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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476년 6월 14일 | (25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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셸룩쿠르 주 셸룩쿠르 중앙도시구역 | ||||||||||||||||||||
현직 | 아이니오위스 제국기사단 부단장 아이니오위스 제국해군 제3해상전투전대 전대장 해군력재건위원회 부위원장 | |||||||||||||||||||
재임기간 | 아이니오위스 제국기사단 부단장 | |||||||||||||||||||
년 월 일 ~ 현직 | ||||||||||||||||||||
서명 | 파일:.svg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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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아이니오위스 제국의 군인. 현재 해군 준제독으로 제국기사단의 부단장을 역임하고 있다.
상세
신력 476년 6월 14일 셸룩쿠르 주 셸룩쿠르 중앙도시구역에서 셸룩쿠르지역방위총감인 부친과 모친 사이에서 2남2녀 중 차녀로 태어났다.
아이니오위스 왕국 육군사관학교 제64기 기병학과 출신으로 63기 포병학과인 에리스 세레디엔 에르웰라스의 한 기수 후임이다. 아이니오위스-루메지아 전쟁 당시 제34보병사단 기병정찰대대에 소속되어 참전하였다가 신력 488년 6월 23일 다스토우 공방전 당시 중상을 입어 후송되기도 했다. 이때 상이기장 제3급을 수여받았다.
488년 9월 3일 퇴원하여 아이니오위스 왕국군 제2기병사단에 재배속되어 종전이 될 때까지 참전했다. 나파이로 전투에서 루메지아 왕립육군 제3보병사단의 사단장과 제6군 참모장을 저격으로 사살하는 전과를 올려 2급 철십자공로훈장을 수여받았다. 그외에도 신력 489년 11월 2일 단독으로 적진을 돌파하여 포위된 제35경보병사단에 돌파 작전을 전달하는 위험한 임무를 수행했다.
패전 직후 투문자르 협정 부속장정에 따라 전투에 참여한 사관생도들은 모두 전범으로 기소되거나 민간인 신분으로 바뀔 예정이었으나 아이니오위스 왕국 총참모부의 피나는 노력 끝에 신력 490년 4월 20일 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임관 후 제1보병사단에서 소대장 직무를 수행했다. 패전 직후 아이니오위스에는 국민입헌통치주의(=공화주의)와 사회혁명주의(=사회주의) 열풍이 불어서 각지에서 반란이 자주 발생하던 시기였는데 그녀도 진압에 참여하여 반란군을 하나둘 진압하면서 1급 철십자공로훈장을 수여받았다.
계속된 반란으로 결국 궁전이 시민항쟁군에 의해 함락되면서 왕정이 무너지고 공화정이 들어선 이후 공화국 정부로부터 해군으로 전속하라는 지시에 해군으로 전속 후 해군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당시 아이니오위스 인민해군은 루메지아 왕국의 피의 보복으로 수많은 지휘관들이 처형당한 관계로 장교 자원이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에 빠르게 진급을 거듭해 494년 해군 중령으로 진급하였다. 직후 왕당파 군인들이 주도하는 혁명군사위원회에 합류를 권유받아 왕정복위에 동참했다.
결국 신력 495년 부패와 무능으로 국민의 신망을 잃은 공화국 정부가 민중혁명으로 인해 붕괴하고 왕정이 돌아오면서 그녀는 해군 대령으로 진급과 동시에 아이니오위스 제국해군 제3전단 소속 제3전대 전대장 겸 해군력재건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임명되었다.
제국기사단의 부단장
제국기사단 창설이 결정되고 에리스에 의해 창설준비위원회 부위원장으로 내정되었다. 당시 아티엔은 이러한 제안을 고사했다. 하지만 에리스가 "나와 겨눠서 이기면 그냥 놔주겠다."라고 말하며 두 사람의 대결이 성사되었고 에리스와의 대결에서 결국 패배하면서 부위원장직을 수락하게 되었다.
그리고 제국기사단이 창설되자 부단장에 임명되었다. 기사단 일각에서 해군 출신이 제국기사단의 부단장을 맡는 게 맞는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있었지만 에리스는 모든 것은 본인의 결정이고 자신의 일에 토달지말라며 일축했다.
제국기사단 부단장에 임명된 이후 기사단 소속의 해군보병특무대와 공수특전단 창설을 주도했다. 기사단장인 에리스가 대외적인 얼굴마담 역할을 수행한다면 아티엔은 에리스가 부족한 실무역량으로 실질적으로 대부분의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신력 501년 1월 1일 기사단 소속의 보안과를 방첩청으로 확대개편했는데 아티엔이 방첩청에 제국군을 감시하는 임무를 부여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물론 본인은 부인했다. 10일에는 독전대 임무를 수행하는 야전군사경찰대를 창설했다.
신력 501년 3월 23일 발생하여 루메지아 왕국 국경군 소속 국경수비대원 43명이 사망하고 178명이 부상을 입은 루메지아 왕국 국경검문소 연쇄 테러사건과 4월 2일 루메지아 왕립육군 참모본부 폭발사건이 연이어 발생하자 루메지아 왕국의 주류언론과 정치권에서 해당 사건의 배후로 유력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에 루메지아 왕국 군무부는 아이니오위스 제국에 아티엔에 대한 범죄자 인도를, 국제사법연맹에 국제지명수배를 요청한 상황이다.
신력 501년 5월 4일 루메지아 왕국의 국왕인 아르튀르 2세과 마엘 왕태자의 암살 시도가 발생하고 현장에서 구속된 테러범 3명이 본인들이 방첩청 요원이라고 주장하며 아티엔 부단장의 지시로 암살을 시도했다고 자백하면서 루메지아 왕국 정부가 아티엔을 인도를 요구하며 아이니오위스 제국에 대해 준전시상태를 선포했다.
여담
- 이름보다는 애칭인 '아티'라고 자주 불린다.
- 매우 독실한 성모 아그네스교 신자로 알려져 있다.
- 첼로테 이티엔델 아르워다스과 사관학교 동기다. 첼로테 역시 해군으로 전속하였으며 현재 제국해군 제1해상전투전대 전대장 겸 해군고문을 역임하고 있다.
- 냉정한 성격에 인간혐오자인 에리스와는 정반대의 성향을 보인다. 예로 에리스는 인간과 엘프의 혼혈계통인 왕녀 타냐 랄리엔타 보로펠을 인간의 피가 섞였다며 증오하지만 아티엔은 타냐를 감싸주며 기사로 양성시키고 있다. 다만 아티엔 역시 인간을 좋아하지는 않는 모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