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천
遡望天

수도 백혈화행정시에 세워진 소망천의 동상.
출생 1866년 1월 25일(1866-01-25)
필리핀 다바오 (훗날의 염사국 설우행정시)
사망 1960년 6월 11일 (94세)
염사국 염사국 백혈화행정시 도간궁 내광전
사인 자연사
국적 염사국 염사국
별칭 염사국의 아버지.
염사국의 수호자.
염사국의 유일한 황제
종교 기독교
배우자 우호연(1903년 사망), 당백희
자녀 소태장, 소전웅
부모 소당사, 조잉소
병역 미군 필리핀인 특수부대장
필리핀 공화국 육군 중장

염사국의 제 1대 무혈왕이자 염사국의 국부(國父). 연호는 일경(一慶). 중국계 필리핀으로 필리핀 공화국 전 육군 중장. 나라가 도산의 위기에 처하자 쿠데타를 일으켜 염사국을 세웠다. 추존한 호는 태조덕애국치유일무제(太祖悳愛國治有一無帝).

생애

1866년 1월 25일생으로 가난한 소작농의 1남 2녀 중 첫째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악덕 스페인 농장주에게서 핍박받으며 살고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결국 소망천이 6살 때 채찍으로 마구 구타당해 결국 독이 올라버려 사망하고 말았다. 이에 분노한 소망천은 어머니와 누이들을 놔두고 농장주를 돌로 때려 죽였다. 그러나 소망천은 유족들에게 구타당했다. 다행히 그의 누이들과 어머니는 친척들에게 대피시켜 무사할 수 있었다.

겨우 목숨을 건진 소망천은 당분간 국외로 도피하려 했지만, 도피 4일 전 미국이 필리핀에 들어오게 된다. 그러나 미국은 그들을 더욱 심하게 탄압했고, 결국 1900년 무력시위를 계획하나 밀고로 들통나 도주범 신세가 된다.

그러던 중 아내가 병으로 죽게 되자 돌아가게 되는데, 거기서 그만 덜미가 잡혀서 붙잡히고 만다. 그러나 그의 정신력과 신체능력을 높이 산 군인에 의해 입대를 강요받는데, 이때 옥중에서 동지 가 될 당백희와 결혼해 2남을 낳는다. 쨌든 미군에 입대한 그는 뛰어난 재능을 보이며 진급을 빨리 하게 되고 1920년대엔 특수부대에 자원해 수많은 작전에서 공을 세우고, 제2차 세계대전에도 참전해 전차 7대를 부수고 추축국군인들 32명을 사살하는 등 공적을 세워 훈장을 딴다.

이후 필리핀 공화국이 독립하자 입대해 육군 중장이 되었지만, 마르코스의 폭정을 견디다 못해 자신의 가족들과 의논한 후 본인을 따르는 군인들을 이끌고 쿠데타를 일으켰는데, 당시 해군과 공군도 마르코스에게 불만이 많았던 탓에 합세해 쿠데타는 단 22시간 만에 끝이 나고 염사국을 세우고 왕위에 취임한다. 이후 선정을 펼쳐 국민들의 행복도를 높여 명군으로 찬양받았지만, 노환으로 1960년 6월 11일 사망했다. 사후 황제로 칭송받았는데, 이는 염사국의 유일한 황제다.

기타

외모는 잘생긴 편이었다고 한다. 특히 국무대신 당왕경의 일기에 어릴 적 사진을 보았다는 기록이 있는데, 그의 표현은 "마치 코가 서양인마냥 오똑하며 각진 턱이 매력적이었고, 입술은 석류도 얼굴을 붉힐 정도로 붉었다. 더구나 머리카락 역시 병사들의 일렬마냥 단정하였지만 눈가에 푸른색 눈동자는 보름달이 뜬 강과 같았지만 슬픔이 여려 있었다"고.

염사국의 평가는 말 그대로 한국의 세종대왕 급. 당장 기록에도 국고의 돈을 퍼서 국민들에게 나눠주었다는 기록이 있는데다, 문자를 정리해서 국민들의 적응을 쉽게 하였고, 어질고 따뜻한 성격이었다, 위에 말한 외모찬양 등 칭찬이 넘쳐나고, 아예 수도 한복판에 동상이 세워져 있고, 대학교마다 동상이 세워져 있는 등 사실상 신 수준. 더구나 생일, 기일, 결혼기념일 엔 국기게양의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