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
大韩 | Korea
제국 1845~1950 민국 1950~현재 국장
守护东方的白虎之国
동양을 수호하는 백호의 나라
상징
국가 여명의 시대
국화 오얏꽃 → 무궁화
역사
• 칭제건원 1845년
• 보신전쟁 개입 1869년
• 제국선포 1870년
• 한러전쟁 1904년~1905년
• 신해혁명 개입 1911년~1912년
• 1차 세계대전 1915년~1918년
• 적백내전 개입 1918년~1922년
• 한일우호조약 체결 1925년
• 2차 세계대전 1942년~1945년
• 민본국정 선언 1950년
• 국공내전 개입 1951년~1953년
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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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적 2,815,400 km2
수도 서울
최대도시 심양 - 1492만 8250명(2020)
접경국 러시아 • 중화연방 • 몽골 연방 공화국
일본 민주 공화국 • 아이누 공화국 • 유구 공화국
인문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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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전체 인구 365,125,500명(2020)
민족 구성 한국인 95%
일본인 2.5% • 러시아인 1.5% • 중국인 1%
인구 밀도 129.68명/km2(2020)
언어 모국어 한국어
외국어 영어 • 일본어 • 러시아어
종교 국교 없음
무교 45% • 불교 25%
개신교 21% • 기독교 9%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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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체제 조선식 입헌군주제1845~1950
의원내각제 • 양원제 • 다당제 • 성문법주의
황제 이청
정부 요인 총리
국가원수
김구초대 → 박동호현재
상원의장 이승만초대 → 김사헌현재
하원의장 신익희초대 → 최진철현재
대법원장 김병로초대 → 김안수현재
전략사무국장 이범석초대 → 홍현현재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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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목 GDP 전체 GDP 12조 8520억$(2020)
1인당 GDP 35,198$
GDP (PPP) 전체 GDP 15조 7550억$(2020)
1인당 GDP 43,149$
화폐 공식 대한민국 원(₩, WON)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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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유엔 상임이사국
법정연호
서력기원
시간대 UTC+9 (대한민국 표준시)
도량형 SI 단위계
운전석
(통행방향)
왼쪽(우측통행)
ccTLD
.kr, .한국
국제 코드
410, KOR, KR
국제 전화 코드
+82
위치

개요

대한(大韓)은 1845년 6월 6일부터 1950년 6월 25일까지 사용된 조선의 국명이다.

조선의 23대 국왕인 혜종이 칭제건원하고 국호를 조선에서 대한으로 변경하였다. 즉 조선에서 그대로 이어진 나라다.

한국사의 마지막 전제군주국이며 민본국정 이후 제국에서 민국으로 현재까지 이어진다.

2차 조청전쟁에 승리한 조선은 청나라와의 군신관계를 청산하고 자주적인 나라로 변모하였으며, 동시에 1차 • 2차 조청전쟁에 대한 반대파들을 숙청해 혜종이 꿈꾸던 근대화에 박차를 가한다. 이듬해 1850년 6월 6일 청나라 자금성 태화전에서 즉위식을 거행하였다.

이후 1950년 2차 세계대전 종전 5주년에 대한제국의 7대 황제인 광무제(원종)가 민본국정을 선언하고 대한제국에서 대한민국으로 전환되어 현재까지 이어진다.

국호

국명은 대한(大韓)으로, 대한은 삼한을 일컫는 다른 말로써 한반도 전역과 남만주 일대을 이르는 말이다.

현대인들은 삼한이 마한 • 진한 • 변한이란 걸 알고 있지만, 삼국시대 후반 당시에는 의미가 변형되어 고구려 • 백제 • 신라를 삼한이라고 불렀고, 이후 남만주를 차지한 조선이 옛 고구려의 영토를 회복했다하며 전국에 소식을 전할 당시에 "삼한일통"이라 적어 보내었기 때문에 '한'은 한민족의 영역 전체를 의미하는 별칭으로도 쓰인다.

그 후 영의정 권돈인이 칭제건원에 대한 안건을 올렸으며 이는 조정뿐만 아니라 전국각지로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혜종은 칭제건원을 결심하였으며 국호를 대한이라 정했으며 "동양"이라는 연호을 사용하게 된다.

국기

대한제국 시절에 사용된 국기는 청천광명삼한기(晴天光明三韩帜)이고 "대한의 백성들이 세상을 빛나게하리"라는 뜻이며

대한민국부터 사용된 태극기(太极旗)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대한제국군의 최고명예훈장에서 디자인을 따와 만들어진 국기이다.

국장

대한 황실 상징이자 국장은 이화문의 오얏꽃 문장(李花紋)이다.

오얏꽃이 황실 문장으로 고정되면서 대한민국의 초대총리인 김구가 제시한 무궁화에 태극문양을 더해 만들어진 국장이다.

당시 이승만 상원의장이 제시한 매화꽃이 흐지부지되자 이승만이 국회에서 난동을 부린 이야기가 전해진다.

역사


대한의 주요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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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교전세력 결과
보신전쟁
1869
도쿠가와 막부 대한제국의 큐슈 획득과 일본제국의 성립
신해혁명
1911~1912
청나라 청나라 멸망, 장강 남북으로 중화민국과 중화연방 수립
1차 세계대전
1915~1918
독일제국과 동맹국 유럽의 전제군주제 몰락 • 국제 연맹 창설
적백내전
1918~1922
볼셰비키 정부 러시아령 외만주 획득 • 소비에트 연방 결성
2차 세계대전
1942~1945
일본제국과 추축국 미국과 소련의 냉전 체제 • 식민제국의 몰락 • 유엔 창설
국공내전
1951~1953
중국 공산당 국민당의 승리 • 간쑤성의 공산당 잔당과 몽골의 연방공화국 수립

대한제국 역대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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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제2대 제3대 제4대 제5대 제6대 제7대
태황제 이설화 효황제 이광 성황제 이홍 장황제 이원 숙황제 이성 의황제 이순 청황제 이청

조선 역대 국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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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제2대 제3대 제4대 제5대
태조 이성계 정종 이방과 태종 이방원 세종 이도 문종 이향
제6대 제7대 제8대 제9대 제10대
단종 이홍위 세조 이유 예종 이황 성종 이혈 연산군 이융
제11대 제12대 제13대 제14대 제15대
중종 이역 인종 이호 명종 이환 선조 이연 광해군 이혼
제16대 제17대 제18대 제19대 제20대
인조 이종 효종 이호 현종 이연 숙종 이순 경종 이휘서
제21대 제22대 제23대 제24대 제25대
영조 이금 정조 이산 혜종 이설화 순조 이광 헌종 이홍
제26대 제27대 제28대 제29대 제30대
철종 이원 고종 이성 순종 이순 원종 이청

혜종 통치기(1820~1875)

두 차례에 걸친 청나라와의 전쟁으로 정묘년과 병자년의 복수를 마친 혜종은 영국 공사관과 프랑스 선교사의 도움을 얻어 1850년 6월 자금성 태화전에서 칭제건원를 거행한다. 칭제건원을 끝 마치고 러시아와의 조약으로 만주를 각각 대한령 남만주, 러시아령 외만주, 공동통치령 북만주로 분할하였으며, 영국이 러시아 제국과 벌이는 그레이트 게임에 대한 군사적, 경제적 지원을 받은 혜종은 친청 내각을 구성하고 집요하게 국정을 방해한 조정관료들을 숙청하고 중앙과 지방조직의 재개편, 철도부설, 근대화 등 내부 개혁을 추진하였으며 유럽과 미국에 근대적 외교관을 파견시켜 대외 외교에 힘을 쏟으며 나라를 통치한다.

특히 만주를 둘러싼 이권경쟁으로 러시아와 국경마찰이 잦아지며 러시아를 견제할 힘을 가진 영국의 힘이 필요하단것을 느끼고 국가를 변모시킬 것을 구상한다. 칭제건원 후 영국 장교의 훈련으로 양성한 8만여 명의 근대화된 군대를 갖추고 1869년에 보신전쟁에 개입하여 일본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보신전쟁으로부터 약 6개월 뒤인 1870년 1월 5일 그동안 구상했던 대한제국을 서양식 궁전인 덕수궁에서 선포한다. 초기 대한제국의 체제는 영국식 입헌군주제냐 아니면 대한제국에 맞는 조선식 입헌군주제냐에 대한 현대 역사학자들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학자들은 조선식 입헌군주제라고 따로 분류한다. 하급 관료와 황실 종친이 주축인 민중파는 영국식 입헌군주제를 주장해왔고, 고위 관료가 추축인 근왕파는 혜종이 구상한 조선식 입헌군주제를 주장했으며 우여곡절 끝에 조선식 입헌군주제가 채택되었다. 훗날 독일제국이 성립될 당시 채택된 정치 체제로 조선식 입헌군주제가 사용되었으며 대한제국보다 더 높은 왕권을 구사한 체제가 되어 독일식 입헌군주제로 따로 분류하게 된다


보신전쟁 개입
1853년 미국의 페리 제독이 함선을 이끌고 내항한 이른바 흑선내항 사건은 도쿠가와 막부가 미국의 군사력에 굴복하여 지키지 못했던 사건이자, 각 번을 힘으로 찍어누르던 막부의 권위를 심각하게 실추시킨 사건이었다. 더불어 막부는 1858년 고메이 덴노의 칙허를 받지도 않고 독단적으로 미국과 미일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였으며 덴노를 무시하고 조약도 전형적인 불평등조약이었으므로 당시 일본 각 지방 번에서 왕성하던 국학을 신봉하던 젋은 무사층과 조선사대주의를 신봉하던 쓰시마 번과 큐슈 북부 번에서 커다란 반발을 가져오게 되었다. 이후 도쿠가와 막부는 번들을 조기에 탄압하여 국학파와 조선파, 소수의 친미파들을 대거 숙청하기에 이른다. 이에 반발하며 1868년 쿠데타를 거행했으며 국학파와 조선파는 임시동맹(삿초동맹)을 맺어 도쿠가와 막부에 반기를 들게 된다. 이미 미국과 일본에 대한 의견을 조율하던 대한이 신정부군을 지원하여 도쿠가와 막부는 멸망했으며 신정부군은 일본제국을 성립하기에 이른다. 이때 신정부군의 국학파는 에도를 점령하여 혼슈와 시코쿠를 지배하며 일본제국을 선포하며 도쿠가와 막부는 훗카이도에 에조공화국을 선포한다. 조선파가 주류인 큐슈에선 큐슈연맹을 설립하였다. 이때 일본제국의 잔류한 친한파 인사들도 큐슈로 넘어갔다. 일본제국은 큐슈동맹을 포섭하여 편입을 요청했으나 거부하여 일본제국 내부에 불만을 야기했으며 2차세계대전에서 일본제국이 대한제국을 침략하는 계기가 된다.

제국선포
보신전쟁에 개입 이후 대한은 1870년 1월 5일에 서양식 궁전인 덕수궁에서 대한제국(大韓帝國)으로 선포한다. 이후 대한제국의 영토로 편입된 큐슈는 지방의 다이묘들에게 행정권을 남겨주고 외교권을 환수했으며 지역의 방위군에 대한 군사권도 다이묘에게 양보하였고 한일우호조약 이전까지 이러한 체제를 유지했다.

순조 통치기(1875~1900)

혜종의 황태손이 즉위하여 대한제국의 근대화에 속력이 붙은 시기이며, 제국은 멋으로 붙여놓은 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듯 대한제국 시기 중에서도 가장 급속도로 근대화가 추진됐다. 근대식 군대인 제국군이 완편되었고 육군사관학교와 해군사관학교 설립하여 장교들을 양성하였으며 정부 기관과 제도를 개편하였다.

남만주와 한반도를 골자로 하는 20개의 지방행정구역도 개편되어 오늘날 대부분의 도와 시군의 구역과 명칭이 이때 탄생하였다. 표면적으로는 22개의 행정구역으로 개편되었지만 구주의 행정권은 독립으로 나온 큐슈의 다이묘들이 통치함으로 2개의 행정구역은 제외되었다.

이 시기 영국과 미국을 필두로 한 외국자본에 각종 부설권과 광산 개발권을 주고 세금을 부여하였고 경기도와 평안도에 국한되있던 도로망과 전기 등 기간시설을 구축하고 외국자본의 잠식에 대비하여 상공업을 진흥시켜 혜종 통치시절과에 비하여 세수를 크게 늘렸다. 이때 황실이 주도로 설립한 기업 화령이 오늘날의 대한민국의 경제에 큰 이바지를 하고있다. 8도(한반도)에만 국한되던 토지측량을 구주와 남만주 등 모든 국토에 대해 호구조사 지질조사와 병행하여 측량하여 종래의 토지결수를 늘리고 집세를 부과하였다. 한양은 이때부터 서울이란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서울과 심양 간에는 철도가 완공되며 대도시 대로변과 시가지가 정리되고 수많은 유럽풍의 근대 건축물이 들어섰다. 특히 동양(포트아서)은 도시 자체가 유럽 도시를 연상케 할 정도로 유럽화된 도시이다.

전기-화학 회사를 설립하여 전신, 전화 통화가 가능해졌고 밤에는 가로등이 시내를 밝혔다. 복식도 변화하여 1870년에 혜종이 서양식 드레스을 입던걸 시작으로 양복이 유행하게 되었으며 1차 조청전쟁 이후에 시행했던 단발령은 실패한 반면 1875년에 시행한 단발령은 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행하였고, 기존 기득권 세력(사대부)가 몰락하고 유교에 대한 많은 논리들이 황제국이 됨으로서 변형되어 지방 유림들도 단발령에 참여해 보수주의 세력에게도 확대되었다. 상공업이 부흥하자 한국인이 설립한 수많은 기업과 가게가 들어서고 많은 서양 문물이 전파된다.

오늘날의 많은 대학교 등 관립·사립학교와 각종 외국어·실업교육기관이 이시기에 대폭으로 설립되어 근대식 교육이 시행되었고 공문서의 국문화 또는 국한문화와 함께 12개의 신문을 발행하였다. 대한제국 시기 만주를 둘러싼 러시아와 청나라의 대립과 러시아의 군사력은 위협적이었고 그만큼 변화도 빨랐다. 순종의 개혁 이전에 방문했던 외교관과 선교사들은 몇 년 사이에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했다고 평가할 만큼 급진적이었다.

헌종 통치기(1900~1922)

이 시기에는 청나라에서 벌어진 신해혁명이 중국을 휩슬었으며 헌종은 국민당을 지원하여 청나라를 멸망시켰고 명나라 황실의 후손을 중화연방의 황제로 즉위시켰다. 영국과의 거래로 중화연방은 국가로써 인정받았으며 중화민국은 위안스카이가 지배하며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해 청-일전쟁으로 성장한 일본과 손을 잡아 일본에게 많은 이권을 주는 21개조 요구가 체결된다.

이후 러시아는 극동에 영향력을 행사하기위해 대한제국에게 선전포고를 하며 한-러전쟁이 발발한다. 한-러전쟁에서 승리한 대한제국은 지역열강에서 국제적 열강으로 인정받았으며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승전국의 지위를 따낸다. 적백내전이 발생하자 러시아 백군을 지원할려 했지만 소련은 러시아령 만주를 회유책으로 받아들여 군대를 철수한다.


한러전쟁
1903년 공동통치령 만주에서 친한파 세력이 집권하자 러시아 내부에서 공동통치령 만주를 비롯하여 대한제국령 만주까지 지배하자는 반발이 극심해졌다. 1904년 러시아가 공동통치령 만주의 수도 대경(다칭)을 점령하고 대한제국에게 선전포고를 하였다. 러시아와 청나라간 비밀협정으로 청나라의 군대가 대한제국령 남만주를 침공했으며 일본제국은 러시아에 물자를 지원하였다. 하지만 대한제국 해군은 톈진에 상륙하여 청나라를 굴복시켰으며 해령(하얼빈)에서 벌어진 해령전투을 시작으로 대경공방전, 흑룡강전투에서 연이은 승리를 거둬 승전하였다. 비록 러시아가 패배를 인정하지않았으나 공동통치령 만주를 대한제국령 만주로 편입하여 외만주를 제외한 만주를 차지한다. 이때 러시아 해군은 영국의 방해로 전쟁이 끝날 때 까지 대만 근처에도 오지못했다고 전해진다.

1차 세계대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세르비아 왕국의 전쟁으로 촉발되어 1914년 7월 28일부터 1918년 11월 11일까지 전 세계적으로 전개된 전쟁이다. 전 세계적으로 전개되었다지만 사실상 유럽에서의 전쟁이라고 보기도 한다. 대한제국은 당시 프랑스와 동맹이였고, 일본은 영국과 동맹이였기 때문에 두 나라 동시에 참전하였다. 대한제국은 유럽에 주력했으며 일본은 아시아에 주력했다. 당시 대한제국은 유럽의 선진기술을 원했기 때문에 프랑스의 기술공유와 인적자원을 약속받고 유럽에 파병을 보내었으며 승전 이후 독일제국의 기술과 공장을 배상금으로 획득했다. 일본은 팽창주의을 선호하여 칭타오와 웨이하이웨이, 대만을 차지했으며 강대국들의 암묵적인 허락을 받아 류큐국을 일본제국의 영토로 편입하기에 이른다. 류큐국은 사실상 중립국이였지만 일본제국이 영국과 미국, 프랑스를 설득하여(독일과 단독협상한다고) 류큐국을 병탄하였다.

러시아 내전 개입
적백내전이라고도 불리며 볼셰비키가 정권을 탈취한 1917년 10월 25일을 시작으로 본다. 대한제국은 1차세계대전 승전 후 백군편으로 러시아 내전에 개입하였다. 이에 블라다미르 레닌은 러시아령 외만주를 회유책으로 제시했으며 이미 1차 세계대전과 적백내전 개입으로 인명피해가 막심한 대한제국은 회유책을 받아들여 내전에 개입한 군대를 철수한다. 이때 일본제국이 사할린을 무단점유하였지만, 유럽지역 러시아를 간수하기 바빴던 소련은 당시 사할린에 소극적이었다. 레닌은 러시아령 외만주와 사할린 영유를 로마노프 왕조의 제국주의에 의한 불법 점유라고 주장했고, 일본에게 공식적으로 사할린 섬 전체를 반환하려고 했지만 대한제국의 압력에 일본은 북사할린의 석유개발권만 획득하고 반환과 함께 소련을 승인하면서 실행되지는 않았다.

철종 통치기(1922~1930)

이 시기의 동아시아에선 중화민국은 국민당과 공산당, 친일파들이 뒤엉켜 대륙을 좀먹고있었다. 하지만 국민당이 각지 군벌들을 격파하는 등 조금씩 남중국 통일의 길을 걷고 있었고, 중화연방은 두 차례의 전쟁과 신해혁명의 피해를 복구중이였으며, 일본제국은 다이쇼 데모크라시라는 잠깐의 호황을 끝으로 군국주의로 급격히 경도되었다. 여기에 불을 붙이듯 대한제국과의 한일우호조약으로 고삐풀린 일본이 1925년 복건사변을, 1927년 제1차 상하이 사변, 1933년 광주사변을 일으키며 국제 정세를 위협하더니 급기야 국제연맹 탈퇴를 선언해버리고 남중국에 괴뢰국인 대중국을 세웠다.


한일우호조약 체결
당시 일본의 팽창을 저지하던 헌종이 죽고, 일본에 대한 우호적인 입장을 가진 철종이 즉위해 일본에 대한 외교방침이 수정되게 된다. 이에 일본은 외교특사를 보내어 철종의 즉위를 축하했으며 양국간의 우호조약을 체결하자고 요청한다. 조정관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925년 11월 17일 대마도(쓰시마)에서 한일우호조약이 체결되었다.

제1조 한일양국은 평화와 안전과 정의를 위태롭게 하지 않는 평화적 수단에 의하여 문제를 해결한다.
제2조 한일양국은 타국의 공격에 의하여 위협을 받고 있다고 어느 당사국이든지 인정할 때에는 언제든지 서로 지원한다.
제3조 한일양국은 서로의 영토에 대한 영유권을 인정하며 서로의 영토에 외교적, 군사적 행동을 금지한다.
제4조 대한제국은 구주(큐슈)를 일본에 반환하며 유구국(류큐국)과 북사할린에 대한 일본의 영유권과 개발권을 인정한다.
제5조 일본제국은 대마도(쓰시마)에 대한 대한제국의 영유권을 인정하며 구주(큐슈)반환에 대한 보상금을 지급한다.
제6조 한일양국은 서양열강의 침략에 대비하여 대한은 육군, 일본은 해군에 투자하여 상호 방위에 할애한다.
제7조 본 조약은 무기한으로 유효하다. 한일양국은 타 당사국에 통고한 후 조약을 종지(終止)시킬 수 있다.

체결 이후 일본제국은 구주(큐슈)반환에 대한 보상금을 2차 세계대전 직전까지 보상금 전체의 10%밖에 지급하지 않았으며, 대한제국이 해군을 포기함으로써 이후 벌어지는 2차 세계대전에서 강력한 일본해군에 대응하지 못해 경상도를 빼앗기는 대참사까지 벌어졌다. 일본은 부산만공격 개시 5시간 전에 조약파기와 함께 선전포고를 대한제국에 통보했다.

고종 통치기(1930~1940)

스토리 설정중

순종 통치기(1940~1945)

스토리 설정중


2차 세계대전
나치 독일과 일본 제국 중심의 추축국에 의해 발발하고, 이에 미국과 소련 중심의 연합국이 맞서면서 1945년 일본이 항복할 때까지 총 6년 동안 이어진 전쟁이다.

원종 통치기(1945~1950)

자연환경

대한민국 전도
대한민국 행정구역


본토와 부속도서

• 한반도와 만주, 구주를 통치하는 국가로, 러시아와 몽골 연방 공화국 중화연방과 이웃하고 있다.
• 대한민국의 헌법상 영토는 '한반도와 만주, 구주 그 부속 도서이며 면적은 2,815,400 km2이다.
• 압록강과 두만강을 기준으로 남쪽은 한반도, 북쪽은 만주라고 정의한다.

1차 조청전쟁(1841년) 이전 한반도에선 8도 체제를 유지했으나, 전쟁 이후 남만주를 획득하게된 조선은 남만주에 대한 행정구역 개편으로 12도를 추가한 20도 체제로 확대되었다. 이후 만주지역을 통합한 대한제국은 북만주 8도와 외만주 5도, 구주 2도를 포함하여 총 35도 체제로 확장되었다. 최남단 섬으로 용성도(요코아테)가 있으며 동해에 위치한 오경도(오키), 발해에 위치한 묘도열도가 대한민국의 부속도서이다.

생태

동식물 모두 목숨을 해치는 맹수나 독초가 거의 나지 않는다. 특히 호랑이는 해수구제사업 등으로 한반도에서는 씨가 말랐으며 대한제국 시기 만주에서도 외만주를 제외한 만주 지역에서도 씨가 말라 버렷다. 지금은 멧돼지, 곰 외에는 포유류 맹수가 없다. 하지만 외만주으로 쫓겨난 호랑이나 늑대, 표범등 복원 문제가 논의되면서 북만주에 재도입될 가능성도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조류는 548종, 포유류는 152종 곤충은 186종이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다.

기후

광활한 국토에 비례해 기후대가 매우 다양한 축에 속한다. 그래봤자 시베리아 한파로 인해 겨울만되면 얼어 죽는다. 대륙성 바람의 영향을 받는 몬순 기후이지만 지형성 강수가 나타나고 일부지역에 고지대성 기후가 나타난다. 최한월 기준을 -3℃ / 0℃ 중 어느것으로 두느냐에 따라 기후대가 크게 달라진다.

자원

대표적인 자원으론 석탄과 석유, 시멘트의 원료인 석회석이 대표적이고 철광석도 많이 생산되는 자원 중 하나이다.

인문환경

인구

대한민국의 인구는 2020년 기준 대략 3억 6512만 명으로, 아시아 3위, 세계 3위에 해당한다. 인구밀도는 129.68명/km2으로 세계 56위에 해당한다.
한국 특유의 정서인 집단주의, 단일민족 특성상 이민을 받더라도 동화주의적인 정책을 펼치며 선진국임에도 불구하고 출산율은 2.3명으로 높다.

평균수명

대한민국의 평균 수명은 2020년 기준 88.5세로 세계 평균에 비해 상당히 높은 편이다. 이유는 대한민국의 의료제도가 한몫한다.

언어

• 대한민국의 공용어는 한국어와 한국 수화이다. 국립국어원이 공용어의 규범, 즉 표준어를 규정한다. • 구주에 거주중인 한국인들은 일본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종교

종교를 믿지않는 사람이 45%에 달하며 불교와 개신교가 각각 25%, 21%의 사람들이 믿고, 기독교는 9%의 사람들이 믿는 종교이다. 종교를 믿지않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인본주의로 현대 한국인의 정서를 반영한다.

행정구역

1820-1875 1875-1900 1900-1922 1922-1930 1930-1940 1940-1950 1945-2020

정치

정당

행정

외교

경제

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