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유성 (해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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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루사회주의인민공화국 국가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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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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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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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성
박단아

해루사회주의인민공화국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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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2대
박유성
박단아
海總 海樓人民의 永遠하신 領導者
해루사회주의인민공화국 초대 대통령
해루사회주의인민공화국 제4대 국가주석
박유성
朴侑聖 | Park Yu seong
출생 1958년 9월 1일
안남자치시 안흥구
사망 2018년 7월 14일 (59세)
적경특별도 진양시 중구 적경인민대학교의료원
묘소 국립영웅묘원 박유성대통령묘소[1]
국적 해루 해루사회주의인민공화국
임기 해루 초대 대통령
2000년 12월 31일 ~ 2018년 7월 14일
해루 제4대 국가주석
1993년 5월 12일 ~ 2018년 7월 14일
해루최고인민회의 상무위원회 제9대 주석
2001년 1월 12일 ~ 2018년 7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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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안남 (安南)
부모 박정천, 양순옥
형제자매 남동생 박민성
여동생 박세화
배우자 김지원
가와치노후미 아키하
자녀 적녀 박단아, 박지아, 박수아, 박민아
서녀 박윤아, 박현아, 박세아
신체 179cm, A형
종교 국가무신론
학력 안흥소학교 (졸업)
적경중학교 (합격)
적경인민고등학교 (합격)
적경인민대학교 (경제학 / 학사 · 석사 · 박사)
약력 공화국회의 의원
해루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국원
적경인민대학교 총장
해루 초대 대통령
제4대 국가주석
해루최고인민회의 상무위원회 제9대 주석

개요

박유성 (朴侑聖/Park Yu seong)는 해루의 세습정치인으로 해루의 초대 대통령.

1993년 5월 부친 박정천 국가주석의 뒤를 이어 해루의 최고 지도자가 되었으며 2000년 12월 31일 국가주석직을 유지한 상황에서 대통령직을 신설하여 대통령에 취임하였으며 해루사회주의인민공화국 초대 대통령 겸 제4대 국가주석 겸 제9대 해루최고인민회의 상무위원회 주석 겸 공화국대원수을 역임하였다.

생애

집권이후: 임기 중 행보

후계자 선정 과정에서 벌어진 갈등

김지원 여사와의 결혼 이후 꽤 오랜 시간동안 후사를 보지 못한 까닭으로 2007년, 박유성 대통령은 자신의 동생 박민성을 후계자로 지명할 것을 검토하게 되었다. 박민성은 당시 해루 공산당 정치국 제2서기였으며, 정치적으로도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인물로, 당내에서도 박유성의 후계자로서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기에 해루 공산당 정치국에서도 박민성을 후계자로 추천하였고, 박유성 역시 이 제안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2008년 8월 15일, 박유성 대통령의 첫 번째 적녀인 박단아가 태어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박단아의 출생 이후, 박유성은 갑작스럽게 입장을 바꾸어, 갓 태어난 딸 박단아를 후계자로 지명하기로 결정하고 박단아를 후계자 임의지명했다. 이 결정은 해루 공산당 내부에서 큰 충격을 주었으며, 특히 기존의 후계자로 논의되던 박민성과 그의 지지자들 사이에서 대통령 파면까지 거론될 정도로 심각한 갈등을 야기했다.

박유성의 결정으로 인해 당내에서는 그의 결정에 반발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박민성을 지지하던 공산당 내 보수파와 박단아를 후계자로 지지하는 박유성의 직계 지지자들 사이에 심각한 권력 투쟁이 벌어졌다. 이로 인해 해루 공산당 내부에서는 심각한 분열이 일어나게 되었으며, 당의 정통 보수세력들은 박유성의 이러한 결정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

박유성의 이러한 선택은 단지 가족 내 갈등을 넘어 해루의 정치 구조 전체에 영향을 미쳤다. 기존의 후계자 선정 방식에서 벗어나 혈연을 중심으로 한 후계자 지명은 당내 기존 질서를 위협하는 것으로 간주되었고, 이는 해루의 정치적 안정성에 의문을 제기하게 만들었다.

계속된 반발에도 불구하고 박단아는 아버지의 선택에 따라 후계자 교육을 받기 시작했으며, 박유성의 사망 후 2018년 8월 15일에 공식적으로 해루의 대통령 겸 국가주석에 취임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갈등은 박유성의 통치 말기에는 이로 인해 당내 권력 구조가 흔들리기 시작했으며, 그의 사망 이후에도 이 갈등의 여파는 계속되었다. 박단아가 권력을 승계한 후에도, 그녀는 당내 보수파와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이러한 후계자 선정 과정은 해루의 정치적 안정성을 위협하는 요소로 작용했으며, 박유성의 통치 말기와 박단아의 초기 통치 기간 동안 해루의 정치적 불안정을 초래한 주요 원인 중 하나로 평가된다.

사망

과로와 직무 및 후계자 선정 과정에서 벌어진 스트레스로 인해 말년에 건강이 악화되었으며, 2018년 7월 12일 이문석李文奭 국정운영보좌관이 침실에 쓰러져있는 박유성 대통령을 발견하여 급히 인근의 적경인민대학교의료원으로 이송되었으나 발견이 너무 늦어졌던 영향으로 이미 생물학적으로는 사망한 상태였고 살리기 위한 온갖 방법을 사용한 이후에도 차도가 없자 이틀 뒤 가망이 없다는 담당의사의 말에 김지원 여사가 승낙하면서 산소호흡기를 제거하게 되었다. 결국 2018년 7월 14일 59세의 나이로 서거했다. 사인은 과로로 인한 뇌출혈.

비판과 논란

해루의 정치, 경제, 군사적 역량을 크게 강화하는 데 기여했지만, 동시에 내부적으로는 권력 다툼과 갈등을 초래하기도 했다.

어록

친족 관계

박정천
양순옥

남동생 박민성
여동생 박세화

배우자 김지원
장녀 박단아
차녀 박지아
삼녀 박수아
사녀 박민아

가와치노후미 아키하
장녀 박윤아
차녀 박현아
삼녀 박세아

여담

  • 대통령으로 재임하면서 고생을 많이 했는지 노화가 급속하게 진행되었다.
  • 아내 외에도 애인이 여럿 있었던 흑역사도 존재하는 등 복잡한 이성관계로 개인적인 문제를 많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정실부인과의 자식외에도 혼외자들이 상당히 많다. 본인은 죽기전까지 부정했기 때문에 논란이 분분했지만 2018년 박유성의 서거 이후 진행된 유전자 검사에서 친자식으로 밝혀져서 진실이 되었다.
  • 상술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사후 공산당의 주도하에 '해루 인민의 영원한 영도인'이라는 칭호가 부여되었다.

소속 정당

소속 기간 비고
1985 - 2018 정계입문
사망

각주

  1. 해루에서 명당 중 명당으로 유명한 곳이지만 애초에 사유지였던데다가 박유성 대통령의 묘소가 들어서기 전에 이미 묫자리로 쓰이고 있었다. 유족에게 어떠한 통보도 없이 토지를 국유화시킨 동시에 기존 무덤을 강제로 파묘시키고 박유성 대통령의 묘소를 조성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