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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제국
Ελληνική Αυτοκρατορία
Imperium Hellenicum
Hellenic Empire
국기 국장
표어: Terra Romana, Populus Romanus
(한국어: 로마의 땅, 로마의 인민)
국가:Η Ελλάδα ποτέ δεν πεθαίνει
(한국어: 그리스는 죽지 않는다)
수도 콘스탄티노플
41°00′49″N 28°57′18″E
최대도시 아테네
37°59′03″N 23°43′41″E
공용어 그리스어
라틴어
공용 문자 그리스 문자
라틴 문자
민족 구성
(2020년)
그리스계 73.1%
터키계 20.3%
불가리아계 3.0%
기타 3.6%
종교
· 국교 그리스 정교회
· 분포
 (2020년)
정교회 63.6%
이슬람교 6.4%
개신교 2.2%
가톨릭 1.4%
유대교 1.3%
기타 1.0%
무종교 24.1%
황실
· 국성 로마 (Ρομά)
· 황제 파블로스 2세
정부
· 정부 체제 입헌군주제, 의원내각제, 민주제, 양원제, 일당 우위 정당제, 단일 국가, 성문헌법
· 총리 요르요스 자고라키스
· 원로원장 니코스 벨로야니스
· 평민원장 알렉산드로스 콜리우
· 집권 여당 범 헬레닉 사회주의 운동
· 입법부 그리스 원로원 (상원)
그리스 평민원 (하원)
역사
· 독립 선언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1821년 3월 25일
· 독립 승인 1830년 2월 3일
· 제국 선포 1921년 3월 25일
면적 382,573km2
인구 2019년 집계
· 총 인구 증가 50,463,800명 (세계 29위)
· 인구 밀도 131.91명/km2
GDP (PPP) 2021년 추산치
· 1인당 $45,800
· $2,311,242,040,000 (세계 14위)
GDP (명목) 2021년 추산치
· 1인당 $41,200
· $2,079,108,560,000 (세계 9위)
HDI
(2020년)
0.927
(Very High, 세계 17위)
통화 유럽 연합 유로 (EUR, €)
시간대 GMT+02:00 (그리스 표준시)
운전 방향 우측통행
ccTLD .he, .hc
국가 코드 HE, HEM, HEL, 054

개요

모든 유럽인은 그리스인이다.
조지 고든 바이런
누군가 로마가 어디있느냐고 물으면, 고개를 들어 그리스의 콘스탄티노플을 보게 하라.
콘스탄티노스 2세

남유럽의 펠로폰네소스 반도, 발칸 반도, 키프로스 섬, 에게 해 제도 및 아나톨리아 반도에 위치한 입헌군주제 국가이다.

상세

1453년 제20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방전으로 멸망한 동로마 제국을 계승하는 국가이며, 따라서 대내적으로 제3의 로마를 표방하고 있다. 현재 제3의 로마를 표방하는 국가중 유일하게 현존하고 있으며, 정통성 역시 충분하므로 대체로 그리스 제국은 동로마 제국을 잇는 국가로 여겨진다.

동로마제국의 멸망 이후 오랜 기간동안 그리스 영토는 오스만 제국의 영토였다. 그러나 1821년 독립 선포 이후, 실질적으로 1830년 독립을 맞이하게 되면서 1833년 왕정이 설립된 후 그리스 왕국이 건국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에서 협상군의 편에 서 오스만 제국과 싸웠으며, 1918년 오스만 제국 붕괴 이후 아나톨리아 반도를 공격해, 콘스탄니노플을 포함하여 에게해에 맞닿아있는 아나톨리아 반도의 영토 대부분을 터키로부터 되돌려받고 그리스 제국을 선포했다. 이후 북마케도니아 지역과 키프로스 지역을 합병하여 현재의 영토에 이르고 있다.

그리스 제국은 인구가 총 5천만에 달해, 유럽 내에서 러시아, 독일, 영국, 프랑스 다음으로 인구가 많은 국가이다. 또한 국가 명목 GDP의 규모는 2조 달러가 넘어 세계적으로 10위권 안에 들어간다. 유럽 의회에서는 전체 총 745석 중 64석을 선출하고 있다. 이러한 관계로, 보통 그리스 제국은 유럽 내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가장 국력이 강력한 강대국중 하나로 분류된다.

입헌군주제 국가로, 국가 원수는 황제이지만 실권은 총리에게 있다. 국가 원수인 황제는 현재 파블로스 2세이다. 현 총리는 제42대 총리인 요르요스 자고라키스이고 소속 정당은 중도 좌파 성향의 범 헬레닉 사회주의 운동이다. 대외적으로 그리스 제국은 유럽 연합유엔, G7, G20, NATO의 회원국이며 파리 기후 협정 등 여러 국제적 조약 및 협정에도 가입되어있다.

상징물

국호

그리스의 국호는 엘라다 제국(Ελληνική Αυτοκρατορία) 혹은 헬레닉 제국(Hellenic Empire)이다. 한국에서는 그리스 제국, 혹은 헬레닉을 한자음으로 음차한 "희랍"을 국호로 받아들이고 있다.

보통은 그리스(Greece)라고 부르면 이 나라를 가리킨다.

국가

그리스의 국가는 "그리스는 죽지 않는다"(Η Ελλάδα ποτέ δεν πεθαίνει)이다. 본래 국가는 자유의 찬가였으나 1921년 제국 선포와 함께 "그리스는 죽지 않는다"가 새로운 국가로 선포되었다.

민간에서는 "자유의 찬가"와 "그리스는 죽지 않는다"가 국가로 많이 불린다. "자유의 찬가"가 감미로운 곡조가 특징이라면 "그리스는 죽지 않는다"는 웅장하고 장엄한 군가 형식의 스타일이 특징이다.

역사

고대에는 아테네, 스파르타, 테베 등 수많은 도시 국가들이 번성했으며, 이 기간동안 소크라테스, 아르키메데스, 헤로도토스, 플라톤 등 수많은 정치학자, 수학자, 과학자들이 그리스에서 배출되며 고대 그리스는 유럽 문화의 중추 부분을 맡게 되었다. 페르시아가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공격했을때 이들은 동맹을 맺어 페르시아를 무찔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스파르타와 아테네가 분열되어 싸운 이후 펠로폰네소스 전체의 국력은 약화되어,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마케도니아에 합병되고 이후 헬레닉 시대를 맞이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마케도니아 시대 후에는 로마의 통치를 받았다. 로마의 통치를 받으며 그리스는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3~5세기동안 서로마 제국이 혼란에 빠질때, 동로마로 이주한 로마 제국의 후예들은 그리스를 이탈리아 반도 부럽지 않은 유럽 내 최대의 부촌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1453년까지 동로마 제국이 존속하면서 그리스는 유럽 문화의 중심지이자, 이슬람 문화로부터 유럽을 보호하는 방백의 역할, 그리고 로마의 후예라는 유럽의 역사상을 대표하는 세가지의 역할을 해냈다.

1453년 메흐메트 2세제20차 콘스탄티노플 공방전으로 동로마가 멸망한 후, 그리스는 오스만 제국의 영토가 되어 오랜 기간동안 피정복자의 지배를 받아야했다. 그리스인들은 이에 반발하여 그리스 민족 운동을 벌였으며, 이는 오스만의 국력이 상대적으로 약화된 1821년 그리스 독립 전쟁과, 9년 이후의 독립 쟁취를 통하여 결실을 맺었다.

독립 후의 그리스는 발칸 전쟁으로 영토를 크게 확장해 테살로니키를 포함해 남부 마케도니아, 이피로스, 에게 해 제도 등 그리스계 주민이 거주하는 유럽 영토중 대다수를 확보하였다. 그리스의 영토가 지금과 같이 커진 것은 제1차 세계 대전을 통해서이다. 제1차 대전에서 그리스는 적극적으로 협상국에 참여하였으며, 오스만으로부터 일부 영토를 빼앗기긴 했으나 종전 이후에는 오히려 아나톨리아 안쪽까지 쳐들어가 콘스탄티노플을 되돌려받았다. 1921년 콘스탄티노플을 되돌려받은 그리스는 왕국에서 제국으로 격을 상승시키고 제3의 로마를 표방하게 된다.

1930~40년대에는 대공황으로 인하여 정치적 혼란이 지속되어 제대로 된 민주주의가 작동하지 못했다. 이 와중에 1941년 나치 독일이 그리스를 향해 선전포고하고 키프로스 섬을 제외한 모든 본토가 나치 독일군에게 점령되자, 키프로스 별궁으로 대피한 그리스 제2대 황제 요르요스 2세는 혼란스러운 거국 내각을 물리치고 군사가 이끄는 임시 군정 내각을 수립하였다.

영국군과 미군의 도움으로 1944년, 그리스 본토는 이탈리아와 함께 해방을 맞이했다. 이후 그리스의 북쪽 마케도니아를 점령한 소련은 그리스의 공산화를 바랬지만, 그리스 제국 본국의 강력한 반대로 철회되었다. 대신 마케도니아 일대에서 소련의 지원을 받는 공산군이 활동하여 1947년까지 그리스 내전으로 공산군과 황제군의 내전이 격화되었다. 최종적으로는 황제군이 승리함에 따라 공산화는 저지되었다.

그러나 2차 대전 당시 수립된 임시 군정은 비대해진 권력을 통해 1960년대 후반까지 계속 집권하였다. 개발독재라는 명분이었지만 대부분의 국민들에게는 반발을 샀다. 결국 1966년 민주화 혁명을 통해 군사 정권이 붕괴되고, 범 헬레닉 사회주의 운동을 필두로한 중도좌파 내각이 수립됨에 따라 그리스는 20년만에 민정 통치를 맞이한다.

이후 1972년, 1972 콘스탄티노플 올림픽을 개최하며 그리스는 전세계적으로 경제 복구에 성공하고 민주화까지 이뤄낸 유럽의 새로운 강국임을 온 세계에 보여줬다. 그리스는 1970년대 이후, 특별한 어려움 없이 쭉 발전하여 현재까지 유럽의 강국중 하나로서 존속하고 있다.

지리

그리스는 지중해에 맞닿아 위치한 국가로 전형적인 온대기후의 지중해성 기후를 띈다. 일년 내내 건조하고 맑은 기후가 이어지며, 겨울이 비교적 습하다. 또한 기후 특성상 수목 농업이 매우 발달하여, 특산품으로 올리브나 포도와 같은 것이 유명하다. 일년 내내 화창하고 맑은 날씨가 이어지기 때문에 그리스는 북유럽이나 영국, 독일 등 기후가 흐린 국가의 시민들에게 있어서 휴양지로 각광받고 있다.

그리스 제국의 수도는 콘스탄티노플로, 1921년 3월 25일 그리스 제국의 건국과 동시에 수도로 지정되었다. 그 이전의 수도는 펠로폰네소스 반도 내의 최대 도시였던 아테네였다. 아테네는 현재까지 제국 내에서 가장 큰 도시로 기능하고 있다.

콘스탄티노플은 펠로폰네소스 반도, 아나톨리아 반도, 발칸 반도 등 그리스의 본토를 구성하는 여러 지역의 중심이 되는 지역이며, 홍해와 지중해(에게해)를 잇는 해협이 존재하여 교통의 요충지 역할을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 콘스탄티노플은 로마 제국의 수도이기도 하였으므로 그 정통성과 역사성, 정치성에 있어서 제국 내에서 따라올 도시가 없다고 봐도 좋다. 도시 규모도 제국 내에서 가장 큰데, 콘스탄니노플로 규정된 행정구역 자체의 인구는 적지만 배후 인구수가 매우 많아 배후 도시들을 전부 합칠 시 아테네의 인구수도 추월한다.

행정구역

그리스의 행정구역은 크게 보았을때 지리적으로 그리스를 구성하는 6개의 지역인 펠로폰네소스 반도(구 그리스 본토), 발칸 반도, 아나톨리아 반도, 에게해 제도, 키프로스 섬 그리고 콘스탄티노플로 구성된다. 이중 아나톨리아 반도에 인구의 절반 가까이인 2,350만명이 거주하며,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1,200만명이, 발칸 반도에 770만명이, 에게해 제도 및 키프로스 섬에 130만명이, 그리고 콘스탄티노플과 그 배후 도시들에 550만명이 거주한다.

이 6개의 지역은 자치권이 존재하는 행정구역은 아니지만, 한국에서 영남권이나 호남권과 같은 개념으로서 받아들여진다. 이 6개의 지역 밑에는 총 36개로 이루어진 주들이 존재하는데 이 주는 그리스 제국의 가장 높은 최상위 행정구역이다. 36개의 지역은 독자적으로 주의회를 구성하고 주지사를 선출할 권한을 가진다. 주지사는 주의회 다수당에서 배출하는 구조로 되어있다. 주의 밑에는 시나 현 등 기초 행정구역이 존재하는데 이 수를 합치면 1,000여개 이상이다. 인구가 무려 120만명이나 되는 아테네부터, 겨우 2천여명밖에 안되는 작은 마을까지 있는 등 기초 행정구역의 규모는 들쭉 날쭉이다.

정치

그리스는 의원내각제와 입헌군주제가 뿌리내리고 있는 국가로, 국제적으로 가장 민주주의가 발전한 국가이다. 더불어 민주주의의 발상지이기도 하다.[1] 현재 그리스는 민주주의 지수에서 총 18위를 기록해, "완전한 민주주의"를 기록하고 있다. 다른 남유럽 국가들에 비하여 부정 부패가 적으며, 일당우위 정당제 속에서도 합의제 민주주의가 비교적 정상적으로 성장한 편이다.

황제

그리스 제국의 황제는 명목상 로마 제국의 황제를 계승한다. 국성 역시 로마이다. 로마 황조글뤽스부르크 가문의 분가 가문으로, 1921년 합스부르크에서 분가되었다. 현재의 황제는 파블로스 2세로, 2015년 고령을 이유로 퇴위한 콘스탄티노스 2세의 뒤를 이은 황제이다.

그리스의 황제는 단순히 그리스의 국가 원수이자 그리스 신민들의 단결 대상인 것을 넘어서 그리스 제국 그 자체의 상징이자, 국교인 그리스 정교회의 보호자로서 그리스 내에서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뿐만 아니라 유럽의 모든 제국중 가장 근본이라고 할 수 있는 로마의 계승위이므로 그 스피커는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1948년, 인도제국이 인도공화국으로 전환되면서 그리스 제국은 유럽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유일한 황제국이 되었다.

그러나 입헌군주제를 표방하는 그리스 정치의 특성상 그리스 황제는 정치에 간섭할 수 없다. 국회 해산권, 총리 해임권, 내각 불신임권, 군 통솔권 등의 권리는 그저 말뿐에 지나지 않고 그리스 황제는 종교를 제외한 다른 분야에서의 정치적 접근이 철저히 통제되어있다.

역대 황제


그리스 제국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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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제2대 제3대
콘스탄티노스 1세 요르요스 2세 파블로스 1세
제4대 제5대
콘스탄티노스 2세 파블로스 2세
로마 황제 · 동로마 황제 · 그리스 국왕
대수 제호 출생 즉위년 퇴위년 재위 기간
초대 콘스탄티노스 1세 1868년 (향년 54세) 1921년 1923년 2년
제2대 요르요스 2세 1890년 (향년 56세) 1923년 1947년 24년
제3대 파블로스 1세 1901년 (향년 62세) 1947년 1964년 17년
제4대 콘스탄티노스 2세 1940년 (81세) 1964년 2015년 51년
제5대 파블로스 2세 1967년 (54세) 2015년 현재 7년

내각

입헌군주제인 그리스에서는 내각과 총리가 황제의 역할을 대신하여 그리스를 통치한다. 내각은 총 4년에 한번씩 치뤄지는 총선을 통해 원내 다수당이 조각하며, 원내 다수당의 당수가 내각을 이끄는 총리가 된다. 통상적으로는 4년에 한번 내각이 조각되지만, 중간에 장관이 바뀌는 개각이 이뤄질 수도 있으며 혹은 소속 의원들의 탈당이나 불신임 등의 이유로 조기 총선이 치뤄질 수도 있다.

내각은 총 16개 부처의 장관으로 구성되며 총리는 다른 부처의 장관을 겸직하지 않는다. 물론 전시 상황에서는 국방부 장관이 총리를 역임하는 등의 예외 사항은 있을 수 있다.

의회

의회는 하원인 그리스 평민원과 상원인 그리스 원로원으로 나뉘어진다. 평민원과 원로원은 4년에 한번씩 선출되는데, 평민원 의원의 임기는 4년이고 원로원은 4년에 1/2씩 뽑기 때문에 임기가 8년이다.

평민원이 입법의 권한을 가진다면, 원로원은 인사권의 권한을 가진다. 평민원에서 내각이 선출되어도 원로원에서 투표수로 막히면 내각이 출범하지 못한다. 또한 장관 교체나 공공기관장 선출 역시 원로원의 동의가 있어야한다. 반면 입법에 관련해서 평민원은 원로원에 비해 더욱 우위인 권력을 가진다.

원로원은 120석으로 구성되며 평민원은 570석이다.

정당과 선거

중도좌파, 사회민주주의 성향의 정당인 범 헬레닉 사회주의 운동이 1960년대 민주화 이래 60년의 민정 통치 기간중 50년 이상을 집권해 장기 집권하고 있다. 따라서 일당우위정당제의 국가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제1야당이자 최대의 보수 정당인 그리스 제국당은 8년을 집권했고 나머지 3년간은 급진 좌파 정당인 유럽사회운동, 중도 정당인 그리스 급진당 등이 소수정당인 상태에서 양당제를 구성하는 제국당과 사회당과 연정하여 집권하였다.

가장 최근의 선거는 2018년 치뤄진 선거로, 범 헬레닉 사회주의 운동이 승리해 집권했다. 그리스 제국의 선거는 상원인 원로원 선거와 하원인 평민원 선거로 구성된다. 원로원 선거와 평민원 선거는 각자 3년에 한번, 5년에 한번 치뤄졌으나 1997년 개헌을 통해 4년에 한번씩 동시에 치루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2018년 원로원 및 평의원 선거의 원내 구성은 다음과 같다.

정당명 이념 스펙트럼 원로원 의석 평민원 의석 지위
범 헬레닉 사회주의 운동 사회민주주의
정교회 좌파
중도좌파
77 / 120 (64%)
364 / 570 (64%)
여당
그리스 제국당 자유보수주의
정교회 우파
중도우파
27 / 120 (23%)
115 / 570 (20%)
야당
유럽사회운동 민주사회주의
좌익대중주의
중도좌파~좌파
6 / 120 (5%)
42 / 570 (7%)
기타
그리스 급진당 급진주의
사회자유주의
중도~중도좌파
2 / 120 (2%)
22 / 570 (4%)
정교회 국민연합 제정일체
정교회 보수주의
우파
3 / 120 (3%)
15 / 570 (3%)
터키인 단결당 아나톨리아 독립
이슬람 민주주의
중도~중도우파
0 / 120 (0%)
7 / 570 (1%)

경제

그리스의 경제 규모는 명목 GDP로 세계 9위, GDP PPP로 세계 14위의 규모이며 이로 인해 그리스는 전세계적으로 가장 경제적으로 발전한 국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세계 경제 선진국의 모임인 G7과 G20에 동시에 가입되어있다.

국민 총 소득이 4만달러 수준으로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으며, 이는 유럽 내에서 중상위권에 속한다. 경제 수준 자체는 높은데, 경제 발전 속도가 더딘 것이 그리스 정부의 고민이다. 그리스의 경제 성장률은 20년째 1% 박스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그리스 정부는 IT 기업을 유치하는 등 새로운 경제 동력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통화로는 2002년부터 유럽연합의 유로화를 사용중에 있다.

군사

그리스 제국군은 역사적으로 국력에 비해 군사력이 약하다고 평가받아왔다. 그 이유로는 북쪽, 동쪽에는 강력한 강대국이 없었던데다가 서쪽, 남쪽으로는 지중해라는 천해의 방벽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제2차 세계 대전 도중 그리스가 이탈리아와 나치 독일군의 공격을 받고 안전한 키프로스 섬으로 도피해야했던 이유를 제공하였다. 뿐만 아니라 전후에 공산당이 일으킨 혁명은 그리스 국방력 증강의 필요를 부각시켰다.

그에 따라 1950년대부터 그리스의 국방력은 크게 증강되었으며, 1960년대에는 국방력이 정점에 다달아 서구권 내에서 미국, 영국, 프랑스에 다음가는 4위의 군사력을 지니고 있었다. 특히 냉전 시대에는 유고슬라비아, 불가리아, 알바니아 등 공산권 국가와 바로 국경을 맞대고 있던 나라가 그리스 제국이었던만큼 미국 측에서도 군대를 주둔시킬정도로 그리스의 군사적 위치는 중요하였다.

그러나 1960년대 후반, 공산당과의 내전 후 안정을 목표로 20년 가까이 군사 독재를 이어나갔던 그리스 군부가 시민 혁명으로 무너지면서 강력한 군사력은 독재 청산이라는 명분 하에 조금씩 해체되었다. 1990년대에는 냉전이 종식되면서 강군 유지의 필요성이 떨어져, 독일과 마찬가지로 강경한 군축이 시행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유고 내전에 개입하는 등의 행보를 보이면서 여전히 유럽 내 강군으로서의 위신은 유지했다.

군축이 크게 일어나긴 했으나, 여전히 그리스의 군사력은 서방 내에서 미국, 영국, 프랑스, 한국, 일본, 이스라엘을 이은 7위이며 나토군의 지중해 세력중 가장 강력한 파워를 자랑하고 있다. 동구권의 국가들이 경제 정치적 혼란으로 인해 군사 증강을 하기 어려운 상황인만큼, 지역 내에서 군사적 패권을 유지하고 있는 그리스 제국의 현 추세는 큰 변수가 없다면 최소 20년간은 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사회

언어

그리스의 언어로는 그리스어가 가장 많이 쓰이며, 라틴어 역시 공용어로 지정되어있으나 사실상 사용되지 않는다. 국민의 절대 다수는 그리스어를 일상어로 사용한다.

터키어 역시 아나톨리아 반도 등 일부 지역에서 사용되나 현재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전국민중 터키어를 사용하는 화자의 비율은 약 5% 정도에 불과하며 점차적으로 추세는 감소하고 있다.

종교

그리스 국민들의 대다수는 정교회를 믿으며, 국교도 콘스탄티노폴리스 정교회로 지정되어있다,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총대주교청의 세계총대주교가 대주교로서 존재하는 정교회는 그리스 전례를 따르는 정통교회이다. 단순한 종교의 차원을 벗어나 제3의 로마로서 그리스의 정통성과 역사성을 상징하며, 더 나아가 그리스인들의 생활 문화에 깊숙히 뿌리 박혀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중 하나이다.

정교회 외에는 이슬람교, 기독교, 유대교 등의 세가 존재하나 터키인들이 주로 믿는 이슬람교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정교는 소수 종교 수준이다. 20세기 후반 이후에는 사회 진보의 흐름에 발맞춰 무종교인들의 수가 크게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고 있기도 하다. 1980년 조사에서 3%에 불과했던 무종교인의 수는 2020년 조사에서 24%로 8배 가까이 증가했다.

민족

약 75% 정도는 그리스인으로 분류되며, 20%는 터키계의 혈통이다. 터키계와 그리스계인들은 오랫동안 그리스 제국이라는 하나의 국가 속에 묶여있으면서 피가 마구 섞였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이 두 계통의 사람들을 분리해내는 것은 극도로 어렵다. 아예 이슬람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을 전부 터키인에서 제외해야한다고 보는 시각도 있을 정도이다.

터키인들은 키프로스 섬아나톨리아 반도에서 주로 거주하고 있으며, 아나톨리아 반도 주민의 약 45% 정도가 터키계 그리스인이다. 그 외에는 불가리아와의 국경 지대에 불가리아계 그리스인들도 상당수 거주하고 있다. 불가리아계 그리스인들이 거주하는 지역은 1차 대전 도중에 그리스가 불가리아로부터 획득한 영토이다.

그 외에는 중국인, 러시아인, 독일인, 이탈리아인, 알바니아인도 있지만 그 수는 매우 적다. 이중 그나마 중국인들의 수가 많고 독자 커뮤니티를 만들어 생활하는 편이다.

문화

그리스의 국민들은 프랑스의 국민들과 마찬가지로 자국 문화에 대한 애호가 매우 높은 것으로 알려져있다. 고대와 중세, 현대를 아우르는 찬란한 문화 유적과 아름다운 자연 환경 등은 유럽 내에서도 유명하다. 이 때문에 그리스 내에서는 자국 문화가 최고고 남의 문화는 2류라고 업신여기는 문화가 있다. 특히나 불가리아 , 러시아 등 다른 "제3의 로마"를 표방한 제국들의 역사를 마구 깔봐서 그리스의 사람들을 "남유럽 짱깨" "로마 짱깨"라며 비하하는 한국인들도 있다.

관광

그리스는 문화 관광과 자연 관광 양쪽에서 크게 성공한 몇 안되는 사례로 꼽히고있다. 그리스는 유럽의 문화 중심지로서, 파르테논 신전이나 아크로폴리스 등 고대 그리스의 유적지부터 콘스탄티노플의 동유럽의 유적지, 그리고 비교적 최근의 오스만 제국 유적까지 고대-근대-현대를 아우르는 방대한 역사적 문화 시설의 존재로 인하여 유럽 내에서도 유적 답사로 유명한 국가이다.

자연적으로는 지중해를 끼고 있는 아름다운 자연 관경과, 일년 내내 반복되는 온난하고 따뜻한 날씨, 산토리니 등 지중해의 자연 경관과 잘 어우러지는 그리스만의 문화 특징 등이 관광 수입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특히 지중해의 산토리니 섬이 유명하며, 크레타 섬은 아름다운 지중해성 기후 뿐만 아니라 과거 미노스 문명의 유적까지 존재해 그야말로 매년 수백만에 달하는 관광객들을 모으고 있다.

이 때문에 그리스가 개발도상국에 속하는 국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매년 국가 총 생산에서 상당한 부분을 관광업이 차지하고 있었다. 다만 2020년과 2021년에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관광업이 직격탄을 받으면서 주요 관광지 내 실업률이 폭증하기도 했다.

올림픽

그리스는 올림픽의 발상지였던 고대 그리스가 있던 국가이다. 따라서 그리스는 올림픽의 종주국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그리스 도시 국가간의 평화와 화합을 도모하기 위하여 올림픽을 개최하였는데, 현대의 올림픽도 비슷한 목적을 가지고 1896년 만들어져 아테네에서 1회 올림픽이 진행되었다.

그리스에서 올림픽은 총 3번 진행되었으며, 그 목록은 다음과 같다.

외교

그리스-터키 관계

그야말로 앙숙 그 자체이다. 1453년 콘스탄티노플 공방전 이후, 오스만 제국이 그리스인들에게 가한 폭압적 조치는 거의 모든 그리스인들에게 반 터키 감정을 불러 일으켰다. 이는 현대까지 이어져 그리스인들이 1차 세계 대전 이후 멸망한 오스만에 쳐들어가 아나톨리아 반도의 거의 절반을 빼앗는 결과를 가져 왔다. 반대로 터키인들은 자신들의 정당한 영토인 아나톨리아의 서부를 그리스인들이 강도질했다면서 당장 "이스탄불"[2]을 내놓으라고 주장한다.

터키의 인구가 4,000만명, 그리스의 인구가 5,000만명인만큼 국가 규모도 서로 비슷하고, 아나톨리아 반도에서 국경을 맞대고 있는 상태인지라 두 나라는 경쟁 의식이 있다. 스포츠 경기에서 두 나라가 만나면 거의 한일전을 방불케한다. 그러나 냉전 당시에는 터키와 그리스가 NATO의 일원으로 소련을 견제하는 등, 사이가 나빴던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터키인과 그리스인은 서로의 국가에 관광 차원으로 많이 방문하며 교류가 잦다.

그리스-독일 관계

역시나 좋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친밀한 관계로 분류된다.

역사적으로 보았을때 독일은 제1차 세계 대전과 2차 대전에서 모두 그리스의 적국이었다. 그중 양국 감정을 악화시킨 것은 2차 대전 시기로, 이때 나치 독일은 1941년 그리스를 침공해 키프로스 섬과 아나톨리아 반도 지역 등 일부를 제외하고 그리스 전 국토를 유린하였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동로마, 고대 그리스 시대의 유적들이 독일에게 약탈당하고 파괴되었다. 이는 대다수의 그리스인들에게 엄청난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1970년대 이후, 유럽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독일과 그리스의 외교적 관계는 친밀해졌고 1975년 헬무트 슈미트 당시 독일 총리가 그리스에 방문해 2차 대전의 일을 사죄하는 등의 제스처를 보여, 그리스 국민들의 대독 감정도 누그러졌다. 2010년대의 중동 난민 사태 당시에는 그리스가 독일과 함께 난민을 적극 수용했고 영국의 브렉시트 이후에는 사이가 더더욱 돈독해졌다.

따라서 두 나라는 현재 매우 친밀한 동맹국 사이이다.

그리스-미국 관계

미국과 그리스의 관계는 미묘하다. 안보적으로 두 국가는 친밀한 관계에 있고, 실제로 미군이 그리스에 주둔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2001년의 아프간 전쟁과 2003년의 이라크 전쟁은 대다수의 그리스인들이 미국에 대한 신뢰를 잃게 만든 주된 요인으로 작용했다. 당시 그리스인들의 84%가 이라크 전쟁 참전에 반대했음에도, 미국의 강요로 그리스 정부는 어쩔 수 없이 이라크 파병을 결정할 수 밖에 없었다. 아랍인 테러리스트들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콘스탄티노플의 지하철에서 폭탄 테러를 일으켜, 무려 74명이 죽고 300여명이 다치는 대참사가 일어났다. 당연히 그리스 내에서는 이게 다 미국 때문이라며 비토 감정이 엄청나게 높아졌다.

지금도 미국에 대한 그리스인들의 시선은 곱지 않으며, "자기들 마음에 안드는 국가는 다 정복하고 다니는 멍청한 제국주의자" 정도가 그리스인들이 미국에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시각이다. 코로나 사태와 유로마이단 이후, 러시아 및 중국에 대한 그리스인들의 신뢰도가 대폭락하며 그나마 미국과 조건부 연합해야한다는 여론이 커지긴 했지만, 여전히 미국과 그리스의 외교적 친선을 아니꼽게 보는 그리스인들이 많다.

작가의 말

각주

  1. 다만 현대와 같은 형태의 의회 민주주의를 확립한건 아이슬란드와 영국이다.
  2. 터키인들이 콘스탄티노플을 부르는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