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 (윤파란 세계관)

대한제국
大韓帝國 | Empire of Korea
국기 국장
광명천지
光明天地
건국 이전
한국 독립 전쟁 이후
조선
대한민국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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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년 10월 12일 ~ 1919년 7월 11일
상징
국가 대한제국 애국가
국화
오얏꽃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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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정변 1897년
한러전쟁 1904년 ~ 1905년
제 1차 한일우호조약 체결 1914년
한국독립운동 1915년
멸망 1919년 7월 11일

지리
수도
한성부
최대 도시
한성부
면적
220,903km²
위치
유라시아 대륙
인문환경
민족
한국인
공용어
한국어
국교
없음
종교 분포
없음
군대
대한제국군
연호
서력 기원
정치
정치 체제
입헌군주제
입법부
대한국 의회
경제
통화
대한제국 환

개요

대한제국은 1897년 고종이 제국을 선포하여 세워진 입헌군주제 국가로, 한민족 역사상 최초의 근대 국가이자 마지막 군주국이다. 정치 체제는 입헌군주제였으며, 당대 일본 제국과 함께 열강 중 하나였다.

역사

갑신혁명

1884년 10월, 김옥균 등의 개화파가 일으킨 혁명이 성공하면서 조선은 급속도로 변화하게 된다. 개화파 지도부는 일본 제국을 롤모델로 삼아 근대화를 주도하였으며, 일본의 지속적인 지원을 통해 조선은 군사, 정치 등 모든 부분을 서구식으로 탈바꿈하는데 성공하게 된다. 조선이 어느정도 성장을 하게 되자, 일본은 조선을 완전히 청나라로부터 떼어내려는 속셈으로 개화파 내각에게 청나라로부터 독립을 할 것을 종용한다. 그렇잖아도 청나라에 어느정도 반감을 가지고 있던 조선 지도부는 마침내 1889년 4월 독립 선언을 강행했으며, 이에 분개한 청나라가 침공을 함으로서 조선과 청나라간의 양국 전쟁이 시작된다.

조청전쟁의 승리

그러나 조선군은 일본의 지원 등으로 인해 더 이상 청나라가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으며, 변화한 조선군의 선진적인 체제와 이와 대비되는 청군의 후진적 추태로 인해 전쟁은 완전히 조선의 승리로 끝나게 된다. 그리하여 조선은 조약을 통해 청과의 조공관계를 완전히 청산했으나,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조선은 점차 일본에게 의지하게 된다.

정유정변

갑신혁명의 주역이었던 김옥균 일파가 정권을 독점하는것에 불만을 갖고있던 여외세력은, 권력을 완전히 잃고 허수아비로 전략한 고종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들은 고종의 친정 복귀를 명분으로 쿠데타를 일으켰으나, 그들이 확실히 집권을 하기 위해서는 친정 복귀 외에 뭔가의 명분이 필요했다. 그것은 다름아닌 칭제로, 칭제를 통해 국가의 권위를 다시 세워 정통성을 가진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1897년 10월 12일, 신 내각과 고종에 의해 황제 즉위와 동시에 대한제국이 선포되었다.

제 1차 한일우호조약

대한제국이 일개 약소 농업국가에서 선진 열강 공업국가로 발돋움 할 수 있었던 것은 일본의 영향이 절대적으로 컸다. 물론 정권을 잡은 개화파 관리들이 일본을 롤모델 삼아 개혁을 진행한 것도 있지만, 일본의 지원이 없으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정작 일본은 이러한 상황을 탐탁치 않아했는데, 애당초 일본의 진짜 계획은 그게 아니었었기 때문이다. 진짜 계획은 동시기 타 열강국가들 처럼 한국을 일본의 식민지로 삼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한국을 굳이 지원해준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타 국가들이 저개발 국가들을 식민화 하는 과정에서 해당 국가의 형편없는 인프라 때문에 고통받는 것을 보고는 처음부터 식민지로 집어삼킬 것이 아니라, 선심 쓰는 척 지원을 해줘서 나름 인프라를 스스로 구축하게 한뒤, 어느정도 나라 꼴이 제대로 갖춰지면 그때 식민화를 추진할 예정이었다.

이는 일본이 조선을 별로 가망없는 국가, 날뛰어 봐야 별거 없는 국가로 생각했기 때문에 어느정도 발전을 해도 열강들과 동등한 대접을 받을 만한 국력은 갖추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니 예상을 뛰어넘고 한국이 일본과 거의 비등한 수준의 국가로까지 올라서자 슬슬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하는데, 더 늦기 전에 한국을 어서 보호국 내지 식민화 하기 위해 1914년, 한국에 일명 한일우호조약이라는 불평등조약을 강요한다. 그리하여 한국은 경제부터 일본에게 종속되어 가기 시작하나 일본은 이에 만족하지 못했다.

제 2차 한일우호조약

1918년, 일본은 한국에게 새로 조인한 불평등조약 체결을 강요한다. 이는 위에서 말한 1차 한일조약보다 더 한 것으로

한일조약이 단지 일본이 한국에서 경제적으로 우위권을 갖는 것이었다면, 2차는 이걸 넘어선, 한국을 일본의 괴뢰국 내지 종속국으로 만들겠다는 얘기였다. 이 조약에 따르면 한국은 독자적인 외교권도 소유하지 못하며,

군대 또한 해체하여 일본군에게 대신 치안을 맡기고, 내정도 기존 대한제국 내각 대신 한국통감부라는 새로운 조직을 설치하여 사실상의 정부조직으로서 한국을 다스리게 된다는 것이다.

보면 알겠지만 말만 독립국이지 사실상 반식민지나 다름없는 상태로 전략하게 된다는 것인데, 당연히 전국적으로 반대 여론이 일었으나 일본에 반기를 들면 기득권을 잃어버리게 될까 두려웠던 한국 정부는 결국 이 조약을 승낙하고 만다.

이러한 사실이 민간에 알려지자, 곧 전국 각지에서 의병들이 일어나 일본에게 저항하기 시작하는데, 자세한 건 한국 독립 전쟁을 참조하자.

한국 독립 전쟁 이후

한국 독립 전쟁이 사실상 의병의 승리로 끝나고, 회담 결과에 따라 일본군이 한국에서 철수하게 되자, 사실상 존재 의미를 상실하게 된 제국 정부는 임시정부가 서울에 입성하자, 마지막 황제 순종 융희제가 퇴위를 선언하고 내각 총의회가 백기를 들면서 결국 대한제국은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역대 황제

1대:고종 광무제(1897~1914)

2대:순종 융희제(1914~1919)

역대 내각총리대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