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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8월의 어느 한 날, 여느때처럼 추적추적 내리는 비가 런던의 회색 거리를 물들였다. 제국연방의 화려한 깃발만이 오로지 빛을 받아 호화로운 색을 머금었을 뿐, 오로지 세상은 잿빛의 물결 아래에 잠들어 있었다. 텁텁한 공기, 그리고 하늘을 가득 매운 매연, 추적추적 내리는 먼지낀 비. 어쩌면 이것이 런던에서 태어난 사람에게 응당 마땅한 자연의 섭리일지도 모른다.
"..."
그때 한 남성이 날 바라본다. 그 남성이 입고 있는 옷, 적색의 제복과 어깨에 달린 견장. 런던에 사는 사람이라면 그 옷을 보고 그가 어떤 사람인지 유추하지 못할 수 없을 것이다. 난 그를 알아봤다. 그도 어째서인지 나를 알아봤다.
"잠시 협조 부탁드립니다."
난 그의 그 엄격하고 어쩌면 겉으로는 정중해보이는 말에 반응했다. 그의 눈빛은 싸늘했다. 아니 싸늘하다 못해 마치 살아있는 시체를 보는 것 같았다. 그의 피부 또한 창백해 보는 것 만으로 얼어붙는 것 같았다.
"네, 무슨 일이죠?"
난 답을 했다. 답을하지 않는다면 그는 분명히 날 강제로 제압해서 구치소로 끌어넣을 것이 분명했다. 그 점을 인지한 상태에서 그에게 반항하는 것은 단순한 객기에 지나지 않다는 건 런던에서의 상식이었다.
"제국근위대 헨리 맥커튼 이등준위라고 합니다. 아시겠지만, 최근 이 근처 거리에서 열등종의 존재가 확인되었습니다. 열등종에게 호도된 몇몇 시민들이 그들을 숨겨준 것같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신분증 확인 가능하겠습니까?"
난 그 말을 듣자마자 본능적으로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네 신분증을 그에게 건넸다. 그는 흰 장갑을 낀 손으로 내가 건넨 신분증을 받아들였다. 그가 내 손에 들린 신분증을 가져가는 순간에 우연히도 그의 손이 내 손에 맞닿았는데, 난 그때 그의 손이 시체보다도 차가움을 느꼈다. 이 대목에 오니 난 그가 정말 살아있는 사람이 마증ㄹ까라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는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라 톱니바퀴로 돌아가는 인형일지도 모르겠다. 말이 되지 않는 말이지만, 런던이라면 불가능할 것도 딱히 없다.