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해협 해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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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전쟁의 일부 | ||
기간 | 1943년 10월 26일 ~ 10월 29일 | |
장소 | 대한해협 | |
결과 | 조선 해군의 극적인 승리 | |
영향 | 일본군의 공세 저지 조선군의 본격적인 반격 시작 | |
교전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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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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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력 | 전함 4척 순양함 8척 구축함 13척 다수의 어뢰정 및 잠수함 항공기 231기 |
정규항모 2척 전함 5척 순양함 10척 구축함 7척 |
피해 규모 | 전함 1척 침몰 순양함 2척 침몰 구축함 5척 침몰 항공기 56기 손실 984명 전사 2,739명 부상 |
정규항모 1척 침몰 전함 3척 침몰 순양함 4척 침몰 구축함 2척 침몰 항공기 185기 손실 4,743명 전사 5,942명 부상 |
개요
"좌현 전타, 양현 앞으로 전속."[1] |
1943년 10월 26일부터 10월 29일까지 대한해협, 동래와 쓰시마 섬 중간에서 벌어진 일본 해군과 조선 해군의 해전이다. 악조건 속에서 조선이 승리했으며, 조선은 귀중한 전력인 전함을 1척 손실했으나[2] 일본은 항공모함 1척과 전함 3척을 손실했다. 이 해전은 수세에 몰렸던 조선 해군이 한일전쟁의 판도를 뒤바꾼 결정적인 전투로 여겨진다.
일본은 이 해전에서 패배하여 한일전쟁 내내 육군을 지원하여 호남·영남을 점령하고 조선과 강화를 맺겠다는 기존 전략이 아예 어긋나게 되었다.
어찌 보면 미드웨이 해전이나 명량 해전과 비슷한 부분이 많은데, 압도적인 참패 이후 고전하던 군대가 열세인 위치에서 대승을 거두어서 전황을 바꾸는 데에 성공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