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요
루멘 제국 멸망 이후부터 제국이 건국되기까지 수 많은 국가들이 대륙에 존재했던 시대를 칭한다. 제국 이전의 시대이기에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전기와 후기로 나뉠 정도로 오랜 시간 이어진 시대이다. 물론 이러한 상세한 시대 구분 또한 시대를 재평가하는 학자들에 의해 구분되었다.
대분열 시대 전기는 루멘 제국의 멸망부터 프란시아 왕국의 궁재 직위가 등장하기까지로 정의된다. 그리고 이 시기는 보통 완벽한 혼란의 시대로 정의된다. 오크들의 남하로 루멘 제국의 속주들에서 대규모의 이주가 일어났다. 아직은 중앙 교회가 완전히 정착하지 못한 지역의 주민들은 이교적인 성향을 보이며 혼란을 일으켰다.
이렇게 건국된 이교적인 국가들은 루멘 제국의 문명과 교회를 무자비하게 약탈하고 파괴했다. 이는 당시 역사를 기록하는 수도사들의 죽음과 기록의 파괴를 가져왔다. 때문에 대분열 시대 전기는 프란시아 왕국과 작센 왕국의 조상들과 연관된 기록을 제외하면 그렇다 할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대분열 시대 후기는 프란시아 왕국의 궁재 직위의 등장부터 제국이 건국되기까지로 본다. 프란시아 왕국은 건국 이후 세력을 넓혀갔고 대륙의 서쪽에서 시작하여 대륙의 절반을 통치하고 황제 대관까지 받는 강력한 국가로 성장한다.
북 루멘 제국의 멸망
오크와 고블린의 남하에서 시작된 프랑크인의 대이동으로 북 루멘 제국의 혼란은 더욱 심화 되었다. 북 루멘 제국의 주요 도시들은 오크와 고블린을 피해 이주해온 프랑크인에 의해 정복 되었고 루멘 제국의 최초의 도시이자 최고의 도시인 루멘이 당시 프랑크인의 지도자인 클로비스에 의해 정복 되고 원로원과 평민회를 비롯한 북 루멘 제국의 최고 권력 기구가 괴멸 되면서 북 루멘 제국은 멸망하게 된다.
북 루멘 제국의 멸망을 기점으로 보르하스 일대는 통일된 제국이 등장하지 않았고 이 시기를 대분열의 시대라 칭하였다.
프란시아 왕국의 성장
프란시아 왕국은 본래 남하한 여러 이교도 부족 중 하나였다. 이들은 다른 부족들과 달리 국가를 설립할 정도로 강력한 부족은 아니었고, 현재 프랑스 왕국 일대에 정착하여 다른 부족 산하에서 통치를 받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등장한 이가 클로도베 1세이다. 그는 교회를 부족의 종교로서 수용하고 적극적으로 루멘 제국의 유산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러한 유산을 기반으로 정치적으로는 봉신제, 경제적으로는 장원제라는 혁신을 구축하여 신흥 강자로 성장하였다.
샤를마뉴의 등장
봉신제와 장원제을 기반으로 성장한 프란시아 왕국은 방대한 행정적 기반을 필요로 했다. 그리하여 등장한 직함이 궁재이다.
궁재는 궁으로 오는 모든 행정 처리를 담당하는 직함으로서 막대한 권력을 가지게 되었다. 한편 프란시아의 왕실은 궁재의 성장에 편집증적인 의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의심이 극에 달하자 킬데크 3세는 교회가 궁재에게 모든 권위를 부여했다는 믿음으로 국교를 바꾸고자 하였다. 킬데크 3세의 선언이 공표되고 하루도 지나지 않아, 킬데크 3세는 궁재 피핀에 의해 축출되었다. 그리고 교회의 인정을 받아 궁재 피핀이 프란시아 왕국의 왕으로 즉위하니 공인왕조 카롤링거 왕조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피핀의 손자가 바로 카롤링거 샤를이었다.
카롤링거 샤를은 공인왕조의 최전성기를 이루면서 북 루멘 제국의 왕관까지 수여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