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제국연방 (Troublin' 20C)


 

대영제국연방

Imperial Federation of Great Britain


국기 국장
상징
표어 Dieu et mon droit

신과 나의 권리

국가 Rule, Britannia!
국수 사자
별칭 영국(Britain), 해가 지지 않는 제국(The empire where the sun never sets), 대영제국(Imperial Britannia), 해적제국(Empire of Pirates)[1]
지리
수도 런던
최대도시 런던
면적 25,186,272km²
구성국(country)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
캐나다
인도
오스트레일리아
남아프리카
뉴질랜드

접경국 내용
인문
총인구 410,984,905명
언어 영어[2]
문자 로마자
종교 제국성공회(국교) 99.8%[3][4]

기타 0.2%

군대 대영제국연방군
정치
정치제도 수정제국주의, 입헌군주제, 의원내각제, 관습법주의, 명목상 다당제[5]
황제[6] 에드워드 8세

Edward VIII

제국총리 오스왈드 모즐리 경

Rt Hon. Osward Mosely

귀족원 의장 앤서니 루도비치 경

Rt Hon. Anthony Ludovici

서민원 의장 아드리앵 아르캉 경

Rt Hon. Sir Adrein Arcand

제국근위대 최고사령관 알렉산더 레이븐 톰슨

Alexander Raven Thomson

귀족원 구성

여당/ 제국당 787석
연립여당/ 연방당 311석
신임과 보완/ 보수당 109석 자유당 235석[7][8]
제국성공회 주교/ 25석
무소속/ 2석[9]

평민원 구성

여당/ 제국당 2085석
연립여당/ 연방당 1049석
신임과 보완/ 보수당 1029석 자유당 1488석
무소속/ 32석

경제
경제제도 자본주의 시장경제(명목상) 자본주의 계획경제(사실상)[10]
화폐 파운드 스털링(£)
중앙은행 영란은행
Bank of England
기타
내용




18세기 중반, 증기의 힘으로 우리의 대영제국은 인류 문명의 새로운 태양을 띄웠습니다.

밝게 빛나는 태양의 빛이 닿지 않는 곳은 없었고, 우리의 태양은 저물지 않을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다우닝 가와 버킹엄이 예상하지 못한 세계 대공황과 인도 독립전쟁을 거친 대영제국은 서서히 빛을 바래가고 있습니다.
오로지 앵글로색슨인만이 세상의 진정한 주인이 될 정당한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수정된 제국주의의 기치 아래에 하나로 뭉쳐 앵글로색슨인들이 잃어버린 것들을 되찾을 것입니다.
지배하라, 브리타니아여!

-총리 오스왈드 모즐리 경 취임사 중 발췌



개요

대영제국연방(Imperial Federation of Great Britian)은 네 개의 대륙(유럽, 북아메리카, 아시아, 오세아니아)에 위치한 수정제국주의 국가이다. 본래 그레이트브리튼 및 북아일랜드 연합왕국이었던 영국은 대공황 이후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남아프리카, 인도를 본토의 구성국(country)으로 편입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역사

세계 대공황과 인도 독립전쟁

영국은 세계 곳곳에 거점을 세우고 식민지를 운영하는 등 산업혁명의 심장이자 세계 식민제국의 최정점다운 면모를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전성기의 영국에 경종을 울린 것은 역시나 세계 전역을 환란에 빠지게 만들었던 세계 대공황이었다.

1923년 5월 8일,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그동안 버블로 쌓여왔던 주가가 폭락하게 되면서 오스트리아와 경제적인 역학관계를 쌓아오던 독일의 경제가 붕괴했고 이것은 거대한 도미노 효과를 일으켜 전 세계가 경제적 혼란에서 해어나오지 못하게 만들었다. 영국 또한 이러한 혼란에서 예외가 되진 못했다. 당시 스탠리 볼드원 총리는 긴급히 파운드 블록 형성을 통한 해결책을 강구했으나 이러한 내각의 시도는 당시 영국의 최대 식민지였던 인도의 독립전쟁으로 인해 산산히 부서진다.

세계 대공황이 지속되면서 한편 당시 영국령 인도에서는 경제적 위기를 틈타 독립의 여론이 활성화되었고 자와할랄 네루를 중심으로 투쟁적 인도해방위원회(Militant India Liberation Committee)가 수립되며 인도 전역이 전쟁의 물결에 휩싸였다. 당시 20대 청년이었던 수바스 찬드라 보스는 자와할랄 네루가 이끄는 투쟁적 인도해방위원회의 부속 행동대인 청년바라트협회(Youth Bharat Association)의 일원으로써 당시 뉴델리의 영국 총독부 청사를 테러하여 당시 인도 총독이었던 프레드릭 테시어가 사망하는 등 막대한 피해가 발생했다.

한편 당시 인도 독립운동의 또다른 거두였던 마하트마 간디는 투쟁적 인도해방위원회에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하며 평화적이고 비폭력적인 방식으로의 해방운동을 주장하여 자신의 지지자들과 함께 소금 행진을 하였다. 하지만 영국 식민지 당국은 간디의 이러한 비폭력적 시위 또한 잔혹하게 진압하면서 간디 또한 체포되어 수감되었다. 수감 도중 열악한 환경 탓에 마하트마 간디가 사망하자 그의 지지자들마저 투쟁적 인도해방위원회로 돌아서면서 식민당국과 투쟁적 인도해방위원회 사이의 내전이 격화된다.

스탠리 볼드원 내각은 해당 사태에 책임을 지고 해산하였으며 네빌 체임벌린 당시 재무장관이 총리로 선출되어 임시내각을 꾸렸다. 네빌 체임벌린 임시내각은 영국의 본토군을 인도에 배치하기로 결정하며 본토 군대가 투쟁적 인도해방위원회와 격전을 벌였다. 아마다바드 전투에서 영국군은 투쟁적 인도해방위원회군 1만 여명을 사살하며 서서히 판세가 기울어지게 되었고 결국 투쟁적 인도해방위원회의 인도 독립의 열망은 좌절되고 만다.

수정제국주의의 등장

영국은 가까스로 인도의 독립을 억제하는데 성공했지만 이로 인한 국내 문제는 심각했다. 특히 인도 독립전쟁 도중 파괴된 인도내 기반시설로 인해 영국은 막대한 양의 공급을 감당할 수요를 잃었고, 이것은 대공황으로 휘청이던 영국의 재정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데 일조한다. 특히 당시 영국 최대의 은행이었던 영란은행이 막대한 손해를 보았고, 불안정한 경제 상황 탓에 대규모 뱅크런이 발생하면서 영란은행은 결국 예금인출중단까지 하는 최악의 사태로 이어졌다.

이러한 우울한 상황 속에서 네빌 체임벌린 임시내각은 해산되었으며 1927년 총선의 열기가 달아오르자 각 정당은 인도 독립전쟁의 사태에 대한 책임을 각 정당과 파벌로 돌렸다. 이로인해 정권은 불안정해졌으며 런던 각지에서 대규모 노동자 시위가 발생하는 등 정세는 최악의 상황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로사 린톤-오만이라는 정치인이 등장하여 극우 초왕당파 정당인 제국당을 결성하였다. 당시 제국당은 큰 주목을 받지 못하였지만 제국당에 두 거두가 입당하며 상황은 급변한다. 한 명은 오스왈드 모즐리로 당시 좌파 성향의 정치인이었으나 인도 독립전쟁의 여파로 식민지의 선주민들에 대한 반감을 형성하여 민족주의적 색체를 들어내기 시작했고 제국당에 소속되어 활발히 정당 활동을 하였다. 또다른 한 명은 윌리엄 조이스로 오스왈드 모즐리보다 더욱 민족주의적 색체가 강한 인물이었는데, 특히 모든 사태의 원인을 오스트리아에서 발생한 대공황으로 보고, 그 대공황의 배후에는 금융계를 거느린 유대인이 있다는 신념 아래에 반유대주의 정서를 표출했다.

한편 당시 보수당 내에서도 민족주의적인 색체가 나타나기 시작하며 제국당에 동조하는 인물들이 나타났다. 특히 1926년 초 런던 대파업이 발생하면서 사회주의의 위협이 표면하되기 시작하자 보수당은 이것을 해결할 방법으로 제국당을 택했다. 당시 제국당은 산하의 행동대로써 일명 붉은 셔츠단(Redshirts)이라 불리는 민족행동의용민병대(National Action Volunteer Militia)를 운영하며 파업과 시위를 폭력적으로 진압하고 있었는데 보수당의 입장에선 이러한 제국당은 자신의 손을 더럽히지 않고 시위를 진압할 좋은 수단이었다.

하지만 보수당의 이러한 판단은 되려 양날의 검으로 다가왔는데, 제국당의 직접적인 행동은 당시 영국 대중에게 큰 호흥을 얻었고, 특히나 거대 식민지에서 대농장을 운영하던 지주와 공장주들은 제국당의 정서에 동조하기 시작했다.

한편 오스왈드 모즐리는 윌리엄 조이스와 오랫동안 교류하면서 더욱 민족주의적으로 변모하였고 그는 로사 린톤-오만을 뒤를 이어 제국당을 끌게 되었다. 제국당의 전체적 노선은 더욱 급진화되었고, 이후 모든 식민지에 오로지 앵글로색슨인만이 살 수 있도록 정화해야한다는 주장까지 이어진다. 인도 독립전쟁의 원인이 인도 원주민들이라 믿은 까닭이었다. 결국 이러한 극단적인 주장과 사상은 큰 호흥을 얻어 1927년 총선에서 제국당이 보수당 다음으로 오는 제2당의 지위를 얻게 된다.

케이블가 전투와 수권법

1928년 10월 4일, 제국당의 당원들과 오스왈드 모즐리, 윌리엄 조이스는 당시 유대인과 반민들이 밀집해있던 지역인 케이블가로 행진하기로 결정했다. 이것은 제국당만의 시위 방식이었고 수정제국주의를 홍보할 방법이었다. 하지만 해당 행진은 안티파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혔고 안티파와 제국당 사이의 전투가 벌여졌다. 이 전투로 윌리엄 조이스가 사망했고 오스왈드 모즐리는 왼쪽 귀를 다치게 되었다. 하지만 붉은 셔츠단을 위시로한 제국당의 전력은 안티파를 분쇄했으며 당시 케이블가는 피로 물들었다. 이 사건을 케이블가 전투라고 부르며, 또는 당시 케이블가의 유대인과 반민이 운영하던 점포들의 유리창이 수정조각처럼 깨지는 것을 두고 수정의 밤이라고도 부른다.

이후 제국당은 윌리엄 조이스를 애도하였고, 여론은 윌리엄 조이스의 사망 사실에 격분하며 안티파를 향한 거대한 반감이 형성되었다. 안티파는 더이상 활동이 불가능함을 인지하고 영국을 떠나거나 스스로를 숨기기 시작했으며 결국 제국당은 그 인기에 힘을 입어 1929년 총선에서 제1당의 지위를 얻으며 제국당의 당시 당수였던 오스왈드 모즐리가 총리로 선출되고 제국당-보수당 연립내각이 형성되었다.

1930년, 오스왈드 모즐리가 수권법을 통과시킴에 따라 의회의 승인 없는 총리의 단독 입법이 가능해졌다. 또한 정치경찰인 제국근위대가 창설되어 사회는 경직되기 시작했으며 오스왈드 모즐리 주도의 강력한 중앙집권이 구축된다.

버킹엄 진군과 제국연방의 출범

1932년 오스왈드 모즐리는 당시 웨일스 공이었던 에드워드 8세에게 접근하여 눈엣가시였던 조지 5세를 제거할 계획을 세운다. 에드워드 8세는 이에 흔쾌히 수락하며 1932년 6월 3일, 조지 5세의 탄신일에 버킹엄 궁전을 장악하며 조지 5세를 확보했다. 오스왈드 모즐리와 에드워드 8세는 이후 조지 5세에게 양위를 강요했으며 결국 에드워드 8세가 국왕으로 즉위한다.

이에 대한 반발로 자유당은 제국당과 오스왈드 모즐리를 크게 비난했고, 또한 정치적 쿠데타로 얼룩진 작센코부르크고타 왕조에 대한 불신임을 표했다. 한편 제국당의 영향으로 서서히 위축되던 노동당측 인사가 자유당에 입당하자 자유당은 이것을 계기로 보다 공격적인 세력투사를 강행했다.

이에 제국당은 제국당 혼자의 힘으로 내각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판단하여 여타 군소정당과 제국당 일부를 합하여 연합당(United Party)[11]을 창당했다. 한편 1935년 총선을 앞둔 날, 알 수 없는 이유로 당시 자유당의 당수였던 허버트 새뮤얼이 살해된 체 발견되었다. 정황상 제국당의 소행이 분명했으나 물증이 없었고 용의자로 잡힌 인물은 21살 영국인 남성으로 당시 킹스턴 대학교의 재학생인 조지 웰버트였으며 제국당과의 유착관계는 전혀 확인된 바가 없었다.

결국 제국당은 당수를 잃고 혼란에 빠진 자유당을 서서히 잠식하며 자유당을 괴뢰화하는데 성공하였고 자유당의 당수로 당시 유명한 소설가였던 에릭 아서 블레어[12]을 낙점하였다.

이후 더이상 거리낄 것이 없던 제국당은 1936년 각 5개의 식민지(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남아프리카, 인도)의 총독을 소집하여 회담을 진행하였고, 수정제국주의에 입각하여 모든 식민지를 앵글로색슨인의 생활권으로 복속하기 위해 다섯 개의 식민지를 본토 구성국(country)와 동등한 본토 구성국으로 병합하기로 결정하였다. 또한 이로인해 영국의 국왕은 공식적으로 인도 제국을 본토로하는 국가의 군주가 되었기에 황제를 대외적으로 칭하게 되었으며, 국호 또한 기존의 그레이트 브리튼 및 북아일랜드 연합왕국(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에서 대영제국연방(Imperial Federation of Great Britian)으로 변경하였다.

상징

국호

영국의 공식 국호는 대영제국연방(Imperial Federation of Great Britain)이다. 1936년 처음 제정된 이 명칭은 이전의 국호였던 그레이트브리튼 및 북아일랜드 연합왕국(United Kingdom of Great Britian and Northern Ireland)와 형태에서 큰 차이를 보이는데, 이것은 기존의 영국이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로 이루어진 연합왕국이었던 것과 달리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남아프리카, 인도가 본토로 편입되면서 그 명칭이 매우 길어졌기에 새로운 형태를 취한 것이다. 또한 인도가 본토로 편입되면서 작센코부르크고타 왕조가 공식적으로 황제위를 칭하면서 제국(Empire)로 국호를 격상하였다.

이외의 국호 후보로는 제국연방(Imerial Federation), 그레이트브리튼, 북아일랜드,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남아프리카 및 인도 연합제국(United Empire of Great Britian, Northern Irealnd, Canada, Australia, New Zealand, South Africa and India) 등이 있었다.

표어

영국의 표어는 Dieu et mon droit로 튜더 왕가의 표어였다. 뜻은 신과 나의 권리으로 프랑스어로 이루어진 표어이다. 또한 오스왈드 모즐리의 집권 이후 보다 앵글로색슨스러워야한다라는 일념으로 God Save The Emperor이라는 표어가 제안되기도 했다.

지리

영국의 면적은 25,186,272km²으로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면적이다.[13] 193년 이후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인도가 모두 본토로 편입되었기 때문에 이렇게 넓은 면적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본토가 유럽, 북아메리카, 오세아니아, 남아시아에 흩어져있기 때문에 그 기후도 천차만별인데, 그레이트브리튼 본토의 경우 멕시코 난류의 영향을 받아 연중 온난하고 강수량이 많아 항상 하늘이 흐리고 비가 온다. 한편, 북아메리카의 캐나다 본토는 영토의 대부분이 냉대와 한대에 걸쳐 있어 매우 기후가 춥고 척박하며, 오세아니아의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 본토는 열대 기후와 사막 기후가 동시에 나타난다. 마지막으로 남아시아의 인도 본토는 열대에 해당한다. 이렇게 다양한 기후 탓에 매우 다양한 식재료와 자원을 수급할 수 있다.[14]

행정구역

구성국

영국의 가장 큰 특징은 단일국가가 아니라 9개의 구성국(country)로 이루어진 연방국가라는 것이다. 영국의 황제가 각 구성국의 군주로 재위하며 각 구성국은 각각의 자치의회(Parliament)를 가진다. 단 잉글랜드는 자치의회를 가지지 않는데, 이것은 잉글랜드가 영국 황제의 직할령이기 때문이다. 다음은 각 구성국의 목록과 그 수도, 위치 목록이다.

구성국 수도 위치
잉글랜드 England 런던 London 그레이트브리튼(Great Britain)
스코틀랜드 Scotland / Alba 에든버러 Edinburgh / Dùn Èideann 그레이트브리튼(Great Britian)
웨일스 Wales / Cymru 카디프 Cardiff / Caerdydd 그레이트브리튼(Great Britian)
북아일랜드 Northern Ireland / Tuaisceart Éireann 벨파스트 Belfast / Béal Feirste 그레이트브리튼(Great Britian)
캐나다 Canada 오타와 Ottawa 북아메리카(North America)
오스트레일리아 Australia 캔버라 Canberra 오세아니아(Oceania)
뉴질랜드 New Zealand 웰링턴 Wellington 오세아니아(Oceania)
남아프리카 South Africa / Zuid-Afrika 요하네스버그 Johannesburg 남아프리카(South Africa)
인도 India 뉴빅토리아 New Victoria 남아시아(South Asia)

식민지

영국은 그외의 식민지도 운영했는데 식민지의 유형은 황제령 식민지(Imperial Crown Colony), 보호령(Protectorate), 보호국(Protected State), 자치령(Dominion), 조차지(Concession), 괴뢰국(Puppet State)로 나뉜다.

인문

사회상

완전 해결책

완전 해결책(Complete Solution)은 영국의 대표적인 사회상으로 수정제국주의적 사상의 궁극이라고 할 수 있다. 완전 해결책의 내용은 반란을 일으킬 가능성이 존재하는 모든 형태의 식민지 원주민을 절멸하는 것에 있다.[15] 인도 독립전쟁 이후 모든 반란과 소요 사태의 원인은 식민지 원주민들에게 있다라는 믿음이 퍼지기 시작했고 그것이 이러한 끔찍한 학살로 이어진 것이다.

완전 해결책의 내용에 따라 순수한 앵글로색슨인이 제1의 신분을, 그리고 그외의 백인이 제2의 신분에 해당하며, 그 외의 모든 인종은 제거되어야할 대상으로 여겨진다.[16] 이로인해 영국은 각 식민지에 절멸수용소(Extermination camp)을 설치하여 현지 원주민을 수용하고 독가스와 같은 비인륜적인 방식으로 그들을 학살했다. 또한 인도에 대해서는 의도적으로 화재를 일으켜 뉴빅토리아[17]와 그 일대를 모조리 잿더미로 만들어버렸으며, 해당 뉴빅토리아 대화재로 막대한 인도인을 학살했다.

다만 점차 인구가 줄어들자 수요가 급감하는 탓에 경제적 위기를 경계한 정부는 모든 식민지 원주민의 완전한 노예화로 방향을 바꾸어 절멸 자체는 감소하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원주민이 학살되고 있다. 하지만 절멸이 감소하였다고 해도 식민지 원주민을 노예화하는 등 인간으로서 상상할 수 없는 짓을 자행하고 있다는 점은 여전하다.

경직된 사회

오스왈드 모즐리와 제국당의 지배를 받는 영국은 사회가 꽤나 경직되어 있다. 정부에 반감을 표하는 것만으로도 사복을 입은 제국근위대원에 의해 납치되어 조용히 제거될 수 있다. 이로인해 야외를 보행하는 사람의 숫자도 적으며 3명 이상이 함께 다니는 것만으로도 당국의 의심을 사 조사를 받을 수 있다.

군대

영국의 군대는 대영제국연방군(Federal Armed Forces of Imperial Britian)으로 세계 최강 규모의 해군과 준수한 수준의 유군을 운용한다.

수뇌부

대영제국연방군 총감

Head of Federal Armed Forces
of Imperial Britain

제국총리

Imperial Prime Minister

육궃 위치 위치
에드워드 8세 오스왈드 모즐리 경
  1. 영국에 반감을 가진 세력이 부르는 멸칭이다.
  2. 관습법의 특성상 성문화되어있지는 않지만 영국 내 모든 영토에서는 영어 사용이 의무화되어 있으며, 모든 공교육과 행정 서비스는 영어로만 이루어진다.
  3. 제국성공회를 제외한 모든 종교의 활동은 철저히 감시받으며 선교가 금지된다. 이것은 제국성공회와 같은 기독교 계열의 종단들에게도 적용된다.
  4. 한편, 영국에서 태어난 모든 국민은 성인이 되기 이전에 제국성공회에서 세례성사를 받을 의무가 있다.
  5. 실상은 일당독재이다. 1931년 그나마 여당이라고 볼 수 있는 자유당 마저 신임과 보완으로 전환되며 여당이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정당은 제국당의 지도를 받는다. 제국당을 제외한 정당은 마그나 카르타 이후의 민주주의의 자부심을 가진 영국 의회가 민주주의의 가면을 유지하기 위해 마련한 구색정당에 지나지 않는다.
  6. 정식 명칭은 하느님의 은총으로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인도, 남아프리카와 뉴질랜드의 제국연방과 다른 왕국 및 제국령의 황제, 앵글로색슨인의 왕, 신앙의 수호자이신 폐하이다.
  7. 본래 제국당에 맞썰 유일한 야당이었으나 1935년 총선 직전 자유당의 당수 허버트 새뮤얼이 암살되면서 당 전체가 제국당에 의해 괴뢰화되었고 이후 신임과 보완 정당이 되었다.
  8. 이로인하여 영국에는 더이상 야당이 남지 않게 되었다.
  9. 다만 두 의원 모두 제국당의 후원을 받고 있으며 그중 한 명은 본래 연방당 소속이었다가 제국당으로 당적을 옮기는 과정이기에 무소속일 뿐이다.
  10. 민간 기업이 다수 존재하지만, 국영기업인 대영제국공사(British Imperial Corporation)이 시장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이다.
  11. 연합당은 제국연방 출범 이후 연방당(Federal Party)로 당명을 개명한다.
  12. 필명은 조지 오웰, 당시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 제국은 없다 등의 서적을 저술했으며, 이후 자유당 당수로 활덩하던 시기에 그 유명한 1993동물농장을 저술해 수정제국주의를 신랄하게 비난했다. 하지만 영국 정부에서는 자신들이 독재정부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용도로 그를 체포하지 않는다.
  13. 2위는 러시아 제국이다. 다만 그레이트브리튼 섬만을 본토로 보았을 때는 그 면적이 한반도 수준으로 작아진다.
  14. 하지만 어째서 요리 만큼은 끔찍할만큼 단편적이다. 상류층이 즐기는 파인다이닝이나 베이커리류는 그나마 봐줄만 했으나 오스왈드 모즐리 총리의 집권 이후 식도락과 같은 부가적 가치에 대한 금욕주의 정서가 확장되면서 그마저도 쇠퇴하기 시작했다.
  15. 몇몇 계파는 유대인을 이 완전 해결책의 대상에 포함해야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유대인 자체가 영국 내에서 기피 대상이기에 이런 계파에 대한 정부적 조치는 전혀 없으며 되려 정부는 이들을 조장한다.
  16. 다만 동맹 관계의 일본인들에 대해서는 명예 백인으로 인정하는 모순적인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17. 당시에는 뉴델리라 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