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돌프 헤스 (게르마니아)

초대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 대표대리
루돌프 헤스
Rudolf Heß
본명 루돌프 발터 리하르트 헤스
Rudolf Walter Richard Heß
출생 1894년 4월 26일
이집트 케디브국 알렉산드리아시
사망 1943년 10월 16일 (향년 49세)
대독일국 뮌헨-오버바이에른 대관구 다하우군 다하우 강제수용소
임기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 대표대리[1]
1933년 4월 21일 ~ 1941년 5월 12일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 정치위원회 위원장[2]
1932년 ~ 1941년 5월 12일
국가지휘자[3]
1933년 6월 2일 ~ 1933년 9월 20일
무임소 장관[4]
1933년 12월 1일 ~ 1941년 5월 12일
독일국 의회 의원[5]
1933년 3월 5일 ~ 1941년 5월 12일
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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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 아버지 프리츠 헤스
어머니 클라라 헤스
형제자매 3남매 중 첫째
배우자 일제 프뢸
자녀 아들 볼프 뤼디거 헤스
병역 독일 제국군 육군 소위 정년 전역
(1914년 8월 ~ 1918년 12월) (군적 삭제 / 1941.5.12)
학력 뮌헨 대학교 (경제학 · 사학 / 학사) (학적 삭제 / 1941.5.12)
종교 신이교주의 (신비주의)
신체 175cm
소속 정당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 (출당·제명 / 1941.5.12)
의원 선수 4
의원 대수 1, 2, 3, 4[6]
소속 위원회 정치위원회 (출당·제명 / 1941.5.12)
복무 독일 제국군
1914년 ~ 1918년
돌격대
1922년 ~ 1933년
슈츠슈타펠
1925년 ~ 1933년
최종 계급 상급집단지도자 (돌격대)[7] (군적 삭제 / 1941.5.12)
상급집단지도자 (슈츠슈타펠)[8] (군적 삭제 / 1941.5.12)
서훈 2급 철십자장 (훈장 박탈 / 1941.5.12)
3급 바이에른 왕국군 군사 공로 십자장 (훈장 박탈 / 1941.5.12)
황금당원배지 (훈장 박탈 / 1941.5.12)
뮌헨 폭동 기념장 (훈장 박탈 / 1941.5.12)


개요

독일의 정치인.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 초기부터 아돌프 히틀러에게 광적으로 충성하며 함깨했으며 그의 출세에 힘입어 자신도 출세한 인물이다.

뮌헨 폭동 때 참가했다가 체포, 감옥에서 히틀러의 저서 '나의 투쟁'을 받아 적었으며 독일의 각종 정책과 인종 탄압에 열렬히 참여했다. 그러나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독단적으로 영국으로 비행기를 몰고 가서 강화 협상을 벌이려고 하였으나 영국에 의해 억류 되었고 이후 독일이 영국을 점령하자 체포되어 다하우 강제수용소에서 총살형으로 생을 마감했다.

생애

영국으로의 비행

메인디프 병원에서 1942년 6월 26일부터 생활을 시작했다.

재판

베를린 국제군사재판 선고 당일

베를린 국제군사재판에 전쟁범죄자로 기소되었고 또한 국가보안본부에서 따로 국가반역죄 및 간첩죄로 기소되었으며 독일 국방군 검찰단에서 항명죄로 기소되었다.

처형

1943년 10월 16일, 다하우 강제수용소에서 총살형으로 최후를 맞이했다.



"There would never again be silence for People of Germania"
"앞으로 다시는 게르마니아의 사람들에게 고요란 없을 것이다"
가장 현실적인 추축국 승리 시나리오... 그리고 그후...
대문 설정 국가 인물
  1. 출당·제명으로 인한 직책 상실
  2. 출당·제명으로 인한 직책 상실
  3. 직급에 비해 계급이 너무 낮아보인다는 이유로 국가지휘자에서 해임, 그러나 이후의 사건으로 인해 어쨌든 직책이 삭제되었다.
  4. 제명으로 인한 직책 상실
  5. 출당·제명으로 인한 의원직 상실
  6. 출당·제명으로 인한 의원직 상실
  7. 직급에 비해 계급이 너무 낮아보인다는 이유로 상급집단지도자에서 해임, 그러나 이후의 사건으로 인해 어쨌든 군적이 삭제되었다.
  8. 직급에 비해 계급이 너무 낮아보인다는 이유로 상급집단지도자에서 해임, 그러나 이후의 사건으로 인해 어쨌든 군적이 삭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