중국 점령을 묵인하게 하기도 했다. 또 신채호 내각의 강력한 블록 경제 정책으로 인해 대백제국은 1930년대 중반 대공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그러던 1939년 9월, 나치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독일의 동맹국이었던 일본제국도 얼마 안가 백일 불가침조약을 폐기하고 대백제국과 중화민국에 전쟁을 선포했다. 중국 진출로 앙숙이었던 중화민국과 대백제국이었지만, 중백 합작으로 일본에 맞서게 되었다. 2차 세계대전 초반기인 1941년에는 기습 공격으로 일본이 수원까지 진출하기도 했지만, 진주만 공격으로 전선이 둘로 나뉘면서 일본이 불리한 형국이 되었다. 1942년 대백제국군은 대전을 탈환했고, 중국군과 합세하여 대만 상륙작전을 개시하기도 했다.

1943년 11월 여운형 태정대신이 연합국 수장의 자격으로 카이로 회담에 참석하여 일본 분할을 제기했고, 이에 따라 규슈는 대백에, 시고쿠는 영국에, 홋카이도는 소련에, 다이완은 중국에, 혼슈는 미국에 나눠주고 도쿄는 분할통치하기로 합의되었다. 1944년 3월, 대백제국군은 기타큐슈 상륙작전을 감행, 1944년 7월 구마모토를 함락시키고 혼슈 전역을 점령했다. 1945년 6월 히로시마와 나가노에 미국의 핵폭탄을 맞은 일본은 결국 항복했고, 1948년 샌프란시스코 조약을 통해 연합군이 철수하면서 규슈는 영구적으로 대백제국에 할양되게 되었다.[1]

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의 일원으로 싸우며 강력해진 대백제국은 유엔의 창립 멤버가 되었다. 다만 중국에 밀려 상임이사국이 되지는 못하였다.

4.11 안보 투쟁과 정치 개혁

2차 대전 이후 더욱 빠른 경제 발전으로 민생이 안정화되었지만, 반대로 급속한 산업화로 인해 농촌이 몰락하였으며 빈부격차가 증가했다. 이에 불만을 품은 도시민들이 1956년 북경, 장춘, 경성 등지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였으니 이를 10.5 노동쟁의 사건이라고 한다. 이 사건으로 장면 내각이 총사퇴했고, 조봉암이 이끄는 사회당이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게 되었다. 조봉암 태정대신은 취임 직후 농지 개혁과 노동법 개정으로 사태를 수습했으며, 의료 복지와 노동 복지제도를 도입해 '대백의 클레멘트 애틀리'라고 불리고 있다.

1960년대 대백의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비틀즈, 밥 딜런 등 신세대 음악가들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문화적인 진보가 이뤄지게 되었다. 서구 문물의 영향으로 인한 젊은이들의 의식 진보화에도 불구하고, 유교 가치관을 믿고 있었던 기성 세대는 이런 움직임을 반항으로 간주하였다. 그러던 1967년 대백제국 정부가 미국의 요청에 따라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기로 결정하면서 대백의 젊은이들이 대대적으로 이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4.11 안보 투쟁이라 불리는 이 사건은 일종의 히피 운동으로 분류되고 있다. 비록 안보 투쟁을 주도했던 경성제국대학교, 장춘대학교 학생부가 구속되면서 실패하긴 했으나, 안보 투쟁은 사회적인 반향을 일으켜 대백제국이 진보화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또 황실의 부패한 일상이 미디어를 통해 공개되면서 황실 개혁의 요구가 일기도 했다. 이에 대백 정부는 황실 찬양 색체가 짙은 기존 국가를 폐지하기도 했고, 법을 개정해 황실의 연봉을 깎고 권한을 대폭 축소하였다.

1980년대의 삼저호황

1970년대 초반 중진국 함정에 빠져 경제 침체기에 접어든 중화민국을 밀어내고 유엔 상임이사국이 된 대백제국은 공업화에 이어 서비스 산업 등 3차 산업에 적극적으로 돈을 투자하였다. 삼저호황을 통해 연 5%에 달하는 높은 경제 성장률을 유지함에 따라, 1981년에는 독일의 경제 규모를 추월하고 제2의 경제 대국으로 올라섰다. 1989년 불경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대백이 10년 안에 미국을 뛰어넘을 것이라는 예측까지 나왔을 정도였다.

대내적으로는 세계적인 경제 추세에 맞춰 신자유주의 정책이 시행되었다. 김대중 태정 대신은 '아젠다 1990'을 발표, 1990년까지 공기업을 대거 민영화하고 민간 기업을 지원하는 낙수 효과 정책을 폈다. 그러나 이로 인해 만주에 위치한 공단 지역이 몰락해 대규모 폭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결국 폭동의 영향으로 김대중 태정대신이 사퇴하기도 했으나, 그의 최측근이었던 김영삼이 태정대신에 오르게 된다. 이러한 추세는 1989년 '어둠의 화요일'이라고 불리는 주가 대폭락 사태로 끝나게 되었다.

잃어버린 10년과 극복

1989년 밤의 화요일 사태로 대백제국의 경제는 추락했고, 실패 국가의 대명사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1990년대 집권한 이회창 태정대신의 긴급 경제 부양 정책으로 경제 피해를 최소화하였고, 1999년 심각한 수준이었던 국가부채를 어느정도 줄이는데 성공해 1989년부터 1999년까지의 잃어버린 10년이 끝나게 되었다.

2000년에는 장춘에서 올림픽을 개최해 대백제국의 경제적인 부활을 알리기도 했다. 또 2006년에는 경성에서 월드컵을 개최했다.

현대

1999년 경제 위기를 극복한 대백은 경제적으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으며, IT 기술의 집중적인 투자로 현대에는 미국과 함께 IT 기술의 가장 선진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다.

행정구역

대백 휘장.png
대백제국의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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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시
선양수도시
경성특급시 장춘특급시 북경특급시 상해특급시
자치주
북조선주
주도 : 평양시
남조선주
주도 : 대전시
간도주
주도 : 청진시
길림주
주도 : 연변시
흑룡강주
주도 : 합변시
요령주
주도 : 안산시
하북주
주도 : 천진시
산동주
주도 : 청도시
장수주
주도 : 남경시
남도주
주도 : 웅본시
대백 휘장.png 대백제국
광역단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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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수도는 경성수도시였으나, 노무현 태정대신의 행정구역 개혁 정책 일환으로 2004년 수도를 선양수도시로 옮겼다.

광역행정은 수도시, 특급시, 주로 나뉘어진다. 수도시는 선양수도시 하나만 존재하며, 특급시는 수도시와 지위는 같으나 수도는 아닌 자치시를 의미한다. 인구가 800만명 이상이면 특급시로 승격되며, 현재까지 경성특급시, 장춘특급시, 북경특급시, 상해특급시 등 4개 시가 있다. 자치주는 일반 행정구역으로, 현실 한국의 도와 같은 역할이다. 현재 10개 주가 있다.

이들 광역 행정구역은 모두 자치 의회를 구성하며, 자치의회에서 자체적으로 주지사 혹은 시장을 선출한다. 또 자체적으로 입법을 하기도 하는 등 연방제적인 성격도 가지고 있다. 다만 중앙 정부에 의해 법안 무효화가 가능하고, 중앙 정부의 입김이 지방 정부의 입김보다 더 거세기 때문에 연방제라고는 보기 힘들다.

광역행정구역 밑으로는 기초행정구역이 있으며 크게 시, 군, 정, 구로 나뉘어진다. 시는 인구 10만 이상의 도시이며, 군은 10만 이하이다. 정은 시와 군 아래에 있는 기본 행정구역 단위이다. 특급시나 수도시에서는 구를 사용한다. 시중에서도 주도인 10개의 도시들은 법적으로는 일반 시와 동급이지만 사실상 준 특급시 대우를 받기도 한다.

대백제국 초기에는 부 목 현 체제였으나, 이후 목을 폐지하고 시로 명칭을 바꾼 뒤 부/시/현 체제가 되었다. 현의 이름이 주로 바뀐 것은 1949년이었고, 이후 부가 폐지되면서 직할시와 수도시로 바뀌었다. 1980년 최종적으로 직할시가 특급시가 되면서 현 체제가 완성되었다.

정치

체제

전체적으로 영국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의원내각제 체제이나, 대통령 중심제 성향이 있다. 행정각부 위에 행정각부를 통솔하는 태정부가 있으며, 태정부의 수장인 태정대신이 행정부의 우두머리 역할을 하기 때문에 대통령 중심제적인 성격이 강하다. 그러나 행정 각료가 모두 국회의원 출신이고 다수당에서 총리를 배출한다는 점에서 대통령제라고 보기는 힘들다.

선거는 기본적으로 4년에 한번씩 치룬다. 상원인 귀족원은 선출 투표가 없다. 하원인 서민원은 660개의 선거구에서 한명씩 선출하는 소선거구제로 국회의원을 선출한다. 국회의원이 모두 당선되면 국회 내에서의 투표를 거쳐 다수당의 대표를 태정대신으로 선출한다. 이때 태정대신은 반드시 서민원 의원이어야한다.

양원제 국가다. 상원인 귀족원의 권한은 2006년 개헌을 통해 대폭 줄어들었지만, 법안의 심사를 형식적으로 맡고 대관식을 진행한다. 사실상의 권한은 모두 서민원에게 있다. 서민원에서는 법안이 통과되며 법안에 대한 토론을 한다.

태정대신과 행정각부

대백 태정대신 휘장.png
대백제국의 태정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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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 시대
초대
박은식
흥정 시대
초대
박은식
제2대
안창호
제3대
이승만
제4대
김창암
순치 시대
제5대
신채호
제6대
이동녕
제7대
김창암
제8대
송병조
제9대
김규식
제10대
신채호
제11대
여운형
제12대
이관술
제13대
윤보선
제14대
조병옥
제15대
 
선륭 시대
제15대
 
제16대
조봉암
제17대
김원봉
제18대
김성주
제18대
김홍일
제19대
김병로
제20대
유진산
제21대
이철승
만덕 시대
제22대
이민우
제23대
양일동
제24대
장준하
제25대
함석헌
제26대
김대중
제27대
김영삼
제28대
김종인
제29대
김규석
제30대
권영길
제31대
이영호
제32대
김영화
제33대
노무현
건락 시대
제33대
노무현
제34대
김준병
제35대
김근태
제36대
김근표
제37대
박두진
제38대
김원홍
고조선 · 부여 · 고구려 · 백제 · 가야 · 신라 · 발해
후삼국 · 고려 · 조선 · 대한제국 · 대백제국

태정대신은 사실상의 국가원수직을 맡는다. 현직 총리는 제38대 김원홍.[2]

태정대신은 태정부 소속이며, 태정부는 행정부를 총괄하는 정부 기관이다. 태정부 밑에 행정 각부가 있는 체계이기 때문에 대통령제의 형태를 띄고 있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의원내각제이다. 의원내각제에 대통령제의 성격이 가미되어있다고 볼 수 있다.

총리는 다수당에서 배출한다. 소수당이더라도 연정을 통해 총리를 배출할 수 있지만 대백제국은 양당제적인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물다. 총리는 내각을 조각한다. 총리는 의원들의 투표를 통해서 선출된다.

총리는 총선 직후 선출되지만 꼭 총선 직후 선출되는 것은 아니다. 총선 이외의 기간에도 전직 총리가 불신임 안건으로 해임되거나 스스로 사임했을 시에는 새 총리를 선출해야한다.

태정부 산하의 행정각부로는 외무부, 재무부, 군무부, 법무부 등이 있으며, 이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대백의 내각을 참조하길 바란다.

정당

제국 서민원.png
제국서민원의 원내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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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자유당 로고1.png
326석
신임과 보완
민족민주당2.png
6석
야당
사회당1.png
292석
중도당.png
20석
남도국민당.png
8석
경성민주당.png
4석
대백독립당.png
1석
무소속 2석
재적 660석

양당제이다. 보수주의 정당인 자유당과 사회주의 정당인 사회당이 대립하고 있다. 자유당은 자유주의, 보수주의, 자유보수주의, 신자유주의, 민족주의 색체를 띄고 있으며, 김창암 태정대신이 창당했다. 자유당보다 앞선 1929년 창당된 사회당은 사회주의, 사회민주주의, 민주사회주의, 진보주의를 표방하며, 신채호 태정대신이 창당한 정당이다. 1세기에 가까운 기간 동안 두 정당은 경쟁하면서 여당이 되기도 하고 야당이 되기도 하였다.

그 외 주요 정당으로는 중도주의와 사회자유주의를 표방하는 중도당이 있다. 지역주의 정당으로는 남도 국민당, 경성민주당이 있다. 민족보수주의를 표방하는 민족민주당과 극우 정당인 대백독립당이 있지만 유의미한 의석 수를 얻지는 못한다. 원외 주요 정당으로는 동아 공산당이 있다. 녹색당, 여성의당, 투쟁혁명당 등의 기타 군소 야당도 있지만 메이저한 정당은 아니다.

1980년대에는 사회당이 우경화하고 자유당이 좌경화하여 오히려 두 당의 성향이 뒤바뀌었다는 평가도 있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사회당이 정동영 당수 체제 아래에서 좌경화함에 따라 현재는 그런 평가를 듣지는 않고 있다.

현 태정대신인 김원홍는 자유당 소속이다.

황실

대백 휘장.png
대백제국의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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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고조 건국제
제2대
선종 흥정제
제3대
덕종 순치제
제4대
광종 선륭제
제5대
희종 만덕제
제6대
건락제
고조선 · 부여 · 고구려 · 백제 · 가야 · 신라 · 발해
후삼국 · 고려 · 조선 · 대한제국 · 대백제국

대한제국이 조선을 계승했고, 대백이 대한제국을 계승했기 때문에 현 대백제국 황실은 조선 전주 이씨 왕조의 직계이다. 1920년 건국 이후 1921년까지 건국제가 즉위했다. 1921년부터 1930년까지 흥정제가, 1930년부터 1955년까지 순치제가 즉위했다. 1955년부터 1968년까지는 선륭제가 즉위했다가 왕실 개혁 운동으로 물러나고, 이후 1968년부터 2006년까지 만덕제가 황제를 맡았다. 2006년 승하한 만덕제의 아들 건락제가 황제에 즉위해 현재까지 즉위중이다.

대백제국의 명목상의 국가원수이다. 그러나 입헌군주제 국가이기 때문에 실질적인 권한은 태정대신에게 있다. 예전에는 황제가 의회를 해산하고 내각을 조직한 적도 있었지만[3] 1967년부터 1968년까지 대학생들이 벌인 황실 개혁운동에 따라 권한이 대폭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황제는 국민적인 존경을 받는 국민통합의 주체이며, 황실 존속 지지율도 70%를 넘길 정도로 국민들에게 인기가 많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황실의 부정부패와 횡령이 도를 넘어 태정대신이 이를 공개 비판할 정도로 심각한 사회 문제였지만, 황실측의 반성과 개선 노력으로 이런 면이 많이 줄어들었다. 그러나 위키리크스의 문건으로 파장이 일기도 하는 등 황실의 어두운 면이 완전히 청산된 것은 아니다.

궁무부

당초 태정부에 속해있었으나 1946년 독립기구가 되었다. 궁무부는 행정부, 사법부, 입법부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는 독립 기구이며, 주요 업무는 황실 인원에 대한 호위와 재산 관리, 관련 업무 수행 등이다.

옆나라 일본의 궁내청과 다르게 황실 보좌가 뛰어나며 행정 능력도 좋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다만 행정 능력과 별개로 조직이 다소 구식이고 비효율적이라는 비판이 있기 때문에 진보 정당인 사회당은 궁무부 구조조정을 주요 공약으로 삼고 있다.

황실 훈장

대백 휘장.png 대백제국 황실 훈장
1급 훈장 仁人級 (인인급)
2급 훈장 義人級 (의인급), 藝功級 (예공급)
3급 훈장 武功級 (무공급), 文功級 (문공급)
4급 훈장 供德敬 (공덕경), 護民敬 (호민경)
5급 훈장 帝國敬 (제국경)

영국과 마찬가지로 국가에 훌륭한 업적을 남긴 정치인, 연예인, 과학자 등에게 내리는 훈장으로, 총 5급이 있다. 1급이 가장 급이 낮으며, 5급으로 갈수록 급이 높아진다. 훈장을 받는다고 모두가 경이 되는 것은 아니며, 4급부터 경으로 불리게 된다.

문화(예공급), 학술(문공급), 전쟁(무공급)에서 큰 공을 남긴 사람들은 3급이 한도고, 4급부터는 총리나 장관 등 주요 정치인들만이 받는 것이 관례였으나, 1980년 이휘소에게 제국경 훈장이 붙은 이후 정치인이 아니더라도 국위선양을 한 유명인들에게 4급 이상의 훈장이 수여되고 있다.

훈장은 수여된 이후 훈장에 걸맞지 않은 행실을 했을 시 박탈 될 수 있다. 예를 들자면 2004년 과학자 황우석은 3급 문공급 훈장을 받았지만, 2005년 문공급 훈장이 박탈되었다.

훈장에 대한 비판도 있다. 일부 공화주의자들은 아직까지 경이니 훈장이니 주는 상은 부자들의 특권이라고 주장한다. 또 현대에 들어서는 일부 예술가들이 예공급 훈장만 2등급이기에 황실이 예술을 천시하는 것이냐며 비판을 하기도 한다.

문화

언론

3대 일간지로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가 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1920년대 민족 일간지 창간을 목표로 한 정부의 지원 아래에 설립되었으며, 중앙일보는 그보다 나중인 1970년대에 창간되었다. 조선일보는 보수 성향이며, 동아일보는 후일 사회당 소속으로 태정대신을 맡았던 여운형이 편집장을 맡았을 정도로 좌파적인 성향이 강한 신문이다. 중앙일보의 경우 두 신문의 중간 정도의 논조로 중도적인 정치 성향을 보인다. 판매 부수는 중앙일보가 가장 많으며, 그 다음으로 동아일보, 조선일보 순이다. 이 세 메이저 언론을 통틀어 조중동이라고 하기도 한다.

황색 언론들도 몇개 존재하는데 공산당, 독립당 등 좌우 극단 정당들을 지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주요 방송국으로는 BBS, MBC, TBC가 있다. 마이너한 방송국으로는 JBS, ABS 등이 있으나 시청률이 높지는 않다.

최근 들어서는 정언유착이 심해진다는 비판이 있다. 특히 중앙일보의 모회사인 중앙홀딩스[4]의 사장인 박두진이 정계에 입문해 태정대신직까지 오르면서 진보주의자들을 중심으로 이런 비판이 강화되는 추세이다.

영화

옆나라 일본처럼 애니메이션 시장이 활성화된 것은 아니다. 다만 영화계에서 높은 실적을 거두고 있다. 봉준호, 김기덕, 박찬욱 감독 등이 유명하다. 그중 김기덕 감독과 봉준호 감독은 칸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음악

List of best-selling albums
대백제국 내 음반 판매량 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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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위 2위 3위 4위 5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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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제플린 존 레논&오노 요코 핑크 플로이드 김건모 방탄소년단
Led Zeppelin IV Double Fantasy The Dark Side of the Moon 잘못된 만남 MAP OF THE SOUL : 7
2652만 5821장 1593만 4829장 883만 2221장 876만 9432장 802만 3226장
6위 7위 8위 9위 10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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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즈 방탄소년단 마이클 잭슨 레드 제플린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MAP OF THE SOUL : PERSONA Thriller Physical Graffiti Greatest Hits
796만 5552장 695만 9321장 668만 4822장 650만 2921장 619만 692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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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이후로 록 음악이 많이 쇠퇴했음에도 여전히 록 음악이 높은 인기를 얻는 국가로,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앨범 10개중 6개가 록 음반일 정도로 록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나라이다. 1970년대부터 영국을 추월하고 록 음악 시장에서 미국과 경합으로 2위를 차지했고, 1980년대부터는 1위를 차지해왔으며 현재까지 록 음악 시장 불변의 1위 국가다. 특히나 레드 제플린의 인기가 매우 높은데, 레드 제플린의 1976년 장춘 공연은 15만 4천명을 동원해 마이클 잭슨이 후일 깨기 전까지 역사상 가장 많은 인원을 모은 공연이었다. 대백제국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음반 역시 레드 제플린의 Led Zeppelin IV이며, 이 음반의 전체 판매량중 40% 가량이 대백제국에서 팔렸다. 그 외에도 비틀즈, 퀸, 핑크 플로이드, 너바나 등 서구 록 밴드들이 아직까지도 엄청난 인기를 몰고 다니고 있으며, 대백제국 내 주류 음악계도 록에 가깝다. 특히나 신해철이 록 음악가로서 매우 높은 인기를 얻고 있고, 그래미 어워드까지 받을 정도로 유명하다.

물론 현재에는 록 씬의 쇠퇴와 함께 방탄소년단 등 젊은 디스코, 팝 아티스트들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고 있지만, 록 음악의 시장으로만 따지면 2000년대 들어 역주행으로 록 음악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소련보다도 시장 규모가 크다. 그 외에 메탈 음악의 시장 규모도 커서 스칸디나비아와 미국에 이은 3위의 메탈 강국이다.

DME라는 특이한 형태의 음원 공기업도 존재하는데 본 문서를 참조할 것.

최근 들어 대백제국 출신의 젊은 남녀가 중심이 된 밴드가 동아시아와 구미권에서 큰 인기를 얻으면서 백류라는 이름으로도 불리고 있다. 해외에서 대백제국의 음악 산업은 영화 산업 다음으로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

스포츠

야구와 축구가 인기 있는 스포츠이다. 반면 농구나 테니스 등 실내 체육은 선호되지 않는다.

문학

1951년 이상 작가가 <浸水된畜舍>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1989년에는 이문열 작가가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1993년 위화가 <인생>으로 노벨상을 수상했다. 가장 유명하고 인기가 많은 작가는 이문열, 위화, 박완서, 조정래, 이외수, 김영하, 한강, 박경리, 김수영 등이다. 대백 소설중 가장 유명하고도 작품성이 높은 소설로는 박경리의 <토지>가 꼽히고 있다. 그 외에 명작으로 꼽히는 소설 중에는 이문열의 <황제를 위하여>, 이상의 <날개>, 조정래의 <태백산맥>,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 김승옥의 <경성, 1964년 겨울>, 박완서의 <나목> 등이 있다. 현대 작가중에서는 공지영, 김영하, 한강이 유명하다.

시인중에서는 김수영, 조지훈, 신동엽, 이상이 가장 유명하다. 김수영의 <풀이 눕는다>와 이상의 <오감도>는 현대에 들어서 더욱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국문학자로는 이어령이 가장 유명하다. 1960년대 김수영 작가와 문학 논쟁을 펼친 것으로도 알려져있다.

여담으로 대백제국의 국어 시험은 어렵기로 악명이 높다. 현대 문학을 작가조차 풀수 없게 이상하게 꼬아놓는 것은 물론, 도대체 왜 읽어야하는지 모르겠는 고전 시가와 고대 국어까지 가르쳐 시험을 치게 한다.

경제

자본주의적 시장경제를 받아들이고 있는 국가이다. 대백제국의 명목상 GDP는 17조 8837억 달러로 미국에 이어 두번째로 높다. PPP의 경우 22조 6064억 달러로, 미국보다 높으며 세계 1위이다. 최근들어 빠른 경제 성장의 양상을 보이고 있어 미국을 추월할 가능성이 있다.

주변 국가들은 소련을 제외하면 모두 우방국이며 군사 협약체를 맺고 있기 때문에 경제 안정성이 높으며 높은 국가 신용도를 가지고 있다. 공업과 농업, 서비스 산업 등이 골고루 발전하여 장래 경제 발전 가능성이 여전히 높은 국가이다.

세계에서 2번째로 금 보유고가 높은 나라이다. 수출액 역시 높은 편에 속한다. 복지 정책도 괜찮은 수준이다.

다만 1980년대 이후 잃어버린 10년을 겪으며 성장률이 둔화되었다는 점이 단점으로 꼽히고 있다. 또 상위 기업들의 과독점이 심한 편이라 미국에 비해 경제 규모가 취약하다는 비판도 있다.

최근에는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성장률이 마이너스 15%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대백제국 정부는 이에 기본소득제 실험을 통해 경제 불황을 극복을 시도하고 있다.

주요 기업

전자 기업인 삼성 전자가 유명하며, 대우 중공업, 현대 중공업, 한진 해운도 세계적인 대기업이다. 유통업체중에서는 신세계, 롯데, 삼풍 세개 그룹이 전체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운송 회사의 경우 철도와 버스 등 대부분이 공영 기업이었다. 그러다가 김대중 정권 당시 철도와 항공사를 민영화하면서 공영 기업과 민영 기업이 경쟁하는 체제가 되었다.

1970년대 독과점 금지법을 통해 재벌들이 해체되고 작은 기업 위주로 쪼개졌지만, 1990년대 들어 다시 메이저 대기업이 나타나면서 대기업의 독과점 문제가 심각한 경제 문제로 떠오르는 추세다.

사회

유교 성리학의 영향을 받아 보수적인 측면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1970년대 들어 대학가를 중심으로 벌어진 신좌파 운동의 영향으로 페미니즘, 진보주의 등의 가치관들이 받아들여져 예전에 비해 훨씬 자유로운 사회 분위기가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유교의 영향을 크게 받은 국가이기 때문에 유럽의 여느 나라와 같은 자유로운 분위기는 아니고 공동체주의적인 시민관이 강한 나라다. 동성애 등 일부 사안은 합법화되었으나, 마리화나 등 마약은 여전히 불법이고 성문화도 유럽에 비해 보수적인 편이다.

종교적으로는 불교계의 힘이 강하다. 남조선주북조선주는 기독교도들이 많이 분포해있다. 그러나 대다수의 종교가 세속적이며, 정부의 강력한 세속주의 정책으로 미국같이 종교가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유럽에서 정치적으로 극우 성향으로 분류되는 가톨릭이 오히려 대백에서는 중도파라는 인식이 있을 정도이다.

학문

대학

대백제국의 교육은 입학은 쉽지만 졸업이 어려운 서양 대학과 다르게 입학은 어렵고 졸업이 상대적으로 쉽다. 이 때문에 실질적인 대학의 학력 수준이 낮다는 비판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대학 순위권 안에 꾸준히 들어가는 대학이 많다. 근본적인 문제점은 고학력자가 너무 많기 때문에 학력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취업난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독일식으로 대학 평준화하여 대학 진학률을 30%대로 떨어트리고 부실 대학을 구조조정하자는 과격한 의견도 나오고 있다.

주요 대학으로는 경성 제국대학교, 장춘 공과대학교, 청화대학교, 연세대학교, 동평양대학교, 북경 정치경제대학교, 천진 국제대학교 등이 있다. 경성 제국대학교는 세계 대학 순위 10위권 안에는 반드시 드는 좋은 대학이다.

교육

대백제국의 교육은 6-3-3-4 시스템이다. 중학교는 평준화되었으나 고등학교는 평준화가 되지 않아 경쟁률이 심한 편이다. 주요 명문 고등학교로는 경기고등학교, 북경 제국고등학교가 있다. 김근표 태정대신이 고교, 대학교 평준화 정책을 시행하기도 했지만 성급한 도입으로 인해 공산주의 정책이라는 비난만 듣고 실패한 바 있다. 그러나 고교 평준화 자체는 필요한 상황이라 대학 평준화와 고교 평준화를 동시에 해야한다는 의견이 있다.

외교

백미 관계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우방이자 동맹국이었지만, 1960년대 베트남 전쟁을 두고 두 나라가 갈등을 벌인 적이 있었다. 미국은 베트남 전쟁 참전을 요구했지만 대백제국 청년들이 안보투쟁으로 맞서면서 두 나라간 외교 문제가 된 것이다. 이후로는 그렇게 나쁘지도 않지만 좋지도 않은 껄끄러운 분위기가 계속되고 있다. 1980년대 미국이 대백의 경제 성장을 우려해 경제적으로 견제한 것이 대백의 잃어버린 10년의 발단이 되었다는 의견이 있어 대백 정치계에서는 미국과 거리를 두자는 의견이 대다수이다.

동아 공산당 등 극좌 정당은 미국의 제국주의 야욕을 끊기 위해 소련과 연합해 미국과 맞서자는 주장을 하기도 하지만 극소수에 불과하다. 현재 대백제국에서의 주류 여론은 아무리 미국이 미워도 소련과 연합하지는 말자는 것이다.

다만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대백이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반대해 외교적인 마찰이 있는 등 미국과 대백은 군사적으로 대립하고 있고 대백 측에서도 미국을 잠재적인 적군으로 여기고 있다.

그래도 1990년대 이후 할리우드, 마이클 잭슨 등 미국의 소프트파워를 통해 대백 청년들 사이에서는 정치적인 문제와 상관 없이 친미적인 관계를 취하자는 여론이 늘어났다. 또 미국에서도 대백 영화와 음악이 큰 인기를 끌면서 문화적으로는 두 나라가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어, 정치적으로는 대립하더라도 본격적인 전쟁이 날 확률은 적다.

백소 관계

과거에는 소련은 대백제국이 언제나 경계하는 적국이었다. 1960년대에는 대백제국과 소련의 사이가 나빠져 전쟁을 하자는 여론도 있었다. 그러나 1977년 브레즈네프 서기장과 함석헌 태정대신의 정상 회담을 통한 대백-소련 수교 협정 이후 이런 분위기는 적어졌다. 오히려 소련 내에서 빅토르 최가 인기를 끌자 1980년대~1990년대에는 반미주의와 맞물려 소련과 대백의 관계까 일시적으로 좋아지기도 했다.

1990년대 이후 미국 문화가 인기를 끌며 다시 소련과 거리가 멀어지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문화적 교류가 끊긴 것은 아니다. 한국 식품류가 소련에서 유행하기도 하는 등 사이가 나쁘지 않다.

2010년대 들어서는 대백제국 정부와 소련 정부가 공동 과학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하는 등, 다시 눈에 띄게 사이가 좋아지고 있다.

백독 관계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과 동맹을 맺고 있었던 나라가 독일이었던 만큼, 나치 독일과는 사이가 나빴으나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에 대한 견제를 목적으로 두 나라가 일시적인 연합을 맺으면서 관계가 회복되었다. 다만 나치 독일이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노골적인 인종 차별 정책을 취했기 때문에 나치독일과 대백제국의 관계는 큰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현재 대백제국의 가장 주요한 동맹국인 영국이 대백과의 동맹을 통해 나치 독일과 대립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나치 독일과 대백제국의 관계가 좋아질지는 알 수 없다.

우랄 산맥을 경계로 두고 소련과 산발적인 전투를 치루고 있는 나치 독일은 소련에 대한 견제 차원으로 대백제국과 자주 안보 동맹을 맺기는 한다. 다만 이 관계가 장기적으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으며, 1980년대 후반 이후 대백과 소련의 관계가 좋아지며 나치 독일과 대백제국의 관계는 다시 냉각되었다.

백일 관계

제2차 세계대전과 한일 전쟁 등 역사적으로 싸운 일이 많았고, 반일 가치를 내건 태정대신들이 많았기 때문에 사이가 나쁘다. 또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규슈가 대백제국에 할양되었기 때문에 이에 관해서도 일본 내에서 말이 많다. 1960년대 대백제국 정부가 전쟁 보상금을 핑계로 일본에 내정 간섭을 한 것 역시 일본과 대백의 사이가 나쁜 이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적으로 비슷한 나라인지라 문화적인 교류는 많고 또 두 나라가 합심하여 소련이나 미국을 견제할 때도 있다. 양 국민간의 정서가 나쁘다는 것이지, 일본은 경제적으로든 정치적으로든 대백에 종속된 나라이기 때문에 좋든 싫든 대백의 종속국으로 여겨지고 있다.

백중 관계

군사 협약을 맺은 동맹국이나, 역사적인 이유로 마찰을 겪은 적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대백은 든든한 정치적인 동맹국이며, 소련과 미국을 견제하는데 뜻을 함께하고 있다.

다만 청나라 관련한 대백제국 측의 역사 왜곡으로 인해 중화민국 국민들 내에서 대백제국의 역사 의식 수준에 대한 비판이 종종 나오곤 한다.

백영 관계

대백제국의 최초 수교국이기도 하며, 정치적으로 대백제국의 모델이 된 나라가 영국이기 때문에 두 나라는 친선을 유지하고 있다. 약 80년동안 맺어온 군사 동맹인 영백동맹이 유명하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에 대항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결성되었지만, 이후로는 미국과 소련을 견제하기 위한 제3의 안보 조약으로 부상했다.

문화적으로도 두나라는 매우 친밀하다. 영국 드라마, 톨킨, 프리미어 리그 등이 대백제국 내에서 인기가 많으며 프리미어 리그의 경우는 대백제국 내의 축구 리그보다도 팬 수가 많다. 특히 대백제국 내에서 영국의 헤비 메탈 밴드 레드 제플린의 인기는 넘사벽이라, 1977년 레드 제플린의 경성 공연은 당시로서는 가장 많은 인원을 모은 록 콘서트로 기록되었다. 대백인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 순위에서도 유명 가요들을 제치고 1위에 Stairway to Heaven이 올랐을 정도다.

기타

기레기.png 선정 대백인이 존경하는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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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가 2017년 대백제국민들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토대로 '대백인이 존경하는 인물'을 선정.
1위 2위 3위 4위 5위
이순신 이휘소 세종대왕 신채호 정주영
6위 7위 8위 9위 10위
건국제 여운형 관우 김수환 김근태
11위 12위 13위 14위 15위
김창암 김대중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김성주 에이브러햄 링컨
16위 17위 18위 19위 20위
조자양 이문열 토머스 에디슨 이병철 지미 페이지
같이보기 : 위대한 인물 시리즈
  • 조선일보가 조사한 대백인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이순신이 꼽혔다.
  • 대백제국의 대학 입시는 어렵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청소년 자살율이 높고 이것이 사회적인 문제가 되기도 한다.
  • 동아시아 국가중 가장 매체에 자주 등장하는 국가이며, 관광지로도 인기가 높다.

둘러보기

  1. 다만 영국과 미국은 자신들의 점령지를 일본에 반환했다. 홋카이도는 소련의 영토였다가, 1970년대 소련의 경제적 형편이 나빠지자 일본에게 팔아 넘겼다.
  2. 자유당 출신이다.
  3. 한일전쟁 당시의 박은식 내각, 2차 대전 당시의 신채호 내각 등이 황제가 의회를 해산하고 조직했던 거국 내각이었다.
  4. 중앙일보, JBS, 이스트아시아 모닝포스트를 총괄하는 기업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