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unist 1968, 2020 / CC-0
The Beatles
비틀즈
왼쪽부터 폴 매카트니, 존 레넌, 피트 베스트, 조지 해리슨.
국가
영국
결성
1960년, 영국 머지사이드 주 리버풀
데뷔
1962년 10월 5일 (Love Me Do / P.S. I Love Yo)
해체
1963년 10월 17일 (데뷔로부터 377일)
멤버
존 레넌,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 피트 베스트
매니저
브라이언 엡스타인
프로듀서
조지 마틴
레이블
팔로폰 레코드

개요

1960년 결성되어 1963년 해체된 영국의 록/팝 밴드. 데뷔로부터 377일만에 해산되었지만 음악사에서 나름의 비중을 차지하는 밴드이며, 해체되지 않았다면 전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밴드가 되었을 것이라는 말도 있을 정도로 짧고 굵은 역사를 남긴 전설적인 밴드였다.

구성원은 폴 매카트니, 존 레넌, 피트 베스트, 조지 해리슨. 프로듀서는 주로 조지 마틴이 맡았다.

역사

쿼리멘 시절

1957년 머지사이드주 리버풀의 쿼리 고등학교에 다니던 존 레넌은 같은 학교 친구의 소개로 폴 매카트니를 만났다. 존은 당시 쿼리 고등학교 밴드인 '쿼리멘'의 리더로 활동하고 있었고 폴의 기타 실력을 보고 폴을 쿼리멘에 영입했다. 폴 매카트니는 리버풀 인스티튜트 고등학교에 같이 다녔으며, 친구 사이였던 조지 해리슨을 존에게 소개시켰다. 존은 조지의 영입을 바라지 않았으나 완벽한 기타 실력을 보고 그를 영입했다. 그렇게 1958년 리버풀에서 존-폴-조지 3각 체제가 완성되었다.

1958년 리버풀 미술대학교에 진학한 존은 스튜어트 서트클리프라는 친구를 사귀는데, 존의 설득으로 스튜어트가 밴드에 가입했다. 그러나 스튜어트는 음악 실력이 나쁘고 음악적인 흥미가 없어 밴드를 겉돌았고, 결국 밴드를 탈퇴하고 이른 나이에 병에 걸려 사망한다.

1959년 말 존은 밴드의 이름을 바꾸기로 결정했고 'The Crickets' 같은 잘 나가는 밴드들의 이름을 본따 지을까 고민하다가, 서트클리프가 제안한 Beetles(딱정벌레)에서 착안해 Beat와 Beetles를 합친 이름 'Beatles'라는 밴드 이름을 만들었다. 1959년 친구의 조언을 받아 The Silver Beatles라는 이름으로 밴드 명을 바꿨다가, 1960년 Siver을 빼버려 The Beatles만들 남겨 현재 알려진 이름으로 정식 결성되었다.

함부르크 시절

1960년 비틀즈로 이름을 바꾼 밴드는 리버풀의 캐번 클럽에서도 곡을 자주 연주하게 된다. 하지만 재즈가 인기였던 당대 음악 사조 때문에 비트곡을 연주하는 비틀즈는 선호받지 못했고 서로의 집을 돌아다니거나 돈이 있으면 클럽에서 시간을 보내는 생활을 반복했다. 그러던 1960년 매니저의 추천으로 알고 지내던 클럽 사장의 아들 피트 베스트와 함께 1960년 8월 함부르크로 떠났다.

당시 이들은 쉬는 시간도 충분치 못해서 12시간 연속으로 공연을 해야했고, 피트 베스트를 제외한 전원이 마약성 각성제에 손을 댈 정도로 상황이 나빴다. 거기다가 서트클리프는 존에게 속아서 끌려왔다며 존과 마찰을 겪었고 이후 밴드를 탈퇴하고 영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렇게 1961년 피트 베스트와 존, 조지, 폴로 4인조 밴드가 완성되었다.

1960~1962년 사이에는 그나마 리버풀 시절때보다는 나았지만 1962년 12월 조지 해리슨이 미성년자인 것이 함부르크 한자자유시 당국에 들통나 조지는 리버풀로 추방당하는 운명을 맞았다. 거기다가 반항기를 겪던 폴과 피트마저 방화 혐의로 쫓겨났고 결국 존은 어쩔 수 없이 리버풀로 돌아와, 2년에 걸친 함부르크 시절은 끝을 맺게 된다.

1962~1963, 처음이자 마지막 전성기

1962년 피트 베스트와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의 갈등으로 인해 리처드 스타키의 영입이 고려되기도 했으나, 존 레논의 반대로 인해 피트-폴-조지-존 체제가 유지되었다. 1962년 브라이언 엡스타인은 비틀즈에 흥미가 생겨 앨범을 내는게 어떻겠냐고 물었고, 비틀즈가 호응하면서 비틀즈 최초이자 마지막 앨범인 <Please Please Me>의 작업에 착수하게 되었다.

1962년 런던의 애비로드 스튜디오에서 프로듀서 조지 마틴의 지휘 하에 첫 레코딩을 가졌다. 마틴은 피트의 악기 연주 실력이 낮다면서 불평했다.

1962년 10월 발매된 첫 싱글 <Love Me Do>가 리버풀 팬들의 성원으로 UK차트 17위까지 오르며 흥행했고, 다음해 1월 발매된 Please Please Me는 UK차트 1위를 차지했다. 7주간 1위를 차지한 3번째 싱글 From Me to You에 이어 네번째 앨범인 She Loves You는 6주간 1위를 지킨데다가 영국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1위를 차지한 곡이 되었다.

그러나 비틀즈 내부의 갈등의 격화로 비틀즈는 해체할 조짐을 보였다. 피트 베스트와 폴 매카트니의 갈등이 심했던데다가, 폴 매카트니존 레넌의 음악적인 성향이 너무나도 달랐기 때문에 서로 갈등을 빚는 일이 많았다.

해체와 그 이후

결국 1963년 10월 4일 폴 매카트니피트 베스트와의 불화를 이유로 밴드를 탈퇴하면서 비틀즈는 중추를 잃고 무너지기 시작했다. 뒤이어 존 레논조지 해리슨피트 베스트와 음악적으로 맞지 않아 밴드를 그만 두겠다고 선언했다. 이때가 바로 1963년 10월 17일로 대뷔한지 377일 되는 날이었다. 그렇게 짧고 굵은 기간동안 록 역사에 큰 획을 그었던 비틀즈는 1년만에 해체되었다.

이후 존 레넌, 폴 매카트니, 피트 베스트, 조지 해리슨은 각자의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 폴 매카트니는 미완성 음악인 I Want To Hold Your Hand을 발표해 또다시 화제가 되었고, 1967년에는 Hello, Goodbye를 발표해 빌보드 차트 1위에 4주동안 머물렀다. 이후에도 Coming up, Yellow Submarine등 여러 화제곡을 쓰며 인기있는 아티스트로서의 삶을 살다가, 1990년대 들어서는 동물권 운동을 하며 망명있는 시민운동가로 살고 있다.

존 레넌은 1970년대까지 간간히 폴과 만나 음악 활동을 했고 UK차트 2위까지 올라간 I Am the Walrus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후 존은 오노 요코를 만나 진보적인 성향이 강해져 베트남전 반대 운동을 하다가 1970년대 후반 정계에 입문, 8선 노동당 의원으로 재직하닥 2007년부터 2010년까지는 영국 총리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조지 해리슨은 잠깐 영입이 고려되었던 리처드 스타키와 만나 다양한 음악, 종교 활동을 하며 평생을 보내다가 2012년 폐암이 악화되어 사망했다. 그는 생전에 힌두교 연구로 꽤나 학계에서 인정을 받았고 1980년대 초에는 런던 시립대학교의 종교학 박사 학위를 받기도 하는 등 종교학자로서의 삶을 살았다.

피트 베스트의 삶은 별로 알려진 바가 없으며, 이후 공무원으로 재직했다는 사실만이 알려졌다.

멤버

John Lennon
존 레넌
Paul McCartney
폴 매카트니
George Harrison
조지 해리슨
Pete Best
피트 베스트

음반

UK 차트 기록

1위

1위 ~ 10위

11위 ~ 20위

기타

각주

  1. 밴드 해체 이후 폴 매카트니가 미완성인 곡을 모아서 낸 앨범으로, UK 차트 2위까지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