保守合同

개요

자유민주당 창당대회에서 연설하는 아소 다로 일본자유당 총재.

1997년 11월 22일, 당시 모리 요시로 내각의 집권당이던 일본국민당과 이전까지 여당이었던 연립여당 아소 다로일본자유당, 그리고 오카무라 야스이가 이끌던 극우정당 조선관민회의 보수 3당이 전격적으로 합당을 선언하고 거대 보수여당 자유민주당을 창당한 사건.

이 일로서 일본내의 보수 세력은 자민당이라는 하나의 깃발아래에 결집하게 되었다. 한번에 327석을 확보함은 물론 공명당까지 357석을 확보해 안정 과반을 확보했다.

또한 당시 271석의 사회당과 보혁 양당제 구도를 만들고, 2009년 사회당 내란 사태로 사회당이 붕괴하는 때까지 이어지는 모리간 시대의 서막을 알렸다. 일본 정치는 호헌/용미/세계화를 내세운 자민당과 개헌/반미/자강을 내세운 사회당이 양분하게 되었다.(97년 체제)

자민당은 이후 자유당계 보수본류와 국민당계 보수방류의 갈등 탓에 여러번의 해체 위기를 겪으나, 결국 현재까지 융합되어 일본의 단일 보수 정당으로 이어져오게 된다.

배경

당시 제41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일미태평양평화조약을 체결한 자유당 내각이 지탄을 받고 반미투쟁이 벌어진 끝에 오부치 게이조의 사임, 총선까지 내몰리게 되었다.

이후 총선에서 사회당이 271석을 얻어 압승하고 자유당, 국민당은 각각 188석과 134석으로 몰리자 보수진영 내에서는 사회당 집권에 대한 공포심이 터져나왔다.

이에 자유당 측에서 먼저 고개를 숙이고 모리의 국민당과 조선관민회 측에 연정을 제의하게 되었다. 조건은 모리에게 총리직을 넘기되, 내무성, 외무성, 척무성 3개 성을 비롯 내각 각료의 3분의2를 자유당이 맡는다는 나름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사회당 집권 사태를 막는다는 공동목표 아래 두 당은 단결했고, 6월 22일 보수연정제1차 모리 요시로 내각이 출범한다.

연정 합의 과정에서 조속한 시일로 양당의 합당을 추진키로하였으며, 이후 11월 22일에 총재 모리 요시로, 부총재 아소 다로, 간사장 가토 고이치 등 당 집행부에 대한 합의가 타결되면서 자유민주당으로 합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