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빛 속으로

세르바온 공화국 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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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바온 집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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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바온 공화국 초대 원수
세르바온 공화국 39대 집정관
서주원
Seo Ju-won
본명 조르주 아르망 주원 서 브뤼메르
Georges Armand Ju-won Seo Brumaire
출생 2782년 9월 5일
세르바온 자치령 브뤼메르
사망 2843년 9월 16일 (61세)
세르바온 공화국 샹베리
재임 39대 집정관
2806년 2월 13일 ~ 2843년 10월 27일
초대 원수[1]
2812년 1월 30일 ~ 2843년 10월 27일
부모 부: 서재윤
모: 레나조제핀 바갈리
배우자 모드 서(2817~2843)
약력 세르바온 자치령 해군 중장

개요

세르바온 공화국의 초대 원수와 39대 총리를 역임한 정치인, 군인.

세르바온 자치령의 해군 소령으로 동료들과 비의 달 쿠데타를 주도해 정권을 획득했고 독립을 선포하여 공화국을 건국하였다. 이후 공화국 집정관과 원수에 차례로 취임하여 37년간 세르바온 권력의 정점에 섰다.

생애

2782년 브뤼메르에서 서재윤과 레나 조제핀 바갈리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서재윤은 유명한 거상이었고 어머니 레나는 그가 두 아내와 이혼한 이후 세번째로 결혼한 아내였다. 서주원의 위로는 이복형 4명과 이복누나 6명이 있어 사실상 막내였다.

서재윤은 세르바온 정계에 상당히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는데 그의 고향인 브뤼메르를 비롯해 두개의 행성계를 기반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직접적으로 정치인으로 활동하지 않고 유력 정치인을 지원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일례로 2770~80년대 집권한 집정관 도르제 왕축잉골라 히세치는 서재윤의 강력한 지원 아래 집권을 오래 유지할 수 있었다.

막내라 딱히 가업에 참여할 수 있는 것도 없었던 주원은 8살부터 군사학교에 들어가 교육을 받았고 16살이 되던 2798년 아버지의 후광으로 우주해군에 장교로 임관, 빠르게 진급하여 불과 22살의 나이에 소령이 되었고 제14방면군 사령관에까지 보임되었다.

하지만 세르바온의 정치상황은 급격하게 변하고 있었다. 서재윤 본인의 정치성향은 좌익에 가까웠고 그렇기에 리베이라 자르툼 이전으로 정치경제체제를 되돌리려는 왕축과 히세치를 지원하였으나 일각에서는 금전으로 정치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서씨 일가를 매우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결국 피르카스주의 강경파인 노프 샤들리가 집정관에 당선되면서 서재윤의 입지는 크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서재윤은 인민평의회 의원들을 규합하여 반격을 준비하던 도중 2805년 12월 27일 괴한에게 피살당했다. 놀란 강경파는 책임을 피하고자 노프 샤들리를 사임하게 만들었으며 중도파 알렉산더 베이모르가드를 대신 내세웠다.

그러나 아버지의 죽음에 분노한 서주원은 2806년 1월 10일 14방면군을 이끌고 훈련을 위해 함께 주둔하던 세르바온 방위군을 공격하여 무장해제시키고 세르바온으로 선수를 돌렸다. 당황한 정부는 여타 방면군을 끌어와 이를 진압하려 하였으나 4만명에 불과한 제10군만 명령에 응하였고 이는 서재윤에 대해 호감이 높았던 대중의 전반적 여론을 고려하지 않은 강경파 정부의 실책이었다. 서주원은 1월 22일 세르바온을 접수하고 인민평의회로부터 ‘수호자(Tutelarius)’ 칭호를 얻어 24살의 어린 나이에 실질적 권력을 장악하였다.(비의 달 쿠데타) 그러나 어린 나이로 인한 좁은 입지를 잘 알고 있던 그는 타 세력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인민평의회와 별도로 행성위원회를 설립하여 권력의 안정과 균형을 꾀하려 했다.

정치성향

집권 초기 주요 정적이었던 피르카스주의 강경파와 대립하였지만 실제로는 그들과 입장이 매우 비슷했다. ‘세르바온인에 의해 소유된 독립된 주권’은 피르카스가 생전 주장하던 것이었으며 사회주의식 정치경제체제 수립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피르카스주의 강경파가 서주원과 대립한 것은 서주원이 상인 출신 집안라 자신들에 의한 정책 추진이 가로막힐까 염려한 것이 그 원인이었다. 진상은 영영 알 수 없게되었지만 서주원의 아버지인 서재윤이 암살당하게 됨으로써 둘은 정치적 입장이 비슷함에도 완전히 틀어지게 되었다.

  1. Chef d'ét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